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회사가 아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클래식 1
폴 크루그먼 지음, 유중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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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제와 비즈니스는 동일한 주제가 아니다. 어느 한쪽의 전문가가 다른 한 쪽의 전문가가 되기는 커녕 이해하는 것도 장담하지 못한다. 성공한 기업가가 군사 전략가가 될 가능성보다 경제 전문가가 될 가능성은 더욱 없다. -p.94-


성공한 기업가의 정치가 실패하는 이유


선거를 며칠 앞두고 노벨경제학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를 읽었다. 나라살림이 어렵고 실업이 늘어나고 오르는 것은 물가 뿐, 월급은 그대로인 요즘 그 어느때보다 제대로된 정책이 시급하다. 이 책을 읽기전까지 나 역시 성공한 기업가라면 국가경제에 이로운 정책을 내놓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지 않을까? 건설업이 부흥하고 수출이 증대되면 일자리 창출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경제학 또는 경영학을 공부한 이들이 반드시 사업에 성공할거란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상당히 얇다. 이 얇은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에게 심어주고자 하는 내용은 '성공한 사업가가 반드시 나라 경제를 성공시키지는 못한다'라는 것뿐 아니라 심지어 사업가의 방식과 국가경제 방식이 아예 다르다고 말한다. 따라서 사업가의 조언이 국가경제 정책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업가의 방식이 경제정책이 아니라 군사정책에는 맞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우선 아무리 큰 사업을 경영하고 있다고 해도 나라경제에 비하면 아주 작은 가게경영 정도 수준으로 최소 600배 정도의 규모차이가 있고, 나라살림은 폐쇄된 형태라면 사기업은 개방형태라는 것도 큰 차이가 있다. 이를 예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데 가령 우리가 핵폐기물 처리소를 건설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어느 누구도 심지어 처리소 건설을 적극 주장했던 의원들조차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들어오는 것은 결사 반대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각자 주민들은 자기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할 수 있지만 국가에서는 결국 어느 한 장소를 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기업의 경우가 동네 주민 혹은 지자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하는 폐쇄적인 쪽이 나라살림인 것이다.


매년 유망사업이나 분야를 정하기 마련인데 사기업에서는 자신들이 유리한 종목이나 분야를 선택할 수 있지만 국가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유망한지의 여부를 떠나 모든 사업을 꾸려가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 시스템 방식과 성격이 다른 기업가의 조언이 나라경제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 챕터는 대통령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국내 뿐 아니라 다른 강대국조차 성공한 기업가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것이 국민들에게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아마 이 책을 읽고나서도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가며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기업가들 조차 자신들의 조언이 올바르고 경제학자들은 그저 탁상공론, 실제 현장에 나와보지도 않은 글만 파는 사람들 정도로 폄하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말한다. 오히려 분석하고 '이론'을 공부한 경제학자들의 조언이 훨씬 더 나라살림에는 보탬이 되어준다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자가 사업가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보다 분석이 더 어렵고 고차원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리뷰에서도 반복해서 언급하지만 분야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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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다 - 혼자여서 아름다운 청춘의 이야기
신혜정 글.그림 / 마음의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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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과 언어가 바뀐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으므로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던 그 건물은 나를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앨리스로 만들어주었다.p.23

 

 


신혜정 작가의 [흐드러지다]라는 책이 내게는 이국땅에서 올라탄 [엘리베이터]역할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지역을 여행한 게 지난 12월 겨울이었다. 그 이후로 늘 상상속에서만 이상한 나라로 떠나곤 했다. 책을 많이 읽었고, 특히 여행기를 다른 때 보다 많이 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길어도 결국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처럼 책장을 덮고 리뷰마저 쓰고나면 곧 일상으로 돌아와버렸다.  그녀가 시간앞에서 흐드러지고 싶었던 그 마음처럼 앞으로 긴 여행을 떠나지 못할 나의 형편상 이 책으로 위안을 삼아얄 할 처지라 [흐드러지다]로 내 시간마저 흐드러질 수 있는 기간이 꽤 오래갈 것 같다.

