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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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적인 판단력과 합리적인 사고로 인지되는 세계만이 현실이라면,

비합리적인 관념으로만 감지되는 세계는 없는 것인가?"

나는 유령, 초능력, UFO 등등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정작 누군가 나에게 ' 영적 존재 '를 실제로 믿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다고 말하면 웬지 현실 부적응자? 혹은 너무 어리숙한 사람? 으로 찍힐까봐 조금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사회파 추리의 거장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작품인 이 책 [건널목의 유령] 은 확실하게 그런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열차 정지 사고가 거듭나는 한 대도시의 건널목에서 포착된 희미한 존재,,, 그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1994년 일본 도쿄. 일간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하루하루 숨돌릴 틈없이 살았던 마쓰다. 그는 이제 [월간 여성의 친구]라는 작은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몇 년 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혼자서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는 마쓰다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영혼이라도 곁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던 어느날 잡지사에서 여름을 맞아 흥미로운 소재를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독자들이 투고한 편지들 중 심령 사건들을 중심으로 취재하는 것이었다. 전혀 다른 독자들의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유령같은 실루엣.... 장난같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쓰다는 취재를 맡게 된다.

그런데 장난스러운 다른 심령 사건에 비해서, 시모키타자와역 건널목에서 목격된 유령은 그 느낌이 달랐다. 한 대학생과 주부가 보여준 사진에는 실제로 긴 검은 머리의 여자인 듯한 피사체가 희미하게나마 찍혀있다. 심령 현상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마쓰다는 혹시 누군가의 초능력에 의한 '염사' 현상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그도 현대인인지라 심령 현상을 쉽게 믿길 힘들어한다. 그러던 중 새벽 1시 3분에 뭔가 이상한 전화를 받게 되는 마쓰다. 수화기를 든 그는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온 몸이 얼어붙고 만다. 전화기 반대편에서는 죽음에 임박한 여성이 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마쓰다의 머리 속엔 시모키타자와역 건널목에서 찍힌 검은 머리의 여성의 피사체가 떠오르게 되는데....

예전에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13계단을 읽어봤었다. 한 사형수의 결백을 밝혀내기 위해서 집요하게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추적기가 정말 감명깊었던 소설이다. 너무나 명백한 증거 앞에서 고스란히 죄를 뒤집어쓸 수 밖에 없었던 사형수. 그런데 가히 천재적이고 집요한 추리로 속시원한 결말을 이끌어냈던 13계단의 주인공. 그런데 [건널목의 유령]의 마쓰다도 그에 못지 않은 초인적인 활약을 펼친다. 유령은 믿기 힘들지만 새벽 1시 3분이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화. 이상한 현상과 맞닥뜨린 마쓰다는 뭔가에 홀린 듯 사건 추적에 나선다. 그러던 중 마쓰다는 경찰을 통해서 약 1년전 건널목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과연 피해자는 누구였고, 이 추적을 통해서 마쓰다가 발견하게 될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주로 사회파 추리를 쓰는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소설이 유령에 관한 것이라니? 약간 알쏭달쏭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 책은 " 유령 " 이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소재를 통해서 부패하고 추악한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죽었지만 살아있을 때에도 거의 존재감이 희미했기에 " 유령 " 에 가까웠던 한 여성. 투명인간이었던 그녀의 정체를, 아주 미미한 단서를 바탕으로 한 추적을 통해 결국 밝혀내는 마쓰다. 모든 것이 드러났을 때 나는 뭔가 서글픈 감정을 느꼈다. 포식자가 넘쳐나는 사회. 그 누구의 보호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한 소녀의 얼굴이 문득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했다. 어떤 사회든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부패가 넘쳐나고 언론이 제 역할을 잘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또 깨달은 순간이었다.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건널목의 유령]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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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 생긴 일
마거릿 케네디 지음,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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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는 뭔가 있어요.

온갖 사람이 다 합류하고 있어.

이 모든 게 징후야.”

마거릿 케네디 작가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은 여러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준다. 얼핏 보면 몇몇 커플들의 연애 대소동을 보여주는 정통 멜로드라마 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추악한 인간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조소와 풍자를 날리는 우화 형식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시간적 배경은 세계 대전 직후의 영국 사회, 공간적 배경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아슬아슬한 절벽에 자리 잡은 한 호텔이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영국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절벽이라는 공간 때문인지, 이 소설은 이야기 내내 뭔가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뚜렷하게 구조가 있는 스토리 구성은 아니지만,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는 힘을 가진 소설이다.

