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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까, 글의 말미에 언급되는 수많은 학자들과 이론에 대해 말을 해야할까, 철학, 심리학을 넘어 미디어생태학까지 만지고 있는 저자의 학문적 탁월함에 대해 이야기해야할까, 이걸 도대체 건축책이라고 봐야할까, 아니면 뭐라고 봐야할까. 

고민의 끝엔 언제나 '그냥 읽고, 느끼면 되지.' 와 같은 것들이다. 좋으면 됐지, 뭘 어렵게 하려고 했나 싶기도 하면서, 거창한 이야기 시작해봐야 아는 게 없는 내가 써낼 만한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시 책을 꺼내 들면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슨 말로 시작할까. 반복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책이 다루는 넓고 깊은 이야기에 나도 조금은 발 들이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공감'하진 못하지만 -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 - 그럼에도 내가 '공감'한 부분이 있으니,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다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여기선 깔대기도 들이댈 수 있는데, 나에 대한 것이기도 저자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우선한 것은 (왠지 흔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인문학이었다. 결국 이 책이 건축, 공간을 시작으로 해서 다양하고 깊고 공명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토대인 것이다. 아, 어쩌지. 요즘 인문학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데, 편승하는 것일까. 열심히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고, 밥 잘 먹었습니다. 배 두들기고 끝내면 그만인가?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이 책이 넘쳐나는 새 책 홍수 속에서 뽁 하고 튀어나오게 만들 재주가 없었다.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을 게 뻔해. 자괴감에 빠진 나는, 이 책 읽었다고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발을 동동 구르며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아, 자랑, 하고 싶어! 

그리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뻔하고 진부하겠지만, 다르게 이야기해보자.  그렇게 생각한 것이 '감성'이었다. 한 꼭지 한 꼭지마다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감성'이 담뿍 들었다. 건물, 건축을 그저 보고 침 튀기며 장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닌, 자신이 감동한 부분을 감동한 만큼씩 전해주는 것. '감성'이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정작 다른 것은 이게 아니었다.  

바로  

'공간'이었다. 

건축가이면서, 건축과 교수인 사람의 책이니 건축관련 책이겠지. 그간 보아온 좋은 건축이야기 책처럼 예쁘거나 아름답거나 특이하거나 오래되었거나 대단한 기술이 들어있거나 랜드마크이거나 한 건축물들을 이야기하고 있겠지. 여느 책들이 그랬던 것처럼 책이 소개한 건물이 참 좋은 곳이구나 깨닫고, 꼭 여행가야지, 꼭 둘러봐야지 다짐하고 까먹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니오, 땡, 틀렸습니다. 

저자가 뼈대를 세우고 벽을 만들고 장식을 한, 혹은 구조적으로 특이하거나 건축가의 장인정신, 창조성을 주로 이야기하게 되는 '건축'을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만질 수 있는 '공간'으로 먼저 직접 시각을 변화시키면서 이 책은 그 상태로 다른 책이 되어버렸다. 

유명한 건물, 장소 등을 알려주고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왜, 굳이 집에 갈 때 그 골목길을 통하고 싶어했었는지.  
왜 늦은 밤 버스 정류장 앞의 서점의 불빛이 유난히 화사했는지,
왜 그 커피집엔 가지 않게 되었는지,
골목골목을 돌다 길을 잃어 울며 가게에 들어가 길을 묻던 기억이 잊혀지질 않는지,
그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을 헐고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고 했을 때, 왜 그렇게 싫었는지.
집에 가는 길에 영화조명처럼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아른거리는지.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다. 

집(혹은 건물)이란 것이 멀어지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거라서, 그렇게 생겨나는 '공간'들에 경험이 들어차지 않을 수가 없어서 더욱 집중할 수 없고, 끈적하게 읽어버린 책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색다르게 자랑하고 싶었다. 나 이 책 읽었다? 하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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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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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업시간마다 공책 한 귀퉁이에 낙서를 하고나면, 꼭 지우개로 지웠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보시면 공부 안 하고 뭐 하는 거냐고 혼날까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쩌거나 낙서는 '나쁜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쉴새없이 낙서를 하던 친구가 스케치북을 사고, 만화가가 되는 걸 보았을 때. 또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나 일러스트작가들이 '낙서'를 즐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왜 그러질 못했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낙서를 잘 하지 않는, 나의 성격이 나를 만화가나 일러스트작가가 되지 못하게 한 거다. 나는 다른 걸 좋아했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낙서라고 생각하면, 드로잉말고, 소묘말고, 데셍 말고. 어쩌면 마찬가지 입장에서 munge는 드로잉을 시작했다. 어렵게 가지 말고 일단 해보자. 

