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강의 2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만난 삼국지의 진실, 그 마지막 이야기!
이중텐 지음, 홍순도 옮김 / 김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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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사소설중 하나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평역한 삼국지이다. 얼마나 베스트셀러인고 하면 유명작가(이문열, 정비석, 황석영, 장지영등)가 평역을 해서 대한민국 국민중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역사는 몰라도 위,촉,오에 대해선 줄줄 꾀고 있을 정도이다.

-. 그럼 왜 이리 소설삼국지의 위세가 대단한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논픽션과 적절한 픽션이 가미된 인간세상사 이야기와 권모술수, 그리고 전쟁이야기등을 완변하게 믹싱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떼오놓지 못하게 한다.

-. 이중텐의 삼국지 강의는 그간 우리가 소설삼국지를 통하여 잘못알려져온 역사적 진실에 대하여 사실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가 흔희 알고 있는 조조는 간웅으로 평가하고, 진정한 영웅은 유비로 평가하는 손권의 경우 평가자체가 조조나 유비에 비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 역사적 인물인 조조는 유비, 손권에 비할수 없는 대단한 인물이다. 한나라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자신은 결국 칭제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위나라를 여는 단초를 마련한 인물이다. 인재풀에서도 순유,곽가등 비롯해 비록 유비의 제갈량에는 못미치지만 양적으론 삼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풀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역으로 그 만큼 혼란시대의 인재들의 인정을 받았다고 봐야할 것이다. 적벽대전에서 패해 천하통일의 꿈을 자식대로 넘겨주지만, 조조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 오나라의 손권역시 걸세출의 인물이다. 조조가 황관의 자식이라는 컴플렉스가 있었다면 손권은 진정한 엘리트 집안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성장한 군주이다. 주유,육손,노숙등의 강남 지식층과 외부 지식층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삼국중 가장 늦게 칭제한 군주이다. 위나 촉과의 적절한 외교로 강토를 보존하는등 외교술 또한 뛰어난 군주로 평가된다. 한마디로 현실적인 군주였다.

-. 유비만큼 평가가 다른 인물 또한 드물다. 자애스러운 군주, 정이 많은 군주, 인재를 알아보는 혜안을 가진 군주, 유약한 군주, 결단력 없는 군주등 다양하다. 유비는 삼국중에서 중앙정권에 연이 있는 조조나, 원소에 비해 기반이 전혀 없었고, 대를 이어온 강호의 재왕인 손책, 손권의 바람막이도 전혀 없는 한마디로 말해 매손에서 창업한 군주형이다. 그러다보니 처음 출발한 관우,장비등의 창업멤버의 기질에서 볼수 있듯이 식객에 불과했다. 다만 유비만큼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도 없다 불세출의 영웅 제갈양을 만나면서 유비는 구멍가게 주인에서 일약 삼국을 통일할 영웅으로 떠오른다. 역시 유비또한 삼국의 통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지만..

-. 아무리 해도 삼국지의 최대 중심인물은 제갈량이다. 일개 서생에서 촉의 재상으로 선주인 유비의 유명을 받아 삼국을 통일할려고 한 진정한 정치인이자 경세가였다. 제갈량이 오래 살았더라면 분명히 삼국은 촉으로 재편되었을거리라는 게 중론이다. 그만큼 제갈량은 시류를 읽고 판단하는 능력이 다른 영웅들에 비해서 뛰어났던 편이다. 거기에다 제갈량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목표가 있었다. 조조나, 손권은 새로운 나라의 출현과 제국을 원했다. 유비또한 한나라의 황실의 종친자격으로 한나라계승을 외쳤지만 속마음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한나라계승을 정치적목표로 삼은 자는 제갈량과 위의 순욱밖엔 없다. 순욱은 그래서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제갈량은 유일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비록 성공하진 못하였지만....

