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 사장이라면 죽어도 잃지 말아야 할 첫 마음
홍의숙 지음 / 다산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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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심 (初心 / Fresh Start)>>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려간 책이다. 책의 내용이 흥미진지하던가 재미가 남달라서 순식간에 읽은게 아니라 정말 지금의 내가 처한 입장에 딱 들어맞는것 같은 느낌으로 빠져서 읽어버린것 같다. 책의 주인공인 최강민사장이 겪었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재기등의 줄거리 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것은 무엇보다도 처음 시작할때의 마음가짐 내지는 그런 초심을 잊지않고 기억할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성과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은 신문사 영업사원으로 사회첫출발을 하면서 신었던 낡은 구두를 초심을 일깨우는 물건으로 간직하고 있고 가장 힘든시기에 초심을 다시 둘러보면서 온갖 역경을 딛고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초심을 간직하고 있고, 그런 초심을 담긴 특별한 의미의 물건 내지는 장소, 사람등이 있을것이다.

초심이라는게 글자 뜻대로 처음이 마음가짐을 뜻하듯이 사람은 누구나 무슨일을 시작할때 항상 마음에 새기는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회사을 경영하는 사람이든, 정치를 하는 사람이든,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이든간에 그 첫 마음을 잊지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그 초심이 약간씩 퇴색해지고 언제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를만큼 달라지는게 인지상정일것이다. 그게 어찌보면 인간이란것에 대한 또 다른 매력의 일부분일 수 도 있겠지만. 

인생을 살면서 성공(이렇게 표현해도 될련지 모르겠지만)하는 사람들 중의 공통점은 뭐니뭐니해도 초지일관 처음과 똑 같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대다수인것 같다. 초심이란 어려운게 아니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기역하고 싶지 않을 뿐아니겠는가.

이 책에서 코칭하는 큰 부분은 사람의 신뢰만큼 큰 자산이 없다, 나의 잣대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타인을 존중하라등 흔희 자기개발서적에서 볼수 있는 그런 미사어구보다 '가장 힘들때 처음으로 돌아가라' 라는 말이 아니간 싶다.  

책을 읽는 시간내내 주인공이 겪었던 아픔과 좌절에 대해서 정말 뼈저리게 공감을 했고 아니 지금도 나에게는 진행형이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많은 위안을 받은것도 사실이다. 우린 초심을 잃어서 실패한 사람들을 수없이 지켜보아왔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알고 있고, 우리도 그 중에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하는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자체만으로도 초심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그럼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해 주는 책인것 같다.

주인공의 낡은 구두 한켤레가 전부였듯이 나에게는 사업시작할때의 가만히 미소만 짖어주던 아내의 얼굴이 초심을 일깨우게 하는 모토가 된다. 우리도 초심을 상기시킬수 있는 나만의 모토를 가져보는건 어떨까 싶다....

가장 중요한건 누구가 지향하고 있는 행복이란 단어에 대한 막연한 꿈보다는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좀더 구체적인 개념을 자기 스스로 정립해보는게 초심을 일깨우는 방법이라면 방법이 아닐까 한다.. 모처럼 단비같은 잔잔한 여유를 가져다 주는 책을 읽어서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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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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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우선 서평을 올리기전에 몇가지 점을 밝혀두어야 할 것 같다. 우선 나는 무신론자 입장에서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 것이고, 종교에 대한 선입견 특히 특정 종교에 대한 어떠한 반감이나 배척도 없다는 점을 미리 밝혀두고 서평을 시작해야 할것 같다. 간혹 종교인들의 오해를 살 소지도 있을것 같은 생각에...

