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에서 생긴 일
마거릿 케네디 지음,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그곳에는 뭔가 있어요.

온갖 사람이 다 합류하고 있어.

이 모든 게 징후야.”

마거릿 케네디 작가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은 여러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준다. 얼핏 보면 몇몇 커플들의 연애 대소동을 보여주는 정통 멜로드라마 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추악한 인간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조소와 풍자를 날리는 우화 형식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시간적 배경은 세계 대전 직후의 영국 사회, 공간적 배경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아슬아슬한 절벽에 자리 잡은 한 호텔이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영국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절벽이라는 공간 때문인지, 이 소설은 이야기 내내 뭔가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뚜렷하게 구조가 있는 스토리 구성은 아니지만,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는 힘을 가진 소설이다.

영국 콘웰 지역의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절벽에는 펜디잭이라는 호텔이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을 말하자면,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신부님들이 등장하여 절벽이 와르르 무너져서 호텔이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이미 결말을 알고 시작하는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긴 한데, 이 부분이 오히려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어떻게 보면 독자들이 신이 된 느낌이랄까? 비참한 운명을 모른 채 어리석은 삶을 되풀이하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든다.

호텔의 주인은 시달 씨 부부이다. 남편 시달 씨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산다. 아내인 시달 부인은 아들들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데 특히 큰아들 제리를 거의 착취하듯 부려먹는다. 다른 아들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리의 희생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 가족 중엔 꼭 희생자가 있기 마련 ) 미스 엘리스와 낸시벨은 객실 청소를 담당하는 호텔 직원인데, 엘리스는 남에 대한 험담을 좋아하는 여자이고 입만 살아서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성실하고 현명하며 허튼짓을 용납하지 않는 여자 낸시벨은 자주 엘리스와 부딪치게 된다.

휴가철을 맞아 펜디잭 호텔로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개성 있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모였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다소 독특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모인다. 레이디 기퍼드는 지금 말로 하자면, 연극성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코브 부인은 그야말로 소시오패스에 다름없다. 참사위원인 렉스턴 씨는 교만한 정신병자 같고 건축가인 페일리 씨는 그냥 전형적인 속물에 교양있는 척한다. 소설가 애나는 가스라이팅에 천재인데 주로 남자들을 꼬여내는 마력이 있다. 꼬마 히비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작은 악마... 커서 뭐가 될지 참 걱정되는 꼬마였다.

등장 인물들에 대해서 이렇게만 열거하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안다. 어떻게 보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7대 죄악을 소설 속에 녹여놓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7대 죄악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소설가가 어떤 의도나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썼는지는 알 것 같다. 펜디잭 호텔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는 곳, 즉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사바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고, 그게 큰 죄악인지도 모른 채 본성에 따라 혹은 카르마에 따라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인간들..... 한 치 앞도 못 보고 단지 탐욕에 이끌리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랄까? 아주 흥미진진했다.

죄와 벌 그리고 구원... 나는 죄를 지은 자가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다 라는 권선징악을 크게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맞아, 그렇겠지?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도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작가의 필력도 훌륭하지만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책 읽기가 갈리는데, 이 책은 정말 번역이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 대단히 풍부하고 어떻게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아주 생생하게 전달된다랄까... 물론 독자들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하여튼 나는 이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인간을 깊이있게 통찰하고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진 작가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