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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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나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서점가에서 무심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집어든 선택이었고 막상 책을 업어와선 눈길을 주지 못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불현듯 다시 잡게 된 <악인> 는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었네요. 뭐 추리스릴러나 독자들의 심금을 자극하는 로멘스물도 아니엿지만 상당히 유니크한 스트럭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추리 스릴리물의 긴장감과 나름의 추리를 유발케 하는 작품입니다. 사실 그 동안 일본계 작품들을 제법 많이 접해봤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작가들의 이름을 머리속에 떠올려 보니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등 제가 기억하고 있는 작가들의 반열에서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는 없더라구요. 아마도 한 작가의 매력에 빠져들다보면 그 외의 작가들의 작품은 눈에 들어올 생각을 못하게 하는 편집증적인 습관때문이지 모르겠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상당히 매력적인 작가를 재발견했다는 점에서만 놓고 봐도 이번 작품은 상당한 의미로 다가오는 그런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선 이번 작품은 왠지 내러티브의 초장을 섭렵해서 들어가게 되면 추리스릴러계통의 작품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다 주는 작품입니다. 규슈지방의 한적하고 발길이 드문 미쓰세라는 고개에서 벌어진 보험설계사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살인 용의자의 검거라는 사건이 갖추고 있어야할 기본적인 ABC를 서두에 제공함으로써 이 사건을 둘러싼 사건의 경위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와의 연관관계등 그리고 한발 먼저 나아가면 대충 결말부분에 독자들의 시선을 자극할 반전등을 미리 그리게 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챕터별로 명명된 소제목들이 왠지 추리스릴러라는 확신을 더 심어주게 되는 효과를 줍니다.'그녀는 누구를 만나고 싶어했나' 아 이 얼마나 뻔한 유혹이며 나 분명히 추리스릴러이니까 독자 당신들 지금부터 내러티브를 잘 쫒아오세요! 라는 식으로 보이게 하죠.


          그런데 말이죠 이처럼 추리스릴러라고 단정하면서 내러티브를 쫒아가다 보게되면 어 뭐야! 왜 이러지! 라는 독백을 자신도 모르게 서슴없이 뱉어 버리기 된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매력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우선 내러티브의 구성이 색다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인데요. 먼저 등장인물들의 다양성과 그리고 등장인물들 하나 하나(사실 왜 이번 사건과는 크게 연관되지 않을 것만 같은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여기 저기서 쑥쑥 등장하면서 독자들을 약간 혼란스럽게 합니다) 에 대한 세밀한 터치와 심리묘사에서 기존의 추리스릴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작품을 읽다보면 이건 절대 추리스릴러가 아니라고 확신하면서도 왠지 그런 분위기를 놓지 못하게 하는 작가가 쳐 놓은 트릭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거죠. 그 만큼 이번 작품은 다양한 툴과 등장인물을 통해서 작가가 표출하는 사유를 뿌려놓았고 그 사유들을 하나 하나씩 쫒아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착각을 불러오는 것이라는 것을 결국 작품의 결말부분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다는 점이죠. 마치 추리스릴러의 반전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요시다 슈이치는 '선' 과 '악' 이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다른 각도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각도나 시각의 설정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선' 과 '악' 이라는 개념은 동전의 양면처럼 떨어질수 없는 그런 개념이라는 논거에서 출발합니다. 우리에게서  '선' 과 '악' 의 개념의 대부분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정립되어 있는데요. 요시다 슈이치는 이러한 통념을 살짝 다른 각도로 돌려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커다른 매력입니다. 물론 작품의 스트럭쳐를 인터뷰방식과 등장인물들의 독백방식 그리고 르포르타주 기법으로 풀어 가면서 더 다양한 각도와 시각에서  '선' 과 '악' 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본질과 결말을 떠나 사건이 종착점에 이르게 되는 경위를 민완기사의 기사수첩에 깨알같이 기록해 놓은 인간군상들의 이미지를 형상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주면서 독자들의 심성을 더 자극하는 작품으로 다가오네요. 마치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기법으로 내러티브를 창출해냈다면 아마도 그저 그런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외면당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이번 작품의 기법은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대게의 경우  '선' 과 '악' 이라는 주제를 다루게 되면 명확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편을 가르는 결말들을 보게 되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 개인적인 위험한 발상일지 모르겠지만 유이치라는 범인의 심정이 이해가 될 만큼 독자들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그런 감정이 불러오게하는 내러티브의 과정과 그 속에 담겨진 사유들이 상당히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는 놀라운 점도 같이 발견하게 된다는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문화되어 있는  '선' 과 '악' 이 아닌 살아있는  '선' 과 '악' 의 개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죠. 