 

 


그녀가 맨 처음 시간 앞에, 흐드러졌던 독일은 아주 오래전 다녀왔던 곳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역내 서점에서 열심히 이것저것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촬영이 금지된 장소는 아니었지만 서점 밖에서 기다리던 동료들 걱정에 서둘러 찍었던 사진들은 마치 허겁지겁 먹고 체한 것처럼 나중에 확인해보니 건질만한 사진이 거의 없었다. 그치만 그랬던 추억과 서점 풍경들은 마음에 그대로 남아있다. 마치 저자가 카메라가 아닌 마음에, 그리고 그림으로 남긴 것처럼 그랬다. 두 번째 터키를 여행하며 기록한 '당신과 흐드러지다'편의 이야기는 나의 추억과 비교하는 즐거움 보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많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오로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경계'와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등도 생각하게 했고 특정 종교가 아니라 종교가 갖는 가장 순수한 상태의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좋았다. 저자와 달리 종교가 있긴 해도 간절하게 구하고 신당안에서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는 모습은 그자체로 평안하고 좋아보였다. 세 번째 라다크 여행기와 어우러진 '마음으로 흐드러지다'편은 저자의 소박한 그림이 가장 돋보였던 편이기도 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풍경을 담는 것인데 아주 세세하게 표현한 그림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보았던 라다크의 모습이란 것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라다크의 여행을 통해 유년시절 가졌던 세상의 방식에 대한 의문과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은 '개발'의 결과물이 오히려 인간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고민해볼 만한 이야기였다. < 달 스위치>란 시는 필사하고 싶을 만큼 고운 시라 일부를 옮겨본다.

 

 


어쩌면 그것은 오래된 미래

모든 전원이 상실되고

 

 


빛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밝힌다.

 

 


비로소

달의 스위치를 켜는 시간

백수해안에도 같은 달이 떴을 것이다.

 

 


-p.182-183 달 스위치 중에서 -

 

 

 

 

총 4부로 나뉘어졌는데 마지막 편 '돌아와 흐드러지다'는 추가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읽고 함께 흐드러져 보았음 싶은 마음에서다. 그저 활자를 읽기만 하자고 하면 3시간도 걸리지 않겠지만 저자가 어떤 책의 어느 구절을 읽고 떠났었는지 헤아려보거나 그녀의 그림속 풍경과 글을 한 번더 매만져가며 읽다보면 나처럼 한동안 흐드러지게 될 것이다. 시간 앞에서, 누군가와 함께, 마음속에서, 돌아와서 그리고 이 책과 함께 그렇게 흐드러질 것이다.

 

 


혼자여서 아름다웠던 지난 시절의 기록들을 당신 앞에 풀어놓는다.

당신은 결코 외롭지 않다고, 빛나는 사람이라고, 함께 흐드러져 보자고. - p.5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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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벽 - 벽으로 말하는 열네 개의 작업 이야기
이원희.정은지 지음 / 지콜론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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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것은 영원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가능한 일들이다.

나에게 벽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 포토그래퍼 Steven Beckly-

 

토론토 출신의 캐나다인 스티븐 버클리의 인터뷰는 거리에 나가 대학생들을 인터뷰했을 때 나오는 답변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정겨웠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월세, 고지서, 학교 등이라는 답변에 어딜가나 젊은 학생들은 '공부'가 아닌 '공부를 하기 위한'외부적인 요소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오면 왜 그때의 그 '스트레스'가 그리운 것인지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그는 한밤중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며 벽이 주는 의미가 '가능성'이라고 답했다. 그의 인터뷰 페이지에 실린 사진중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창틀에 세워져 있던 '파인애플'을 담은 사진인데 <Still Life>라는 그의 시리즈 사진집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토론토에서 이번에는 친근한 남양주에 거주하는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씨의 인터뷰도 맘에 들었다. 페이지를 열면 그녀의 인터뷰 내용보다 사진속에 보이는 '압화'형태로 벽에 붙여진 식물들에 눈이 먼저 간다.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나 멋지고 노력이 느껴지는 그녀에게도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것이 '친구들의 만남'이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스티븐의 답변처럼 외적인것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때에 친구도 사치며 부담이라고 회피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장 좋은 것이 '사람'이라는 두 사람의 훈훈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서 작품도 그렇게 따뜻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소영씨의 페이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인터뷰는 원예가 '박기철'씨 페이지였다. 무엇이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람. 이력도 조금 새롭다. 원예가라고 하면 청년시절 부터 자연과 벗하거나 도시와는 조금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문학도 정도로 연상되는데 서울 신사동에 있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였다고 했다. 원예가로 넘어온 것도 어떤 특별한 계기라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한다. 박기철씨가 만든 광고는 어떤 분위기였을지 왠지 궁금해졌다. 그때문인지 서울 운니동에서 진행하는 <식물의 취향>가드닝 스튜디오 수업을 받아보고 싶어졌다.

