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한 삼위일체 - IMF, 세계은행, WTO는 세계를 어떻게 망쳐왔나
리처드 피트 지음, 박형준.황성원 옮김 / 삼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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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과격한(?) 내용임을 암시하는 불경한 삼위일체의 저자역시 미국내 소수파의 경제학관련 학자이다. 몸담고 있는 대학또한 주류경제경영관련 대학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전세계가 특히 미국이 주도적으로 외치고고 있는 세계화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은바 있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는 더욱더 뼈저리게 와닿는 내용인것 같다.

현재 경제사상의 주류는 미국과 서방선진국들의 경제사사조인(언제나 그들의 경제사조가 세상을 끌어갔지만) 신자유주의사상에 입각하여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게 현실이다. 신자유주의란 200여년전 아담스미스시대의 자유방임주의사상을 재탕하여 현재 선진국들의 입맛메 적적하게 믹스한 사조라고 보면 거의 틀린점이 없을 것이다. 단지 대의명분은 세계화를 통하여 각국의 복지를 향상하고 인류의 삶의 품격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행동대장격인 IMF, IBRD, WTO(GATT)라는 세기구를 내세워 세계화에 압장서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당초의 설립목적인 전후세계재건을 위한다는 취지에서 확대하여 주변국가(저개발국)의 국제수지유동성에 대한 긴급자원지원으로 회원국들이 출자한 자본에서 차관형식으로 정상화될까지 지원해주는 아주 유익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도 한때 IMF의 긴급자금을 차용해서 기사회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차관조건이 단순한 국제수지(특히 경상수지)정상화에 국한하는것이 아니라 국가전반적인 개혁의지(규제철폐 특히 금융과 외국인의 투자규제)와 그에 상응하는 부대조건을 내걸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것이다. 국제적합의 기구가 한 국가의 정치, 사회,문화, 경제에 일종의 내정간섭이란 차원도 있을 만큼 폭넓게 간여하여 사실상 무장해체의 시점까지 끌고 간다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구조조정을 통하여 차관을 상환한 나라가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삶의 질이 향상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우리의 현실만 봐도 그 답은 미지수임에 틀림없다. 세계은행 또한 역시 통화기금과 보조를 맞추어서 장기차관을 똑같은 식으로 실행하면서 이러한 우려를 낳고 있다.

WTO 의 전신은 GATT의 경우 다자간 내지는 쌍방의 무역과 관세에 대한 일반협정을 출발하여 국제수지중 경상수지에만 국한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완화로 무역자유화를 통하여 각국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회원국의 증가와 특히 미국의 입김이 강대해짐에 따라 우리가 알고 있는 각종라운드(도쿄,케네디,우르과이등)을 거치면서 서비스 부분과 지적재산권 및 노동에 관한 협정까지 진행하여 WTO로 재출범하게 된다. 그럼 WTO의 주장은 과연 어떤 것인가? 두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절대적 무역자유화인것이다 그것도 단계적 유예기간을 주지만 선진국이나 저개발국이나 어떠한 규제없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거래할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좋은 소리다. 리카아도의 절대비교우위에 따라 교역을 통해서 이익을 취할 수 만 있다면 누가 마다할 것인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인것이다. 저개발국에게 유예기간을 준다고 하지만(각종 규제철폐 및 보조금 폐지등) 현실적으로 프로선수와 아마추어간의 게임으로 밖엔 받아들여지질 않는게 현실인것이다.

미국을 왕초로 하는 선진마피아들의 세계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세계화인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해봐야 할것이다. 지금도 세계인구의 40%가 하루에 1달러가 안돼는 금액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극빈국들이 허다한 현실에서 무조건적인 개방이란 결국 그 1달러마져 가져가겠다는 말로 밖에는 안들리니 말이다. 세계화란 물질적 진보도 중요하지만 인류애적인 진보가 밑바탕에 깔려야지 진정한 세계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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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기원 - 최첨단 경제학과 과학이론이 밝혀낸 부의 원천과 진화
에릭 바인하커 지음, 안현실.정성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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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경제, 경영쪽에 관심이나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경우엔 상당히 지루고하고 어려운 책이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사의 기초적인 경제원리에 대한(저자는 전통경제학이라 표현) 이해가 우선시 되는 책이다. 그리고 경영학원론정도의 이해력이 있어야지 보다 쉽게 접근가능한 책이라고 본다.