작중 마스오의 친구가 독백으로 말한 "사람의 감정에서 냄새가 느껴진다" 라는 말이 아마도 이번 작품을 한문장으로 대변할 수 있다면 딱 어울리는 문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 이번 작품은 그 냄새가 느껴지는 그런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으로 통해서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의 범상치 않는 필력을 새삼 느끼게 하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호기심을 불러오게 하는데요, 특히 세밀한 수채화를 보는듯한 터치감이 일품인 작품 같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해서 그런지 반가운 인물을 대면하게 되죠. 물론 CD 한장이지만요. 유카와 마나부 교수의 역활을 햇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언급을 절로 웃음을 짓게도 하네요. 전반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유효적절한 기법을 동원해서 또 다른 사유로 업그레이드 시킨 작품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는 작품입니다. 흔히들 지칭하는 "악인" 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판단이 될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하는 사유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이래저래 오랫만에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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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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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의 "행복한 탐정 시리즈" 2편인 <이름 없는 독> 을 대면했습니다. 워낙 수려한 스토리텔링기법을 갖추고 있는 작가라 이번 작품 역시 내러티브의 향연에 흠뻑 젖어서 작품을 끝냈던 것 같네요. 사실 이번 작품을 시작전까지 망설였던 부분이 많았는데요. 전작이었던 <누군가> 라는 작품에서 받은 뉘양스가 그다지 구미가 확 당기지 않았기에 더욱 더 주저하게 되었던 것 같네요. 특히나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주인공이 갖추고 있는 성격이나 설정등이 영 탐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인데요. 사건해결사로의 스마트한 추리력이나 절제된 감정조절능력, 과감한 행동등 무엇하나 제대로된 점을 찾지 못하였기에 더욱 더 애착이 가지 않았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너무 임팩트가 약한 사건과 맞물려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자들의 여념을 눈치라도 챈것인지 아니면 버전 1은 원래 이렇게 다소 소프트하게 출발할려고 했던 것인지 몰라도 미야베 미유키가 이번에 선보인 버전 2 <이름 없는 독> 은 제목자체에서 부터 다소 강한 뉘양스를 시사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막상 작품속으로 들어가면 전작에 비해 상당히 달라진 설정들과 스토리의 흐름에 다소 놀라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작품의 태제는 이미 제목에서 반이상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데요. 바로 '毒' 이라는 테제입니다. 우리는 '毒' 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떠올리때 자연스럽게 온몸의 감각이 한 곳으로 몰리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치기 마련이죠. 그 만큼 '독' 이라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진화론적으로 자연스럽게 자기방어의 기제를 불러오는 객체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 많은 '독' 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버섯을 비롯한 식물들이 품고 있는 독, 살모사와 거미를 비롯한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독. 이렇게 '독' 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자연스러울 정도로 우리 주변에 널려 있고 우리는 인지하던 하지 않던간에 이러한 치명적인 '독' 들과 더불어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독' 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를 유심히 보게되면 자연계 나름의 공통의 법칙과 운영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먹이 피라미드의 최하층에서도 부터 중간 포식자까지 절대 상위 포식자의 레벨에 이르지 못한 수많은 생명체들은 '독' 이라는 무기로 자신의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옵션을 장착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위대한 자연은 형평이라는 전제를 위해 이들 약자에게 '독' 이라는 선물을 선사했는지도 모르죠. 뭐 이런 거창한 담론을 차치하더라도 '독' 이라는 아주 불량스러운 테제는 인간에게 어떠한 형태를 뛰더라도 위협스럽고 터부시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毒' 이라는 것을 왜 우리 인간에게는 생성할 수 없도록 만들어 졌을까라는 의문도 살짝 들죠. 최상위 포식자급들이 사자나 호랑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거대한 근육이나 강철같은 이빨이 있는것도 아닌데 말이죠. 