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엔 장아찌 - 자연 품은 슬로푸드 발효음식
이선미 지음 / 헬스레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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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구매함. 장아찌의 세계, 입문용으로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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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엔 장아찌 - 자연 품은 슬로푸드 발효음식
이선미 지음 / 헬스레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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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다. 그날따라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었다. 동네 도서관은 이용하긴 편하나 구색이 빈약하다. 여간해서는 내 돈 주고 사지 않는 책이 요리책이니 그나마 고마운 마음으로 들고왔다.

 

빌려온 이유가 있다면 장아찌에 관심이 있어서라기 보다 별별것으로 장아찌를 담그는 게 신기해서 한번 살펴볼 요량이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채소는 대부분 장아찌로 담글 수 있다니 놀라웠다. 책을 보니 하나쯤은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것이 깻잎 장아찌.

 

아침나절 두어 시간을 바쳤다. 깻잎 씻어서 쪄내기, 마늘 까서 다지기, 생강 씻어서 즙내기...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책을 들여다보면서 겨우 완성하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책을 덮으려던 찰나. 아니 이게 뭐야. 마지막에 맛국물에 된장을 넣고 1~2분 끓이라는 부분을 그만 생략한 게 눈에 들어왔다.

 

벽돌 쌓듯 깻잎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린 공이 아깝고 안타까워, 이런 장아찌도 제대로 담가보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해서 마지막 구절은 그냥 못 본 걸로 해버렸다. 두어 시간 책 읽는 건 일도 아니건만 반찬 만들기는 왜 이리 힘든 건지.

 

'집밥'이란 무엇일까? 누군가 집에서 해주는 밥이 집밥일 때 그 밥은 가정적이고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나 자신이 그 누군가가 되어 집밥을 차려주는 입장이 되면 집밥은 편안하거나 다감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야 하는 집밥은 어디까지나 일이고 노동이다. 그래서 나는 '집밥'이란 단어가 붙은 책이나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슬그머니 짜증부터 나곤 한다. 내가 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지난번 강원도 양양 시장에서 깻잎 장아찌를 사면서 "여긴 우리동네보다 비싸네."했던 말이 떠올랐다. 조금 더 비싼들, 깻잎에서 모래가 약간 씹힌들, 그걸 만든 분의 노고를 생각하면 차라리 고맙게 여겨야겠다, 고 모처럼 착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집밥을 차리는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므로.

 

집밥을 강조하는 요리책은 가급적 경계하자. 굴레가 된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집밥이 아니니라, 라고 쓰여있는 것 같다. 그냥 대강 먹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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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1-09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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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8-11-09 15:4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대강 먹고 살기 위해 끝내 이 책을 구입했답니다.^^
 

 

 

 

10여 년 전. 토마토농장 근처를 산책하다가 당도가 매우 높다는 끝물 토마토를 얼떨결에 구매했었다. 주인 말대로 토마토는 그간 내가 먹어본 중에 최고의 맛이었다. 그후 대저토마토(짭짤이)의 맛에 잠시 넋이 나가긴 했으나 그 끝물 토마토에 미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도.

 

문제는 사들고 온 토마토의 양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나. 아니다. 잉여농산물에서 요리가 나온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우선은 음식을 만들기 전에 재료가 풍부해야 한다. 풍부한 재료를 앞에 두고 있으면 저절로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하여튼 토마토가 상하기 전에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 어떤 동료가 고기를 볶을 때 토마토를 넣으면 맛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고기는 잘 안 먹으니 그건 아니었고 마침 집에 감자가 상자째 모셔져 있었다.

 

감자조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으나 고추장을 넣은 감자조림이나 간장 감자조림 등을 딱히 맛있게 먹은 적도 없던 터였다. 그래도 감자가 있고 토마토가 있으니 뭔가를 만들어야 했다. 냉장고에 있는 빈약한 재료를 모두 활용해보기로 했다.

 

감자, 토마토, 청양고추, 마늘, 매실 추출액, 들기름, 월계수잎. 고추장.