솔직히 그런한 바탕이 없는 독자에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는 책이다. 그러지만 부의 기원에 대한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 그리고 부와 경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저자의 의도는 높이 평가될 만하고 수긍이 가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것 같다.

우선 저자의 시각은 전통경제학의 신고전주의나 신자유주의 그리고 케인스주의, 효용학자, 개인선호이론, 화폐주의자, 최근의 이슈로 등장한 행동경제학 중 어느 하나의 이론에도 속하지 않는 전형적인 독립군 타입이다. 저자의 주장하는 복합경제학 내지는 진화경제학이란 측면은 간단히 말해서 이때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경제학적 이론과 경영학에 대한 지식에 일대 전환점을 제시해주는것에는 틀림없는 사실이고, 경제학도나 경영학도라면 누구나 한번은 모든 가정이 꼭 그렇게 되야하는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을뻔한 사실들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변을 내려주는것 같다

인류의 진화 그러니까 생명체의 진화과정과 부의 진화 과정은 놀랍게되 비슷한점이 많다는 것이다. 현생인류가 탄생하기까지의 역사가 지구생성과정에서 0.1%의 시간적인 볼륨을 갔고 있다면 역시 부의 진화또한 1750년대 산업혁명을 출발점으로 하여 불과 200년안팍의 0.1%정도의 짧은시간에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이점에 대한 해석으로 기존 경제학은 자유시장 원리에 입각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설명을 해왔다(물론 몇가지의 가정을 전제하였지만)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 100%는 아니지만 수긍해왔고, 그나마 세계대전을 통하여면서 세계 대공항이란 유래없는 위기를 맞아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필요성을 설파하는 옥스퍼드의 케인스학파에 의해 슬기롭게 위기를 한번 넘겨왔다. 그리고 지금의 세상은 이런한 경제학 논리로써는 모두다 설명할수 없는 경제변화가 너무나 빨리 그리고 엄청난 양으로 실시간에 전해지고 있는게 실정이다.

현재 벌어지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기존 경제학의 뿌리로 설명하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기존 경제학의 학설이나 이론들이 틀렸다고 부인하기도 힘든점이 있다. 그러면 그에 대한 정확한 대안적인 학설내지는 이론들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 분명하게 밝히는 점이 있다면 저자의 주장대로 복합경제학적 설명이나 진화경제학적 설명이 그 대안을 될수 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학설 내지는 이론은 아니라고한다. 그 이유는 지금 책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경제활동은 시시각각 예측할 수 없는 럭비공처럼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이나 부의 축적등은 인류탄생의 초기부터 생겨난것이다. 오히려 언어나 문자보다 먼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합리적인 사회구조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세계)안에는 역사, 문화, 경제등이 모두 포함되어있다. 각 사회마다 서로 다른 행동방식이 있는것이고, 인간이니 때문에 그 방식에 대해서 존중하는것이다. 물론 요즈음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약소국의 경제적 종속이 심화되고있는 점도 있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그러한 것이다.

기존경제학에서 약간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인간의 행동양식, 문화(기업문화포함), 인간의 만든 사회구조에 대해서 복잡경제학에서는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결국 경제활동은 인간의 사회생활 영위에 필수적인 요건이므로 인간에 관계된 그러한 제도 내지는 규범을 등한시 하거나 작은 부분으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역시 생물학적으로 인류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왔듯이 그리고 앞으로도 중단없이 계속해야 하듯이 경제란 것도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인류와 더불어 진화한다 점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흔희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이론의 일종인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중의 하나인 협력등을 통해 행동양식에 대한 무한한 변화 내지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그것이 지금의 복잡한 경제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된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이 누구를 위한 학문인가? 결국 사회활동을 하는 모든 인류를 위한 도구의 일부분인것이다. 거창하게 무슨주의 무슨학설 따지게 없이 결국 인류와 같이 공존하는 그리고 인류생활에 필요한 하나의 도구일뿐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폄하하는 생각일까??