달리 생각하면 '毒' 이라는 존재는 해악을 끼치는 역활과 동시에 어떤 세계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역활도 수행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흔히 우리는 '독' 에 감염되었을때 해독제로 치료하게 됩니다. 물론 그 독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야겠지만요. 그래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독은 나름의 치료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면에서 그다지 무섭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인간을 두렵게 하는 독은 다름아닌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독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달리 표현하자면 '독' 이라는 자체가 사람 그 자체를 지칭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 입니다. 이런의미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이번 작품 <이름 없는 독> 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이름으로 정의할 수 없는) 악의적인 본성을 터치하고 있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독에는 그 나름의 해독제가 존재하듯이 작가는 인간에 의해 상처받은 '독' 역시 인간의 마음 즉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다름아닌 해독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그 마음(해독제)의 크기는 상관없이 그 마음 씀씀이 자체가 사람의 독으로 상처 받은 이들에게는 즉효약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봐야할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주인공 역활을 하는 사건 해결사 '스기무라 시부로' 라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과 애정을 갖게 한다는 점인데요. 전편 <누군가> 에서 보여주었던 한 없이 착한 이미지의 사건 해결사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사실 이번에도 한 없이 착하게 나오고 한단계 이상의 업그레이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죠) 사건해결사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행복한 탐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중요한 인물 역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가정과 직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사건 해결사로 등장한다는 설정자체에서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이미 감지했겠지만 두 가지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지탱한다는 자체가 난센스일 수 있습니다. 대게의 사건 해결사들은 사건쪽에는 탁월한 촉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만 개인 사생활의 영역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밖에 존재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기 때문이죠. 대표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가와교수나 가가형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충분히 공감이 가죠.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가 전면에 내세운 행복한 탐정 스기무라는 그야말로 두가지를 능숙하게 해처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능숙하다는 표현보다는 일반인이 보더라도 전혀 엇박자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왠지 그 엇박자들이 묘한 일체감과 조화를 이르고 있기에 더 애착이 가는 인물로 다가옵니다. 엄청나게 나이브한 면에서 우리는 동정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고 어리숙한 추리나 행동에서 강한 현실감과 유대감을 절로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건 해결사라는 타이틀보다 친근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 다가오기에 더욱 더 '스기무라' 라는 인물에 대한 애착이 커지고 뇌리속에 깊게 각인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미야베 미유키는 작품의 전반적인 컨셉트와 가장 어울리는(아니 필연적으로 어울릴수밖에 없다고 봐야죠) 인물인 스기무라를 중심으로 작가가 표방하는 테제에 가장 조화된 내러티브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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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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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전선 이상없다>,<개선문>에 이은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대표적인 3부작 반전소설이자 전쟁소설로 세계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작품들입니다. <서부 전선 이상없다> 가 제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이번 작품인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2차세계대전 그중에서도 패망이 짙어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최전방과 후방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혹성과 그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 그리고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을 테마로 가지고 있는 암울하면서도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작들에서 이미 살펴봤듯이 이번 작품 역시 레마르크가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서사와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그리고 전쟁이 가져다 주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테제를 다시한번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레마르크는 1차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서부 전선 이상없다>를 집필할수 있었죠. 