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 천천히, 조금씩, 다 같이 행복을 찾는 사람들
나유리.미셸 램블린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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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고 친절한 책이나 내용을 1/2로 압축시키면 좀 더 분명하게 의미가 다가오고 읽기도 쉬울텐데...슬로우를 참지 못하거나 수다를 참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인내심를 기르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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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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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밖에서 반자본주의적인 삶을 개척, `혁명은 변두리에서 시작된다`는 레닌의 말을 온 몸으로 보여준 어느 빵 굽는 사람의 이야기.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쁨.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488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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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 노르웨이의 한국인들이 말하는
박노자 외 지음 / 꾸리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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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 사는 한국인들이 노르웨이의 복지에 대해 쓴 책이다. 필자가 다양한 만큼 색깔도 다양한데 역시 박노자의 총론이 책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

 

노르웨이에서 복지국가의 기본적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초기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소련처럼 체제를 전복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팽배했는데 이에 보수정당들이 혁명에 대한 공포로 인한 하나의 양보로 복지개혁을 수용했다고 한다.

 

복지 지출의 상당 부분은 기업세나 주식 양도세, 배당금 과세 등이 아닌 개인소득세에 의존하며, 총국민생산 중 세금으로 인한 수입의 비중이 한국이 26퍼센트인데 비해 노르웨이는 43퍼센트, 스웨덴은 45퍼센트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경우 그 비중을 아주 크게 늘려야 완전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내실 있는 노후연금 등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p.254..그런데 한국 언론들은 '세금폭탄'이라는 신조어를 제조했을 만큼, 부자나 준부자들의 납세 저항만을 선동할 뿐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 가치에 입각한 재분배'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적대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편적 복지의 도입으로 가장 이득을 볼 가난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비정규직들의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255...마르크스의 말대로, 미조직 대중들이 가질 수 있는 사상은 바로 당대 지배계급의 어떤 사상적 틀일 뿐이여, 또 위기에 내몰릴수록 강경보수 내지는 극우 쪽으로 몰리게 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하고 보수당에 투표하는 이유이다. 혁명은 대중적 조직만이 할 수 있다.

 

박노자의 글에는 구구절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복지 정책을 그렇게 부러워만 할 것은 아니라고 정확히 못 박는다.

 

p,261...(노르웨이의) 대규모의 복지지출이 가능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복지국가의 국제적 '먹이사슬'에서의 비교적으로 높은 위치 때문이다. 지구인 전체가 노르웨이만큼의 소득 및 소비 수준을 누리자면 우리에게 약 세 개의 지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노르웨이의 특수한 경험을 무조건 보편화시켜서 다른 나라들에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p.267  결국 우리에게 노르웨이는 과연 무엇인가? 일면으로는 근로대중들이 한 때 잘 조직돼서 복지개혁 등을 통해 그나마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수 있었던 사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복지주의적, 사민주의적 프로젝트가 자본주의 틀에 갇히고 국민국가의 틀에 포획된 곳이기도 하며, 도 세계 자본주의의 질서의 맨꼭대기에 위치한, 바깥으로부터의 가난한 타자들의 유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안에서는 보이지 않게, 최고의 '선진적(?)' 방식으로 모든 것을 감시하며 관리하는 '최첨단' 자본주의의 보루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노르웨이를 참고모델로 하되 수정 자본주의보다 더 높은 이상을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 '높은 이상'을 말하는 사람이 있구나. 박노자의 글을 계속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게는.

 

p. 249 우리들의 생각은 각종 진보적 담론으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의 방식은 극도로 자본주의적이다.

 

이건 또 어리석고 무지한 나에 대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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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황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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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이전 산문집도 여럿 읽었는데, 확실히 이 책은 더 재밌다. 잡다한 지식으로 잘 버무려진 왕수다 같은 느낌에 연륜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칼과 황홀. 칼은 음식을 조리하는 도구일테고 황홀은 '매일 먹고 힘을 얻으며, 마셔서 기갈을 풀고 도취경'에 드는 황홀을 말함이다. 지은이 말마따나 '나라는 인간이 참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어지간히 황홀하게 돌아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도 열심히 드나들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밑에 깔린 기본 토대는 단연 음식이었다. 읽다보면 참 어지간히 돌아다니고 어지간히 먹는 걸 즐기고 있다.

 

아니다. 그게 작가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들의 '작가수첩'같은 글들을 읽다보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늘 글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어서 순간 순간의 아이디어나 경험들을 흘러가는대로 그냥 두는 법이 없어보인다. 개그맨 김병만의 온갖 아이디어나 광고 천재 이제석의 천재적이고 기발한 착상들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또한 세상을 읽어내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글로써, 개그맨은 개그 프로그램으로써, 광고쟁이는 광고로써 세상을 읽고 세상을 해석한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번 킥키거리며 유쾌하게 읽었다. 혼자 알고 있기가 아까워 남편과 딸아이에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마 옆에 중학교 동창들이라도 있었으면 더 크게 더 유쾌하게 떠들어댔을 게다. 왜냐면 나도 이 책의 저자와 동년배로서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의 해박하고 잡다한 지식에 저자의 능청맞은 필력이 더해져 어느 때는 빌 브라이슨의 글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몇 문장을 보라.

 

p269... 술꾼은 다음 날 아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서 전날의 상대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저런 걸 묻지 않는다. 그게 예의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왔다면? "나도 기억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네." 이렇게 말하는 게 예의다. 그러나저러나 술값은 누가 냈는지, 비싼 것 같던데...

