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헤어져 불문(佛門)에 들어가 참선(參禪)을 해 왔다.

도(道)를 구하기 위해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없앴으나 도대체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도를 깨우친 선승(禪僧)들에게 이 문제를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무(無)로다."

 

분별(分別), 망상(妄想), 사유(思惟) 작용이 그치면 이 작용을 방해하던 것들이 곧 없어져, 마음은 고요로 가득차고 무(無)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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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4-10-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학자가 남은선사(南隱禪師)에게 선(禪)에 관해 물으러 갔는데 그가 차를 한 잔 내왔다.

그는 차가 잔에 가득 찼는데도 계속해서 따랐다.

"차가 넘칩니다. 그만 따르시지요."

"그대는 바로 이 잔처럼 머리속이 자기의 생각으로 꽉 채워져 있소. 먼저 자신의 잔ㅇ르 비운 뒤 선에 관해 물어보시오."

"네"

 

선입관이 있는 사람에겐 남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둘이 얘기할 때 성급하게 자기의 의견을 얘기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그 결과 귀에 남는 것은 자기의 소리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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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파도는 저렇게 큰데 난 이렇게 작고, 다른 파도들은 멋진데 난 언제나 요모양요꼴이니..."

"넌 네 본래의 모습을 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본래의 모습이라니... 내가 파도가 아니란 말이야?"

"파도란 너의 잠시 모습일 뿐 진짜는 물이야!"

"물?"

"네 본체가 물이라는 걸 확실히 알면 파도의 모양 따위에는 미혹되지도 않고, 그것 때문에 괴롭지도 않게 되지."

"알았다!

 나는 너, 너는 나.

 다같이 하나의 큰 나(大我)인 셈이군."

 

사람이 괴로움에 빠지는 이유는 본래의 모습이 어땠는가 깨닫지 못해서이다. 자기는 자기라는 생각에 젖어 있기 때문에 남과 비교하고 싶어지고, 그 결과 고통에 빠진다. 본래 사람은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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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4-10-15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무심코 '섬'이라고 합니다.
그저 안목으로는 그럴 수 있지요.
그러나 상상력을 발휘하여 물을 들어내면 섬은 그저 육지의 연결일 뿐이지요.
大我란 이 같이 파도의포말만 보고 바닷물을 못보는 자에게 큰 가르침을 허락합니다.

털짱 2004-10-15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의 서재가 언제부터인가 작은 법당이 되고 있네요.^^

꼬마요정 2004-10-1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맞아요~ 늘 '지혜'를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그건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힘이 듭니다.
털짱님~ 제 서재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저 종교를 떠나서 말이지요... ^^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에게 물었다.

"모두들 바다 얘기를 자주 하던데 바다란 게 뭐니?"

"네 주위에 있는 게 바다야!"

"근데 왜 난 안 보이지?"

"바다는 네 속에도 있고, 밖에도 있어. 넌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 돌아가지. 바다는 마치 네 몸처럼 널 감싸고 있단다."

물고기는 물의 존재를 잊고, 사람은 도(道)의 존재를 잊는다. 사람은 선(禪) 속에 있으면서도 선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고 장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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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담배를 피워 문 채 선원에 들어와 부처님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기도 하고 손에 담뱃재를 털기도 한다. 당신이 그 곳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사람은 성스러운 것도 속된 것도 따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우주 삼라만상은 하나이고 그 하나가 자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는 무슨 짓이든 다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재가 부처이고 부처가 재라고 생각할 뿐이다. 담배가 타들어 가서 재가 털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오직 일부만을 이해했을 뿐이다. 그는 제법이 여여하다는 경계를 아직 깨우치지 못했다. 성스러운 것은 성스럽고, 세속적인 것은 세속적이다. 재는 재이고 부처님은 부처님이다. 그는 공과 자기가 깨달은 것에만 집착하고 있어서 어떤 말도 다 소용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당신이 온갖 말을 다 동원해 그를 가르치려고 애써도 그는 당신을 때리려 들 것이다. 만일 그를 때려서 가르치려고 한다면 오히려 그는 당신을 더 세게 때릴 것이다. (그는 아주 힘이 세다.) 당신은 어떻게 그의 망상을 고쳐줄 수 있겠는가?

당신은 선을 배우는 학생이니 또한 선을 지도하는 선사이기도 한 셈이다. 당신은 일체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해 주겠다고 서원한 보살도를 걷고 있다. 이 사람은 그릇된 견해로 고통받고 있다. 당신은 그가 진리를 깨우쳐 이 우주 삼라만상이 있는 그대로임을 알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 낸다면, 올바른 길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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