리처드 도킨스는 현존하는 대표적인 진화생물학자이자, 분자생물학자이며 특히 동물행동학에 일가견있는 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보듯이 극히 과학자적인 논지에서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펴나가는 작자이다. 지금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인 지구라는 행성이 기원에 관해서 진화론과 창조론이 끊임없이 논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나 같은 무신론자들은 무슨소리냐고 할테니지만, 어떻게 창조론이 가능하다는 말이야 달을 가고 화성을 탐사하고, 태양계넘어로 인공위성을 보내는 현시대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솔직히 이 지구상의 50%를 훌쩍넘기는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를 띄던 간에 하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창조론 특히 설계자(신)의 계획된 설계에 의해서 지구 탄생, 우주의 탄생, 및 인류의 지금 위치를 설명할 수 있는 논거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다윈주의를 통해서 종교에서 주장하는 설계주의를 철저히 논박하고 반증하는 논리와 과연 종교가 인류에게 왜 필요한가? 그리고 그 종교의 최고점에 있는 신이라는 존재가 과연 있는가에 대해서 정말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반박하는 내용으로 상당한 공감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밑부분은 종교의 문제점 특히 종교가 유년시절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어린이에게 미칠수 있는 폐해(?)에 대해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논박하고 있다. 어찌보면 도킨스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득실보다는 종교에 대한 득실에 더울더 많은 부분을 논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자신이 과학자이고 보면 굳이 진화론과 창조론중 어느것이 맞다는 논의 자체가 넌센스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많은 파생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믿는다 누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신?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흑백의 논리를 들이대어서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보면 그 믿음이 과연 진정한 믿음일수 있는냐는 반문도 해볼만 한것 아닌가 싶다.

무신론자냐 불가지론자냐 종교인이냐를 논하기전에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에 충실하고 사회구성원에게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깊이 든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념에 대해서 그게 종교인든 또 다른 어떤것이든간에 그 개인의 고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게(특히 가치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자녀들에게)인류 구성원으로서 도리가 아닌가 싶다.

물론 종교의 폐해만큼 무신론자들의 폐해도 있는게 사살이다. 우리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위정자들은 거의 모두가 그런 아킬레스를 철저히 이용하여 자기의 권력을 유지했던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단지 이책을 읽고 나서 씁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것은 지구상에 생존하는 생명체중 가장 자인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찌보면 하등생명체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떠한 종도 같은 종끼리 잔인하리만큼 철저하게 강박하는 종은 없다. 이 인류만이 유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신이 있으냐 없으냐라는 생존에는 별 큰 영향이 없는(물론 그게 인생의 전부인 사람도 있겠지만) 논거를 가지고 그리고 신이 있다고 믿는 부류중에 어떤 신을 믿느냐를 두고 서로가 지구상에서 한종을 멸절시킬만큼 적대적인 적은 아마도 없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다. 과연 개인의 생명존중만큼 가치가 큰게 있을까?? 사람목숨만큼 중요한게 있을까??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역,시대,연령,성별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누구에겐 삶의 전부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 그 부분의 크기를 잣대로 시비를 가려서는 안되는게 인류사의 진정한 해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내편, 네편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저울질 한다면 과연 해답이 나올까??

배타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종교도 문제이지만 그러한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무신론 또한 문제인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라는 말의 의미가 관연 무엇일까? 망상==종교라는 그런 생각을 먼저하는 사람은 그 또한 망상가이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이 종교를 비하한다는 표현이라가 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으론 종교나 무신론을 둘다 지칭하는 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이 아니 다수의 믿음이나 사고는 그 만큼 한 개인의 사고나 믿음에 대한 포용과 존중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나는 들리니 말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고도의 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흔희들 종교니 신이니 하는 말로 논박을 한다는 자체가 관연 무슨 실효가 있나고 반문할 수 도 있겠지만, 우리 인류의 마음의 저편엔 항상 종교와 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을 읽고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고 신을 부인하고 종교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악행들에 대해서 자잘못을 따지는 그런 계기가 되자는게 아니라, 보다 나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모두가 함께 품고가야 할 생각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만큼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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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론 - 당신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모두에게 써먹고 싶을 128가지 아첨의 아포리즘
윌리스 고스 리기어 외 지음 / 이마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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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첨  론  >>

