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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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내게는 언제나 그래야 할 이유가,

그래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

소설 [살려 마땅한 사람들]에는 완전 범죄에 도달할 뻔한 사건이 하나 등장한다. 어찌나 교묘한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범죄가 현실에 벌어졌다면? 아마도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채 묻혀버렸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뼛속까지 악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머리까지 좋아버리다니... 그래서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이 이야기의 끝이 과연 무엇일까? 다소 충격적이고 소름 돋는 결말이긴 했으나 어쩌면 독자들 거의 모두가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악인의 끝은 비참해야 제맛이다.

주인공 헨리 킴볼은 한때 경찰이었으나 사건 조사 중 불미스러운 사고에 휘말린 후 그만두고 현재는 사설탐정으로 일하고 있다. 탐정이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나 그가 하는 일은 실종된 고양이를 찾아준다든지 하는 시시한 일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조앤이라는 젊은 여자가 그를 찾아온다. 헨리 킴볼은 경찰로 일하기 전에 잠시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조앤이 당시 그의 학생이었다. 그녀는 부동산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 리처드가 한 여직원과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면서 헨리 킴볼에게 불륜 사실을 밝혀달라는 의뢰를 한다. 마침내 사건 다운 사건을 맡게 된 헨리. 과연 그는 조앤이 의뢰한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여러 편의 소설들이 생각났다. 우선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에 등장하는 탐정 필립 말로. 고독한 늑대 같은 겉모습에 대비되는 뭔가 낭만적이고 순수한 내면? 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수사 중간중간 시를 쓰고 사건 주요 관계자와 연애를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헨리 킴볼의 인간적인 매력이 좋았다. 이외에도 미국 드라마 [덱스터]와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도 떠올랐는데, 진짜 나쁜 놈들만 골라 죽이는 연쇄 살인마 덱스터와 엄청난 걸 크러시의 매력을 가진 밀레니엄의 주인공 리스베트를 섞어놓은 듯한 인물이 등장해서 말이다. 완전 매력덩어리 그녀 릴리.

우리들 각자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 좋게 쓰면 사회에 도움이 되겠지만 범죄에 재능이 있어서 범법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에는 타고났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스라이팅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타인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사람, 추론 능력이 뛰어나서 사건과 사건 사이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를 대번에 파악하는 사람들.. 무엇보다도 타인의 목숨을 아주 쉽사리 빼앗을 수 있지만, 그 재능을 세상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 등등등 이 소설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어지는 아주 절묘한 플롯도 훌륭하지만 특히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이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세상엔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대담하게 넘어가거나 아예 그 선을 지워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에게 별점을 준다면? 당연히 만점! 캐릭터 묘사가 기가 막히고 ( 미친놈들 전성시대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평범하지 않은 설정과 결론이 - 악으로 악을 이겨먹는 - 이 너무 신선하다. 현재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 가스 라이팅 "의 실체가 무엇인지 작가가 조곤조곤 짚어준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이자 교수인 릴리의 아버지가 " 좋은 작가란 좋은 관찰자다 " 라고 했는데, 이 책을 쓴 작가 피터 스완슨 본인이 정말 뛰어난 관찰자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여러 성격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특성을 정말 잘 살려서 소설 속의 여러 개성 있는 캐릭터로 살려낸 것은 아닐지... 읽다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 과연 나도 살려 마땅한 사람일까? " 를 스스로 묻게 되는 소설 [살려 마땅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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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드라실의 여신들 안전가옥 쇼-트 22
해도연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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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여진 SF 소설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미래가 불행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독자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듯하다. 특히 정확하고 풍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창조된 미래 세계는 마치 먼 후손의 삶을 망원경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줘서 더욱더 흥미진진하다. 이번에 읽은 SF 단편 소설집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내가 과학적 지식에 많이 무지해서 그런지 이 작품집에서 선보이는 내용이 다소 난해했지만 작가가 제시하는 미래가 굉장히 설득력 있고 황홀하게 다가왔다. 짧은 단편을 읽었지만 마치 장편 영화를 감상한 기분도 들었다.

이 책에는 각각 3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우선 에너지 위기를 겪는 먼 미래의 지구에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는 거대 기업 " 인텍 루나 " 이야기인 [위대한 침묵] 거대 기업 " 인텍 루나" 가 중력파 기술을 보유한 채 우주에 숨겨져있는 어마어마한 매장량의 에너지 채굴 사업에 뛰어든다는 이야기인데, 이 거대한 우주에서 왜 우리가 외계 문명 하나 발견할 수 없는지 이유를 제시하는 듯했다.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에서 심해 속 생태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연구 조사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이 두 번째 단편인데, 특히 이 단편이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SF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마치 심해를 탐험하는 사람들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 편은 앞에 나온 이야기들의 후속편에 속하는 듯한 [여담, 혹은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편인데, 이야기에 연속성을 더해주는 듯하여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이라는 작품은 좀 더 길게 늘여서 장편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용을 조금 말하자면, 목성의 달인 유로파에 파견되어 심해 생물을 연구하는 3명의 과학자 세실리아, 수미, 마야는 어느 날 얼음 바다 깊은 곳에서 수백 년 된 생물 사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체에는 장신구를 착용하였다거나 장례를 치른 흔적이 있었는데, 그 말인즉슨 그들이 지적인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던 중 가니메데 위성에서 날아온 제롬이라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그들에게 다급하고도 불행한 소식을 전하게 된다. 원래는 90일 후에 유로파에서 철수할 계획이었으나 3일 후 지구로 떠나야 한다는 것.