여기에 히틀러의 나치스가 집권하기 바로 직전 독일을 탈출하여 망명길에 오르는 경험을 바탕으로 <개선문>을 집필하여 세계독자들의 시선을 받게 되었지만 이번 작품이 배경인 2차세계대전은 미국 망명길에 지켜봐야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다소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평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제3자적인 시각에서 주인공 그래버라는 독일 병사의 시각으로 바라본 가해자 측의 담론이 더 실감있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강하게 전달되는 효과를 맛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자 그럼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부터 살펴보죠. 이번 작품은 가해자측인 독일의 일개 병사를 주인공으로 작품은 출발하여 끝까지 독일군의 전투 그리고 독일 후방의 스토리와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독일인들로 구성되어 있죠. 여기에 독일인 작가라는 점에서 자칫하면 오해의 소지도 있을법 하죠. 왠지 자의적인 해석과 시각으로 담론을 끌어갈 개연성이 농후하기 때문인데요. 본격적으로 작품을 대하다 보면 그런 오해를 눈녹듯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가해자인 독일군과 독일국민들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게 된다는 느낌만저 들게 하니까요. 레마르크는 전쟁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살아가야했던 인간들과 인간성의 상실 그리고 회복이라는 테마를 피해자측이 아닌 가해자측을 조명함으로써 오히려 더 설득력을 부여했기 때문인것이죠. 아마도 피해자측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상했다면 그 설득력보다는 적개심과 복수라는 또 다른 전쟁의 싹을 뿌리는 결과로 이어졌을지 모르다는 것이죠. 이러면에서 이번 작품의 대명제는 상당한 설득력과 흡인력을 무장하고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작품속으로 들어가면 대전제를 기반으로 세가지의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당연히 러시아군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의 상태인데요. 작품의 첫부분으로 그야말로 전쟁의 기본적인 현상을 서사하고 있습니다. 구더기들이 죽음을 파먹는 부분의 묘사나 전쟁으로 인해 의식이 불안전한 병사들의 심리묘사, 그리고 내부적인 갈등등 일반적인 전쟁소설의 기본적인 프레임을 깔아놓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기적같은 휴가를 얻어 고향(후방)으로 휴가를 나온 부분인데요. 여기서 부터 이번 작품의 진가를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대게의 경우 휴가라는 것은 전쟁과 이탈된 달콤함 낙원이나 천국을 뜻하지만 당시 독일의 후방은 전방이나 다를바 없는 그야말로 또 다른 지옥의 장소적 변경밖에 그 어떠한 의미도 없었다는 것이죠. 전방에서는 적이라는 개념이라도 주어져 있었다면 후방은 적과 동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또 다른 전쟁터라는 것을 부각시킵니다. 거의 매일마다 이어지는 공습과 그 공습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그 와중에 유대인과 사상적 낙오자들을 색출하는 장면들 모두가 적이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조장하는 권력자들 그리고 그런 권력자들에게 무방비로 끌여가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어쩌면 저들도 다 같은 피해자일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시 전방으로 배경이 옮겨지는 부분에서 작가가 무엇을 독자들에게 말하는지 알게 됩니다. 이렇듯 이번 작품은 세가지 테마를 갖고 있지만 세가지 테마가 각각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고, 각각의 테마에서 자기 역활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주인공 그래버 병장의 동선을 그림자처럼 밟아가면서 진행됩니다. 후퇴를 거듭하는 전방의 분위기, 동료병사들간의 갈등과 우정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감등이 서사되면서 전쟁소설의 스펙들을 채워나갑니다. 근데 러시아포로를 처형하는 과정에서 그래버의 의식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이런 의식의 변화는 고향으로 휴가를 나간 삼주간의 시간속에 그대로 증폭되고 확대 재생산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부분이 이번 작품의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보다 간접적으로 다가오는 일련의 인간성들과 행위들이 실상 전쟁보다 더 공포스럽고 잔인하게 서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전방에서 전투로 인해 벌어지는 서사들보다 더 리얼리티하고 멜랑콜리한 느낌을 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총과 포탄보다 더 폐부 깊숙하게 상처를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라는 것이죠. 그런데말이죠 자칫하면 우리는 이런 인간성의 표출이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강요된 연출된 형식이라고 항변할 수 도 있다는 것이죠. 