'벽'이 화두이다보니 아무래도 가장 궁금해지는 예술가는 벽화 아티스트 '부어스트밴드'다. 풀이하면 '소시지 조직'이라는 의미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더 재미난 사실은 활동하는 밴드원들이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이상하게도 이 부분을 읽을 때 '굿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며 소리내어 조금 웃었다. 그래피티 작업은 영화나 뮤비를 보면 여럿이 하기도 하지만 보통 혼자서 작업하고 도망치는 장면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들은 팀으로 함께 하면서 좋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에는 벽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독일인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베를린에서는 '벽'이 그야말로 모두에게 허락된 거대한 '스케치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열네 개의 작업 이야기중에 절반도 소개하지 못했지만 잡지에서 오려낸 내용들로 채워진 내 벽과 그들의 벽을 머릿속에서 오가며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긴 했다. 심지어 이 책을 읽은 장소가 내 방 뿐아니라 커피숍일 때도 있었고 지하철 안일 때도 있었는데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벽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벽'이란 과연 내게 어떤 의미인가 하며 책을 읽기전에는 별별 유치하기도 하고 감성적인 정의를 내려봤는데 막상 이 책을 읽고다니 벽은 그냥 담백하게 '벽'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더하느냐에 따라 분위기와 용도가 달라지는 그런 벽이었기에 다른 이들의 '벽'이야기가 편안하게 다가오고 질투나 경쟁없이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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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뉴욕
E. B. 화이트 지음, 권상미 옮김 / 숲속여우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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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별난 상(賞)이기는 해도, 뉴욕은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고독이라는 선물과 사생활이라는 선물을 선사할 것이다. '


로 시작되는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은 E.B 화이트의 [여기, 뉴욕]은 1940년 후반기의 뉴욕을 다녀온 작가의 뉴욕기행문이다. 글의 시작만 봐도 저자가 바라보고 느낀 뉴욕의 감상이 크게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독'이라는 단어가 홀로 쓰였다면 모를까 지나친 소음과 공해와 경쟁속에 진실한 의미의 고독과 사생활 보호는 그야말로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보면 아직 그곳을 방문하지 않은 내게는 저자가 다녀왔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사생활'이라는 선물을 더이상 받기 곤란해 졌다는 정도일 것 같다. 극장이나 카페에서 유명인사를 만날 확률이 '파파라치'덕분에 아예 불가능한 일에 가까워진데다 극심한 교통 정체는 물론 지하철에서도 거대한 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금의 뉴욕이기 때문이다. 화이트도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자신했던 것은 아니었다. 저자서문에 '현재의 뉴욕 현황 파악'의 과제를 저자가 아닌 독자의 몫이라고 이야기했고, 우리역시 화이트의 책을 읽고서 무턱대고 그가 누렸던 뉴욕의 정취를 지금도 누릴 수 있을거라 확신하진 않는다. 책속에 등장했던 여러 장소가 사라져버린 것은 아쉽지만 비단 뉴욕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초,중학교를 다녔던 어릴적 동네에 20여년만에 같은 학교를 졸업한 언니와 다녀온 적이 있는데 '보물찾기'수준으로 하나하나 살피고서야 진짜 그동네가 내가 살았던 장소였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였다. 낮은 건물들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고 온통 아파트단지로 변해버린 그 곳에서 어릴 적 언니와 내가 놀던 놀이터며, 자주 다니던 건물은 물론 심지어 중학교는 이전까지 한 상태였다.