사회란 살아있는 사람간의 연대일 뿐 아니라 산 사람과 죽은 사람,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 간의 연대가 아닌가 싶다. 사회란 큰 바다에 경제학이란 배을 띄어 무사히 사람들을 건너갈 수 있게 하는 날이 빨리 도래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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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 - 보수의 피로 개혁을 갈망한 비운의 군주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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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군주열전 시리즈 마지막인 정조편이다. 정조에 대한 평가내지 시각은 대체적으로 개혁군주, 비운의 군주,  실지적 조선의 마지막 군주등으로 보는게 보편적인 평가이고 시각인것 같고, 사극에서 다루워지는것도 그런면 일색인게 사실이다. 저자는 앞선 시리즈에서도 표방했지만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군주들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다는 점이 색다르다.

태종,세종,성종,선조,숙종에 대한 평가도 그런면에서 상당히 신선함을 느낀다. 물론 역사평가는 주관적일수 밖에 없고 항상 후세의 선입간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그러면에서 정조에 대한 저자의 평가 또한 그 일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정조는 임오년의 변란 흔희 임오의리(사도세자죽음)와 영조의 유혼에서 상당히 고민하고 방황했던 인물이다. 그 제위 24년간 끊이없는 노론벽파와의 싸움에서도 알수있듯이 사를 따르자니 공이 무너지고 공을 따르자니 아비가 울고... 아마도 역대 조선군주중에서 가장 비통한 군주였음은 더할 나위도 없다. 그러면에서 정조에게 충복이 절대 부족했다는 점도 있다. 세손시설 대리청정을 둘러싼 암투와 힘들게 제위에 올를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악역을 맡은 정순왕대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을것이다. 물론 다른 대안은 없었지만...

정조즉위식날 '나는 세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했지만 결국 훙하는 날까지 임오의리에 대한 자신의 분풀이는 하지 못했다. 물론 정조도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됀다. 탕평이 아닌 정국은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자체를 뒤흔들것이라는 것을 결국 정조가 선택한것은 적과의 적절한 동침이었다. 규장각을 세워 세종조의 인재풀을 형성할려고 무던히 노력했고 노론,소론,남인등 적절히 인사배치하여 당파에 치우치지 않게 이끌어갔다. 사실은 정조제위기간내내 3정승의 자리는 어느 한 당파가 차지한적이 없었다.

단지 정조는 자신의 반대파에 대한 공격을 군사(군주와 스승이 일치한다)로서 다스릴려고 했다. 물론 조선시대 통틀어 정조만한 석학은 없다. 그러다보니 신하들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게 아마도 임오의리에 대한 분풀이는 아니었을까..

정조시대는 유달리 역모와 변괴가 많았던 시절이다. 제위에 오르고 10년간 매년 역모고변에 시달리고 결국 이복동생인 은전군의 사사로 까지 이어지는등 정국자체가 혼미한 상태였다. 물론 그 만큼 정조의 반대세력이 깊게 박혀 있었다는 반증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슬기롭게 지켜나 갈수 있었던 건 정조의 군사정신이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정조의 정치기반이 안정되고 친위세력이 자리잡은 제위 16년부터가 본격적인 개혁정치로 나아가는 기간이었으리라 그런걸 보면 정말 역사엔 가정이란 없나보다. 그로부터 체10년을 못넘기고 훙하였으니.. 영남만인소 이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을 본격적으로 추승하고 수원화성신도시 건설을 통한 벽파에 대한 공격수위를 높인다. 그리고 신해통공이라는 금난전권의 폐지를 통해 상업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오고, 인조때 부터 대두된 서얼형통을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한다. 그를 통해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서이수등의 인재를 발탁하고 미래의 브레인으로 키운다.

정조는 서학(천주교)에 대해선 상당히 관대한 입장이었다. 적어도 진산사건 내지는 신해박해(윤지충의 어머니 신주를 불살은 사건)이 있기 전까진 서학에 대한 정조의 입장은 경학을 소홀히 하여 생겨난 폐단으로 인식했던것이다. 군사라 자부하는 정조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을것이다. 선비들이 경학을 등한시 하니 폐관이나 서학들이 고개를 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학서적의 분서을 명하기도 하며 특히 남인들중에 서학과 관련되 인사들에게 반성문을 제출하게 하고 그것으로 사태 확산을 막고자 했다. 뒤에 문체반정을 통하여 올바른 학문 정학,경학을 내세우면서 서학의 정치화를 적극막았던 점 또한 그의 학문적 깊이가 느껴진다.

