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과 우연을 넘어서 - 과학이 외면해온 경이로운 의식 체험의 기록들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지음, 유기천 옮김 / 정신세계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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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가 심령적 위기라고 언급한 내용은 누구나 인생을 살며 맞이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삶에 대한 총체적인 회의... 주로 예전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인생무상을 이야기 하는 대사가 등장하던 그런 상황을 이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누구나의 삶에서 반드시라고 할만큼 겪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배우자의 배반, 자식의 실망스런 일탈, 시종일관하던 일의 전도(사업의 실패 등), 믿어마지 않던 동료나 친구 후배 형제의 배신 또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사고나 사건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 상태 등 우리 누구나가 한번쯤 삶의 여정에서 겪을 법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누구나 그 삶의 과정 속에서 방황하고 선택하며 후회하거나 뿌듯해할 감정적 기복과 교훈을 얻을 것이다. 


이러한 여정을 저자는 우리가 진화 내지는 각성할 기회라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전체의 내용이 저자 자신과 저자의 전 부인의 체험이 주를 이루며 다분히 개인적인 체험의 기록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책을 읽는 중도에 지루해 읽기를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완독을 마친 지금 인생 전체가 거대한 교육의 장이라는 인생의 모든 체험과 행위가 가르침의 도상 위에 있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관점이 새로이 다가오는 것 같다. 우리가 심령적 위기의 상태에 놓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생의 의미를 일러주는 우연의 연속이 거듭된다고 한다. 우리가 모태에 잉태되어 있던 순간과 출생 과정 그리고 출생 이후의 의식차원에서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모든 여정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에서 지닌 자각 못할 만큼 뿌리 깊은 정서적 관계적 문제들이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생을 기억하거나 우리로서는 정신질환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상황까지도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각성시키는 여정이 된다고 한다. 


사실 전생 퇴행이 우리의 내외적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음은 이미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문제라 인식하던 부분들이 우리가 그러한 문제들 속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사회에 대한 생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을 기회라는 것 역시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관점이다. 


하지만 그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책이 인생의 어느 순간 이를테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한 심령적 위기 상태에 놓인 누군가에게 주어진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래장의 의미나 불성론의 의의나 또 이태영님의 <요가>에 수록된 쉬바상히타 3장 74절의 카야비우하(kayavy uha)에 대한 주석(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내생에 숙명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육체를 만들어 미리 업의 결과를 모두 경험하게 하여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게 한다)에 대한 진정한 심의가 다시 와닿는 계기로 작용할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그 순간이 생의 고난들로 부터 새로이 눈뜨며 피어날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스티븐 휠러씨의 <이것이 영지주의다>를 보자면 영지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불교나 요가의 깨달음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측면, 또 하나는 백마법의 멜카바 명상처럼 단계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상승시켜 나가는 가르침을 담은 환영의 측면...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적극적 심상화'등의 의미나 꿈과 환상 등을 분석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라 여겨진다. 


마치 영화처럼 -[머쉬니스트]나 [매치스틱맨]과 같은 영화들처럼-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이(슈퍼내추럴에 근거하자면 더욱 와닿겠지만)... 그것이 아무리 심대한 혼란과 아픔을 통해야 하는 것일지라도 끝내 우리를 치유와 성장으로 이끄는 것인가 보다. 


그래도 많이 아프고 싶지만은 않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곧 인류 전체가 심령적 위기 상황에 놓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리라 짐작된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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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08-19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08.01.30 타사이트에 올린 글을 옮겨옴

한수철 2017-08-20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일상적 위기 상황에서처럼, ‘심령적 위기 상황에 놓이는 순간‘에도 결국 문제의 타개를 위한 자기긍정의 ˝회복탄력성˝- 회복탄력성은 ‘우연의 세계라는 책에서 가져온 용어입니다-의 강화가 해결 과정에 있어 주요한 관건일 것 같은데요.

그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이하라 2017-08-20 09:55   좋아요 0 | URL
회복탄력성만큼이나 당면한 상황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주어진 상황 그 자체, 심령적 위기 상황 그 자체가 심령적 문제 해결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내용이기에 회복탄력성에 대한 것은 주제와 거리가 좀 있는 내용입니다

한수철 2017-08-20 10:19   좋아요 0 | URL
음, 마침 동네 도서관에 책이 있네요. 비가 그치면 빌려와야겠습니다. 모쪼록, 빠른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성격이 급한 편이라.ㅎㅎ^^

이하라 2017-08-20 10:53   좋아요 0 | URL
약간은 지루한 책이지만 즐거운 독서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슈퍼내추럴 - 고대의 현자를 찾아서
그레이엄 핸콕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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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DNA 중 3%를 제외한 나머지 97%의 DNA는 정크 DNA(junk DNA)라 하여 아직 그 기능이 해명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 한다. 더욱이 치프의 법칙이라 하여 빈번하게 사용되는 어휘와 그다음으로 사용되는 어휘 사이의 사용빈도가 -1의 기울기를 가진다는 통계연구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어휘의 사용빈도가 '10000'번이라 할 때 10번째 자주 사용되는 어휘는 '1000'번, 100번째 자주 사용되는 어휘는 '100'번 반복 되게 된다는 어휘 사용빈도의 통계학적 법칙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통계학적 법칙이 정크DNA의 화학적 요소 간의 결합 구조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도대체 산문일지 운문일지 모를 이 기록이 전하고 있는 것이 무얼지 궁금해마지 않을 수가 없다만...) 

