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소유에 대해서는 담백한 편이다 라고 늘 생각한다.
딱히 소유욕을 많이 가진 편도 아니고, 그런 소유욕을 일일히 충족시킬만큼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인게 보다 솔직한 이유이다. 소유욕에 무슨 부지런함을 이야기하냐 싶기도 하지만 내 기준에서 보자면 쇼유욕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꽤나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들다는게 내 지론이다. 오랜 관찰의 결과이기도 하고.특히나 신상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그 신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소유욕을 불태우는 분야가 하나 있는데 짐작하겠지만 책이다. 언젠가부터 조금씩은 책을 읽는다에서 책을 소유한다로 책에 대한 개념이 조금은 변해버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대학때는 여력이 없었고 순수하게 읽는 기쁨을 추구하던 시절이라 대학 도서관에서 꽤나 행복해했었다. 그런데 회사에 다니면서 조금씩 여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생기게 된 책에 대한 소유욕을 뭣한 말로 장난이 아니다.


과연 책에서 정보수집과 신상에 대한 애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나만 그런건 아니라고 변명해본다) 오늘도 어제 야밤에 12시가 넘어 알라딘을 돌아 다니다가 하루키와 주제사라마구의 신간이 나왔다는걸 알았다.
하루키는 워낙에 에세이가 많고 다양한 출판사에서 출간되기 때문에 의심이 반이지만 나는 문학사상사에서 출간되는 책으로 컬렉션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장바구니 행.
주제사라마구의
신간은 본래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었던 책인데 이번에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이 되서 잽싸게 장바구니 행. 
카포티의 신간은 나온지가 좀 되었지만 주문을 못했다가 이번에 같이 주문. 정말 표지가 멋지다. +_+


아무튼, 책에 대한 소유욕이 그리 좋지만은 절대 않다는게 결론이다.

내가 담배를 잘 태우지 않는 이유도 담배를 태우게 되면 중독이 될 것이고 그러면 항상 담배를 소유해야 한다는데서 발행하는 구속이 싫은건데, 생각하면 이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소유가 낳는 구속은 필연적인 것이고 구속이 있기 때문에 소유'욕'이라는 욕구가 나온 것일터니이. 감내해야겠지. 결국 욕구과 구속 사이에서 번뇌해야 한다는 슬픈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 슬픈 현실이다.


+글을 써놓고 보니 완전 변명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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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책들.
진중권의 이매진
트루먼 카포티의 차가운 벽
제드 레벤펠드의 살인의 해석 

진중권의 이매진은 31일에 알라딘에서 신간이 나오걸 보고는 주문해야한다며 부들거렸다.
재미있는건 당일배송이라고 쓰여있는데 9시부터 주문은 한 10분 정도 안 받아서 대략 난감. 
"배송은 당일에 해주겠는데 주문은 안 받겠다는거냐?-_-+"라며 잠시 분노를 표출.
다행이 31일에 받았다. +_+

카포티의 차가운 벽은 조만간 읽어보려고 하는데 <콜드 인 블러드>를 제
대로 읽지 못해서 이래저래 걱정이다. 읽을 수 있으려나...

살인의 해석은 회사 연말 바자회에 등장한 책인데 누군가 사들여서 돌고 있는 책이다.
어서어서 읽어봐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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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Episode 1. 영화감독 박찬욱 http://book.naver.com/bookshelf/story.nhn?startmonth=200808
Episode 2. 건축가 승효상   http://book.naver.com/bookshelf/story.nhn?startmonth=200809
Episode 3. 대중음악가 이적  http://book.naver.com/bookshelf/story.nhn?startmonth=200810
Episode 4. 클래식음악가 장한나   http://book.naver.com/bookshelf/story.nhn?startmonth=200811
Episode 5. 사진작가 배병우 http://book.naver.com/bookshelf/story.nhn?startmonth=200812
Episode 6. 소설가 신경숙 http://book.naver.com/bookshelf/story.nhn?startmonth=200901

가장 기대해 마지 않는 작가 신경숙의 서재.
어떤 전시회에서는 그녀의 작업실 모형을 전시하기도 했었는데 서재라니 더욱 각별하다.
책이 우선이 되는 집이라니 좋을 법 하지만 일상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기도 했다는 말에
약간은 움찔하게 되는 그런 집이다. 나는 언제저런 서재를 가져보나 싶다가도 저런 서재를
가지면 정말 책에 매몰되겠다 싶기도 하고 어떻게 관리하나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추천서적을 보면 과연 작가구나 싶은 것이 주제도 방대하고 읽는 책의 깊이도 있고
'과연...'이라는 말이 나온다랄까나. 정말 과연이다 싶도록 다양한 분야 다양한 깊이의 책을 읽고 계신다.
그리고보면 작가란 글을 토해내는 만큼 글을 읽어야 하는 어려운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인상적인 책은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가장 읽어봐야 하는 책은 레피-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올해에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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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글쓰기]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난 글쓰기를 좋아한다. 어떤 글이든 가리지 않고, 그냥 하얀 종이에 쓰는 글이, 혹은 하얀 화면 위에 또각또각 자판을 두들기면서 쓰는 일이 난 꽤 즐겁다. 사실 난 일기를 쓰고 있다. 어린시절에는 숙제라는 압박감 때문인지 꽤나 꼬박꼬박 썼던거 같은데 지금은 내키는대로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오르면 일기는 쓰곤 한다. 일기는 쓰는 순간부터 누군가에게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써놓고 보관을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때로는 덜덜 떨기도 하지만 일기는 쓸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를 읽으면서 또 다시 일기가 쓰고 싶어졌다.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는 다분히 글의 자기 표출에 주안점을 두고 하는 글쓰기를 강조한 책이다. 글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표현하게 하는 그래서 좀 더 나에게 가까워지고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그리고 그들에게서 용서와 감사를 배우는 그런 글쓰기 말이다. 사실 한국문단에서는 여성작가들이 이러한 치유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항상 생각하지만 신경숙과 같은 작가들은 글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와 만나고, 자신의 과거를 풀어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 때로는 그냥 주저 앉는 듯 하지만 - 그런 인상을 많이 받는다. 여성 작가들에게서 많인 나타나는 이러한 치유하는 글쓰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11주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박미라씨는 설명하고 있다. 간간히 그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등장했던 글을 보여주면서.<치유하는 글쓰기>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소개되고 있다. 가장 막막하게는 어떤 소재로 무엇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단어로라도 써보라는 조언이 인상적이다. 순서에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써보라는 그의 말과 실제 그의 프로그램에서 글을 쓴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서 이런 글도 내 치유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글이 날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실제로 나 자신도 일기를 쓰면서 많은 위안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매일매일 쓰는 일기가 아닌 할 말이 목까지 차오르면 몇장이고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일기가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안정이 된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고민할 것도 생각해야 할 것도 너무나 많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글을 쓰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글쓰기의 궁극적인 효과를 선전하지도 않는다. 그저 넌지시 보여줄 뿐이다. '이런 글 써보는건 어때'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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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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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안없는 좌파를 싫어했다. 항상 대안없이 그저 번드르르한 비판만을 늘어놓는 그들을 난 항상 싫어했다. 어쩌면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경멸했는지도 모른다. 홍세화씨의 말을 읽으면서도 '말로는 백번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를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들의 글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세상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나는 참 많이도 탓했었다. 그런 한탄을 하며 항상 그들의 책을 읽었더란다. 사실 이번에도 그런 책이 될뻔했다.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는. 


