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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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군과 폭도들에 대한 링컨의 경고를 읽으면 읽을수록,

남북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일들에 내가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과거의 그곳에서 오늘날의 이곳까지 오는 길을 더욱더 밝게 비추게 되었다. ”

-작가의 말 -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똑바로 보려면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 작가 캐런 조이 파울러가 아주 길고도 세세한 "부스" 가족의 일대기를 써야 했던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그녀가 남긴 작가의 말을 통해 조금 알 수 있었다. 미국에는 과거 링컨 대통령 암살이라는 비극이 있었고 지금도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작가는 총격범 자체보다 범인 가족에 대한 내용이 더 궁금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괴물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남은 가족들은 자책감을 어떻게 처리할까? 링컨 대통령이라는 개혁적인 인물을 암살함으로써 이후 미국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 존 윌크스 부스". 그가 어떻게 비롯되었고 그의 배경은 어땠을까를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부스"는 암살범인 존 윌크스 부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소설은 그의 아버지인 주니어스 브루터스 부스와 다른 형제들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 비극을 천재적으로 연기하여 당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아버지 주니어스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것이었다. 비록 알코올중독자에 광기 어린 삶을 살았으나 육식을 철저히 금하고 동물의 장례식을 치러 줄만큼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간적이었던 아버지 주니어스. 그는 노예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쪽이었고 흑인들의 삶에 자유가 깃들도록 많이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에게서 존 윌크스 부스가 태어날 수 있었다니, 인생이란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야기는 연극배우인 아버지를 따라서 메릴랜드 한 농장에서 삶을 시작하게 되는 어머니 메리 앤에게서 시작한다. 그녀는 첫아들 준을 낳았고 이후 줄줄이 태어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소설은 주로 둘째 로절리와 일곱째 에드윈 그리고 여덟째인 에이시아 세 사람을 화자로 선택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들에게 발언권을 공평하게 할애한 반면, 존 윌크스 부스가 화자로써 전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화자들의 대화나 글 속 묘사를 통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존 윌크스 부스의 작고 미미한 흔적만으로도 그가 가진 폭력성과 잔인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어머니 메리 앤이 기도 중 목격했던 환상은 미래에 존 윌크스 부스가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안내해 주는 강력한 복선이 되어주는 듯했다.


" 즉시 잿더미에서 화염 하나가 솟아올라 이내 팔 모양이 되더니,

마치 아기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듯이 그것이 아기를 향해 뻗어오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 화염 속에서 국가라는 단어를 읽을 수 있었으며,

그 단어 뒤에 조니의 이름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90쪽-


"부스"를 읽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란 게 있고, 마치 개인들은 승부를 앞두고 있는 체스의 장기말처럼 쓰이는 게 아닐까? 비록 아버지를 닮아서 우울에 알코올 중독을 물려받은 가족이지만 오히려 좌파에 가까울 정도인 "부스" 가족에게서 지독한 극우에 가까운 인물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 부스" 가족들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로절리나 에드윈 같은 인물들은 굉장히 섬세하고 인간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존을 사랑했으면 사랑했지 그가 악인으로 거듭날 일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존 윌크스 부스는 악과 손을 맞잡고 거리로 나와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게 되고 미국 역사를 영원히 바꾸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 책 "부스"는 노예제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던 미국 역사 한가운데로 독자들을 던져놓는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악인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일대기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 흐름이 다소 느리고 단조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격변이나 흐름과 과거 사건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더 정신 차리고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과연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누군가의 가족들은 사건 이후 어떻게 삶을 살아나갔을까? 정확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풍부하고 격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소설 "부스"를 추천합니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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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1 - 제1부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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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개미 왕국 벨로캉에 닥친 정체 모를 위험,

물려받은 저택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려는 한 남자

그리고 전대미문의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그렇게 개미와 인간을 오가는 장대한 모험이 시작된다!