-. 조조, 유비, 손권, 제갈량 이들 모두 삼국통일은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다. 이게 아마도 역사의 큰 강앞에선 어느 누구도 거를수 없는 운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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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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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주중에서 가장 병약한 군주의 대명사로 떠오르는 인물이 선조이다. 그래서 그런지 선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주 비관적이다 아마도 그건 임진,정유재란 왜와의 7년전쟁을 거치면선 보여준 군왕으로서의 평가의 재위 40년이라는 적지않는 기간을 통채를 집어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선조는 여러가지 진기록을 남긴 군주이다. 우선 7년전쟁을 통하여 전국을 초토화시킨 군주, 그리고 재위기간중 잦은 선위파동, 그리고 최초의 정비의 소생이 아닌 후궁(중종과 창빈안씨)의 손자로 재위에 오른 군주이다. 그동안 조선이라라는 나라는 장자,차자를 떠나 정비소생이 왕위에 올랐다. 폭군 연산군 또한 성종의 적장자였던 점을 보면...

이렇듯 태생적으로 선조는 정통성문제에 있어서 죽는날까지 고민했다. 오죽했으면 나이 52세에 왕비를 새로 간택하여 대군을(영창대군)을 생산하여 왕위계승을 할려고까지 했을까 물론 이점이 또다른 피의 역사를 불러일으키지만, 그만큼 선조의 의식 깊이 서자출신이라는 강박관념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점은 권력장악에도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린다. 이후 본격인 당쟁의 역사가 시작된다(동/서 대결, 남/북 대결, 대/소북 대결)

이 책은 선조시대와 선조시대를 정확히 이해할수 있는 바탕이 되는 연산군부터 명종시대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당쟁의 단초가 된 무오/갑자/기묘/을사 사화를 통하여 이미 돌이킬수 없는 왕권의 추락을 전제조건으로 선조시대의 출발자체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한 신하들의 의지로 등극한 왕이라느점 그리고 신하들의 구미에 맞게 성장했다는 점 물론 성종또한 신하들이 선택하고 신하들이 가르킨 군주였지만 성종은 친정하면서 철저히 왕권강화에 나섰다는 차이는 있다

우리가 역사상 가장 치욕적으로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통쾌하게 생각하는 7년전쟁과 정여립의 난을 빼고는 선조시대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 사화도 없었고, 평온한 시대였다. 적어도 7년전쟁이 있기까지는 선조또한 당쟁싸움의 한가운데서 철저히 왕권을 유지하면서 동,서인을 저울질 하면서 두루두루 인재를 등용했다. 이 점은 조선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들이 이 시대를 풍미했다는 점이 말해주고 있다. 이황, 이이, 유성룡, 이덕형, 이황복, 이연경, 정철, 정탁, 이산해, 윤두수,근수형제, 기대승, 성혼,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물을 배출했고, 왕 사후에 추존되는 공식명칭인 존호를 보더라도 무려 38자에 이르는 존호를 가지고 있는 임금이다. 실례로 세종대왕은 26자이다. 그리고 재위기간중에 종계변무를 바로잡았다는 점(조선시대 역대 군주의 가장 희망사항으로 중국역사서에 이성계가 공민왕의 아들이라고 잘못기재된 점을 누누히 고치려고 하였지만 뜻대로 되지않은점) 이런점을 보았을때 선조가 무능하고 나라 말아먹은 군주라는 비판은 7년전쟁을 거치면서 보여준 행태가 자신의 재위기간 전부를 덮어버렸기 때문일것이다. 물론 그점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받아야 하겠지만 다른 이면의 평가 또한 적절하게 해야하는 것이 후세인들이 역사를 바로보는 관점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선조는 불운한 군주였다. 당초 즉위 당시의 신분으로 인한 번민과 그에 대한 집착으로 세자 광해군과의 불화 결국 어린아들 영창대군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인목왕후의 폐모사태까지 가는 참담한 결과를 낳게 한다. 또한 7년전쟁을 통한 리더십이 결여된 지도자의 모습으로 인하여 사실상 군주로써의 권위가 없어진 상태에서 말년을 지내게 된다. 하지만 역사는 한시점만 보는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다음 표현이 인상적인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조선호'라는 낡고 오래된 배의 키를 잡고 있던 사람은 선조다. 애당초 자신이 키를 잡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배에 관한 항해에 관한 지식이라고는 한줌도 되지 않았고 바다에 나가본 적도 없었다. 갑자기 노련한 항해사들이 와서 열여섯 살 어린 아이를 보고 선장을 맡아줄 것을 강권했다. 사양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선장직을 수락한 후에도 모든 것은 향해사들이 알아서 했고 자신은 뒤늦게 항해술에 관한 수업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이 난파 조짐을 보이던 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씩이나마 항해를 계속해 나갔다. 마흔 살을 넘어 조금씩 항해에 흥미를 가지려 할 무렵에 태산 같은 파도가 밀려오더니 7년간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런 상황은 난생 처음이었따. 그동안 익힌 항해술로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발 다른 사람이 키를 맡아달라고 수도 없이 호소했지만 아무나 선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자리를 지켜줄 것을 강요했다. 폭풍우가 잦아들었을 때 배는 만신창이가 됐지만 난파는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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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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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실학의 완성자...비운의 대학자...정조대왕...