는 결코 우연의 산물일 가능성은 배제 되어야 하리만큼 명백히 의도를 가지고 조작 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라는데... 


이 책은 원시시대의 벽화부터 중세의 요정설화, 현대까지의 UFO피랍 사례들을 예로 들며 이 모두가 변성의식 상태하에서 겪은 실제적 체험이었음을 증명하려 한다. 인체와 동물과 곤충과 식물까지 생명체 전체에서 발견되는 DMT라는 화학 성분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를 매개로 변성의식상태로 접근하는 것인데, 그러한 상태를 유도하는 방편으로 일부 마약 성분류의 섭취 흡입 주입 등의 방법이나 특정한 호흡과 춤 등의 격렬한 동작이 사용되며 그리하여 유도된 변성의식 상태에서는 어느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다들 공유하는 특정한 반응 그리고 정보가 있음을 다소 산만하게지만 전달하고 있다. 


외계인이 물질과 비물질 양측면 모두로 호환 가능하다는 결론에는 적극 공감이다. 그로하여 외계인이 다른 평행우주와 이 세계의 틈을 통해 오고간다는 논리로 확장 가능한 시각에도 적극 공감한다. 


미약하게나마 물질 세계와 비물질 세계가 모두 공유 가능한 객관 세계라는 우주의 구조에 대한 최근 이론물리학의 견해를 마지막에 일부 얼핏 짚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산만하고 체계적이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사실 DMT 등으로 활성화된 우리의 초월 의식이 어떻게 정크DNA에 입력된 정보를 읽어내는지에 대한 연구나 가설에 대해서는 이 책에선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그저 하나의 억측과 공상일 뿐인 이야기로 매도 당할 우려가 있을 논리를 아슬아슬하게 펼치고 있다. 사실 이런 억측에 더한 억측하나를 얹어주자고 한다면... 나로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정크 DNA가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론 지프의 법칙에 의거하자면 어떠한 정보가 담긴 것도 사실이겠으나 정크 DNA에 접근하여 우리가 정보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정크 DNA란)그저 에너지적인 파동하는 우주의식에 접속하는 기능을 가진 구조의 수신기 역할의 매개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무어냐 같은 말 아니냐 싶겠지만 이 책의 논리는 초월의식 상태에서 정크 DNA에 기록된 홀로그램적 정보에 접속하여 정보를 읽는다는 것이고 나의 말은 정크 DNA자체는 그저 우리의 기능을 변환 시키는 매개적 역할을 할뿐이며 이 책에서 말하는 수신기적 역할을 하는 본체는 살아있는 전자기장으로써의 우리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를 이루는 전자기 장 자체가 우주의 모든 생명체 전체와 장적 연계를 갖으며 우주 그 차제(행성,위성,우주의 구성 물질 전체)와 장 차원에서 교류 하여 이 책에서 등장하는 모든 초월적 체험들과 정보의 전달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이미 루퍼트 셸드레이크씨, 프리초프 카프라씨와 이차크 벤토프씨가 주장했던 바이며 동서양의 거의 모든 비교(秘敎) 문헌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내용과 맥을 같이 하는 논리이다. 


우리는 개체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이루는 부분이라는 유기체적 관점 이것이 최근까지의 이론물리학이 제시하는 과학 속의 철학, 과학 속의 종교성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의 저자 스타니슬라프 그로프가 말한 '심령적 위기' 상태라는 것이나 이 책에서 주요 내용 중 하나인 변성의식 상태라는 것 또한 개체로서의 우리가 전체를 이루는 부분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며 전체에 접근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책이나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나 <홀로그램 우주>라는 책 덕분에 향정신성 의약품에 대한 반감보다는 동경이 생겨날까 상당히 우려된다.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라는 책도 그렇지만 근래 신경심리학 이나 분자 생물학 관련서들을 보면 우리가 구조적으로 신비를 체험할 수 밖에 없도록 제작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해도 LSD 등의 마약류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호흡을 매개로 하는 수행체계들이나 쿤달리니 요가 등의 에너지 순환체계 그리고 서양 어느 신비가가 주장했다는 신성한 춤 이나 마라토너들의 러너스 하이 등을 통해 또는 온전한 섹스를 통해 충분히 초월 의식으로의 진입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DMT나 LSD등을 제외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으로 뇌를 구조적으로 훼손하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수행이나 미친듯이 달리기나 미친듯이 섹스에 탐닉하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이 책과 일부 책들에 등장하는 인체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들과 화학구조가 유사한 의약품이나 약용식물들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시중에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마약류등은 다니엘 G. 에이멘씨의 <당신의 뇌를 점검하라>를 근거로 보더라도 치명적인 뇌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초월적 체험은 다양한 방편을 통해 경험할 수 있으니 자신을 훼손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선택은 하지 마시라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변성의식 상태를 반드시 체험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비그야나 바이라바 탄트라의 역본이자 강의록인 오쇼 라즈니쉬의 <탄트라 비전>을 권하고 싶다. 권하는 이유는 읽어보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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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08-19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08.01.30 타사이트에 올린 글을 옮겨옴
 
이것이 영지주의다 - 기독교가 숨긴 얼굴, 영지주의의 세계와 역사
스티븐 횔러 지음, 이재길 옮김 / 샨티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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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그노시스적 사유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영지주의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분들께는 탁월한 선택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드려도 되겠다 싶다.

