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즐거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강준만 교수가 <대학생 글쓰기 특강>이라는 자신의 강의록을 정리해 낸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이런 강의를 들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겠다고....정말 이런 알찬,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강의를 들으면 등록금이 안 아까울 것 같다.

글쓰기에 있어서 내게 가장 도움이 된 사람은 그 어떤 작가도,교수도 아닌, 지금은 고인이 된 前회사 J상무님이다.J상무님께 정말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5년 전 얘기다. 한참 의욕적으로 일하던 나는 싱가폴 출장을 다녀 와서 장문의 보고서를 냈다. 10장이 넘었던 것 같다. 출장 결과에 스스로 도취된 나머지, 고딩이 연습장에 영어단어 쓰듯이 빽빽하게 보고서를 채웠다.

얼마 후, J상무님 산하 전 사원이 다 모인 워크샵이 있었다. J상무님은 80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내 보고서 얘기를 했다.

" 얼마 전, 성대리가 낸 출장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0장이 넘더군요. 영업사원이 그렇게 긴 보고서를 쓸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 시간에 거래선을 만나아죠.
출장 보고서는 간단하게 쓰세요."

난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런데....J상무님의 훈화말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 생선가게에 이런 푯말이 있다 칩시다.

We are selling fresh fish.

이렇게 한 문장을 다 쓸 필요가 있습니까?
먼저 We, 우리가 팔지 누가 팔아요? 필요 없죠?
are, we를 빼면 are도 필요 없죠?
selling, 그럼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팔지 사나요? 필요 없죠?
fresh, 썩은 생선이라고 쓰는 가게 있어요?

멀리서 보이게 "Fish"만 크게 쓰면 되는거 아닌가요?
글은 짧고 간단하게 쓰도록 하세요!"

아..... 그땐 정말로 쥐구멍에라도 들어 가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그 후, "We are selling fish"는 보고서 뿐 아니라 내 글쓰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문장은 되도록 짧게 썼고,쓸데 없는 반복은 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요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책들이 인기다.
소설가나 전업 작가가 될 목적이 아닌,
보고서나 제안서를 더 잘 쓰고 싶은 회사원들과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이 책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글의 신뢰도를 높히기 위해 "평소 주요 통계를 챙겨두자"고 말한다. 난 이 포인트 하나에서만 책값은 건졌다고 생각한다.평소 신문을 읽으면서 인구,주택 보급률 등 주요 통계는 스크랩 해 두어야 겠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강준만 교수는 말한다.

"독자들께서 판단할 일이긴 하지만,나는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중립'을 지키고자 무진 애를 썼다.이념적,정치적으로 뜨거운 쟁점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지키면서 논리전개의 방식에 대해서만 평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건 분명하다.나는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좌우,여야를 초월하고자 했지만,과연 그랬는지 그 평가는 독자들이 할 일이다."

본문을 읽으면서 강준만 교수가 정말로 "중립"을 지켜서 놀랐다. 어떤 주장을 하는가에 관계 없이, 논리 전개가 뛰어 나면 조선일보 사설도 예를 들며 칭찬한다. 예상하지 못한 강준만 교수의 유연한 태도에 놀랐다.

이 책은 스타일 중심의 글쓰기를 강의하는 책이 아니다.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가,  "글쓰기로 세상보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친절한 강의다. 왜 친절하냐면, 풍부한 사례와 사례별 비교가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내용이 평이하고 쉽기도 하다.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보고서, 제안서를 쓰고 싶은 회사원들에게.
회사에서 뭐 하나 써서 내라면 일단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회사원들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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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5-0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쓸데 없이 길게 쓰지 않나 생각되네요. ㅡㅡ;;;

드팀전 2006-05-01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글을 짧게 써야되는데...켁켁....요즘 저도 자꾸 페이지가 넘어가요.내용이 어려워서그런것도 있지만 잘 정리가 안돼서 인용하고 쓰면서 정리하고 이러다보면 역쉬 길어져요.짧게 하는게 길게 하는 것보다 어려워요.분명히...

글샘 2006-05-0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이 오두진에게 시킨 <고종, 스타벅스...>를 보고 그가 좋은 교수란 걸 알았습니다. 저도 대학 때, 교수들에게 <권위 의식>말고 뭐 좀 배운 게 별로 없단 생각이 드네요. 맞습니다. 짧게 써야 되는데... 글 못쓰고, 잡생각만 많은 사람이 길게 쓰죠. 저도 그 부륩니다.ㅋㅋㅋ

kleinsusun 2006-05-0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글을 짧고 간단하게 쓰는거 참 어렵죠? 저도 항상 고민하는 문제예요.^^

드팀전님, 맞아요.분명히 짧게 쓰는게 훨씬 어려워요. 내용이 명확하게 이해가 안될 때 길어지기도 하죠.ㅎㅎ 요즘 페이퍼에 올리시는 시들 잘 읽고 있어요.덕분에 저도 건조한 하루를 시로 시작하고 있어요.^^

글샘님, <고종,스타벅스...>는 읽어보지 못했네요.강준만 교수처럼 수업준비를 많이 하는 교수가 많다면 정말 등록금이 안 아까울 것 같아요.학교 다닐 때...자기가 쓴 교재나 팔려는 교수들도 있었어요.ㅠㅠ 글을 군더더기 없이 쓰려고 항상 노력하는데 쉽지 않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6-05-0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생활에서의 일화를 곁들인 간결한 서평~ 이 책 일단 보관함에 담습니다.^^;

kleinsusun 2006-05-0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 발바닥님, 기회 있으면 한번 읽어 보세요. 전 큰 도움을 받았답니다. 또 재미있기도 해요.^^

2006-05-02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벌식자판 2006-05-02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장바구니에 담아놔야겠네요.
이런 책은 사서 두고 두고 읽어도 남는 장사일 것 같아요. ^^;

세벌식자판 2006-05-02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우리글 바로 쓰기" 란 책 읽어보셨나요?
기회가 되신다면 그 책들(3권짜리입니다)도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kleinsusun 2006-05-0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판님, 안녕하세요!
이런 책은 진짜....남는 장사라고 생각해요.^^ 글쓰기에 당장 응용할 수 있답니다.이오덕 선생님 책은 다 갖고 있어요. 최종규님 덕분에.^^

nada 2006-05-06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미있는 상무님이시네요. 그래도 공개적으로 저렇게 말씀하신 건 수선님께 애정이 있으셔서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kleinsusun 2006-05-06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상무님은 지금은 고인이 되셨어요.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답니다. 인생은 참.....알 수 없는거죠?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마늘빵 2006-05-1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당선당선.

2006-05-10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06-05-11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06-05-1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kleinsusun 2006-05-1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속삭이신님, 울보님, 혜경님, 감사합니다.^^
이번 달에 지름신이 내려서 옷을 많이 샀거든요. 그래서 책을 한권도 안사야지...생각했었는데 이달의 리뷰가 되었네요.ㅎㅎㅎ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플레져 2006-05-12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락. 이제사 봤어요.
축하해요, 수선님! 요새 물 오른 글쓰기를 하시더니만!! ^^*

kleinsusun 2006-05-13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