지구에 운석이 떨어지고 난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세계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고 그 바이러스로 인해 식물이 파괴되면서 식량 문제와 산소 문제가 동시에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화학 합성으로 어찌어찌 식량과 산소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으나 바이러스에 변이가 생겨 곤충을 죽이기 시작하면서 이제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의 종말이 멀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아마도 먼 우주에서 왔을 이 바이러스와 DNA 상 가장 흡사해 보이는 생명체의 샘플을 가능한 한 많이 채집해서 지구로 돌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진 상황. 과학자 수미의 뇌와 연동된 잠수정 8대가 얼음과 구름충을 뚫고 사체가 아니라 생물 샘플 채취를 위해 심해로 내려가게 되는데....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은 과학과 신화를 절묘하게 결합한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이 연구 지역을 탐험하고 생물 샘플을 채취하여 조사하는 과정이나 인간의 뇌가 마치 소프트웨어처럼 잠수정에 업로드되는 과정 등등은 실제 과학자들의 활동 현장을 보여주는 듯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유로파 심해 지역에 있는 8개의 열수구에 북유럽 신화에서 나오는 지역인 니플헤임이나 아스가르드라는 명칭이 붙여지고 결국 거대한 생명의 나무인 위그드라실이 언급된다는 점에서 종의 기원을 보여주는 신화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외계 문명과 접촉하게 되는 인류의 모습을 아주 색다르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그드라실의 여신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각 과학자들 활동 이후 이야기가 잠시 나오는데 이것만으로는 조금 감질난다는 느낌이다. 공간이나 시간 그리고 각 인물들의 사연 등을 확장하여 이 단편의 확장판인 장편 소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소설 [위그드라실의 여신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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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빛 -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임재희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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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던 그때가 기억난다. 우선 가해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경악과 분노가 뒤섞인 이상한 감정을 느꼈고 피해자들에게는 말로 표현 못할 크나큰 미안함과 슬픔을 느꼈던 것 같다. 이후에 가해자 청년이 남긴 동영상과 그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나서 그도 어쩌면 한 사회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물론 총기 사건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들 모두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일종의 무력감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소설 [세 개의 빛]의 주인공 “노아”는 과연 어떤 감정을 느꼈던 걸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에게 버려지고 미국이라는 전혀 낯선 공간으로 입양이 된 노아. 그는 한창 예민한 시기인 유년 시절에 파양이라는 간접적인 폭력과 양부모에 의한 직접적인 폭력 그리고 학대를 겪어야만 했다. 한마디로 전쟁터같은 삶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 볼 수 있는데, 그 정신적 상흔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서였을까?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일으킨 강렬한 감정이 하나의 계기가 되면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남겨진 미셸 은영 송.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을 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단계를 그녀도 거치게 된다. 분노, 부정, 슬픔 그리고 애도. 그녀는 심리치료사가 제안한 애도의 한 방법으로 노아와 함께 하기로 계획했으나 끝내 하지 못했던 일을 하기로 한다. 그것은 바로 “ 한국으로의 여행 ” 이었다. 은영은 미국 이민 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중학교 동창 현진과 연락한 뒤 한국으로 향하게 되는데....

소설 [세 개의 빛]은 연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은영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기도 하지만 폭력의 희생자이자 스스로 “ nobody ”라고 느꼈을 법한 노아의 삶과 이름을 대신 찾아주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미국으로 입양되기 위해 비행기를 탔을 때 노아에게 붙여졌던 이름은 바로 “ 남자아이 – 1 ” 이었다. 소설에서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정말 가슴 아팠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그녀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으면서 노아의 생물학적 부모와 그의 진짜 이름을 찾아주고자 하는 노력이 감사하게 느껴진 동시에 그의 뿌리를 꼭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은영의 노력 뿐 아니라 이 소설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혼혈인 리사가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뇌과학에 바탕을 둔 그 프로젝트.. 사실 나는 인공 지능과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진 않지만, 가상 공간 속에서의 체험을 통해 실제 삶의 결핍을 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느꼈다. 은영과 사라가 “ 유년의 집 ” 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지점에서 문득 노아를 비롯한, 세상 모든 폭력의 희생자들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이 치유될 수만 있다면 그게 인공 지능이든 아니든, 그 무엇이 중요할까?