 

이 재료들을 순서 관계없이 생각나는대로 꺼내어 한꺼번에 넣고 조려보았다. 맛은? 의외의 맛이 나왔다. 매콤 달콤한 스파게티 소스 맛이 물씬 풍기는 감자조림이 탄생했다. 이 토마조감자조림으로 비로소 음식 만드는 엄마의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해 여름 내리 감자 두 상자를 토마토감자조림 해먹는데 소비했다. 물론 먹을 때마다 식구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올 여름에도 여전히 토마토감자조림을 먹고 있다. 매년 먹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릇 바닥에 고인 국물까지 싹싹 비워내고 있다. 밥 비벼서 먹으면 그대로 꿀맛이다. 물론 늘 소박한 밥상이다보니 먹을 게 별로 없어서일 수도 있다. 허나 반찬이 없다고 해서 맛없는 반찬을 맛있게 먹을 수는 없으니 인정해줄 것은 인정해주는 게 좋겠다.

 

이 조리법을 동료에게 전파했더니 토마토감자조림 덮밥과 토마토감자조림 스파게티로 응용되기도 했다.

 

살다보니 어쩌다가 이런 음식을 만들기도 했으나 나는 요리따위는 아무래도 좋기에 요리다운 요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소박하게 끼니를 때울 뿐이다. 마트에도 자주 가지 않는다. 그러니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애초부터 차단시킨다. 요리보다 책 읽기가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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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살구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시큼하고 텁텁하면서 도대체 과일즙다운 촉촉함은 어디에 숨었는지. 그러니 내 돈 주고 사먹기 보다는 대부분 그냥 어디선가 얻어먹은 기억뿐이다. 어쩌다 사먹어도 끝까지 알뜰하게 먹지도 않았다. 살구는 내게 제일 맛없는 과일일 뿐이다.

 

농산물도매시장에 갔더니 살구 한 바구니를 2,000원에 팔고 있었다. 아무리 맛없는 과일이지만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이라 일단 구매의욕이 당겼다.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살구는 집에 도착하니 이놈저놈이 물러터져서 비닐봉지 안에 진물같은 즙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쩌나.

 

잠시 고민 끝에 잼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대강 세척 후 씨를 발라냈다. 씨는 깔끔하게 떨어졌다. 살구에게도 예쁜 구석이 있었다. 씨를 발라낸 과육을 과도로 대충 자른 후 냄비에 넣고 설탕을 퍼부었다. 비율? 마음 내키는대로.

 

한참을 저었더니 되직해졌다. 잠시 식힌 후, 미리 열탕 처리로 살균한 빈 유리병에 담아냈다. 끝.

 

그렇다면 맛은? 감히 말하건대 모든 과일잼 중에서 살구잼이 으뜸이다. 새콤하면서 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구어준다. 살구잼 발라서 토스트 먹을 생각을 하면 아침 식사가 기다려진다. 상큼한 살구잼 덕분에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다. 과일잼에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리.

 

 

위의 사진은 세 번째 만든 살구잼이다. 요즘은 살구가 끝물이라서 눈에 띄기만 하면 일단 사고본다. 아파트 단지내에서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살구라도 줍고 싶은 심정이다.

 

 

국내산 살구는 맛이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외국산은? 외국산이라야 내가 먹어본 것은 북인도의 히말라야 일대에서 먹어본 게 유일한데 그곳의 살구는 확실히 맛이 좋았다. 살구가 맛있는 과일이라는 것을 그곳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살구가 유명한 동네여서 살구로 만든 화장품, 살구잼 등도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히말라야산 살구잼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기억이 없다. 날로 먹는 살구보다 맛이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살구잼이라면 단연 맛이 없는 국내산으로 만든 살구잼이 최고다. 그렇다면 과일잼은 맛이 없는 과일로 만들어야 더 맛있는 건가? 모를 일이다. 히말라야에 가게 된다면 살구잼을 만들어서 비교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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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6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8-07-1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두나 천도복숭아는 좋아하는데, 살구는 맛있게 먹은 기억이 저도 없어요. 하지만 가끔 살구쨈을 먹으면 제가 먹던 과일이 맛을까?하는 생각을 하곤했는데 이렇게 nama님이 직접 만드신 살구쨈을 보니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nama 2018-07-17 07:09   좋아요 0 | URL
그냥 살구와 살구잼은 확실히 달라요. 제가 한번 빠지면 그것만 하게 되는데 올해는 살구잼에 젖어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직접 만든 게 훨씬 맛있어요.
 
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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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곳을 우리가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주장이라기보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인데 이게 주장이라고 생각되는 건, 옷이나 먹거리와는 달리 집(공간)이라는 건 우리가 쉽게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저 시류에 맞게 따라가야 하며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학교라는 공간, 집이라는 공간, 공원, 빌딩...이런 건 내가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말이다. 주어진대로 그저 따라가는 것이라는 통념에 생각할 틈을 주고 가능성을 보여주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변화시켜야 우리 삶이 조금씩 나아진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학교 건축.