 

아첨의 사전적 의미는 국어사전에는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일려고 알랑거는것'이라 표기하고 있고, 이 책의 원제목을 보면 praise(칭찬,찬미,숭배) / flatter(아첨하다,듣기좋은 칭찬을 하다, 추켜세우다)의미로 광범위하게 아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아첨과 칭찬과 좀더 광의의 의미인 찬미, 숭배등을 아울러서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사실은 경계를 확정할 수도 없다고 봐야할것 같지만) 이와 관련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한 유명인사들의 어록과 성경이나 불교, 이슬람교등의 경전의 경구일부를 인용하여 아첨에 관한 백과사전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처음 이책을 접했을땐 소위 말하는 자기개발관련의 대체로 평이한 서적으로 인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내용이 만만치 않는 책인것 같다. 예전에 읽었던 인간의 7대욕망시리즈엔 빠졌지만 인간의 생활전반에 걸쳐 결코 빠지질수 없는 부분이고 항상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고, 누구나(저자는 신도 아첨을 원한다고 했으니까)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간에 원하는 인간의 욕망중에 한부분임에 틀림없다.

특히 인간의 욕망중에서 칭찬과 아첨을 진정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저자는 "보상을 기대하는 칭찬이 아첨"이다라고 정의하면서도 막상 칭찬과 아첨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성을 크게 역설하지않는다. 이 책을 접하긴 전에 막연히 2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칭찬==선, 아첨==악 이라는 설익은 관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이 책을 접하고 나니 그런 사고자체가 유아적인 발상에 불과하고 칭찬과 아첨을 과연 나의 가치관에서 판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우선 칭찬과 아첨은 둘다 상대방을 즐겁고, 행복하고 자아도취에 빠지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오죽하면 예전에 책제목으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라는 책이 있었을까(내용이야 이책과는 상이하겠지만)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또 다른 점은 자아 즉 본인 스스로에게  그동안 너무 인색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작 직장상사에게 아첨을 하고,  연인에게 아첨을 하고, 권력자에게 듣기 좋은 아첨을 하고, 친구에게 아첨을 하고, 거래처에게 아첨을 하고, 심지어는 신에게도 아첨을 하지만, 정작 본인에 대해서 과연 아첨을 하는 이가 몇이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아첨중에서 가장 탁월한 아첨은 본인스스로에게 하는 아첨이라고 했다. 맞는말인것 같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아첨의 원인, 적절한 아첨을 행하는 방법과 시기, 그리고 상대등을 유명인사들의 어록을 통해서 적절히 묘사함과 동시에 그 동안 아첨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들을 해소해주는 전개방식을 통하고 있다. 물론 아첨에 대한 폐해 특히 권력과 종교에 대한 아첨의 폐해도 나열하므로서 아첨에 대한 진정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그가 비록 나와 이해관계가 있든 없든간에 칭찬과 아첨사이를 오가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도 그러한 줄다리기를 즐기고 있는 줄도 모른다. 개인적인 견해인지는 모르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첨은 물론 그게 내 마음속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상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철학자, 문학가, 종교인, 정치인이 아첨을 유효적절하게 사용해왔고 지금도 이 세상은 아첨으로 덮여있는게 사실이니까.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첨은 필수불가분한것 같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접하는 광고 또한 소비자들을 대하는 아첨의 일종일 것이고, 이 책 처럼 책들 또한 독자에 대한 아첨의 한 부분인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아첨과 칭찬을 구별하여 좀더 유익하게 대처해야 할까???