화이트가 다녀왔던 뉴욕은 주말이면 조용하고, 유명인사도 거릴 활보하기에 큰 부담이 없었고, 미술관이나 극장도 본연의 목적으로 찾는 사람으로 소란스러웠던 반면 지금의 뉴욕은 '관광'과 '엿보기' 혹은 '훔쳐보기'가 만연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독한 이 도시를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드는 이유는 자신들만의 선물을 발견했거나 찾을 수 있을거라 기대하기 때문아닐까. 화이트의 말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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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디자인 2 Design Culture Book
조창원 지음 / 지콜론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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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위로의 디자인 첫호를 접했을 때 디자인을 내 스스로 얼마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해왔는지를 느끼고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좀 더 예쁘고 그렇기 때문에 일상 소품이나 가구, 전자제품 등의 가격을 높이는 요소라고만 생각했지 우리가 미처 보지못하는 부분까지 관찰하면서 얻어낸 '결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던 것이다. 2016년 1월, 3년 만에 돌아온 두번째 책은 저자도 바뀌면서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느낌을 그대로 옮기자면 우리가 미처 알지 알아봐주지 못했던 디자인 영역을 위로했던 것이 1권 이라면 이번 2권은 그야말로 누구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스토리텔링에 가까운 방식처럼 다가왔다.


이제 웹톤이 아닌 만화책을 볼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수십 편씩 연재되는 만화책도 처리할 걱정 없이 사들일 수 있다. 이야기와 그림을 담은 책장 사이로 생명이 피어나는 경이를 맛보기 위해서라면 일부러라도 만화책을 읽고 싶다.


만화책 텃밭 편에 실린 글로 현대미술작가이자 아트디렉터, 책을 장정하는 전문가인 가와치 고시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일이지만 만화책에 열광한 적이 있어서 방에 딸려있는 베란다에 만화책을 거의 천정까지 채울만큼 모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엄마한테 크게 혼난 뒤 정리하면서 몇 권을 남겨 직사각형 플라스틱 통에 물을 넣고 남긴 책을 마구 뜯어서 물기를 흡수 해 흐르지 않을 정도로 채웠다. 그렇게하면 벽돌만큼은 아니더라도 단단하게 굳어서 유사한 기능을 해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을 제대로 흡수한 그 물체를 다양하게 활용하긴 했는데 만약 '만화책 텃밭'수준의 아이디어를 내가 떠올릴 수 있었다면 좀 더 많은 만화책을 효율적으로 활용했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의 말처럼 그럴 수 있었다면 일부러라도 만화책을 읽고 싶었을지 모른다. 뿐만아니라 버리라고 화를 내시던 엄마도 베란다에 예쁜 꽃 혹은 채소가 자라는 풍경을 보였더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성냥을 위인화하는 것을 유치하다고 폄하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삶을 밝히는 것은 유아적인 발상이나 엉뚱한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것을 전혀 유치하지 않게, 그럴 듯하게 재현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며 힘이다.


코케시의 '성냥 제작소'라는 작품에 달린 저자의 코멘트로 성냥 머리에 얼굴 표정을 그려넣은 작품이다. 성냥갑을 열었을 때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적색 머리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강아지, 병아리, 아저씨 등의 얼굴이 등장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미소가 번지게 만드는 작품으로 성냥 머리의 색만 노란색, 파란색으로 칠해도 색달랐던 것을 떠올리면 상상할 수 있을 분위기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만약 이런 생각이나 발상을 그것이 과연 디자인일까? 하며 무시했다면 이런 소소한 기쁨, 진정한 의미의 '디자인 상품'을 우리는 다양하게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유일한 단점이 사용하기 아까울 만큼 귀엽고 장난감스러운 것으로 어쩌면 이런 상상 이들보다 먼저 했었던 사람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같은 기간에 읽은 [넨도nendo문제해결연구소]의 저자 사토 오오키처럼 역시나 디자인은 '결단력'이 중요한 것 같다.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위로의디자인2편은 내게 있어 이런저런 추억들, 내가 생각했던 발상들을 떠올리게 하며 유쾌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디자인 책이라고 하면 전공서적 혹은 비전공자에게는 부럽지만 흉내내거나 차마 소유할 수 없는 조금 거리가 있는 책으로만 느껴졌는데 이 책만큼은 디자인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활의 소소함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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