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매니저는 옛말 컴퓨터가 짝 골라준다‘무정한 맞선’

성공률 더 높아… 컴퓨터 짝찾기

‘하모니 매칭 시스템’이라는 로고가 화면에 떠 있는 노트북에 A씨의 ‘조건’을 입력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인 S대 출신, 연봉 3000만원, 일반기업(30대 대기업을 제외한 기업군) 사무직원, 30세…. 키와 몸무게는 물론 종교, 부모의 직업과 학력 그리고 재산까지 모두 160여 개의 항목이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컴퓨터에는 A씨가 결혼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배우자 지수’가 떴다. 71.7점. 이어 A씨의 조건에서 선택 가능한 배우자 풀(pool) 여성 38명의 이름이 화면에 죽 떠오른다. 최적의 배우자는 올해 29세로 전문대를 졸업한 10급 공무원으로, 연봉은 1800만원이다. 물론 이같은 과정은 보안키가 있는 극소수의 사람만 볼 수 있다.


◆70·80년대 마담뚜, 90년대 커플매니저… 2000년대에는 컴퓨터?

산업구조와 인구구조가 변하는 가운데 제때 ‘짝’을 만나지 못하는 남녀가 급증하면서 한국에서 ‘맞선 사업’은 인맥 넓은 사람의 개인사업이 아니라 산업으로 성장했다. 알음알음으로 사람을 소개해주던 70·80년대 ‘마담뚜’에 이어 90년대 말부터 맺어주기를 전문으로 하는 ‘커플 매니저’가 급증하더니, 이제는 컴퓨터가 대량의 정보를 분석·가공해 사람과 사람의 결혼을 중매(仲媒)하는 새로운 메신저로 떠올랐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이희길 소장은 “컴퓨터의 안목이 커플매니저보다 훨씬 낫다”며 통계치를 내밀었다. “전문가인 커플매니저가 맞선을 주선했을 때 양쪽에서 ‘만나겠다’는 답변을 얻어내 만나게 되는 확률이 평균 12.8%였지만, 컴퓨터를 이용하니 22%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실제 선우에서는 한때 120여명에 달했던 커플매니저 수가 최근에는 50여명 수준으로 줄었다. 맞선시장의 급속한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컴퓨터라는 기계가 커플매니저가 하던 일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조건’은 컴퓨터가 맞춰준다. 사랑할지만 선택하라”

이 시스템을 개발한 선우는 이를 ‘하모니 매칭시스템’이라고 명명했다. 지난 1995~2004년 사이 10년간 선우를 거쳐간 남녀 5만여명의 나이, 학력, 직업, 외모, 부모의 학력과 재력 등을 분석, 실제 결혼에 미치는 영향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신규 회원들에게 ‘5만명의 평균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는 ‘객관적 배우자 지수’를 개발한 것. 배우자 지수에 따라 소개 가능한 배우자의 풀이 결정되고, 컴퓨터는 이중 통계적으로 가장 결혼 확률이 높았던 조합을 골라내 배우자감으로 소개해 준다. 이용자는 상대방이 컴퓨터로 골라진 짝인지, 커플매니저가 찾아낸 것인지는 모른다. 그냥 ‘사랑할 수 있는가’만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을 점수화하는 데 대해 ‘비정하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지만, 선우측은 “인간의 느낌을 객관화한 결과물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조건이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 A씨의 조건 가운데 직업을 변리사로, 연봉은 7000만원이라고 소개하자 컴퓨터는 금세 태도를 바꿨다. 소개된 여성의 나이는 28세로 한 살 더 어려졌고, 출신 대학은 전문대에서 서울 중위권 대학으로, 직업은 대기업 사무직이며 연봉은 2600만원이었다. 모두 5단계(매우 좋음, 좋음, 보통, 나쁨, 매우 나쁨)인 인상 등급에서 배우자감으로 선택된 여성의 인상 등급은 ‘좋음’에서 ‘매우 좋음’으로 한 단계 뛰었다.

이 소장은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고정관념을 바꿀 만한 통계적 수치가 나오길 희망했지만 결국 고정관념을 확인하고 말았다”며, “그게 현실”이라고 했다.

중매자가 변하면 짝을 맺어주는 ‘결정적 변수’도 달라질까. 그러나 “남자의 경우 연봉(직업), 여자는 키와 몸무게 등을 조합해 만든 ‘외모지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들의 설명. 선우 이웅진 대표는 “평균적인 인식은 여전히 ‘남자는 돈, 여자는 외모’라는 데서 별로 벗어나 있지 않더라”고 말했다.