많은 드로잉이 내 기를 죽였다. 좌우가 맞지 않고, 비례도 맞지 않고, 참 이상한데 오묘하게 멋있다. 젠장. 시대가 변했다. 잘 그리고 멋진 건, 르네상스 화가들처럼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 좋은 줄 알면서도 마땅한 말이 없어 결국에는 쓰고야 마는. '간지'바로 이게 있어야 한다. munge가 보여주는 드로잉은 한 마디로 간지난다. 근데 그게 쉽다고 말해서 더 간지다. 

오래전 '참 쉽죠?'로 우리 기를 죽였던 밥로스아저씨를 떠올려보면, 유화 풍경화는 정말이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등학교 마지막 학기였을 거다. 친구의 아버지께서 유화로 그림을 그리시는데 (그러니까 화가거나 아마추어 화가란 말인데도) 밥 아저씨 따라하려니까 잘 안된다고 하셨댔다. 그렇지, 그게 쉽나, 쉬우면 TV에 못 나왔지. 

마찬가지다. munge의 드로잉과 직접만든 드로잉북은 과정도 쉽고 - 쉬울 것 같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왜 쉽지 않느냐,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손품 팔기가, 꼼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재능이 이제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 꼼꼼한 마음이, 쉴새없는 손품이 바로 재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초반에 보여주는 연필 드로잉은 '할만한데?'싶었지만, 뒤로 갈수록 나와는 왠지 상관없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내심 부럽고 해보고 싶어졌다(?, 뭔말이야!) 

나도 이제 사무실 책상에 앉아 딴 짓을 하는 게 아니라 드로잉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어떻게든 책을 만들면, munge의 방명록에 찾아가 '고마웠다'는 네 글자를 남겨야겠다. 

그러니까, 일단 해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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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화가들의 반란, 민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1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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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자유다.  

책은 이 말로 시작한다. 자유롭고 극히 자유로운 그림이라 말한다. 그런 것 같다. 내키는 대로 그린 것도 같다.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는 서양화 위주라 우리 그림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지만, 그 마저도 선비들의 그림이라는 사군자가 어떤 것인지 얘기하느라 '민화'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못 들었다. 들은 건, 아마도 국사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민화에는 누가 그림을 그렸는지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의 그림, 어느어느파라고 할 수 없고 그냥 다 끌어모아서 '민화'라 불렀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때 심각한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그 때문인지 수업을 들으며 민화는 궁에 발도 못 내밀겠거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역사에 대해 시청각자료로 삼을 수 있는 건 사극 드라마 뿐이었는데, 내가 보아온 궁에는 걸린 그림이 별로 없었다. 병풍이 있어도 알 수 없는 한자로 써내린 명문들로 되어 있었던 것만 같고.  

그런데, 아닌가 보다. 한석규가 세종으로 분한 '뿌리깊은 나무(SBS)'를 보면 왕의 방에 있는 병풍은 글씨가 아닌 그림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매난국죽 이런 거 말고 '책거리병풍'이라 말하는 민화다. 이 책에서는 정조가 구상했다고 하는데, 드라마가 꼭 모든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으면 곤란하니까 그러려니 하자,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세종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런 그림들이 궁 안에 여기저기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그랬구나. 이제야 알겠다란 말이 톡 튀어 나오는 순간이다. 도대체 학교를 다니면서 뭘 듣고 배우고 기억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어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심지어 이런 그림을 김홍도 등의 이름 있는 사람들이 그렸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도대체 민화를 뭘로 알고 있었던 걸까. 백성들만 쓸 수 있었던 그림체? 역시, 자꾸 부숴나가야 한다. 고정관념이든 뭐든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다 깨부셔버려야 한다. 

그래서, 묻고 싶다. 자신의 그림에 직인을 찍지 않는 그 화가는, 화선지에 먹으로 도를 닦듯 그리지 않고 여러 색을 써서 신나게 그렸던 그 화가는, 반란이라고 생각했을까? 

역사라는 건 알수록 신기하다. 촛불 들고 광장에 나간 사람들의 삶이 제각각이듯, 우리의 조상들도 제각각의 삶을 살았을텐데 그걸 무시하고 똑같이 옷 입고 똑같이 가구를 들이고 똑같은 반찬을 먹고, 똑같은 그림을 그렸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유'한 걸로 치면, 이건 뭐 다양하기가 이를 데 없다.   

문자도'란 건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새롭고 재미있었다. 우리가 손글씨라고 흔히 쓰는 '캘리그라피'란 말이 서양식 서예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된지 얼마 안 됐는데, 우리 조상님들은 이미 캘리그라피의 선구자셨고, 이에 글자 자체를 '가지고 노는' 상태에 이르셨던 거다. 
 