<탐욕의 시대>는 정확하게 원제가 L'empire De La Honte. 불어가 원제인데 honte는 disgrace, shame로 영어로 번역이 되는 듯 하니 굳이 번역하자면 불명예의 제국(?) 정도 쯤이 적당하지 싶다. 그걸 탐욕의 시대라고 번역을 했는데, 의견 수긍이 가면서도 또 물음표를 띄우게 하는 번역이다. 전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장 지글러는 기아라는 화두를 어느 누구보다 뼈아프게 던졌고, 이 책은 그 책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탐욕의 시대>에서는 장 지글러가 UN에서 일하면서 전 세계 아이들과 사람들이 어떻게 기아에 허덕이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궁극적으로 세계적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그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고발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이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소위 선진국들과 그 선진국들이 만든 기구에서 만들어진 부채라는 점을 지적한다. 다양한 기구와 세계 다양한 은행에서 다양한 이유에 의해 - 내전을 지룰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혹은 사리 사욕을 위해 등등 - 차입을 하고 그 국가 채무에 의해 그들의 기아와 가난은 세습되고 있다. 부채에 대한 이자로 해마다 GDP의 10%가 넘는 금액이 해외로 송금되고 있고,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배고픔에 죽어가거나, 다음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배고픔에 떨고 있다. 그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이 책의 서문은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다'라는 이름으로 글이 시작한다. 결국 이 책 전체를 탈탈 털어서 남는 단 하나의 문장은 저 문장이다.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다' 부채를 탕감하지 않고는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에 만연한 기아를 해결할 수 없고, 그들을 하루 1달러 이하의 극도로 빈곤한 삶에서 구원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기아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아게 할 수 잇는 구체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이 오는 원천이 '연대'이다. 몽골 사람들이 눈이 쏟아지고, 어느 곳에서도 원조를 받지 못한채로 살아가는 힘은 그들이 서로 연대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한 때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GDP를 가지고 생활해야하는 빈국이었다. 한국도 보리고개를 걱정해야했고, 입을 덜을 덜기 위해 철이 들기도 전애 딸을 식모살이 보내야 했던 국가였다. 그런 한국은 한국인이 만들기도 했지만 그 토대는 우리도 외국에서 빌려온 차관과 많은 민간 기관들의 도움 이 주요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차관을 모두 상환했음을 기쁘게 이야기하짐나 그건 지극히 놀라운 결과였다. 전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난 <탐욕의 시대>를 읽으면서 엄청난 부채를 강요하는 선진국에 분노하고, 국제 기구에 분노하고, 그들의 삶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분노했다. 어느 광고에서처럼 내가 그들의 기아를 끝낼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2009년에는 굶주리는 저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흔한 광고말로 내 돈 만원이며 그 아이들은 한달을 영양가 잇는 우유를 마실 수도 있고, 어쩌면 공부도 할 수 있을지 모르고, 어쩌면 조금은 행복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얇팍한 내 양심에 기대어 말하지만 나도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다'라는 말고 믿고 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설득력 있고 호소력 있는 글이 무엇보다 가장 좋은 장점이지만, 전 세계를  무대로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분석과 접근이 아주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지만 특히 10대 후반과 20대 중반까지 가장 가슴이 움직이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앙리 르페브르는 1970년대 중반에 그의 유명한 저서 <헤겔, 마르크스,니체 또는 그림자의 왕국>을 발표했다. 책이 출간되었을 무렵 라디오의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저는 선생님 기분을 상하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선생님을 가리켜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몽상가라고 하더군요." 그러자 르페브르는 답변했다. "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영광이군요. 나는 그렇게 평가되기를 바랍니다. 자기 눈앞에 펼쳐진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실용주의만 고집하며 일단 손에 쥔 것만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은 절대로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들,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 있을 세계를 보는 사람들만이 실제론자들입니다. 이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꾸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석적인 이성으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도래할 것, 우리가 원하는 것,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은 내면의 눈, 즉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유토피아를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pp.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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