피아니스트의 뇌 - 뇌과학으로 풀어낸 음악과 인체의 신비
후루야 신이치 지음, 홍주영 옮김 / 끌레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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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의학박사이자 피아니스트인 저자 후루야 신이치의 [피아니스트의 뇌]는 타이틀만 보면 '뇌'라는 단어 때문에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악기 하나 쯤 연주할 줄 알면 좋겠다는 바람을 부추기는 '피아니스트'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을 펼쳐보게 된다. 사실 피아니스트의 뇌 보다 그들의 손이 더 궁금하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사람도 이 책을 읽어보면 될 것 같다. 뇌가 손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과 둘 사이의 관계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초절기교'를 선보이는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영상을 보면 지금 저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음표', 악보밖에는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혹은 만화등을 보면 연주를 하면서도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리기도 하고, 연주가 끝나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등 다양한 생각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장면등이 나온다. 허구니까 그런건가, 아니면 그들이 천재라서 가능했던 걸까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고 알았다. 초절기교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의 뇌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 다른 이들의 뇌움직임과 달랐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거나 행동할 때 뇌에서는 운동을 관여하는 부분이 빠른 속도로 활동한다. 반면 피아노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들의 뇌는 똑같은 행동을 할 때 뇌가 차지 하는 활동량이 일반인과 다르다. 저자는 이를 '절약하는 피아니스트'라고 말한다. 덕분에 연주를 하면서도 다른 생각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나를 포함해 어린시절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떤 음악이나 혼자 콧노래로 흥얼거릴 때 손가락이 마치 건반위를 유영하듯 함께 움직인다. 이런 현상은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고 척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악보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피아노를 오랜기간 연습하면 할 수록 전문적으로 피아노를 연습하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많은 양의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악보를 머릿속에 넣어둘 수 있는 것도 그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명 피아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도 오랜기간 연습을 하면 뇌를 좀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을 몰라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저자처럼 연습을 무리하게 해서 더이상 칠 수 없게 되는 상황도 발생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부상없이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의 3대 질병이라면 건초염, 수근광증후군과 앞서 두 질병과는 달리 통증이 없는 포컬 디스토니아이다. 건초염과 수근광증후군의 경우는 피아니스트 뿐 아니라 도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골프, 의사 등도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 피아니스트들에게는 도구를 이용한 운동을 권하지 않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중요하게 설명하는 질병은 '포컬 디스토니아'로 이 질병은 안타깝게도 치료방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고 치료기간도 연습을 한 기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오랜기간 연주를 했던 사람이라면 심지어 수술까지 받아야 하고 설사 수술을 받더라도 그다지 큰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예방이 가능하다면 치료가 어렵더라도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다. 우선 연주를 오랜기간 한 사람들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가 그리는 지도자체가 조금 달라지는 데 이런 이유로 피아니스트와 뇌의 연관성을 연구해야 하기기도 한다. 우선 포컬 디스토니아의 증세는 통증이라기 보다는 연주를 하려고 할 때 특정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거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등 스트레스로 인한 원인을 포함, 원인이 정말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방이 더더욱 중요한데 우선 올바른 몸 사용법과 불필요한 근육 긴장이 일어나는 구조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무조건 많이가 아니라 같은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근육의 지구력'이 필수라고 말한다. 서문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다른 생각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뇌의 활동이 손의 근육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연주중에 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연습중에는 뇌가 오롯이 피아노 연주에만 집중, 다른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더불어 근육의 손실을 최소한 줄일 수 있는 자세를 연구해야 하는 것도 방법인데 잘못된 자세로 인해 근육이 수축된 상태로 장기간 연습하게 되면 다른 근육까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주가 가능한 최소한의 힘으로 근육의 긴장과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관건이다.