영국 콘웰 지역의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절벽에는 펜디잭이라는 호텔이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을 말하자면,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신부님들이 등장하여 절벽이 와르르 무너져서 호텔이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이미 결말을 알고 시작하는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긴 한데, 이 부분이 오히려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어떻게 보면 독자들이 신이 된 느낌이랄까? 비참한 운명을 모른 채 어리석은 삶을 되풀이하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든다.

호텔의 주인은 시달 씨 부부이다. 남편 시달 씨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산다. 아내인 시달 부인은 아들들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데 특히 큰아들 제리를 거의 착취하듯 부려먹는다. 다른 아들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리의 희생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 가족 중엔 꼭 희생자가 있기 마련 ) 미스 엘리스와 낸시벨은 객실 청소를 담당하는 호텔 직원인데, 엘리스는 남에 대한 험담을 좋아하는 여자이고 입만 살아서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성실하고 현명하며 허튼짓을 용납하지 않는 여자 낸시벨은 자주 엘리스와 부딪치게 된다.

휴가철을 맞아 펜디잭 호텔로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개성 있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모였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다소 독특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모인다. 레이디 기퍼드는 지금 말로 하자면, 연극성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코브 부인은 그야말로 소시오패스에 다름없다. 참사위원인 렉스턴 씨는 교만한 정신병자 같고 건축가인 페일리 씨는 그냥 전형적인 속물에 교양있는 척한다. 소설가 애나는 가스라이팅에 천재인데 주로 남자들을 꼬여내는 마력이 있다. 꼬마 히비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작은 악마... 커서 뭐가 될지 참 걱정되는 꼬마였다.

등장 인물들에 대해서 이렇게만 열거하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안다. 어떻게 보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7대 죄악을 소설 속에 녹여놓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7대 죄악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소설가가 어떤 의도나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썼는지는 알 것 같다. 펜디잭 호텔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는 곳, 즉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사바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고, 그게 큰 죄악인지도 모른 채 본성에 따라 혹은 카르마에 따라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인간들..... 한 치 앞도 못 보고 단지 탐욕에 이끌리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랄까? 아주 흥미진진했다.

죄와 벌 그리고 구원... 나는 죄를 지은 자가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다 라는 권선징악을 크게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맞아, 그렇겠지?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도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작가의 필력도 훌륭하지만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책 읽기가 갈리는데, 이 책은 정말 번역이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 대단히 풍부하고 어떻게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아주 생생하게 전달된다랄까... 물론 독자들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하여튼 나는 이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인간을 깊이있게 통찰하고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진 작가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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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번 버스의 기적
프레야 샘슨 지음, 윤선미 옮김 / 모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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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겠지만,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어 .”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고 느껴질 때, 혹은 더 이상 기적은 없다 라고 느껴질 때 꼭 봐야할 책 [88번 버스의 기적이 책을 읽고 나니 뾰족했던 마음이 솜사탕처럼 뽀송뽀송해진 것 같다. 이 소설은 영국 런던에 있는 이층 버스인 88번 버스에서 일어난, 한 기적같은 일을 다루고 있다. 이 기적이 의미있는 이유는,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신뢰하고 아끼고 사랑할 때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는 소설이다.

 

리비는 8년간 사귀었던 남자 친구 사이먼과 헤어지고 부모님이 계시는 런던으로 돌아왔다. 사이먼은 별다른 이유없이 단지 지루하다는 이유만으로 리비를 차버렸다. 아픈 마음을 달래고 있던 리비는 88번 버스에서 프랭크라는 이름의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녀는 처음 만났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프랭크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버린다.

 

그는 이미 60년째 한 여인을 찾아헤매고 있던 중이었다. 바로 이 88번 버스에서 만났던 그녀. 타오르는 불처럼 붉은 머리에 용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고 있던 그녀. 부모님의 반대로 망설이고 있던 프랭크에게 연기자가 될 용기를 줬던 그녀. 프랭크는 그녀가 전화번호를 적어준 티켓을 그에게 줬지만 그는 그것을 잃어버리고 말았고, 이후 그들은 영영 다시 만날 수가 없었는데...