염강수기자 ksyoum@chosun.com
입력 : 2006.11.01 00:51 43' / 수정 : 2006.11.01 00:5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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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12-1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사람을 객관화하다니...
그게 현실이라지만 정말 씁슬하네요. -0-;; 퍼갑니다.

icaru 2006-12-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 관련 스크랩은 아닌듯~ ㅋ

수선 님아! 눈이 되게~ 많이 왔어라우..

BRINY 2006-12-1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선이란 게 거의 다 그렇죠 뭐. 컴퓨터에 입력하는 조건이나 정직하게 입력한다면...
 

하반기에 나온 책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뽑아봤습니다.
기준은 읽은 책들 중에서 아하! 소리를 많이 냈거나 짜릿했고 울컥했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네. 한마디로 제 마음대로입니다^^

 

분야를 다양하게 생각해봤는데, 어쨌든 여기에 있는 책들은 적극 추천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3 (김남희/미래M&B)
김남희의 걷기 여행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더군다나 이 책은 가까지만 먼 이웃, 미얀마, 라오스 등을 걸은 이야기이기에 내 가슴을 더욱 설레게 한다. 이 책, 좋다.

 

※ 열정시대 (한기호/열정시대)
출판인의 열정이 담긴 이 책도,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 답답할 지경으로, 좋다.

 

※ 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해냄)
그 동안의 ‘도플갱어’는 장난감 취급을 받았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육박하는 감동이 있다!

 

※ 이현의 연애 (심윤경/문학동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이현! 이 둘의 비정상적인 사랑! 그것으로 그려지는 절대적인 사랑! 가슴을 파고드는 책이다.

 

※ 사라진 마술사 (제프리 디버/노블하우스)
나는 도대체 링컨 라임 시리즈의 단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 감독, 열정을 말하다 (지승호/수다)
성실한 인터뷰! 세상을 발전시키는 대화가 담긴 책! 마음에 들었다.

 

※ 창궁의 묘성 (아사다 지로/창해)
운명을 뛰어넘는 과거인들의 이야기! 네 권인데 밤새 다 읽어버렸다. 아사다 지로 짱!^^;;

 

※ 셀 (스티븐 킹/황금가지)
이런 세상에! 핸드폰 통화했더니 좀비가 된다니! 기가 막히는군! 스티븐 킹은 역시 킹이더라.

 

※ 선녀는 왜 나무꿋을 떠났을까 (고혜경/한겨레출판)
옛 이야기에서 여성성 찾아내는 신선하고도 중요하고도 특별한 작업이 담긴 책! 이런 책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느린 희망 (유재현/그린비)
매력적인 쿠바가 쏙쏙 담겨있다. 정말, 진심으로, 강력추천!

 

※ 흡연의 문화사 (샌더 L. 길먼, 저우 쉰/이마고)
나는 이렇게 ‘하나’로 역사를 보는 책이 좋더라. 물론 내용이 좋아야 한다는 첫째 조건인데 이 책은 당연히 그것을 충족시키고 있다. 담배 피우든 안 피우든 이 책은 누구의 마음이든 다 흡족하게 채워주리라.

 

※ 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문학동네)
밑바닥 인생의 감동 쏘아올리기! 마음에 들었어!

 

※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정운영/웅진지식하우스)
아직도 이 책의 감동이 지워지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머름을 자처하는 지식인들이여. 이 책 보고 제발 반성하소서.

 

※ 악취미들 (김도언/문학동네)
모두가 예쁜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김도언의 <악취미들>은 정말 악취미적으로, 구린 이야기만 하는데 왜 이리 즐거운지 모르겠다. 일탈을 꿈꾸는 불온한 욕망이 가득한 <악취미들>! 추천해야 한다.

 

※ 목욕탕에서 만난 백만장자의 부자 이야기 (박성준/일빛)
이 책 보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용 안하기로 했어요. 설명 끝.

 

※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이레)
알랭 드 보통 작품의 ‘핵심’만 쏙쏙! 분량은 작지만 여운은 길다. 마음에 들었다.

 

※ 꼬리를 꿈꾸다 (최민자/문학사상사)
수필집이 수필집다워야 하는데 요즘은 다들 잘난 척이라니까! 그래서 수필집이 재미없다고 여겼는데 이책처럼 수필집다운 책이 있어 나는 다시 수필집을 읽기로 했다. 간만에 발견한 멋진 수필집!