 

왜 이 땅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학교 건물에서 자라고, 전교생이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댜양성 없는 건축 공간을 제공하고서 왜 그들에게 창의적인 생각을 기대하는가? 창의적인 아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좀 더 다양성을 받아들일 줄 아는 도전의식 있는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학교 건물은 더 작은 규모로 분동되어야 하고, 그 앞에는 댜양한 모습으로 놀 수 있는 갖가지 모양의 작은 마당과 외부 공간이 있어야 한다....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대형 건물보다는 스머프 마을 같은 느낌이 나야 한다... 실내 공간은 풍요로워졌지만 실제로는 학교가 점점 더 교도소와 비슷해졌다.    -51~52쪽

 

내가 다녔던 학교와 근무했던 학교 중에서 가장 좋았던 학교를 하나 꼽으라면 나는 언제든지 내가 다닌 중학교를 꼽는다. 시설로치면 가장 열악한 곳이다. 입학한 날 교실에 들어가니 바닥은 마감이 덜 되어 울퉁불퉁하고,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돗물도 없고, 화장실이 아닌 변소는 저 바깥에나 있어 뛰어가야 했다. 읍내에는 중학교가 네 개나 있는데 멀쩡한 학교를 비껴가고 그저 이 학교에 배정된 내 운명에 한숨지을 뿐이었다. 이 학교에 배정되었다고 이불 뒤집어쓰고 울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학교는 또 왜 그렇게 멀던지. 집에서 나오면 버스정류장과 우체국을 지나고, 옆동네에 사는 친구를 기다리고, 밭길과 논길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이내 공동묘지와 과수원으로 가는 갈림길이 이어지고, 40여 분을 이렇게 걸어 학교에 도착하면 눈을 부릅뜬 선도부가 교문에 서있었다. 하나도 만만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비 오는 날은 더했다. 사물함이라는 단어조차도 없던 시절이라 책가방은 그날 배울 책과 도시락으로 이미 부풀대로 부풀었는데 실내화를 넣은 보조가방(주머니가 아님)을 다른 손으로 들고 있자면 우산을 펴고 걷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겨우 균형을 잡고 걸어가지만 꼭 논뚝에서 발길이 막힌다. 빗물 때문에 논뚝에 작은 냇물이 만들어지는데 그걸 건너뛰어야 했다. 다리는 짧지 양손에 든 가방은 무겁지 우산은 들었지...열에 아홉 번은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시뻘건 흙이 묻은 치마를 대강 털고 다시 학교로 향하다보면 발 밑에 밟히는 잡풀 사이로 흐르는 맑은 빗물에 작은 탄성이 터져나온다. 조금 전의 고달픔이 순간 환희로 바뀐다.

 

여름엔 하교 길이 고무줄 길이다. 친구들과 산길을 걷다가 나무 그늘에 쉬면 그대로 시간이 흘러버린다.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걷다보면 집으로 가는 길은 더욱 멀어진다. 허구헌날 그랬다. 나도 그랬고 내 친구들도 그랬다. 한 학년에 두 개 학급, 전부 6학급이었던 작은 학교라서 우리는 우리가 몇 반이었는지 따지지도 않았다. 3년 간 섞이다보니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 선생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교장선생님은 한문을 가르치셨고, 교감선생님은 도덕을 가르치셨다. 대부분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선생님들은 우리들처럼 푸르렀다. 그런 환경에서 공부한 우리는 창의적인 인간이 되지는 못했을지라도 자연이 주는 기쁨을 알았고 친구관계의 소중함과 선생님들을 향한 고마움을 간직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니까 학교는 시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시설보다 중요한 건 학교를 둘러싼 자연 환경이다.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교실보다 뭣모르고 뛰어놀 수 있는 작은 숲이 필요한 곳이다.

 

 

공원.