특히나 가해자측인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렇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레마르크가 서사하고 있는 담론은 비단 그런 강요나 통제가 있었다고 해도 작위적인 부분은 감출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게슈타프를 피해 도망다니는 유대인 요제프의 말을 빌리자면 바로 '탄력적인 양심' 을 가진 사람들이 이에 해당되고 이런 양심의 소유자들이 실상 많이 존재했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당히 냉철한 자아비판이자 가해자나 피해자를 떠나서 전쟁을 고찰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인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언제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탄력적으로 작용할수 있는 양심은 우리들은 지금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중에서 인상적인 서사들이 즐비하게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 "파리의 날개를 뜯어내는 어린아이의 만족스러움" 이라는 서사는 아마도 전쟁의 참혹함을 이보다 더 어떻게 정곡을 찌르는 서사가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표현인데요.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전쟁의 참혹함, 살벌함등을 정말 현장에 있는 것 처럼 묘사해서 화약냄새를 느끼게끔 하지만 무엇보다 전쟁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털과 옷에 사는 이들은 머리쪽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만은 오래된 법칙이고 이들은 상대방의 영역을 존중하였으며 전쟁이라는 것을 몰랐다." 라는 서사에서도 왠지 인간이라는 자체에 대한 혐오감마저 불러오게 할 만큼 자아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합니다. 제로섬 게임에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에게 모잘것 없는 생명체인 이가 시사하는 바는 상당하다고 봐야겠죠. 이렇듯 이번 작품은 전쟁의 피해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그 격이 달라 보이는 서사들이 많다는 점과 독자들의 폐부를 찌르는 담론과 사유들이 산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을거리가 풍부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전반적으로 반전소설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결코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 입니다. 특히 '가해자측에서 바라본 시각' 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유니크한 점이구요. 무엇보다 이러한 시각이 오히려 더 전쟁의 폐해와 인간성 상실 그리고 회복에 대한 설득력을 정당화 시키는 테제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전쟁의 공포를 이처럼 리얼하게 표현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배경 서사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은 <서부 전선 이상없다>,<개선문> 에 이어 연대기 형식의 흐름을 느낄수 있으면서 반전문학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독자들 뇌리속에 오래토록 각인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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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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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옥의 <무진기행> 은 한국 현대문학(본격적인 한글문학)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큰 범주내에서 벗어나지 않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전쟁의 후유증을 제대로 치유하기도 전에 4.19혁명이나 5.16쿠테타 그리고 이어지는 경제발전 5개년 계획등 그야말로 초토화된 강토(물론 정신적으로 초토화된 우리네의 정신세계를 아울러서요)에 뜬금없이 정말 갑자기 자리잡기 시작하는 현대성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던 1960년대를 온몸으로 부딪혀 써내려간 작가이기 때문이죠. 1960년대는 지금의 잣대로 제단할 수 없는 근대성과 현대성이 혼합된 시대였고, 그 한복판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 그 배경이 서울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지기행에서 무진이라는 가상의 도시가 등장하지만 그 가상의 도시인 무진 역시 서울의 이라는 도시의 또 다른 이름이자 서울이라는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근대성과 현대성이 혼재하는 그야말로 뚜렷한 정체성이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의 집합체로 인식하였던 것이고 하구요. 여기에 서울과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나' 를 등장인물로 등장시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록된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산업화란 패러다임앞에 그대로 노출된 소서민들의 당황스러운 혼란 그리고 이를 제빠르게 이용하는 또 다른 면을 보면서 들게 되는 자괴감이나 상실감등 매건의 작품에 걸쳐 있는 잿빛같은 색깔들이 주를 이루고 있죠. 그나마 '차나 한 잔' 이라는 작품에서 다소 유머러스한 블랙코미디를 보는 위안을 얻기는 합니다만 왠지 발길 무거운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는 거죠. 뭐 그렇다고 당시 시대상의 정치적인 사유나 철학적인 사유가 진하게 배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1960년대 서울이라는 그 자체가 던져주는 메타포는 충분하게 느낄 수 있는 단편들입니다.  