소설 [개미]가 출간된 지 어언 20년이 되었다니! 무려 스무 살이나 먹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말 신기하고 독특한 소설이 있다며 친구가 추천해 준 [개미]를 밤을 꼴딱 새우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매우 낯설고 기이했던 내용이었지만 당시 그 느낌은 정말 황홀했다. 이 책을 읽고 며칠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과연 암개미의 운명을 타고났을까? 아니면 일개미의 운명을 타고났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개미들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조직 생활과 일하는 모습에 강렬하게 매료된 후 본격적으로 그들의 삶을 관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본격적으로 개미 도시를 집으로 들여왔고 그때 처음으로 개미에 대한 소설을 구상했다. 1983년 아프리카의 " 마냥 개미 "를 관찰하게 되면서 이 복잡하고 신비로운 개미 세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겠다고 결심한 후 작가는 결국엔 이 대작 [개미]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주인공 조나탕 웰즈는 삼촌 에드몽 웰즈가 죽은 후 그로부터 집을 한 채 물려받게 된다. 낡고 오래된 집이지만 백수가 된 후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던 조나탕에게 이 집은 구원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삼촌 에드몽 웰즈는 유언장에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절대로 지하실에는 내려가지 말 것! 그는 가족들의 지하실 출입을 겨우 막아내지만 어느 날 아들 니콜라가 애지중지하던 강아지가 지하실에서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로 거의 매일 지하실을 내려가다시피한 조나탕. 어느 날부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걱정스러웠던 아내 뤼시도 지하실을 내려간 후 돌아오지 않게 된다. 결국 실종된 부부를 찾기 위해 경찰도 동원되지만 그들도 돌아오지 않는데....

소설 [개미]는 한꺼번에 3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선 삼촌의 집을 물려받은 조나탕 가족 이야기. 미스터리하고 위험해 보이는 깊은 지하실과 한번 내려가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이 책의 핵심인 개미 제국의 이야기. 우리는 마치 거대한 기계와도 같은 개미 공동체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세포처럼 움직이는 개미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괴짜 생물학자였던 에드몽 웰즈가 살아생전 써 내려간 백과사전 이야기. 아마도 베르베르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그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나와있는 지식이 조금씩 노출된다. 아마도 이 백과사전에 모든 미스터리를 풀만한 열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 세계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실종되고, 개미 세계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개미들이 죽어나간다. 병정개미들과 질 좋은 고기를 구하기 위한 원정에 나섰던 수개미 327호는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인해 스물여덟 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사망하는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된다. 겨레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밀스러운 적들이 있음을 감지한 수개미 327호는 동료들과 어머니인 여왕개미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그러던 중 수개미 327호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개미들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고 뭔가 큰 음모가 있음을 직감한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게 되는데...

우리는 소설 [개미]를 통해서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개미 제국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한꺼번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무시무시한 지하실과 바위 냄새를 풍기며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낯선 개미들의 등장이 과연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베르베르 작가는 직접 개미를 키워본 적도 있고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야생 개미를 연구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개미의 관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다. 페로몬을 이용한 소통법이나 병정개미가 뱃속에 넣어 다니는 개미산 그리고 온도가 개미의 시간 인식에 미치는 영향 등등은 매우 신비롭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개미들의 모습을 보며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지를 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이롭고도 환상적인 개미 세계로 여행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소설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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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의 파수꾼 이판사판
신카와 호타테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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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업계에 만연한 담합과 하청업체 갑질

고객을 울리는 호텔 웨딩 카르텔을 응징하라!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고 마냥 행복해야 할 결혼식. 그러나 아직도 결혼식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서 커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웨딩업계의 담합으로 인해 결혼식 비용이 올라가고 커플들이 고스란히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이 소설 [공정의 파수꾼]은 일본의 한 특정 지역에 만연한 웨딩업계의 카르텔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많은 부담을 지울 뿐 아니라 하청업체에 대한 무지막지한 갑질까지... 공정과 상식이 주된 가치가 되어야 할 사회와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는 무리들을 향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관들이 드디어 칼을 뽑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소속 시로쿠마는 아직 초보 심사관이다. 그녀는 얼마 전에 자신이 맡았던 한 조사에서 건설사와의 담합을 속 시원하게 밝혔던 시청 직원 도요시마가 자살을 하는 바람에 현재 굉장히 괴로운 상태이다. 그런데 이번에 시로쿠마가 속한 심사국에 들어오게 되는 직원이 대단한 엘리트라는 소문을 가진 고쇼부? 가라테로 몸을 다져온 시로쿠마가 평소에 몸만 좋은 바보라는 딱지가 붙는 일이 많기 때문에 자신이 엘리트라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고쇼부와의 만남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픈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치기 현 S 시에 있는 호텔 3사가 매년 웨딩 요금을 인상하는데 그 인상폭이 완전히 똑같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것은 바로 영락없는 담합의 증거? 잘난 척에 건방지기까지 한 엘리트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고쇼부와 하필이면 한 팀이 되어 그 3개의 호텔을 조사하러 가게 되는 시로쿠마. 그런데 그 3개의 호텔에 속하는 S 클래시킬 호텔 사장인 안도 마사오가 칼에 찔려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텔 아마사와 S의 사장 운카이가 칼을 든 협박범에게 테러를 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협박범은 호텔에 꽃을 납품하던 꽃 가게 사장 이시다? 과연 이들 웨딩업체와 꽃 가게 사이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일까?