리뷰에는 뇌의 구조를 설명할 때 필요한 전문 용어등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이 책은 쉽게 읽을 수는 있어도 내용자체가 그리 단순하거나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피아노와 뇌가 어떤 관련이 있고, '무리한'연습이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분명 유용한 책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우리의 뇌가 어떤 활동을 하고 좋은 선율을 들려주는 것외에 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찾아가는 여정이 기대이상으로 즐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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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미래 - 디지털 시대 너머 그들이 꿈꾸는 세계
토마스 슐츠 지음, 이덕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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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실리콘 밸리 지사 편집장 토마스 슐츠의 저서[구글의 미래]의 부제는 '디지털 시대 너머 그들이 꿈꾸는 세계'다. 한 기업에 종사자들이 꿈꾸는 세계를 우리가 알아야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기업에 속한 그들은 그저 개인의 부와 안정된 노후 정도가 아닐까 싶겠지만 구글은 일반 대기업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개인의 부를 떠나서 '세상을 바꿔 보고 싶다는 야망'이 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속된말로 공부를 잘해서 S기업과 같은 회사에 입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구글입사는 신이 내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정도로 입사가 까다로운 구글의 직원들은 점차 젊고 유능할 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채용담당자는 그들 사이에서 돈만 벌려고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을 좀더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자면 구글 생명공학 관련 부서의 목표는 '치료'가 아닌 '예방'이다. 사람들은 몸이 아픈 징후가 보인 후에야 혹은 아예 일상 생활이 불가능 할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는다. 효과적인 치료로 회복되는 것도 물론 인류사에 큰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는 처음부터 예방하는 기술이 발명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SF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로 혈액 샘플을 통해서 신체 어느 부분이 약화되고 어떻게 치료하면 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전부 보관, 관리된다면 그리 어려운 얘기도 아니다. 바로 여기서 구글이 짊어지고 있는 가장 큰 부담감 '개인정보보호'문제와 만나게 된다. 단 한번도 기업의 가치가 하락하거나 이윤이 추락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구글의 발목을 붙잡는 유일한 키워드가 '개인정보보호'다. 구글에 접속한 누군가는 접속한 그 순간부터 열람한 페이지, 시청한 유튜브 채널, 이용한 정보서비스 등 모든 것을 저장한다. 물론 개인이 직접 설정해서 저장을 방지할 수 있긴 하지만 뜻하지 않게 자신의 모든 기록을 한 기업에 넘겨주는 것은 사실이다. 구글은 이런 정보를 '광고사업'에서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글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궁금해 하는 것, 우리 정보를 모두 저장할 욕심을 가진 이 기업이 어떻게 미래를 주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과연 그것이 철학적인 개념에서 보았을 때 '안전하냐'는 것이다. 구글의 비밀 프로젝트 중 하나인 로봇 프로젝트의 경우는 그 어떤 사업보다 가장 철저하게 보안유지를 하고 있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그 사업이 정말 인류의 미래를 바꾸기 위한 '긍정적인 기술'인지, 아니면 영화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파괴', '정보기술자 특권층에 의한 독재', '개인의 자유상실'과 같은 엄청나게 위험한 기술인지 정확하게 알 수 뿐더러 지금껏 구글의 대처방식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후자의 평이 압도적일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이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기술들은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무인자동차의 경우 이 기술이 대중화 된다면 앞으로는 더이상 자동차가 '소유'의 개념이 아니게 된다. 내가 원하는 때와 장소에 나타나 나를 싣고 가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집의 일부를 할애하고 비용을 들여 보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검색하고 이용하는 검색 서비스 역시 광고에 이용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반대로 건강검진처럼 우리가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좀 더 신속하고 명확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기도 하다.

세상을 더 나은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 구글. 수백개의 아이디어가 쏟아지면 거기에서 실현가능성을 논하며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현하지 못할 이유를 찾는다는 색다른 그곳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는 솔직히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가 그저 상상만 해왔던 모든 일들과 발상을 실제 엄청난 자본과 시간, 노력을 투자해서 실현해 내는 기업을 보고 부정적으로 보기에는 다수 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개인정보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 지, 누구에게서 보호해야 할 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제대로 '이용'할 준비만 하면 될 것이다. 직접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이들은 '참여'하면 될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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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무령왕릉 - 권력은 왜 고고학 발굴에 열광했나
김태식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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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문화재 관련 학술기자로 활동한 저자 김태식의 [직설 무령왕릉]의 부제는 '권력은 왜 고고학 발굴에 열광했나'다. 바로 해답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전부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대부분 작가의 말과 뒷부분에 몰려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48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전부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문화재 발굴과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그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고 있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선 책의 첫 시작은 고고학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았던 1920년대에 총독부의 지시로 유물을 발굴하는 상황으로 돌아간다. 우리나라의 고유 문화를 약탈하던 그들이 어째서 유물을 도굴이 아니라 '발굴'하려 했는지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를 제대로 안다는 것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큰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총독부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곳은 이 책의 중심이 되는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가 아니었다. 개성과 평양을 중심으로 대규모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고 참여자들은 모두 일본 도쿄대 출신의 능력있는 학자들이었다.