정조는 역대 군주중에서 현란한 말솜씨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실록에 의하면 신하들과의 면대자리에서 주고 받은 말은 주로 정조의 말 일색이다. 이 역시 스승이 제자를 나무라는 투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정조는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컷던것이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으로 그가 가지고 있던 꿈은 일시에 물거품으로 변해버린다. 순조 등극후 정순왕대비의 수렴으로 철저하게 정조흔적 지우기에 나서 결국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 점은 정조또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 만큼 친위세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점 소론, 남인, 시파등 정조에게 우호세력 또한 정조의 유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는 정조는 이상형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물론 개인적인 가족사 문제등과 맞물려 있지만, 이역시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를 별개의 개념으로 인식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 아쉽다 못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정조 사후 사실상 조선이란 국가는 와해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흔희들 정조의 죽음에 대하여 독살설등 의혹의 여지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실록상으론 독살설에 대한 의심이 없지만, 거야 노론벽파입장에서 서술한 실록이니 신빙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고 해야할까....

   
 

 정조의 죽음은 실은 조선의 죽음이었다. 정조의 개혁실패는 조선의 개혁실패였다. 그는 전환기에서 방향을 찾지못하고 방황했다. 그의 방황은 조선의 방황이었다. 그이 죽음으로 조선의 방황은 멈추었다. 그것은 쇠퇴의 길이었고 국망이 길이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정조의 죽음으로 조선은 사실상 끝을 맺는다고 봐야할것이다. 순조이후 등장하는 세도정치의 시대 그리고 왕가혈통이라고 엄밀히 말하기 힘들 왕위계승, 다시한번 역사의 가정이 있다면 정조가 좀더 제위기간에 있었더라면 향후 역사는 정말 어디로 흘러갔을까 그가 원하던 만천명월주인옹을 이루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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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 - 타고난 절대군주가 뿜어낸 애민의 카리스마 숙종의 진면목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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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하면 자연히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조강지처를 내치고 첩을 사랑한 군주로 그리고 여색을 즐겼던 군주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잘못된 편견이다. 숙종에게는 정비가 폐비장씨(장희빈)을 포함하여 4명이 이었고, 후궁은 5명으로 비교적 다른 군주에 비해서 많은편도 아니다. 역시 야사나 사극을 통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하기 때문이라 생각든다. 그래서 역사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번더 드는 것이다.

숙종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태종과 세조에 이은 왕권강화에 전력을 다한 군주이고, 본인스스로 당파에 빠져있는 신하를 속된말로 가지고 논 군주라고 해야할까. 한마디로 철권왕이었다고 보는게 가장 타당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제외기간중 3번의 환국을 통해 남인에서 서인으로 다시 서인에서 남인으로 그리고 남인에서 서인으로의 정권교체를 홀로 단행했고 제위 말년 서인 소론에서 노론으로 다시한번 더 정권을 교체할 정도로 당시 신하들에게 가히 절대적 왕권을 행사한 임금이다.

숙종의 이런 정치배경엔 물론 남인과 서인의 명분싸움이 극에 달해 왕권보다는 신권을 우선시 하고 국정보다 당리당략에 치중한 나머지 정치의 실종으로 인한 자업자득의 결과라 봐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숙종의 정치적 감각과 냉철한 판단 그리고 정치지향적인 성격과도 부합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숙종은 어린나이에 즉위했지만 바로 친정할 정도 기본적인 정치수업을 세자시절부터 받아왔고 선왕이 현종때의 예송논쟁을 통해 할아버지인 효종을 차자로 규명하는 신하들에 대해 넌저리 날 정도 반감을 키워왔던것도 사실이다.

즉위즉시 송시열계열의 서인을 내치고 효종을 적장자로 인식한 남인을 등용하지만 남인의 정치능력이 떨어짐을 간파한 이후 바로 경신환국을 통하여 서인을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등장시키는등 오로지 왕권강화의 일념하에 환국을 통하여 당파정쟁의 잇점을 취하는 정치를 단행했다

숙종조에는 특히한 역모사건은 없었다. 당쟁에의한 무고의 변은 있어지만 그런만큼 정치가 안정되었고, 특히 백두산정계비와 울릉도의 자국영토선언등을 통하여 국경에 대한 명확한 경계를 확정짓었고, 상평통보를 적극 유통시키므로 상업의 활성화를 도모했지만 그 그늘에는 농업의 몰락 또한 가져온게 사실이다. 또한 태조계비 신덕왕후의 소생 방석,방번의 신원 및 사육신의 신원과 단종의 신원을 통해 과거와의 화해를 추진했다.