소설 [세 개의 빛]을 읽으며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일 혹은 폭력의 희생자로 살아남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집단의 구성원으로 완전한 일체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에서 고립감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삶은 도대체 어떤 무게로 개인들에게 다가갈 것인가? 노아는 비록 그 무게를 다 견뎌내지 못했으나 남겨진 연인, 은영은 연인을 잃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노아에게 주어졌던, 혹은 그가 잊고 살았던 여러 이름들을 되찾아 주는 작업을 했다. 한국에서 그녀가 딛는 발걸음 걸음 마다 " 노아 " 라는 꽃이 다시 피어오르는 환상을 보는 듯 했다. 이런 소설들을 통해서 어쩌면 세상의 모든 버려진 아이들과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이 조금은 위로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이 슬프고 아픈 이야기였지만 읽고 난 뒤 어쩐지 밝은 빛이 보이는 듯한 소설 [세 개의 빛]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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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소년문고를 이야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우출판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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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한 부분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만화가의 작품! 받아서 너무 기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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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친절한 거짓말 - 총리가 된 하녀의 특별한 선택
제럴딘 매코크런 지음, 오현주 옮김 / 빚은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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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앞에서 통치자는 도망가고

정치인은 권력만 좇고

언론은 선동하고

시민은 표류한다

자연재해나 전쟁 등으로 나라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권력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소설 [너무 친절한 거짓말]에서는 위기 앞에서 혼비백산하여 국민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총리가 있다. 그리고 위기를 이용하여 나라를 더 혼란에 빠뜨리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정치인들과 언론이 등장한다. 비록 상상으로 만들어진 지역과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잇속만 챙기는 정치인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이 책 [너무 친절한 거짓말]은 상상의 나라 아팔리아에 닥친 홍수로 인해 벌어지는 혼란과 좌충 우돌을 다루고 있다. 두 달간 쉬지 않고 내린 비로 인해서 퍼르카 강이 범람하게 되면서 총리가 있는 성곽 도시 프래스토시가 거대한 홍수에 휘말릴 위험에 처한다. 기상학자들에게 이 사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총리,,,,, 그러나 앞으로 더욱더 심각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본 뒤, 총리는 뒤로 안 돌아보고 어딘가로 도망쳐버린다. 거대한 재난 앞에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들이 두려웠던 걸까?

총리의 부재라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 총리의 남편.. 그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총리 관저에서 일하던 하녀인 15세 소녀 글로리아를 시켜서 총리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키와 몸집도 총리처럼 작고 아담했던 것! 그리고 평소에 총리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기에 글로리아가 총리 역할을 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녀라는 신분에, 고작 15살에 불과한 글로리아.... 과연 그녀가 총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위기에 봉착한 도시 프래스토시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너무 친절한 거짓말]은 내 예상을 훨씬 웃도는 재미를 가진 소설이었다. 처음엔 소녀가 주인공이고 상황 자체가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해서 가벼운 코미디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런 소설은 전혀 아니었다.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나라가 몰락해 가고 사람들이 어려움에 휘말리는 내용이기에 디스토피아 물인가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우화 같기도 했다. 자기밖에 모르고 냉혈한이었던 전 총리에 비해서 배움도 짧고 아직 어린 글로리아가 인간적이고 따뜻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게 놀라웠다. 그뿐 아니라 서슬 퍼런 총리 앞에서는 의견 한마디 못했던 총리 남편이 굉장히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든든하게 글로리아를 뒷받침하는 면도 보기 좋았다.

이 소설이 만약에 권력만 좇는 정치인과 거짓으로 선동하는 언론에 맞서서 싸우는 글로리아와 총리 남편만 다뤘다면 재미가 아마도 덜했을 것이다. 성곽도시인 프래스토시가 홍수에 어느 정도 버티고 있던 것에 비해서 북쪽에 있는 포레스트 굽이라는 지역은 홍수 때문에 많은 집이 침수되어 사람들이 피난민이 되고 동물들은 물에 휩쓸려가 목숨을 잃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하인즈라는 이름의 한 반려견이 가족들과 멀어져 물살에 휩쓸리게 된다. 하인즈가 물살에 휩쓸리다가 다른 동물들을 만나게 되면서 겪는 모험과 사랑하는 주인이자 친구인 클렘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목숨을 건 채 여행하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과연 하인즈는 홍수라는 재앙을 이겨내고 클렘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은 도망도 참 잘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너무 친절한 거짓말] 속 총리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본인 목숨 하나 살리겠다고 도망친다. 얼떨결에 총리직을 수행하게 되는 하녀 글로리아, 그런데 어린 소녀치고는 현명하게 리더십을 잘 발휘한다. 그러나 나라가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언론은 거짓말을 하고 정치인들은 자기 잇속만 차리기에 국민들, 시민들만 생고생하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참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지혜로운 강아지 하인즈가 모험하는 장면들은 굉장히 스피디하고 박진감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참 독특한 것 같다. 가볍고 웃긴 듯하면서도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정말 흥미진진했던 소설 [너무 친절한 거짓말]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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