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폭군과 폭도들에 대한 링컨의 경고를 읽으면 읽을수록,

남북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일들에 내가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과거의 그곳에서 오늘날의 이곳까지 오는 길을 더욱더 밝게 비추게 되었다. ”

-작가의 말 -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똑바로 보려면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 작가 캐런 조이 파울러가 아주 길고도 세세한 "부스" 가족의 일대기를 써야 했던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그녀가 남긴 작가의 말을 통해 조금 알 수 있었다. 미국에는 과거 링컨 대통령 암살이라는 비극이 있었고 지금도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작가는 총격범 자체보다 범인 가족에 대한 내용이 더 궁금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괴물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남은 가족들은 자책감을 어떻게 처리할까? 링컨 대통령이라는 개혁적인 인물을 암살함으로써 이후 미국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 존 윌크스 부스". 그가 어떻게 비롯되었고 그의 배경은 어땠을까를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부스"는 암살범인 존 윌크스 부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소설은 그의 아버지인 주니어스 브루터스 부스와 다른 형제들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 비극을 천재적으로 연기하여 당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아버지 주니어스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것이었다. 비록 알코올중독자에 광기 어린 삶을 살았으나 육식을 철저히 금하고 동물의 장례식을 치러 줄만큼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간적이었던 아버지 주니어스. 그는 노예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쪽이었고 흑인들의 삶에 자유가 깃들도록 많이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에게서 존 윌크스 부스가 태어날 수 있었다니, 인생이란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야기는 연극배우인 아버지를 따라서 메릴랜드 한 농장에서 삶을 시작하게 되는 어머니 메리 앤에게서 시작한다. 그녀는 첫아들 준을 낳았고 이후 줄줄이 태어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소설은 주로 둘째 로절리와 일곱째 에드윈 그리고 여덟째인 에이시아 세 사람을 화자로 선택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들에게 발언권을 공평하게 할애한 반면, 존 윌크스 부스가 화자로써 전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화자들의 대화나 글 속 묘사를 통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존 윌크스 부스의 작고 미미한 흔적만으로도 그가 가진 폭력성과 잔인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어머니 메리 앤이 기도 중 목격했던 환상은 미래에 존 윌크스 부스가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안내해 주는 강력한 복선이 되어주는 듯했다.


" 즉시 잿더미에서 화염 하나가 솟아올라 이내 팔 모양이 되더니,

마치 아기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듯이 그것이 아기를 향해 뻗어오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 화염 속에서 국가라는 단어를 읽을 수 있었으며,

그 단어 뒤에 조니의 이름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90쪽-


"부스"를 읽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란 게 있고, 마치 개인들은 승부를 앞두고 있는 체스의 장기말처럼 쓰이는 게 아닐까? 비록 아버지를 닮아서 우울에 알코올 중독을 물려받은 가족이지만 오히려 좌파에 가까울 정도인 "부스" 가족에게서 지독한 극우에 가까운 인물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 부스" 가족들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로절리나 에드윈 같은 인물들은 굉장히 섬세하고 인간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존을 사랑했으면 사랑했지 그가 악인으로 거듭날 일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존 윌크스 부스는 악과 손을 맞잡고 거리로 나와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게 되고 미국 역사를 영원히 바꾸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 책 "부스"는 노예제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던 미국 역사 한가운데로 독자들을 던져놓는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악인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일대기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 흐름이 다소 느리고 단조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격변이나 흐름과 과거 사건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더 정신 차리고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과연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누군가의 가족들은 사건 이후 어떻게 삶을 살아나갔을까? 정확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풍부하고 격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소설 "부스"를 추천합니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