색도 대상도 구도도 크기도 재료도 마음도. 이렇게 자유로운 어른들의 후손인 우리도 분명 자유한 유전이 있을텐데, 너무 눌려살아서였을까 갑자기 급 안타까워진다. 그렇지만, 유전의 흔적을 보여주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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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속의 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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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는 참 다양한 학문이 많구나. 홍차가 가장 맛있는 온도와 시간에 대해 연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색에 대한 연구는 '컬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색의 활용에 대해서는 집중되어 있을 거라 짐작했었는데, 보다 근본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차갑고 따뜻한 색, 보색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다 이런 연구 덕이 아니겠는가. 그저 감사할 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신호등의 색이 왜 초록과 빨강으로 되어 있느냐, 노랑은 사람들에게 어떤 기분을 갖게 하는가 등의 질문과 답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겠거니 했다.  이런 내용도 있었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역사와 사회상과 언어가 함께 얽혀서 색에 대한 느낌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었다. 일례로, 초록 염료를 만드는 과정에 비소가 들어가 초록 염색을 한 옷을 입거나 벽지를 발랐을 경우, 비소 중독으로 죽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사람들은 '비소'를 문제 삼지 않고, 초록색 자체를 멀리하고 불길하게 여겼다고 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도 색에 대한 이미지가 정해져 있는데. 홍안(紅顔)이란 말은 뜻그대로 보면 붉은 얼굴이지만, 이 말은 미인에게 보통 붙인다. 혈색이 좋아서 붉어졌기 때문이라는데 단순호치(丹脣皓齒 -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를 생각해 봐도 '붉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아름다움과 연결되어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아, 어떤 색이 예쁘다. 배색이 좋다는 등의 생각은 했지만, 더 깊이 들어가 왜 빨강이 금지를 나타내는지 궁금해 한 적은 있지만, 저자처럼 역사와 시대상을 반영할 생각은 하지 못 했다. 태어날 때부터 보게 되는 엄청난 색에 대한 정보가 우리의 색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킨 건 아닐까? 마치 별 것 아닌 것처럼,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마지막 부분에는 '무색'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지적이 참 흥미롭다. 무색과 색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책을 읽어보라.

책을 덮고 글을 쓰려고 이것저것 떠올리니 우리의 대화에도 색에 대한 표현이 다양했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우리에게 색色이란 단어는 '색채color'란 뜻뿐 아니라 다른 데에도 쓰였는데,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것 같진 않지만(네이버 사전으로 검색하니 없었다), 색기(色妓)란 단어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원래 이 말은 기생 중, 춤이나 노래 등을 주로 하는 '예기'에 반하여 몸을 밑천으로 하는 기생 들을 '색기'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에게 '섹시하다'는 말을 쓸 때, '색기'가 있다고 말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色氣'가 아닐까 했는데, 네이버 사전에 없으니 넘어가자. 어쩌거나 이 색色이란 신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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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철학의 풍경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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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왜'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고민을 할 겁니다. 상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월급을 받았을 때, 아침에 일어났는데 출근하기 싫을 때, 어쩌면 매순간 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왜 이런 일들을 해야 하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란 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지 등등의 질문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사진작가이면서 사진평론가인 진동선 님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사진하는 사람이 사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고민을 하고 고민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정리해내려는 마음은 당연하지 못합니다.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몇몇분에게는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머릿 속에 막연히 들어 있는 생각들을 문장으로 정리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는 우리가 주관식 문제를 풀 때 끙끙대던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알고는 있는데 써 내지 못 할 때의 그 답답함도 조금 포함되겠지요. 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꿋꿋하게 해내는 용기, 그 뚝심이 느껴졌다니까요, 이 책에서요.  

아마도 이 책은 먼저는 사진작가인 자신과 자신의 작품들인 사진들에게 주는 위로, 혹은 자찬(!)의 말일 것이고, 나아가서는 사진을 공부하고, 앞으로 사진작가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선배의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진과는 약간 무관한 길에 서 있지요. 그렇다면 저에게는 이 책이 어떤 것이냐. 네, 바로 '너는 네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나처럼 고민하고 있니?'라고 묻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절대 이 책은 우리에게 질책하지 않습니다. 고민해본 적이 없다면, 고민을 해보라고 그렇게 하면 좀 더 깊은 하루를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겠죠. 고민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이 책은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잠깐 짚어보고 싶은 것이 바로 '사진함'입니다. 사진을 담아놓는 함이 아니라, '사진을 하고 있다'는 뜻의 명사형이겠죠. 그래서 photographing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사진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각자의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쯤되면 머리가 복잡해지지요. 삶은 살아낸다.라고 말하는 것과 함께요.  

고민합시다. 사진이 주는 의미와 사진의 본질 사진의 힘에 대해 말하는 이 책과 함께, 내 삶의 의미와 내 일의 본질, 내 일이 주는 힘 또는 가치에 대해서요. 그렇게 고민하고 나면 문장으로 남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막연하게 이미지만 갖고 있어서 놓치고 있던 수 많은 디테일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우수수 떨어져 손가락 끝에서 꽃처럼 펼쳐질 겁니다. 글이란 그런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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