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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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적인 판단력과 합리적인 사고로 인지되는 세계만이 현실이라면,

비합리적인 관념으로만 감지되는 세계는 없는 것인가?"

나는 유령, 초능력, UFO 등등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정작 누군가 나에게 ' 영적 존재 '를 실제로 믿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다고 말하면 웬지 현실 부적응자? 혹은 너무 어리숙한 사람? 으로 찍힐까봐 조금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사회파 추리의 거장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작품인 이 책 [건널목의 유령] 은 확실하게 그런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열차 정지 사고가 거듭나는 한 대도시의 건널목에서 포착된 희미한 존재,,, 그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1994년 일본 도쿄. 일간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하루하루 숨돌릴 틈없이 살았던 마쓰다. 그는 이제 [월간 여성의 친구]라는 작은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몇 년 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혼자서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는 마쓰다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영혼이라도 곁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던 어느날 잡지사에서 여름을 맞아 흥미로운 소재를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독자들이 투고한 편지들 중 심령 사건들을 중심으로 취재하는 것이었다. 전혀 다른 독자들의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유령같은 실루엣.... 장난같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쓰다는 취재를 맡게 된다.

그런데 장난스러운 다른 심령 사건에 비해서, 시모키타자와역 건널목에서 목격된 유령은 그 느낌이 달랐다. 한 대학생과 주부가 보여준 사진에는 실제로 긴 검은 머리의 여자인 듯한 피사체가 희미하게나마 찍혀있다. 심령 현상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마쓰다는 혹시 누군가의 초능력에 의한 '염사' 현상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그도 현대인인지라 심령 현상을 쉽게 믿길 힘들어한다. 그러던 중 새벽 1시 3분에 뭔가 이상한 전화를 받게 되는 마쓰다. 수화기를 든 그는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온 몸이 얼어붙고 만다. 전화기 반대편에서는 죽음에 임박한 여성이 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마쓰다의 머리 속엔 시모키타자와역 건널목에서 찍힌 검은 머리의 여성의 피사체가 떠오르게 되는데....

예전에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13계단을 읽어봤었다. 한 사형수의 결백을 밝혀내기 위해서 집요하게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추적기가 정말 감명깊었던 소설이다. 너무나 명백한 증거 앞에서 고스란히 죄를 뒤집어쓸 수 밖에 없었던 사형수. 그런데 가히 천재적이고 집요한 추리로 속시원한 결말을 이끌어냈던 13계단의 주인공. 그런데 [건널목의 유령]의 마쓰다도 그에 못지 않은 초인적인 활약을 펼친다. 유령은 믿기 힘들지만 새벽 1시 3분이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화. 이상한 현상과 맞닥뜨린 마쓰다는 뭔가에 홀린 듯 사건 추적에 나선다. 그러던 중 마쓰다는 경찰을 통해서 약 1년전 건널목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과연 피해자는 누구였고, 이 추적을 통해서 마쓰다가 발견하게 될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주로 사회파 추리를 쓰는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소설이 유령에 관한 것이라니? 약간 알쏭달쏭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 책은 " 유령 " 이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소재를 통해서 부패하고 추악한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죽었지만 살아있을 때에도 거의 존재감이 희미했기에 " 유령 " 에 가까웠던 한 여성. 투명인간이었던 그녀의 정체를, 아주 미미한 단서를 바탕으로 한 추적을 통해 결국 밝혀내는 마쓰다. 모든 것이 드러났을 때 나는 뭔가 서글픈 감정을 느꼈다. 포식자가 넘쳐나는 사회. 그 누구의 보호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한 소녀의 얼굴이 문득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했다. 어떤 사회든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부패가 넘쳐나고 언론이 제 역할을 잘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또 깨달은 순간이었다.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건널목의 유령]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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