​송산리 6호분 유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62쪽


'가루베'라는 와세다 대학 출신의 학자는 주 전공이 고고학 혹은 역사학이 아니었던 등의 이유로 해당 작업에 참여할 수 없었는데 그때 가루베가 교편을 잡게 된 곳이 공주였고 그 덕분에 우리는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를 모두 가지게 된 송산리 고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가루베는 총독부도 인정했을 정도의 '도굴'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를 비롯 여러 도굴꾼이 공주를 파헤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유물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루베에 의해 공주의 고분들이 발견된 후 총독부가 드디어 송산리 고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때마침 가루베의 도굴 행적이 드러나면서 '무령왕릉'이 하마터면 발견될 수 있었던 상황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가루베의 저서를 보면 송산리 고분들 중 6호를 통해 가까운 지점에 '무령왕'혹은 그정도 위치의 권력을 가진 이의 고분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기 때문에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정말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무령왕릉이 가루베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대부분의 유물을 일본 혹은 아예 만나지 못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령왕릉은 봉분의 원형을 알 수가 없다. 1971년 발견 당시에 봉분이 거의 허물어져버려 원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화재관리 당국은 원형을 복원한다며 우람한 봉분을 얹었다. 177쪽

무령왕릉이 다행스럽게 가루베의 손을 피할 순 있었지만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내내 가슴아파했던 '졸속발굴', 도굴꾼들도 이렇게는 하지 않았을정도라고 안타까워 하는 상황은 피하질 못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남한내에 제대로 된 고고학자가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북한과 비교해서도 그 실력과 관심이 뒤쳐져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희망을 걸 수 있었던 남한에서 유일하게 관련 연구를 했던 김정기도 일본출장 일정과 겹쳐 1차 발굴 현장에 함께 하지 못했다. 무령왕릉 발굴과 관련 김원룡은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듯'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안타까워 했다.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 속에 졸속으로 마무리된 발굴 작업을 외부에서는 크게 비판하지 않았다는 점도 의아 할 정도다. 무령왕릉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할 수 있는데 저자는 크게 6가지로 이야기 한다. 첫째는 삼국시대 고분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매장된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무령왕의 사망 연대를 통해 [삼국사기]의 정확성을 입증할 수 있었고 삼국사기 뿐 아니라 [일본서기]에 기술된 내용과의 일치성을 통해 이 문서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백제가 어느 나라와 교류했는지도 알 수 있는데 책의 다른 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긴 하나 우선 관재가 일본에서만 나는 '금송'임을 밝혀냄으로써 어떤 의미로 관재에 일본목재가 쓰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연구과제를 남겼으며 묘의 겉모습이 벽돌무덤이라는 '중국'문화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뿐만아니라 묘 내부의 구조와 시신이 안치된 방향등을 미루어 백제인들의 내세관과 중국 및 일본의 내세관과 거의 일치하다는 사실도 밝혀낼 수 있었다.


이런 유물을 통해 관람객은 무의식적으로 위대한 왕이 구가했을 왕국을 떠올리게 되고, 나아가 현세의 독재자 출현에 대한 갈망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454쪽-


무령왕릉과 관련된 내용은 엄청나게 방대하지만 다시 처음 서두에 적은 것처럼 이런 내용들이 어째서 권력과 관련성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마무리 해야 할 것같다. 우리가 역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배우려는 것과 권력자들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독재자들의 정세가 높았을 때 일수록 문화는 더더욱 화려해지고 역사에 대한 의미부여가 강력해질 수 밖에 없다. 무령왕릉 이후 천마총을 발굴하는 작업에 대통령이 직접 방문했다는 사실을 그저 역사에 관심을 갖고 문화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정도로 해석해서는 안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때의 영광을 다시금 자신의 손으로 이뤄보려는 자가 어떤 정치를 펼칠 것이라는 것 또한 역사를 통해 우리는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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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별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지음, 최상희 옮김 / 사계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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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어두운 숲 속에 여우가 살았다.' 로 시작하는 이 책은 등장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 수로 헤아리자면 셀 수 없으나 총류로 나누자면 그러하다. 한 마리의 여우, 그 여우와 친구였던 하나의 별, 그리고 무수히 많은 별, 여우에게 쫓기는 토끼, 벌레 등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오로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별을 찾아다니는 여우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활자를 읽었지만 '이게 뭐야.'싶은 마음뿐 이었다. 하루가 지난 뒤 다시 읽었다. 일부러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도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여우가 별을 찾아헤매는 여정을 천천히 쫓았다. 오랜기간 별이 없던 날, 잠만 자던 여우의 마음을 상상도 해보고, 자신을 보면 무조건 도망치기 바쁜 토끼인 줄 까먹고 별의 행방을 묻는 여우의 심정이 어떠할까 가늠도 하면서 그렇게 읽었더니 두 번째는 좀 코끝이 찡해왔다. 그리고 세 번째. 깊고 어두운 숲 속, 여우가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고 그저 즐거울 수 있었던 것,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도 괜찮겠다 싶었던 별이 사라졌다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 실감이 났다. 어릴 적 친했던 단짝이 전학을 갈 때 울면서 이튿날 학교가기 싫다고 투정부리던 일, 부모님이 귀농을 결정 하셨을 때 홀로 빈집에 남아 밥을 먹던 일 등이 생각났다. 언제나 완벽하게 혼자 였던 적도 없던 때에 난 그렇게 슬퍼하고 괴로워했었는데 누구에게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조차 들을 수 없던 여우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자꾸만 자고 또 자고 싶었던 그 마음이 차차 이해되고 공감되기 시작했다. 고된 여정끝에 수 많은 별을 발견했을 때, 그 안에서 자신과 벗하던 별도 분명 있을거라 믿는 씩씩한 여우가 너무 대견하고 기특해서 궁디 팡팡 해주고 싶은 맘이 들었다. 아마 내가 어른이 아니라 아이였다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활자만 그대로 따라 읽을 줄 밖에 모르는 메마른 감성이 아니었다면 처음 읽고서도 이런 기분, 이런 감동을 느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은 동화책도 즐겨 읽고 문학작품도 꾸준히 읽고 있는데 여전히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활자로 된 감성이 아니면 느낄 줄 모르는구나 싶어 한번 더 울컥했다.  남의 이야기를 그저 듣기만 하는 버릇, 혹은 내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것 말고 진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나서 좋았다. 저자의 그 어떤 이력도 이 책의 내용앞에서는 빛이 바라는 것 같다.