나는 칭찬과 아첨을 굳이 구별하여 여기까지가 칭찬이고, 이 선을 넘어서면 아첨이다라는 식의 구별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인간의 수도 없는 욕망 중에서 아첨 또한 식욕과 정욕과 같은 욕망의 한 부분으로 받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는 아첨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의 표현일 것이고, 존경과 믿음의 다른 표현일 뿐인것 아닐까 싶다. 다만, 권력이나 종교에 대한 아첨의 경우 그 패해는 곧바로 우리들 스스로에게 미친다는 점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권력의 아첨은 최악의 경우 전쟁이라는 형태로 표현될 수 도 있고, 종교에 대한 아첨은 무신론자에 대한 종교적 탄압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랫만에 쉽게 생각했다가 한참을 생각했던 책인것 같다. 너무나 평이해서 그냥 스쳐 지나치던 개념에 대해서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하진 않지만 어느정도 개념정리가 된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아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도 깔끔히 정리된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아첨을 한다. 그리고 그런 아첨을 하고 나선 왠지 뒷맛이 씁슬해지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더 열심히 아첨하고 자주 아첨해야할 것 같다. 하물려 신도 아첨을 원하는데 인간이 나야 그에 비할바 아닌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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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굴기 - 세계를 호령하는 강대국의 패러다임
왕지아펑 외 7인 지음, 공병호 감수 / 크레듀(credu)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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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선진국 내지는 강대국 아니 강대국이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겠다. 그럼 강대국의 조건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여러가지 주섬주섬 생각나는 것들이 있을것이다. 바로 이책은 역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9개국가가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져 가는 과정을 파헤쳐서 작금의 중국이라는 나라가 강대국으로 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책이다. 중국 CCTV에서 흥행리에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을 책으로 다시 펴낸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중국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강대국되기지만 한번쯤은 우리도 봐야할 책인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도 역사상 한때 대고구려라는 어마어마한강역을 지배했던 제국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한 강국을 이루어야 할 것이고....

 
책 제목의 대국굴기는 그야말로 "세계에 우뚝 선 선진강국"이라는 말로서 세계사 전반에 정치, 문화, 경제, 역사등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진 강대국을 말한다. 물론 여기선 로마제국을 제외한 적어도 민족성이 단일시되는 개념의 근대적 국가라는 개념을 밑바탕에 둔 근대의 강대국을 지칭하고 그런 국가들이 굴기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포르투칼, 에스파니아, 네들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등 9개국가를 샘플링하여 왜 이들 9개국가가 강대국으로 굴기할 수 있었냐에 대한 개론적인 관찰을 보여준다. 물론 각론적으로 들어가면 그리 학문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 단지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적배경과 조건들을 나라마다 하나씩 정리해둔것 이외에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학자들의 관점이다보니 약간의 중화사상이 그 이면에 깔려서 이런 강대국을 바라보면 관점자체가 약간의 시기심 내지는 질투심도 있고, 강대국으로 발전함에 있어 식민지국의 배려에 대한 논의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찌보면 당연히 감수해야할 항목쯤으로 치부하는것 같아 뒷맛은 씁쓸하기도 하다.


역사상 이러한 강대국들의 기본조건은 타민족, 타국가를 물리적인 힘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 강대국의 발판으로 삼았고, 그런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지지 않을 경우 거침없이 전쟁이라는 최후의 카드도 서슴없이 내세워 자국의 이익보존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역사에서 보듯이 그 종말 또한 비참하게 끝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강대국인가??

국가구성을을 위한 강대국인지, 아니면 일부 권력집단의 이익을 위한 강대국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만 하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누구나 인식하듯이 국가가 힘이 없을땐 어김없이 타 국가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그럼 국가구성원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을 우린 누구보다 더 뼈저리게 느꼈고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자체가 쉽고 무리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고, 지금 중국인들의 사고를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책인것 같다. 왜 이런 책에 국가전체가 열광하는지도 생각해볼 만 하다. 자신들의 치부는 뒤로 한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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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 전3권 겨레고전문학선집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 보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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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고미숙교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접하고 완역본을 읽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세월을 지냈다가 이번에 정말 큰 마음 먹고 북한학자 리상호의 <<열하일기 상,중,하>>와 고미숙의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하>>을 읽게 되었다. 처음엔 동시에 다른 역자의 작품을 읽는게 혼란스러울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와