          수록된 단편들을 한번 살펴보면 음 '무진기행' 은 패스하겠습니다. 워낙 알려진 작품들이다보니 오히려 '무진기행' 으로 인해 다른 작품들이 조명을 제대로 못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정도로 괜찮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먼저 '차나 한 잔' 이라는 작품은 김승옥 단편중 아마도 유일하게 유머러스한 뉘양스를 주는 작품입니다. 삶을 살면서 한두번쯤을 겪어봤을 설사와의 전쟁아시죠? 무슨 말인고 하니 도저히 교감신경으로는 제어불가능한 거의 천재지변같은 불가항력적인 사태를 맞이해본 독자들 충분히 있을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출퇴근 시간 북적거리는 대중교통안에서 갑자기 그 분의 호출을 받은 경우, 과연 이런 사태를 어떻게 극복들 하셨나요? 다양하고 아주 구구절절한 스토리들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차나 한 잔' 편을 보게 되면 대충 만화가 이선생의 고충을 짐작하게 됩니다. 신문사에 비평만화가를 연재하던 이 선생 어느 날 자신의 연재가 중단되고 해고 통보를 받아 심히 불편한 상황에서 버스안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설사... 그리고 급히 찾아들어간 뒷간과 해방감... 그 이후 이 선생에게 다가오는 삶의 변화가 마치 급한 설사병에 쳐했을때 처럼 우리 인생의 삶(특히 1960년대 서울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삶)과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에피소드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또다른 단편중에 개인적인 견해지만 '염소는 힘이 세다' 라는 작품은 참으로 서글픈 스토리를 갖고 있는 작품이면서 국가권력(염소를 상징하겠죠)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저항할 수 없는 소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정치적인 뉘양스가 담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상당히 비약적인 견해일수 있지만 염소는 힘이 세다는 것은 권력을 갖지 못한 서민층의 오마주로 비쳐질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것이죠. 단편의 제목에서는 뭔가 활기차고 희망적인 뉘양스를 던져주지만 힘이 센건 염소(가진자을 지칭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지지 못한 자들의 마지막 희망으로도 비쳐질수 있습니다)뿐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모티프를 가지고 있으면서 결국 그런 염소는 당초부터 가질 수 없는 존재로 비쳐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 1960년대 서울속에서 살아갔던 모든 소서민들이 가진 애환의 또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서울의 달빛 0장' 은 수록된 단편들 중에서 또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게 하는 작품인데요. 암울했던 60년대를 넘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말해서 산업화, 자본주의, 군부시대등 어느 정도 패러다임에 익숙해져 가는 시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동시에 '나'  개인이 가지게 되는 정체성 혼란의 극단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이혼후 경험하게 되는 많은 여성과의 관계를 여행자의 구도로 표현한 서사는 상당히 유니크하게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왠만한 남성독자들이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에 와닿는 서사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에 게재되어 있는 단편들은 1960년대 우리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 편린들입니다. 특히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작가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할 여수, 순천등을 배경으로 한국전쟁이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파탄난 당시의 소시민들의 실상을 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감정적으로 상당히 무거운 내용들의 작품입니다. 비록 '차나 한 잔' 같은 유머러스한 작품도 있지만 이 역시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작품임에 틀림없구요. 김승옥은 전체적으로 당시 지배적이었던 소시민들의 정서를 민낯 그래도 여과없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50여년전 수도 서울의 양면적이고 이질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리 만큼 자조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상당히 현실적인 내러티브를 대면할 수 있는 작품이죠. 김승옥을 비롯한 당시대의 작가들이 이러한 시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으로 승화했지만 사실 김승옥만큼 현실을 기반으로 작품활동을 한 작가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너무 서민적인고 현실적인 그래서 그런지 픽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내 할아버지,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들었던 아련한 추억들을 깨알같이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오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독자들에게 공감을 전해주기엔 충분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또한 길지 않는 분량의 단편들이지만 상당히 철학적인 사유를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 '나' 라는 존재와 '정체성' 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져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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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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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고,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다" 작중 나오는 멘트인데요. 악당의 정의를 이처럼 단순화하면서 머리속에 각인되게 서사한 몇 안되는 명언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악당이라는 막연하게 엄청난 나쁜 짓을 하고 상대방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생각하고 있는 그런 악당이 아니게 되는데요. 좀더 확장적으로 범위를 넓혀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악당이라는 범주에서 결코 자신만만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속에 걸리는 언행을 상대방에게 부지불식간에 해 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야쿠마루 가쿠의 <악당> 이라는 작품은 범죄가 시나간 자리에 남는 상처는 얼마나 깊은가?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갈등과 부조리를 조명한 사회파 미스테리의 일종으로 적당한 긴장감과 속도감을 가지고 있는 범죄심리스릴러계열의 작품으로 인식할 수 있겠는데요. 그동안 살인범죄와 관련해서 피해자측과 가해자측의 심리적인 상태와 이를 기반으로 범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태제를 형성하는 작품들이 왕왕 있었지만 이번 작품처럼 그 심리적인 상태를 가감없이 적나라하면서 솔직하게 서사한 작품은 그다지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야쿠마루 가쿠는 작품의 주 대상을 이들 이해당사자들의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싶어 집니다.