 

 

 

여우와 별을 읽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

아마 그들은 여우처럼 그렇게 소중한 별을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간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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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딜
소피 사란브란트 지음, 이현주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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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호화로운 주택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매일 같이 아내를 폭행하는 정말 나쁜 인간이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나쁜 남편들의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연기 덕분에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조차 그의 본모습을 모를 정도로 사교성 좋은 사람이었다. 어쨌든 그의 죽어서 가장 기쁜 사람은 다름아닌 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의 아내 코넬리아. 코넬리아가 그동안 가정폭력으로 인해 상처받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녀의 유일한 친구 조세핀이다. 조세핀은 공교롭게도 이 추리소설을 이끌어가는 여형사 엠마 스콜드의 친 언니다. 자매라는 설정 때문인지 M.J. 알리지의 [이니미니]가 떠올랐지만 전혀 다른 스토리라는 것을 적어야 겠다. 혹시 나의 이 한 줄 리뷰때문에 오해하면 안되니 말이다. 다시 [킬러딜]로 돌아가면 가정폭력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모르고 사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동안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자주 폭행을 당했으면 분명 누군가 주변에서 그녀의 상처를 본적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질문등을 형사들이 한다는 점에서 가정폭력은 그야말로 '가정'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전문가들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부분을 언급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안일한 수사가 코넬리아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반전의 바전'이라는 광고 덕분에 이 책의 범인 적어도 '코넬리아'를 포함한 여자는 아니겠구나 하는 짐작을 다들 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범인이 아닐 확률이 희박하다는 데 있다. 왜냐면 왠만한 나쁜 남자들의 유형이 모두 등장하기 때문이다. 복수심에 타오른 범죄라는 점은 잔혹한 살해방법에 의해 알 수 있었지만 살해동기는 그야말로 마지막 페이지를 읽지 않고서는 짐작만 할 뿐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이지만 않을 뿐 대략적으로 어떤 원한이 있었겠구나 하는 추리가 가능해지는 부분이 등장한다. 그것은 코넬리아 남편의 살인 사건이후 추가적으로 일으킨 범죄 때문으로 독자들은 오히려 알듯 말듯 모호하게 그려지는 구도에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된다.


[킬러딜]을 처음 읽고 중반부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소설 중 이만한 작품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나 흥미진진하고 독자들의 가슴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작품이 왜 이제서야 국내에 출간된 것인지 억울할 정도였다. 엠마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도 정말 궁금했는데 중반을 넘어가면서 부터 슬슬 범인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라?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끝에 다다랐을 때 엄청난 배신감에 화가 날 정도였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더니 왜 반전이 없는지 궁금했는데 이 작품을 시리즈로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 범인이 누군지, 살해 의도를 알고 났을 때 허망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배신감이 느껴졌는지는 일어보면 알 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배신감이 느껴진 것은 그만큼 코넬리아, 엠마, 조세핀에게 몰입했다는 증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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