서 생각해보면 기우에 지나지 않고 역시 같이 읽은게 휠씬 한문고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역자에 따란 고문의 해석방식이 다른면에서 참다운 열하일기를 접한것 같아 가슴한켠이 벅차오른다. 5월 한달을 매달리다 시피해서 읽고 또 읽고 옥편 동원하면서 능력도 없는 원문을 찾아보면서 역시 우리 선조들의 해박한 지식과 적재적소에 맞는 애들립구사 능력에 다시금 감탄을 금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말기 권세있는 집안(노론)에서 태어났지만 연암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시쳇말로 지금의 고시인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홍대용,박제가,이덕무(일명 연암사단)과 교류를 통하여 당시 대세였던 북벌론 내지는 중화사대주의에 철저한 의구심을 가지고 실용주의 학문연구에 정진하였다. 비록 말년에 관직에 나아갔지만 그 역시 지방관직을 거치면서 민중들의 삶에 묻혀서 살아갔다. 연암의 마지막 유언인 "몸만 깨끗이 씻겨달라"는 이 한마디가 그의 생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열하일기는 어쩌면 연암을 위한 하늘이 내린 천조신우의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연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사 이래 최고의 문장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

현존 하는 열하일기는 당시 연암이 집필했던 내용이 다소 누락되고 삭제된것으로 보고있다. 그도 그럴것이 정조시대에 열하일기는 문체반정의 표적 1순위 대상이었다. 사대부와 조선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문체 또한 정통성리학을 표방하던 당시의 식자들에겐 이단이나 마친가지의 충격파을 준것이다. 그래서 연암 생전은 물론 그의 손자가 영의정에 제수된 뒤에도 출판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자연 세월이 흘러 내용들의 일부가 왜곡이 되었지만 현재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시대에 우리가 봐도 상당한 충격을 추는 작품인데 그 당시의 충격은 일파만파였으리라 짐작코도 남을만 하다.


열하일기의 매력은 제목만 보고 단순한 기행문으로 착각할 수 도 있으나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을 보면 가히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정치,경제,사회,역사,음악,종교,과학등의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고 있는 역사이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장르로 보자면 기행, 평론, 소설, 시, 르포르타주, 수필등의 다양한 형식을 넘나드면서 자유자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4년) 당시 청나라 건륭황제의 칠순을 하례하는 진하사겸 사은사의 명복으로 사행단을 구성하여 청나라에 파견단 사행단을 삼종형 정사 박명원(금성위)의 군관자제자격으로 따라가면서 시작하게 된다. 한양에서 5월 25일 출발해서 연경과 열하를 걸쳐 다시 한양으로 들어오는 10월 27일까지의 5개월에 걸친 대장정중 의주에서 요양, 심양, 산해관, 북경, 열하, 다시
북경을 거치는 과정을 편년체형식과 그때 그때의 견문 및 식자들과의 필담을 별도의 기로 기록한 방대한 작품이다

열하일기를 크게 일정별로 나누면 아래와 같다

 

원론(사행일자별 작성)

도강록(압록강에서 심양까지 6월 24일 - 7월 9일) 구요동기/요동백탑기/관제묘기/광우사기

성경잡지(요양에서 광녕까지 7월 10일 - 7월 14일) 속재필담/상루필담/고동록/성경가람기/산천기략

일신수필(광녕에서 산해관까지 7월 15일 - 7월 23일) 북진묘기/거제/점사/교량/강녀묘기/장대기/산해관기

관내정사(산해관에서 북경까지 7월 24일 - 8월 4일) 열상화보/이제묘기/난하단주기/사호석기/호질/동악묘기

막북행정록(북경에서 열하까지 8월 5일 - 8월 9일)

태학유관록(열하 태학에서 8월 9일 - 8월 14일)

환연도중록(8월 15일 - 8월 20일)