          작가가 작정하고 선보이는 작품인 만큼 이번 작품에 무슨 그럴싸한 추리적 사고나 이를 교모하게 뒷받침 해야 할 다양한 분야의 설정들 그리고 극적이고 감동적인 하이라이트를 구성하기 위한 매력적인 반전등 뭔가 작품의 품격을 높이고 독자들의 흡인력을 고조시키기 위한 추리스릴러의 정석같은 스트럭쳐를 전혀 볼 수 없다는 점, 즉 아예 이러한 구조적인 틀 속에서 작품을 끌어가겠다는 생각자체 없이 이번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사뭇 신선하다는 느낌마저 자아내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작품이 지루하고 왠지 흡인력이나 설득력에서 뒤쳐지는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것인데요. 어쩌면 왠만한 추리스릴러작품 보다 그 속도감과 긴장감이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한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몰입감을 다름아닌 야쿠마루 가쿠는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심리적인 묘사와 행동의 서사를 통해서 디테일 하면서도 리얼리티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그 어떠한 무대적인 장치 보다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게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작품속에는 묘한 매력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피해자의 대변인인 사에키 슈이치와 가해자측의 대명사로 등장하는 사카가미를 통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갖고 있는 심리적인 사고, 그리고 그런 사고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부분에 대한 가감없는 리얼리티를 통해서 양자구도의 멋진 심리적 스리럴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심리적인 서사들이 정말 현실성이 있어 두 진영을 대변하는 인물과 맞딱뜨릴때 마다 독자들의 감정 역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처럼 널뛰기를 한다는 것인데요. 왠만한 작품을 통해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입이 던져 주는 충격파의 파고가 상당히 강하게 뇌리에 남게되는 작품입니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이런류의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이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속에서 한두번쯤은 경험을 했지만, 사실 이번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은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경우 이런 양측의 구도를 범사회적 공감대라는 다소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미시적인 개개인의 심리상태로 좁혀가는 면을 보여주죠. 하지만 야쿠마루 가쿠의 <악당> 이라는 작품속에는 범사회적 범도덕적등의 거시적인 패러다임이나 태제보다는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의 극히 개인적인 심리상태를 중심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이 어떠한 사회적인 교육이나 도덕적인 교화를 아우라로 깔아놓는다는 느낌보다 누구나 그 입장에 서게 되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당위성 아닌 당위성을 느끼게 하면서 자신과 반대편에 처하게 되는 이들의 심리적인 상태도 절로(많은 거부감이나 왜곡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테제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신의 한수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굳이 거시적인 접근에서 필요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회간의 각종 연결고리들의 관계성을 삭뚝 잘라버리고 단순하게 인간과 인간 그 자체의 상호간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한층 더 흡인력을 배가 시키는 구조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네요.


          어느 누구든 그 극단적인 상태나 그 입장에 서보지 않는 이상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이해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그런 입에 바른 소리내지는 영혼없는 위로의 멘트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마루 가쿠의 이번 작품은 왠지 모르게 독자들로 하여금 양측의 극단적인 면에 절로 녹아들게 하는 묘한 마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거죠. 그 만큼 야구마루 가쿠의 심리적 상태의 서사와 태제들이 극히 개인성을 내포하면서도 동시에 범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죠. 작가는 이러한 개인들의 심리태제를 모아모아 하나의 발전된 단계의 사회심리태제로 격상시킬 의도를 결코 내비치지도 않는다점이 상당히 마음에 와닿는데요. 개개인의 심리적인 판단에 정, 반 이라는 이분법적인 판단이나 판결보다는 있는 그 자체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둔다는 점이 어찌보면 다소 도덕적으로 불순하게 느껴질 수 도 있겠지만 나름의 사유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백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이번 작품은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의 심리상태를 다룬 장르에서 오래토록 회자될 작품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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