 

못 말리는 낭만주의자 프랭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리비는 팔을 걷어부친다. 그녀는 프랭크의 그녀를 반드시 찾아내기로 결심하고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반항적인 눈빛의 남자가 프랭크를 돌봐왔던 요양보호사 딜런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하고 어둡고 거친 느낌의 딜런이 알고 보니 속마음은 굉장히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는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과연 프랭크는 평생에 걸쳐 찾아헤맨 여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리비는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사랑을 얻을 것인가?

 

뻔하디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이 소설은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가 가지고 있지 않는 새로운 요소가 있었다. 바로 프랭크의 그녀찾기!! 장장 60년 전에 맺었던 인연이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너무 궁금해서 책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로맨틱 장르 속 소소한 추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사람과 사람 을 이야기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리비나 딜런의 경우도 혈연 관계인 가족으로부터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나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아무 관계도 없던 낯선 사람들이 결국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삶의 이유가 되어준다. 우리가 세상을 더 신뢰하고 서로 더 친절하게 대해야 하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아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눈물과 콧물, 웃음과 감동이 함께 한 책 [88번 버스의 기적]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솔직하게 남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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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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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작가의 작품은 [뉴 서울 파크 젤리 장수 대학살]이 처음이었다. 젤리가 되어 녹아내리는 사람들을 묘사한 장면은, 그다지 아름답진 않았으나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인간이 젤리로 녹아내리는 비극의 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향긋한 젤리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이 느껴진 것은 묘사가 굉장히 생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로 [칵테일, 러브, 좀비]라는 소설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단편들 중에서 아빠가 좀비가 된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미 좀비가 되어 이성을 잃어버린 아빠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인공의 상황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사랑하는 아빠지만 엄마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아빠,, 그걸 바라보는 착잡한 나..

이 작품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도 굉장히 흥미롭다. 한 부유한 아파트를 뒤흔든 독살 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화영과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몸을 잃고 곰인형으로 들어가게 된 도하의 이야기이다. 아빠의 사업 실패로 엄마와 고시원에서 살던 화영. 엄마는 씨 더뷰 아파트라는 고급 아파트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아파트 전체에 독이 든 떡을 돌렸고 가정부로 일했던 엄마도 떡을 먹고 독살당한다. 그러나 화영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엄마는 평소에 떡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엄마의 죽음에 뭔가 음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하는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 윤혁은 사촌 형인 도현과 자신을 항상 비교했다. 그 이유는 윤혁이 유년 시절에 항상 형 정혁과 비교당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빼어나게 공부를 잘했던 형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야무시의 시장까지 되었지만 윤혁은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도하의 경우도 아무리 노력해도 도현을 이길 수 없었는데, 그때마다 윤혁은 아들을 거의 학대하다시피 다루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독이 든 떡을 먹고 죽은 날에도, 윤혁이 도하의 공부 실력을 다그치며 그를 화장실에 가두었기에 도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날 떡을 먹은 사람은 부모님과 사촌 형 도현. 결국 남은 사람인 큰 아버지 정혁과 도하가 함께 살게 된다.