 

각론(이론/견문/필담별 묶음)

경개록(열하일기 전반에 만난 청나라의 인사의 개인이력)

황교문답/반선시말/찰십륜포(티벳불교(당시 황교)의 수장인 반선(달라이라마)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기록)

행재잡록(연해중의 청나라의 행재소의 공문)/심세편(세상사에 대한 평론으로 북학에 대한 의견 피력)

망양록(중국인사들과의 음악에 대한 기록)/곡정필담(중국학자 윤가전과의 쟁쟁한 토론)

산장잡기(열하까지의 견문기로 특히 야출고북고기와 일야구도하기가 압권이다)

환희기(북경에 체류하면서 본 요술구경)/피서록(열하 피서산장에서 주로 중국과 조선이 시문에 대한 논쟁)

구외이문(북경과 열하에서 들은 기이한 이야기)옥갑야화(옥갑에서 나눈 이야기 허생전)

황도기략(북경성과 자금성등에 대한 기록)/알성퇴술(공자묘 참배에 대한 기록)

양엽기(북경내 있는 사찰에 대한 견문기)동란섭필(수필)/보유금료소초(의학관련 지식에 대한 피력)

- 이 중 고미숙의 작품에서는 각론을 일부 편역하였음.


이렇게 목차만 보더라도 연암의 지식충족욕은 가히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진공청소기처럼 눈에 띄는 모든것을 흡수해버리고 싶은 애절한 마음이 아니였을까 싶다.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느끼는 점은 작가인 연암의 해박한 지식과 애리한 관찰력 그리고 모든것을 자기꺼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어떤 타인에 비해서 탁월하다는것을 알 수있다. 그리고 간간히 독자들을의 지루함을 잊게 해주는 위트와 유머로서 독서의 맛을 한층 더 배려한 정말 조선이 낳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할까...

그리고 연암은 여행에서 견문한 선진문화와 선진산업 시설과 근대 과학이론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민중의 생활에 이바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1. 연암은 조선최고의 과학자였다???

친구인 홍대용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연암은 당시 조선으로서는 감당치 못할 과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학자들과의 필담을 통해서 연암의 자기의 과학관과 우주관, 그리고 생명기원에 대한 진화론까지 거침없이 일성하고 있다. 상대가 선진과학과 문명으로 뭉쳐진 중국학자들 앞에서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등 알았다면 스승을 받을만한 이론을 전개한다.

연암은 지구가 둥글고 자전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명쾌하게 만유인력법칙을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모든물질은 티끌에서 시작한다고 인식하여 현대과학으로 보자면 원소내지는 원자의 개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벌레의 한 종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가히 다윈도 울고갈 진화론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2. 연암은 현실적인 거시경제학자였다???


연암의 생애를 통틀어 이용후생과 실천궁행 이 말을 빼면 남는게 없다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현실적인 경제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에 바로 적용될 수 있고 그리고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경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중 중국의 수레제도, 성 쌓는법, 가루 찧는 기계, 고치실 뽑는 기계, 온돌 놓는 법, 벽돌이용법등 각양각색의 선진문화를 정말 자세히 기록하면서 조국의 낙후성과 당시 지배층의 무능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허생전을 통해 거시경제의 중요성을 강조 특히 물류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거시경제의 원할한 회전을 강조했다.

결국 만년에 들어서 부자들의 토지를 나누어주라는 부록이 게제된 과농소초라는 농서를 집필하게 된 밑그림이 되었던 것이다.

 

3. 연암은 자주주의적 역사학자였다???

당시의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잊지않고 있으면서 청에 대한 북벌을 주장하는게 일반 사대부들의 공통된 사상이었다.