다산은 여러면에서 많은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다. 학문의 깊이, 저술활동, 그리고 과학적 사고(수원성 축조등), 서학에 대한 신념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몇안되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현재를 살려면 자기가 맡은 한분야에 대해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든데 다산은 여러방면에서 그것도 차원이 다른 학문 이나 실용에서 탁월한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럼 과연 다산은 남들보다 탁월한 능력의 소요자여서 이런 활동이 가능한걸까? 라는 의문이 간다 물론 다산은 범인과는 다른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범인에 비해서 엄청난 자기 성찰과 노력을 경주하여 자신의 학문세계를 완성한 인물이다. 이책을 보면 다신이 그런 업적을 완성할수있엇던 작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수있다

   
 

 총류방통법 - 어린아이들이 그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검을 현자를 칭칭 감는다는 '감을' 전자의 뜻으로 알고, '누르' 황자를 꽉 누른다는 '누를'압자로 풀이한다. 이것은 그 아이들이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다. 능히 종류별로 접촉해서 곁으로 못하기 때문이다

 
   
이책에는 50자기의 다산만의 학문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잇다. 물론 50가지를 다 습득하여 실행한다면 더할 나위가 있겠느냐만 이책을 통하여 경영,공부,독서등에 다양하게 유용할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시한 다산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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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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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케이노/단테스피크등 화산폭발을 소재로한 재난영화가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엇다. 지구가 형성되고 현시대까지 화산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잇고 간혹 외신을 통해서 엄청나 유력을 발휘하는 자연재해이자 현대 발달한 과학수준으로도 막지 못하는 자연활동이다

"폼페이"는 역사적으로 로마시대 항구도시인 폼페이에서 발생한 화산폭발을 소재로한 역사소설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있듯이 폼페이 화산활동은 도시전체를 한순간에 집어삼키고 시간이 정지된듯이 발굴당시에도 당신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발견되었다. 공중목욕탕에서 죽어 화석이 된 사체들, 거리, 그리고 집안등....

폼페이는 로마시대의 수도기사라는 직업(아쿠아리우스)를 통해 로마시대 상수도관리가 얼마나 탁월하고 과학적으로 운영되엇는지도 짐작케한다. 실존인물인 플라니우스의 박물기를 통하여 소개된 베수비우스산의 화산폭발 묘사가 압권인 작품이다.

화산폭발 이틀전부터 전개되는 스토리는 주인공인 수도기사를 통한 그 시대 로마사회의 생활양식과 로마제국의 화려하고 웅장한 번영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상세한 묘사 및 로멘스 또한 이 책을 금새읽어나가게 하는 장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화산폭발에 대한 묘사가 정말 실감난다고 해야하겠다. 역사적인 현장에 있지 못하여지만 책을 읽는동안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 한장면 그대로야 할것 같다.

그리고 역시 위대한 자연앞에 인간의 오만함이 한줌의 흙밖엔 안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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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쏙쏙! 선조들의 공부법 소중한 우리 것 재미난 우리 얘기 25
우리누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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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늘 오늘 처음으로 독후감을 써 보기 시작했는데 벌써 마음이 떨린다.우리가 한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세종대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세종대왕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한글을 쓸 수 없고 영영 한자만 써야 했을 것이다. 나도 세종대왕에게 본받을 점이 있다. 세종대왕은 아플 때 도 잠시도 책을 손에 때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좀 안 좋아한다. 엄마 아빠 들도 책을 자주 자주 읽는다. 나도 책을 읽는 습관을 가져 볼 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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