 

※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현대문학)
초판의 오타가 엄청났음에도 이 책을 좋아한 건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빨’에 반했기 때문이다. 천재와 천재의 대결이 주는 기막힌 즐거움! 다시 생각해도 행복하다.

 

※ 남쪽으로 튀어 (오쿠다 히데오/은행나무)
웃음폭탄을 장착한 감동미사일, 발사!

 

※ 평양프로젝트 (오영진/창비)
이 만화 보느라 지하철 잘못 탔는데, 그래도 즐거웠어요. 오히려 킥킥거리는데 앞에 있는 여자 분이 이상하게 쳐다보길래 민망해서 혼났어요. 설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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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KBS 'TV, 책을 말하다'의 2006년 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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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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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중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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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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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행복은 왜 항상 예측을 벗어나는가?미래에 무엇이 자신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 것인지를 항상 잘못 예측하는 우리들!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면 행복해질까? 오랫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새 자동차를 사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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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6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

이 기사를 읽다가.......너무도 가슴이 뛰었다.

이런 연애를 하고 싶어, 진정!

==================================================

[동무와 연인] 연애는 인정을 낳고 인정은 걸작을 낳고

 

신랄한 크레이스너에겐 자신 화풍 재성찰하게 하고
술독에 빠진 폴락에겐 예술적 창의력 폭발하게 한
둘의 만남은 연애가 창조적 생산이 되기 위해선
‘상호인정’이 필수조건임을 보여줘
한겨레
» 폴락
동무와 연인/⑪크레이스너와 폴락

생산적인 연애는 극히 드물다. 가령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테일러 부인과 밀, 그리고 샤틀레 부인과 볼테르의 관계는 장삼이사의 것이 아니다.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는 치명적인 낭비, 그것이 연애의 본질이다. 그만큼 연애는 워낙 비(非)자본주의적인 것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으련만, (미셸 페쇠처럼 말하자면) 20세기의 연애는 그저 반(反)자본주의적으로 노골화한 자본주의일 뿐이다.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가수 김윤아)라는 노랫말 그대로, 시정의 필부필부가 아는 것처럼 그것은 생산이라기보다는 사치며 낭비다. 연애의 진실은 무엇보다도 그같은 ‘비용’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지르되게 증명하곤 한다. 바르트도 ‘말의 사치’라는 프리즘 속에서 사랑의 이모저모를 까부른다. 혹은 보부아르 식으로 고쳐 풀자면, 사랑은 나르시스나 종교와 함께 사치와 낭비의 본령을 이룬다. 도착증에 대한 프로이트의 설명을 조금 남용하자면, 연애는 온통 도착증이라는 낭비 투성이다. 기다리기와 만지기, 애태우기와 속끓이기, 시간의 지체와 변죽울리기, 연애에 특징적인 이 모든 행태는 그 자체로 도착적이며, 따라서 사랑의 낭비와 그 비생산성을 극적으로 증명한다.

1941년의 어느 날, 크레이스너(Lee Krasner, 1908-1984)는 팜플렛에 적힌 폴락(Jackson Pollock, 1912-1956)이라는 낯선 이름의 화가에 이끌려 무작정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그의 작품에 배어 든 창조적 기력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의 은폐된 천재성을 단번에 인정한다. 이들의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연애와 혼인(1945)의 관계는 둘 모두의 예술적 창의력과 생산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술에 찌든 폴락의 천재성이 현실적, 제도적 길을 얻게 된 것, 그리고 마침내 당대 최고의 화가라는 위명에 이르게 된 것은 크레이스너와의 연애와 혼인으로 가능해진 어떤 삶의 양식을 빼놓고선 생각할 수 없다. 더불어 크레이스너 역시 폴락의 작품 세계를 접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근본적으로 재성찰하게 되는데, 폴락의 영향을 수용하면서 스승 호프만(Hans Hofmann)을 통해서 배운 큐비즘을 점차 지양하게 된다.