 

p342...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쇼핑몰에서)너는 네가 소비하는 것의 총화이다...(화장품 가게에서)나는 내가 바르고 뿌려대는 것의 결과물이다...(보석가게 앞에서)당신은 당신이 갖기를 바라는 것의 집합체이다...네가 욕망하는 것이 너를 만든다...네가 생각하면 그 생각이 네 운명을 바꿀 것이다...네가 지금처럼 말장난으로 헛되이 시간을 보낸다면 네 인생은 바로 그 헛된 시간의 말장난이 될 것이다...

 

넉살좋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어떻게 음식이라는 주제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조금씩 풀린다.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서 황홀하게 취해있으니 어찌 배가 고프지 않을까. 그렇게 세상을 맛있게 먹고 있으니 글이 어찌 나오지 않을까.

 

성석제의 왕수다가 금방 그리워질 것 같다.

 

하나 빼먹을 뻔했다. 이 책에는 김 먹는 방법에 대한 얘기도 있어서 마침 냉장고에서 썩기 직전인 일 년이 다되어가는 김을 드디어 해치웠다. 이름하여 김조림. 김을 이렇게도 먹을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일었다. 친구들과의 왕수다에서도 뭔가 얻어 들을 게 있듯 이 책도 곳곳에 '생활의 지혜'가 숨어있어서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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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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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질색이다. 음식에 관한 책이라는 것, 여러 사람이 한 꼭지씩 썼다는 것,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라는 것이 그 이유일 터.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내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식 한 가지 쯤은 있다는 것, 여러 사람이 썼지만 그 꼭지마다 글쓴이의 인생이 녹아있다는 것, TV 프로그램 중에 요리 관련 프로그램을 병적으로 싫어하지만 그래도 책으로 읽는 것만큼은 용서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책을 즐겁게 그리고 부담없이 읽었다. 

읽으면서, 나도 나만의 소울푸드를 떠올리면서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다음 글을 만났다. 박찬일씨의 글이다. 

p142. 한때 이탈리아 중부지역에서 동숙하던 칼라브리아(이탈리아 남부 지방으로 매우 가난한 지역이다) 출신의 친구가 먹던 요리가 생각났다. 그를 만나기 위해 고향 칼라브리아에서 노모를 비롯한 온 가족이 올라왔다. 나는 그들의 점심식사 자리에 우연히 끼게 되었는데, 정말 그 메뉴는 오래도록 내 뇌리에 남아버렸다. 변변한 농사나 목축이 잘 되지 않는 칼라브리아 지방 사람들은 정식 식사나 간식으로 오직 마른 빵 한 조각을 먹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음식이 막 우리가 살던 집의 식탁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오직 마른 빵과 오레가노 가루만 놓여 있었다. 이탈리아에선 너무도 흔해 허브 대접도 못 받는 오레가노. 맵고 떫은 맛의 그 가루를 빵 위에 술술 뿌리고, 싱크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수돗물을 틀어 빵을 적셨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 전부 맞다. 2000년대의 이탈리아에서도 누군가는 이런 악식을 먹고 있었던 거다. 마른 빵을 부드럽게 먹기 위해 물에 적셨고, 밋밋한 맛에 포인트를 주는 건 오직 약간의 오레가노 가루일 뿐이었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잠시 가슴이 울컥했다. 예전에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엄마가 끓여주시던 '두부새우젓국찌개'가 생각나서였다. 라면 1.5인분에 해당하는 물을 넣은 냄비에 두부 한 모를 썰어넣고, 매운 고추 두어 개를 잘게 썰어 넣은 다음에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어 끓이면 되는 아주 간단한 끼개였다. 이북을 고향으로 둔 아버지는 그 찌개가 고향 음식이라며 아주 좋아하셨는데 나는 그저 매콤한 고추를 씹는 맛에 그 찌개를 먹곤 했을 뿐이었다. 지금처럼 썰지않은 두부를 통놈으로 접시에 담아 간장이나 볶은 김치와 함께 먹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 두부 한 모 마저도 여러 식구가 함께 먹어야했던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었다. 언젠가 그 찌게가 그리워 한 번 만들어보았지만 옛날의 그 맛은 도저히 되살아나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이런 음식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가족이 떠오르고 가족이 떠오르면 편치않은 가족사에 목이 메이기 때문이다. 우울해진다. 그래서인지  

p.166. ...대부분은 농민들의 거친 손만 눈에 가득 담고 돌아온다. 그들에게 소울푸드를 물으면 웃으며 되물을 것이다. '소가 울면 주는 푸드인가요?' 의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꼭지의 글은 또 이렇게 끝난다. p.168 ..경의선 객차에서 바닷내가 나는 밤이면, 기차가 수십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할 때의 그 고요를 담고 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환상을 만든다. 거기 가서, 굶주림의 동포들에게 소울푸드를 묻는 만행은 하지 못할 것이다, 차마. 

위에서 '나 또한 내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식 한 가지 쯤은 있다는 것' 을 말했다. 있긴 있다. 들어는 보셨을라나. 이름하여 '꿀꿀이죽'. 미군부대를 배경(?)으로 한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던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이 희한한 음식이 내 영혼에는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미군들이 먹고 난 온갖 음식을 마치 돼지죽처럼 끓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그만 손수레에 실린 꿀꿀이죽을 파는 장사치가 동네에 나타나면 그날은 별식을 먹는 행복한 날이었다. 온갖 음식을 잡탕으로 끓인 음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여러가지 야채와 큼직큼직한 고깃덩어리가 듬뿍 담겨있어서 골라먹는 재미도 한 몫 했다. 물론 재수가 없으면 담배꽁초도 나왔지만. 

이런 눈물겹고 보잘것 없는 음식이었지만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 음식이 그리워진다. 부모님과 4남매가 온전히 함께 보냈던 '행복한 유년시절'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음식 얘기는 그만. 배 고픈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 자꾸 생각나서다. 그리고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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