호란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임진년 명의 은혜를 잊지말자는.... 그러면서 자국이 강역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중국의 고서 기록을 믿고 그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런 사류을 배척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여행중 철저하게 고구려와 조선의 강역을 중국 고서인 사기나 지리지등의 잘못된 점을 들추어서 제대로 된 강역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열하에서 만난 반선(달라이라마)과 반선에 대한 청의 태도를 오랑캐라 어쩔수 없다는 식이 아닌 청의 제국지배방식을 간파하고 조서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한다고 역설하면서 구체적으로 말의 사육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한다. 당시 조선의 통치계급이나 학자들이 소위 춘추대의에 젖어 맹목적인 존화양이만 외치고 있을때 '나라에 유익하고 백성에게 유익한 일이면 비록 오랑캐에게라도 배울것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었을까 싶다 ㅎㅎ

 

4. 연암은 인본주의자였다???

연암은 사행중 중국의 문물을 보면서 통탄했다. 아니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국이 처한 현실앞에 식자들의 다 스러져가는 성리학이란 학문에 매달려 민생과 후생에 대한 한치의 배려도 없는 지배층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아래 민중들에 대한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같이 호흡을 했던 것이다.  그 일면으로 산해관에서 객주에 들어 상방 정진사와 같이 배겨썼다는 호질(호랑의 꾸중)이란 작품에서 비록 배경은 중국을 그리고 있지만 어쩌면 연암의 조국 조선식자층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5. 연암은 종교학자였다???

연암이 열하에서 경험한것 가장 크게 충격을 준것은 티베트불교와의 만남이었다. 당시로는 정말 충격적인 해후였다. 황제의 강요에 못이겨 반선을 접견하고 반선으로 부터 불상을 하사받고 이에 대한 처리로 골몰하고 있는 삼사(정사,부사.서정관) 그 와중에 황교(티베트불교)에 대한 연암의 철저한 판단 그리고 황교를 받는 청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인 모략을 간파하고 다시금 청나라에 대한 색다른 면을 보게 된다. 또한 북경에 있는 천주당을 견문하고 야소(예수)나 야소회에 대한 반박등 다양한 종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6. 연암은 베스트셀러작가였다???

정말 연암은 타고난 작가임에 틀림없다. 장편의 작품을 초록하면서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이렇게 깊을줄이랴... 기행문의 형식을 빌려 군데 군데 자기의 철학, 정치학, 경제학, 음률학, 지리학, 역사학, 우주천문학, 지구과학등의 딱딱한 글과 시, 소설, 견문, 수필, 잡기등의 쉽게 읽을거리를 적절하게 분배해서 독자의 지루함을 한번에 날려버렸다. 거기에다 간간히 들려주는 위트 내지는 유머한마디가 압권이다. 예로 북경에 도착하여 쉴려고 하는게 갑자기 황제가 열하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허둥되는 청나라과 관원을 지켜보면서 불이났냐는 말에 황제가 열하로 가서 비어있는 북경으로 몽고 기병 십만명이 처들어온다가 하여 자중을 웃긴일화가 그것이다. 또한 북경에서 잠도 자지못하고 열하까지 가는 여정중에서도 고북고성벽에 이름 세글자 세겨넣는 여유까지...

이렇게 대충 정리한 연암에 대한 생각들이다. 물론 내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인것이지 보편타당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내내 가졌던 생각은 사물을 보더라도 항상 그 이면을 봐야한다는 생각과 단순히 보고 넘기지 않고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생각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저작이다.

특히 역자가 다른 두책을 읽은것이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한작가는 북한학자이 입장에서 본 연암과 남측에서 본 연암에 대한 생각들과 해석방식 하지만 공통점은 열하일기는 조선최고의 작품이라는 점과 연암에 대한 평가는 일치한다는 것이다.

시와 공간을 넘어서 연암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그가 남긴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장관, 무엇이 장관이라고 떠들지만 나로서는 똥거름 무더기가 장관이고, 깨어진 기와쪽과 버리는 조약돌을 이용하는 법이 장관이더라""

 

그의 생애 철저하면서 일관되게 흐르는 이용후생에 대한 신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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