 

도시 내에서 내 소유의 공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머무를 공간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말마다 산에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심 속에는 정주할 공간이 없어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녹지 공원은 경사져 있다는 점이다. 경사졌다는 것은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이동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경사면 때문에 산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러니 서울 주변에 아무리 좋은 산이 많아도 우리는 공적인 정주 공간에 목이 마른 것이다. 공공의 정주 공간이 사라지니 우리가 공간을 점유하려면 사적으로 돈을 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카페를 비롯해 비디오방, 노래방, 찜질방도 마찬가지다. 모텔이 가장 재미있다.   -101쪽

 

얼마 전에 청양의 고운식물원과 광릉 숲에 다녀왔다. 둘 다 멋진 곳인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나 런던의 큐 가든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큐 가든이 월등하다는 생각에 혹 내가 사대주의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들었다. 그러다 이 글을 읽고 알았다. 고운식물원이나 광릉 숲은 둘 다 '경사져 있다는 점이다'. 계속 이동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목이 마른 것이다. 큐 가든은 넓은 잔디밭에 들어가도, 들어가서 뒹굴어도, 낮잠을 자도 되는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광릉 숲은 보존 숲이어서 일반적인 공원과 의미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동네에는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 산과 생태공원이 있다. 나는 산을 좋아하지만 우리 동네 뒷산엔 오르지 않고 주로 생태공원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산은 경사졌고 생태공원은 끝에서 다른 쪽 끝이 보이는 평지이다. 생태공원을 거닌다고 딱히 벤치나 정자에서 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생태공원에 끌리는 건 언제든지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주 공간이기 때문이리라. 그 가능성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공원은 대로변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이 간다.

 

대로변은 접근성이 좋아 공원으로 남겨지지 않고 대개 개발된다. 반면 블록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급한 경사지여서 공원으로 남겨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울의 공원들은 대부분 블록의 안쪽에 숨겨져 있다. 비유하자면 고속도로 휴게소는 보통 도로에 접해 있는데, 지금 우리의 공원은 마치 휴게소가 고속도로에서 출구로 나가서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공원들이 대로변에만 접해 있어도, 도시경관이 좋아지고 더 많은 사람이 걷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공원 면적을 늘리면 좋겠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공원을 적절히 배치하여 쓰임새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공원은 블록 안쪽에 숨겨 놓기보다는 유동 인구가 많은 대로변에 배치해야 한다.  -289~290

 

 

이런 구체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생각을 해야 변할 수 있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는 도심 한가운데 대로변에 있다. 그것도 부러운데 넓기까지 하다. 그렇게 유지될 수 있는 건 런던 시민들의 의식 때문이라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사이버 공간.

 

고성능 휴대폰 카메라는 우리의 공간을 바꾸었다. 휴대폰 카메라 덕분에 우리 모두는 콘텐츠 제작자가 되었다. 과거에는 어느 동네 몇 평짜리 집에 살고 어느 차를 모느냐로 자신을 드러냈다. 곧 내 소유물의 스펙이 나를 드러내는 전부였다면 지금은 SNS에 올리는, 내가 방문한 카페의 사진과 여행 간 호텔의 사진으로 내 공간을 만들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나는 내가 소유한 공간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비한 공간으로 대변된다.(중략) 내가 제작한 디지털 자료로 만든 나의 사이버공간이 나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계속애서 자신이 간 맛집과 여행지와 자신이 읽은 책을 포스팅한다.   -324

 

 

알라딘 서재에 글과 사진을 올리고 서평을 쓰는 행위는 결국 '나를 대변하는 것이다'.라는 것. 끊임없이 부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는 곳이 아파트다보니 '공간'에 대한 목마름을 이런 식으로 해소하는 지도 모르겠다.

 

 

 

글을 끝내기 전에 재밌는 부분을 추가한다.

 

(에전에) 영궁은 집안에 있는 난로의 개수를 이용해 세금을 매겼다. 난로가 많으면 세금도 많이 징수했다. 하지만 난로는 집안에 들어가야 숫자를 셀 수 있었기 때문에 세금을 징수하기에는 여간 불편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영국은 1696년부터 난로세를 폐지하고 창문세를 도입했다. 유리창은 제작하기 비싸기 때문에 집에 창문이 많으면 부자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유리창의 숫자에 따라 세금을 징수했는데, 여섯 개까지는 면세였고, 일곱 개부터 차등적으로 중과세를 매겼다. 이러한 제도는 주택세가 나오기까지 150년 동안 시행되었다. 창문세를 시행하던 시기에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창문을 없애고 벽으로 만드는 일도 생겨났다. 창문이 없으니 채광과 통풍이 안 되어 위생이 나빠지고 전염병이 돌기도 했다. 또한 시민들은 햇볕을 받지 못해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255

 

영국이 처음부터 선진국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위로가 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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