“ 공정위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현대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를 드러낼 수 있겠다 싶었어요. (...)

사회가 무한 경쟁을 강요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

경쟁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쪽이 건전하지요.

다만 그런 경쟁이 정당한 룰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기존 미스터리가 다루지 않았던 업계의 담합과 갑질 부분을 파고든 작가 신카와 호타테. 그녀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 - 학생들 사이의 왕따나 학교 폭력, 가정 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학대 등등 - 도 결국엔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불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상황, 즉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갑질을 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된다고 봤던 것 같다. 변호사 시절부터 꾸준히 " 정의가 무엇인가 "라는 것을 고민했던 작가 신카와 호타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바로 이 공정거래위원회라 봤고,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 소설 [공정의 파수꾼] 이었던 것!

건전한 사회 질서를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는 공무원들의 이야기인 [공정의 파수꾼]의 주제 " 업계 내에서의 담합 사건 "의 추적기도 재미있었으나 시로쿠마가 본인의 성격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또 어찌 보면 심사관이라기에는 너무나 물러터진 시로쿠마. 그녀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서 겪는 고생들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차가운 물에 빠져거나 절벽에서 굴러떨어져서 죽다 살아가는 일을 겪는다. 그리고 항상 그녀가 바빠서인지 남자 친구에게 대차게 차이는 일까지 겪게 되는데...... 그러나 뺀질거리고 냉소적이라고 생각했던 고쇼부가 의외로 인간적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둘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분위기??? 만약에 공정의 파수꾼이 연작소설로 이어진다면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계산하지 않고 온몸을 던져서 비리와 불법을 파헤치는 " 몸만 좋은 바보" 시로쿠마. 그러나 그녀와 같은 성실하고 헌신적인 공무원이 있기에 나라 질서가 바로 잡혀 나가는 게 아닐까?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강력한 공무원을 보고 싶다면 [공정의 파수꾼]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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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을 위한 축구 교실
오수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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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우주에서 축구에 진심인 자들이 찾아왔다!

함께 공을 차며 웃고 즐길 수 있다면, 그러면 된 거 아닐까?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이유로 축구를 사랑한다.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오직 골을 넣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그 치열함 때문에 좋아할 수도 있고 아주 힘들게 승리를 얻었을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함과 카타르시스 때문일 수도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스포츠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축구라는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선사해 주는 그 짜릿함과 스릴은 인정한다. 그래도 여전히 축구에 미친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축구가 왜 그렇게 좋아요?

제1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오수완 작가의 신작 소설 [지구인을 위한 축구 교실]을 읽었다. 축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지구까지 찾아온 외계인들. 그들은 지구인들과 축구 경기를 하고 이기면 그들의 소원을 각각 한 가지씩 들어주겠다고 선포한다. 어찌 보면 다소 황당무계한 줄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궁금했다. 외계인과의 축구 경기라니, 도대체 이 소설의 결말은?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왠지 모르는 충만감이 차올랐다. 승리자보다는 패배자의 시각으로 삶을 살아온 나에게 이 책은 마치 명랑하지만 매우 속 깊은 친구처럼 다가온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 너는 꽤 괜찮게 살아가고 있어."

아무런 인생의 목표 없이 패배자처럼 살아가는 욘 올슨.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욘은 돈을 아끼기 위해 마트에서 폐기되는 식품을 가져다 먹고 밤에 TV를 보다가 잠드는 것을 낙으로 살아간다. 마치 흑백사진 속 배경처럼 밋밋하게 살아가는 욘. 그의 인생에 한 가지 재미가 있다면, 그건 바로 친구 리오와 보내는 주말일 것이다. 트레일러 주택에 살고 직업도 없는 리오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매주 주말 낚시를 가서 리오가 잡은 송어를 구워 먹는 맛이 꿀맛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온 세계가 지구에 온 외계인들의 등장으로 떠들썩해진다. 그들은 자신들과 축구를 해서 이기는 자들에게는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한다. 단, 모든 이들에게 기회는 한번뿐이다. 빚만 잔뜩 있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자신을 떠나간 한심한 인생 욘. 그는 이것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사실 욘은 원래 축구 선수였으나 시합 중 무릎을 크게 다쳐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는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가르칠 수는 있지 않은가? 당장 축구 교실을 열게 되는 욘. 그러나 찾아온 사람들은 오합지졸 그 자체.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축구에 "축" 자도 모를 것 같은 초보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과연 욘은 이 사람들을 데리고 시합에서 이겨서 소원 성취할 수 있을까?