둘의 만남은 이른바 ‘사건’이었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 융이 프로이트를 만난 사건,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만난 사건, 추사가 초정을, 초정이 연암을 만난 사건, 그리고 조영래가 전태일을 만난 사건과 같은 수없이 많은 외상적 충격의 사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 사건 속에는 한 사람의 사유와 태도를 뒤흔드는 바람같은 진실의 흔적이 지극한 환대를 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크레이스너와 폴락이 만난 사건 속에서 잉태된 진실은 예술적 창의와 생산으로 승화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할 중요한 문제는 그 당사자들이 ‘그 사건에의 충실성’(A. 바디우)으로써 시간과 물질을 거슬러 그 진실을 구체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폴락의 ‘술버릇’이 개입한다.) 흔히 그 진실은 바람처럼 흩어지고 말거나, 기껏해야 기존 지식의 체계 속에 거세된 채 안정화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사랑에 결부되었을 때, 흔히 그 사건 속의 진실은 사랑이라는 혼동과 낭비 속에서 그 생산적 충실성을 잃고 마는 법이다. 그러나 크레이스너와 폴락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자신의 작품에조차도 신랄하게 비판적이었던 크레이스너는 폴락과의 조우를 통해 스스로의 작풍을 새롭게 변형시킬 수 있었고, 그 비판적 신랄함은 술독에서 빠져나온 폴락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창의적으로 조형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잣대로 기능했다.

연인간의 사랑이 창조적 생산성의 채널 속으로 피드백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보다도 ‘인정’이다. 비록 사랑의 관계라고 해도, 인정은 그저 마시는 공짜술이 아니다. 실제 인정의 과정은 매우 광범위한 문명사적 함의를 지닌 ‘투쟁’(헤겔)이기도 하다. 현명한 연인들이 운마저 좋다면, 사랑의 관계와 인정의 관계는 호혜적으로 겹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의 호혜와 창의성을 향한 과정은 종종 사랑의 관계 그 자체를 허물어버릴 만큼의 큰 비용을 요구한다. 사랑의 행태는 이미 그 자체가 낭비와 사치일 뿐 아니라, 사랑의 자장에 휩쓸려든 다른 열정들마저 걷잡을 수 없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 김영민/전주한일대 교수·철학
나는 재기(才氣)와 근기(根氣)를 갉아먹는 사랑의 열정을 수없이 목격했다. 인정투쟁을 악용하면서 허영과 탐욕의 늪 속에 허우적거리는 사랑은 또 얼마나 흔한가? 그러나 생산적 상호인정은 연인간의 사랑이 창조적 열정과 호혜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토대와 같다. 그것은 욕망만도, 애착만도, 제도만도 아닌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 위한 초석이며, 연인이 동무와 겹치면서 이드거니 함께 걷도록 돕는 길이기도 하다. 하버마스-호네트(A. Honneth) 식으로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그 무시무시한 맹목의 동력을 상호인정의 호혜적 의사소통의 관계로 승화시키는 길이다.

크레이스너와 폴락의 애정이 둘 사이의 예술적 창의성이나 생산성과 호혜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은 상호인정이라는 제 3의 매개일 것이다. 마치 감성과 오성을 매개하는 상상력처럼, 인정은 사랑과 생산성을 매개한다. 그리고 인정과 실천적 공감(Anteilnahme)이 없는 애정이 짧은 애착으로 빠지거나 이해관계로 변질되고 마는 것을 우리는 쓸쓸하게 목도한다. ‘열정을 이해관계적으로 분배하고 조율하라’(A. 허쉬만)는 친자본주의적 권면이 쓸모있는 구석도 있겠다. 그러나, 동무의 길은 인정과 배려를 통해 사랑의 열정을 생산적으로 승화시키는 데에서 트인다. (아, 아직 폴락의 술버릇을 언급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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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1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이상적인데요?!

이리스 2006-12-1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는 가능성이 너무 낮지 않을까? ㅎㅎㅎㅎ
 
 전출처 : BRINY > 삼강

사실은 오늘이 아니라 한참전에 있었던 일.

근세에 범죄 중에서 가장 무겁게 취급된 것은 반역죄와 강상죄였다고 하네. 강상죄가 무엇이냐면, 그 교과서 옆에 해설 봐봐. 삼강오륜과 같은 유교 윤리를 어긴 죄라고 되어 있지. 그럼 삼강은 또 무엇이냐. 대부분 뭔지 알지?

부자유친! 임전무퇴! 사친이효!@#$%^&

인석들아, 세속5계는 빼라!
삼강이니까 강으로 끝나는 거 3개잖아.
다시 해봐.
임금과 신하, 자식과 아비, 남편과 아내, 해서 3개야.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

그럼 군위신강을 잘하는 사람을 뭐라고 하니?

충신~

부위자강은?

효자~

부위부강은?

잉꼬부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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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15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