숙종은 인조반정이후 처음으로 원자와 세자를 밟아 국왕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 만큼 탄생때부터 지존이라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자존심을 가지고 제위에 오른 군주였다. 그런 군주에게 왕권에 대한 일말의 도전은 용납되지 않았고 그 결과 잦은 환국으로 결국 사림들의 피의 향연만 가져온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인조의 천륜을 저버린 소현세자의 독살이후 조선시대의 왕조는 아들 품귀현상을 겪는다 특히 정비소생의 대군 품귀현상이라고 할까? 소현세자의 동생인 효종또한 외아들 현종밖에 없었고 현종또한 숙종이라는 외아들 하나 숙종역시 왕비를 넷이나 맞이했으나 결국 경종밖엔 얻지 못하고 무수리 출신의 영인군(후일 영조)를 얻은게 고작이었다 할 정도로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저주 아닌 저주를 받았다고 할 정도다.  

숙종시대를 크게 보면 숙종과 송시열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인 노론의 영수 송시열과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 구도를 이끌어가면서 숙종은 남인과 서인사이에서 저울질하면서 정치를 끌고 나갔고 결국 숙종의 승리로 장식했다. 하지만 자신 사후 후계구도에서 경종과 영조사이에 확실한 선택을 하지 못한 관계로 정말 피바람을 일으키고 군주독살이라는 악의 대물림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게된다.

조선 당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대 그리고 그런 당쟁을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만든 군주 바로 그가 숙종인것이다. 조선시대는 숙종 시대를 분기점으로 영,정조시대에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역사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간다. 그 만큼 숙종이라는 군주의 가치가 절실하게 더 느껴지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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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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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칠레 FTA성립 그리고 한미FTA추진중 그리고 수많은 다자간 무역협상 및 양자간 무역협상, 세계화, 글로벌경제 등 우리 신문지상을 도배하고 있는 용어들이다. 그리고 현실에 가장 뼈저리게 다가오는 현상이기도 하다.

저자는 저자의 6살난 아들을 교육시키지 않고 거대한 노동시장으로 내몰아 미리 현실경제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고 동시에 짭짤한 부수입도 올리수 있다는 논리를 현실 세계의 선진국과 비 선진국에 대비하여 설명한 가장 극적인 표현이라고 보여진다.

저자의 기존 저서인 사다리걷어 차기에서 주장한바 있듯이 선진국들은 자기들이 성장해오던 시기엔 철저히 보호주의와 폐세주의 그리고 각종 규제로 넘처난 환경에서 자국산업을 보호 육성해왔다. 6살 아이를 현실노동시장에 내몰지 않고 철저한 교육과 이론을 무장할 수 있게끔 성인이 될때까지 보호육성해왔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이제 시장에서 경쟁에 충분이 승산이 있다고 할때 그것도 똑같은 성인시장이 아닌 애들을 상대로 하는 시장으로 보내고 다른 자식들과 같은 조건에서 게임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것이다. 남의 자식들은 교육을 받았던 나이가 어리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이다.

가장 큰 논리는 그래야 자원이 유한한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살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물론 극단적인 비유지만 현실을 가만히 보고있으면 그리 극단적인 비유는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현실세계는 적장생존이 강한 세상이다. 이런면에서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시장경제에서 살아남기위한 최대한의 몸부림을 치는 것이고, 자국에 최대한 이로운 조건으로 통상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한없이 내쪽에 유리한 카드만을 가지고 게임을 할 수 없다면 최소한의 룰을 만들기위한 자구책을 가질 시간 또한 필요한것이다. 어린 아들이 성년이 될때까지의 시간과 그리고 그 어린 아들을 제대로 된 성년으로 키울수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듯이....

아담 스미스가 강조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의 균형이란 논리를 앞세워 개도국에 대한 규제철폐, 외국인 투자확대, 투명한 금융관리등이 시장의 왜곡이라 내몰고 있다. 하지만 스미스의 시장균형은 다름아닌 공평한 룰에서 찾아오는 시장균형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는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폐세적인 경제활동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경제에 참여해야 하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과제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거대한 물결앞에 나가기 위해 최소한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구명조끼는 입혀서 내보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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