축구 경기 그 자체보다는 소원 성취가 일 순위가 되면서 ( 인간사가 그러하듯 ) 사람들은 너도나도 강한 팀을 만들어 우승을 하기 위해 애쓴다. 그런 인간들에게 편승하여 쉽게 이겨보려 했던 욘은 축구 교실도 해산시키고 절친 리오와도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잠시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도 무색하게, 축구 교실의 이 오합지졸 멤버들은 마치 자석에 끌리듯 욘을 필두로 다시 모이게 되는데....... [지구인을 위한 축구 교실]은 명랑 만화처럼 가볍지만 삶에 대한 굉장한 통찰력을 가진 작품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골을 넣을 수 없는 축구의 경우 팀 워크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 혼자 살면 무슨 재미? 더불어 사는 게 인생이지 ." 그리고 이 소설은 패배의 기운이 짙은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승을 거두는 팀이 있듯, 우리도 언젠가는 힘든 인생에서 기적을 맛볼 수 있을 거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과 눈물, 그리고 감동 포인트를 모두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소설 [지구인을 위한 축구 교실]

" 인생이 시궁창이라도, 여전히 공을 차면서 웃고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냔 말이야.

그래도 되잖아? 축구를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다 잊고 잠시나마 즐겁게 뙬 수 있다면, 그러면 된 거 아냐? 이런 게 있으면, 인생이 그리 나쁜 건 아니잖아? 안 그래?

그리고 그걸 같이 할 친구가 있고."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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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도쿄 하우스
마리 유키코 지음, 김현화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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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의 발달과 히트작을 원하는 방송국에 의해 최근 리얼리티 쇼가 많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잘 만든 리얼리티 쇼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도 있지만 까딱하다가는 출연진은 물론 방송국의 이미지까지 추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리얼리티 쇼에 열광하는 대중의 관심이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인데, 동시에 "가상의 인물과 상황"이라는 안전장치가 없는 리얼리티 쇼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이 [1961 도쿄 하우스]이다. 이렇게 탐욕스러운 언론과 방송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아주 정교한 반전을 숨기고 있는 범죄 미스터리 [1961 도쿄 하우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애초에 120년 전 도쿄 생활상을 리얼리티 쇼로 꾸며보자는 기획으로 시작하였으나 여러 회의를 거친 끝에 쇼와 36년, 즉 1961년 당시 도쿄 생활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를 제작하게 된 G 방송국. 방송국은 당시 일본 경제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던 가운데 선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던 아파트 단지 생활에 리얼리티 쇼의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배경은 이제 재건축에 들어가게 된 시즈오카현에 있는 낡고 허름한 S가오타 단지. 살인 사건이 발생했었다는 둥 흉흉한 소문이 돌았던 곳이긴 하나 쇼와 당시 생활상을 그려내기에 이곳만큼 안성맞춤인 곳이 없다.

G 방송국은 오디션을 통해 리얼리티 쇼에 참가할 두 가족을 뽑게 되고 출연료 500만 엔에 혹한 야마다네 와 스즈키네 가족이 최종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이 리얼리티 쇼는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시작된다. 즉, 두 가족들 중에서 한쪽에는 풍요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나머지 한 가족은 궁핍한 환경을 제공하여 두 가족이 서로 갈등하는 상황을 조장해 보자는 것이 방송국의 의도였던 것.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갈등하는 가족들을 보며 재미있어할 대중들의 그릇된 욕망을 채워주기 위함이었달까? 그러나 제대로 물품을 제공받지 못한 야마다네가 스즈키네에서 빌리거나 자급자족을 하면서 그럭저럭 평화로운 상황이 조성되자 초조해진 방송국 관계자들은 결국 숨겨놨던 마지막 카드를 뽑게 되는데....

[1961 도쿄 하우스]는 방송의 추악한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대중의 관심이라는 먹이를 위해서라면 출연자들의 인권이나 사생활은 개한테나 줘라..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리얼리티 쇼가 진짜 리얼이 아니란 점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잘 짜인, 겉으로 보기에 진짜 같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씀. 그러나 출연자들은 리얼이지 않은가? 진짜처럼 보이는 리얼리티 쇼의 거짓 때문에 큰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재미 요소는 바로 엄청난 반전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속고 속이는 게임이다. 한마디로 매우 복잡하고도 정교한 수수께끼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런 결론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결론이? 라고 한순간 다시 다른 결말로 넘어가는... 한마디로 희한한 소설이다. 예상치 않았던 반전의 재미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아주 꿀잼을 제공할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독자들의 지루한 밤을 책임질 소설 [1961 도쿄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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