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별 일이 다 생기나부다.   




별일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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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1-24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축하해요^^
저 이 책 주문해뒀는데요...

하루 2009-01-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정말 읽는 재미가 솔솔하답니다. 하하하 :)
+감사합니다. 명절 선물인가봐요 :)
 


난 지금까지 1년 몇 개월 정도 회사를 다녔지만 회사에서 나온 명함을 사실 한 통도 다 써보지 못했다.

회사의 특성상 외부 사람과 자주 만날 일이 있지 않은지라, 사실 명함을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보니 내 명함은 거의 가족, 친척, 친구들과 가끔 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군)

사실 명함과 관련해서 재미있는건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 꼭 쓸 일이 없다는 사실. 지갑에 들고 다니기는 하지만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 막상 쓸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꼭 그러다가 지갑정리를 한다거나 해서 
명함이 마침 딱 빈 날 아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만나거나 혹은 기타 등등으로 인해 사용할 일이 생긴다는거다. 이거 참 난감하다.


사실 몇 일 전에도 점심 시간에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서 들어오는 길에 누가 툭 치길래 돌아보니 대학 때 같이 스터디를 했던 사람이다.
반가운 마음에 잠깐 인사를 하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점심 시간이니 시간은 없고 해서 명함 이야기가 나왔는데, 하필 이날도 명함이 없었던거다.
덕분에 난 그분의 명함을 받아서 오고 내가 연락을 하기로 했다. 

 
사실 명함을 지갑에 넣어다니는걸 꽤 싫어한다. 명함은 명함지갑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고전을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명함을 카드 전표와 함께 지갑에 넣어서 다니는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다.
어쩌면 그래서 지갑 속에 명함이 꼭 필요할 때면 없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집에 들어온 이 시간에 텐바이텐에 잠시 들어가, 명합지갑과 카드지갑에는 어떤게 있나 유심히 보고 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사실 명함지갑같은거 없어도 전혀 문제 없는데.
명함지갑이 없어도 카드지갑이 없어도 사실 살아가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걸.
어쩌면 우리는 어떤 물건을 '필요'에 의해 구입하고 소비하는게 아니라 '욕구'에 의해 구입하고 소비하는게 아닐까.
필요와 욕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외부에서 강제되는냐이다. 요컨데, 필요는 외부에서 강제되지 않지만 욕구는 그렇다는 것.
요컨데,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때로 욕구는 강요된다고 난 생각한다.
개인에 따라 필요와 욕구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현대는 욕구를 강요당하는 시대이다. 좋은 싫든.


결론은  명합지갑과 카드지갑은 굳이 없어도 문제없을 것 같다는 것.
하지만 돌아서면 난 또 욕구에 굴복할지도 모른다는 것.
왜냐하면 난 지금도 인터넷 한 창은 텐바이텐에 할애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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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국 <쌍화점>은 세 명의 사랑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가지 궁금한 점, 홍림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는 정말 단 한번도 그를 연모한 적이 없을까.
그에게 남은 마지막 감정은 그에게 칼을 겨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까.

단 인간이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 사람도 사랑할 수 있고,
저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게 아닌가..한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의 이런 면을, 저 사람의 저런 면을
사랑할 수도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곰곰히 생각났다. 동시에 다른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찌해야할까.
결국 난 홍림이 그와 그녀 모두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바이섹슈얼이었구나... OTL)

# 2. 왕의 노래와 왕비의 노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흥얼거리게 될 듯 하다.
근데, 주진모는 직접 본인이 노래를 부른 것인지 그것이 정말 참으로 아주 궁금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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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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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는 항상 읽는 즐거움을 톡톡 던져준다. 하루키의 글은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게 읽으면서도 간간히 '아 그런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가 글에서 언급하는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맥주처럼, 그의 글은 청량감이 드는 여름에 마시는 시원만 맥주 같다. 그의 글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에세이를 써내려 가기 때문에 - 때로는 이게 소재인가 싶을 정도로-  읽고 있으면 즐겁지만 한번쯤은 정리된 글도 읽어보고 싶기는 하다. 
 
 이런 소망에 부합하듯이 이번에는 하루키가 내놓은 자신의 인생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연결된 글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레이먼트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을 차용한 제목이라고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그야말로 어쩐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부분이랄까)

 하루키의 소설을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고 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많다. 그의 글이 가볍기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 특유의 다소 허무주의적인 감성이 20대와 맞기 때문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생각하는건 그의 소설은 다른 세대들이 공감할 수 없을지라도 에세이만큼의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점이다. 이런 글은 그 특유의 어투가 상당히 큰 몫을 차지한다. 사실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소재가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하루키 특유의 문체이다. 어떤 에세이를 읽어도 일관성있게 느껴지는 읽고 있으면 '흠, 하루키로군'이라고 생각되는 그의 문체말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 점이 십분 발휘된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의 특유의 가겹지만 날아갈 정도는 아닌, 그 특유의 어투로 글이 가볍게 진행되어 읽는데 부담이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만 생각하는건 곤란하다. 오히려 난 하루키의 글에서 곰곰히 곱씹을 수 있는 구절은 에세이에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처럼

   
  그 중에 한 사람은 형 (그 사람도 마라토너) 으로부터 배운 문구를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머리속에서 되뇐다고 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eing is optional 이라는게 그의 만트라였다. 정확한 뉘앙스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극히 간단하게 번역하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가 된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pp.8-9)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 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pp.18-19)
 
   


1982년 처음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마라톤 42.195Km(사실 진짜 42.195km는 아니었다고 말하지만)을 완주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마라톤에서 철인3종경기로 약간의 외도(?)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그의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읽고 있노라면 한없이 즐거워진다. 그의 인생에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일목요연하게 들을 수 있으니 좋고, 사실 무엇보다 너무나 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라는 점이 또 좋다.
 

 하지만 정말 좋은 점은 달리기와 관련된 그의 이야기들을 일고 있으면 '결국에는 살아가는 이야기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쉽게 하지 않는 마라톤을 - 정확하게는 달리기를- 그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듣고 있으면 그렇군 이라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니 말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달리기를 한다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을 위해서 달리고 있을 뿐이라는, 그리고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그의 이야기가 살아가는 하나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운 이유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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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1-28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다시..

하루 2009-01-2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부끄럽습니다. :)

김현진 2009-01-29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의 고갱이만을 쏙쏙 뽑아내서 리뷰를 쓰셨네요
이미 읽었지만 다시 읽고픈 책이네요.

하루 2009-01-30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갱이만 :)
언제고 하루키 에세이는 한번씩 다시 읽고싶어지는걸요. :)
 

   
 

그 중에 한 사람은 형 (그 사람도 마라토너) 으로부터 배운 문구를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머리속에서 되뇐다고 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eing is optional 이라는게 그의 만트라였다. 정확한 뉘앙스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극히 간단하게 번역하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가 된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pp.8-9)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 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p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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