소설은 엄마를 잃고 가출 청소년처럼 살아가는 화영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재개발도 되지 않을 허름한 레인보우 아파트에 다른 가출 청소년과 함께 살고 있다. 여자아이들에게 소위 " 낚시 미끼 "를 시켜서 돈을 버는 방장 영진에게서 돈을 뜯겨가면서 살고 있던 화영. " 낚시 " 란 청소년 여자아이를 미끼로 남성들을 여관으로 불러들인 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 화영은 지금까지 계속 영진의 낚시 미끼가 되는 걸 피해왔는데, 하필이면 그날 나이를 속이고 거짓말로 이어가던 두 개의 아르바이트에서 잘려 버린다. 어쩔 수 없이 낚시질을 간 화영, 하지만 그녀는 남자가 캐리어에 싸 들고 온 각종 무기 - 도끼, 칼, 주사기 - 등등을 보며 자신이 영진에 의해 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죽었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 길거리에서 주워 온 곰인형이 갑자기 살아나더니 손도끼를 써서 남자를 공격해 화영을 살리게 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세상의 모든 불의와 더러움을 안고 있는 듯한 가상의 도시 야무시.... 아직 어린 화영이 혼자서 살아가기엔 너무나 거친 동네다. 그녀가 세 들고 있던 집주인 영진은 가출 청소년들을 착취하고 이용해먹는 소위 악덕 포주 같은 인간이다. 아이들의 돈과 목숨까지 노리는 포식자라고 할 수 있다. 화영은 그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서 죽을 뻔하지만 영혼이 빙의된 곰인형의 도움을 받아서 살게 된다. 책 표지에 손도끼를 든 곰인형이 있어서 혹시나 과거 악령이 깃들었던 인형, 처키처럼 잔인한 인물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곰인형에 갇힌 도하도, 엄마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화영도, 사실은 누군가가 혹은 어떤 존재들이 벌이는 거대한 사건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화영에겐 곰인형에 갇힌 도하가 필요했고, 도하에겐 화영이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운명이 제대로 둘을 연결해 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화영 엄마는 왜 죽어야 했고, 도하는 왜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곰인형에게 갇혀버린 걸까? 알고 싶다면 이 흥미진진한 소설을 꼭 읽어봐야 한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진짜 재미있었던 소설 [테디 베어는 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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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복수를 하지 안전가옥 오리지널 25
범유진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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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통쾌한 복수극이었다. 70살이 넘도록 남편과 시댁에서 무시만 당하고 살아왔던 여자, 김꽃님. 그녀의 삶은 남편의 욕설에서 시작해서 욕설로 끝났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장례식에 갔던 날에도 밥 차리러 당장 오라는 남편의 성화에 친구의 명복도 제대로 빌지 못하고 등 떠밀리듯 집으로 오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김꽃님은 자신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게 된다. 꽃보다 아름다운 한 청년이 그녀에게 제안한 것은 바로, " 어머니, 혹시 남편을 혼내 주고 싶으세요?"였다.

범유진 작가의 신작 [당신이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복수를 하지]는 특이한 구조의 소설이다. 염소 클럽의 화려한 복수극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조금씩 거대한 주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소설 초반에는 다소 복잡한 구조 때문에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좀 헷갈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자 범유진씨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책 속에서 다루고 있다. 다소 폐쇄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알게 모르게 이루어지는 학대나 아이들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부모들, 그리고 사이비 종교에 의지하여 파탄에 이르는 어리석은 사람들 등등

그렇다면, 왜 염소 클럽인가? 영어로 scapegoat는 우리말로 희생양인데, 이스라엘에서 속죄의 날에 염소 머리를 제물로 바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죄는 인간들이 지어놓고 염소에게 덮어씌운다는 말. 가족 내에서도 속죄의 대상, 즉 희생양을 정해두는 나쁜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는 게 염소 클럽의 주장이다. 그들은 가족이 " 희생양"으로 찍어놓고 괴롭히는 그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한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복수를 감행한다.

푸딩에 독을 넣어서 엄마를 독살하려 한 사건으로 알려진 그녀, " 마더 포이즈너 " 사건의 주인공 하이하, 전 국가대표 수영 선수로서 한때 좋은 성적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아버지의 의문사와 얶이는 바람에 명성의 추락을 겪은 김해찬, 그리고 새아빠의 손에 의해 엄마를 잃은 아픈 과거를 가진 경호원 진선미. 이들이 바로 염소 클럽 회원들인데, 이들을 연결시켜주고 염소 클럽을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 거대한 기업의 회장과 그녀의 변호사 서은진이다.

" 염소 클럽 " 회원들 모두 한때는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학대와 폭력의 희생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활약이 더욱더 의미 있게 느껴진 듯하다. 본인의 손으로 학대라는 족쇄를 끊고 나온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족쇄를 끊어준다는 느낌? 그런데 이 소설은 단순히 개인 차원에서의 " 복수 "를 넘어서는 거대한 사건을 다룬다. " 마더 포이즈너 " 사건의 주인공 하이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데, 어디선가 듣고 본 것처럼 쉽게 죽지 않는 마녀의 스토리 같기도 했다. 중심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도 맞닿아있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사이비 종교, 사이비 종교에서 하는 말만 믿고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다가 가족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사람들, 사회 내에서 가장 약하고 존재감 없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무리들 등등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 " 모범택시 " 같은 화끈한 액션 복수극을 기대했지만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병폐인 " 학대 가정 " 과 " 사이비 종교 "를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기에 " 염소 클럽 " 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이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때로는 무서운 폭력이 동반되는 감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책 [당신이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복수를 하지]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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