 

'그노시스'를 주로 '영지靈智'라 번역하는 데 학문으로서의 '그노티시즘'이 아닌 '그노시스' 그 자체란 무엇일까하는 의문에 대해, 저자는 그것을 분명한 경험적 근원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라 정의하며 그 '경험'을 '환상적인 경험'과 '합일적인 경험'으로 분류하고 있다.

 

합일적 경험에 대해서는 이전 <유럽의 신비주의> 리뷰를 쓰며 동서양의 수행체계와 신비에 대한 인식의 근사성을 언급하며 논했었는데, 여기서 주의를 조금 환기 시키는 것은 '환상적인 경험'이다.

 

이는 서양의 마법 체계 중 백마법 장르에서도 중시하는 대목인데 카발라의 멜카바 명상을 근거로 한 백마법은 하나님의 진정한 천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백마법을 통해 체험함을 의도한 마법의 기법으로서 <모던 매직>의 저자 도널드 마이클 크레이그 씨는 영적 준비가 무르익으면 꿈과 환상을 통해서도 같은 체험에 이를 수 있노라는 식의 말을 했었고, <힐링드림즈>의 저자 마크 이안 바라시 씨 또한 우리의 영적 성장을  진일보시키거나 우리의 합일성을 자각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보이는 신비한 꿈(자각몽)을 통해 우리가 성숙을 향한다는 언급을 하였었다.

 

'환상적 경험'이란 이러한 꿈과 환상을 통한 내적 장애들과 문제점들이 치유되며 내면이 함양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것이 영지주의다>에서 언급된 '영지주의' 관련 정보나 저자의 식견 전체를 논할 수는 없지만 한가지만은 꼭 짚어 보아야할 것 같은데 책 전체를 꿰뚫으며 일관되이 저자가 논하는 창조된 세계의 '조물주'인 '데미우르고스'(얄다바오트, 사클라스, 사마엘)와 창조된 세계의 불완전성에 대한 저자의 주장들이다.

아포크리파의 내용들을 언급하며 이 세계의 창조자가 불완전한 존재이며 피조물인 우리를 이 세계에 한정지어 두기 위해 유혹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묘사하며 그러한 불완전한 존재가 창조하였기에 불완전하고 황폐하기만 한 세계인 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라고 저자는 경솔하게 단정 짓고 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너희의 재산을 이 세계에 쌓으려 하지 말고 천국에 쌓으라는 식의 말씀을 하시며 이 세계의 한정성과 불완전성을 언급하셨고 부처님께서도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말씀하셨다. 허나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 하셨고, 부처님께서는 불성佛性에 대해 또 여래장如來藏에 대해 말씀하셨음을 종교관련 연구가인 저자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된다.

 

특히나 외경들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설파하셨다는 이 세계의 무의미함에 대한 언급들에 주목시키며 계속되는 저자의 논리는, 그럼에도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논지를 진행시키기 위해 접어둔 듯이 보이기만 하였다.

 

하나님이 직접 선택했다는 유태인들의 면면을 보면 (구약의 전체를 이루는) 그들의 역사는 실족과 폐륜 그리고 경악의 역사일 뿐이지 않은가?

이러한 불완전한 인간을 그리고 이러한 불완전한 인간들이 헤아릴 수도 없는 고통을 양산해내며 살아가는 불완전한 세계를 창조주는 왜 만들어 내신 것일까? 이런 의문이라면 기독교 교리를 처음 접하거나, 오랜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신앙적 회의에 빠지는 순간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을 것이다.

스티븐 휠러 씨라면 주저 없이 답변하리라 생각된다. 불완전한 창조주이기에 불완전한 인간과 불완전한 세계를 창조해낼 수밖에 없었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불완전 했던 것일까?

창조주는 물질 세계만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생명체를 창조함으로서 특히나 인간으로 대표되는 지적생명체들을 창조함으로써 사랑 정의 열정 따위의 감성에 기반한 것들과 관습과 도덕등 윤리의 모태가 되는 것들, 법률, 사상, 과학, 문화 등등 모든 비물질성 마저도 창조한 것이지 않은가?

이 세계에서 가능한 모든 인간의 사유와 선택으로 야기되는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 또한 창조론적 관점 하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인간은 긍정적인 것, 부정적인 것 그 모두를 양산해내며 이 세계에서 발전하고 갈등하고 좌절하고 재기하고 그렇게 희망과 절망을 거듭하며 성장해 오지 않았나?

(물론, 현시대 상황만으로는 발전을 말하기엔 모호하지 않나 싶지만...)

 

이것은 동양의 음양론이나 또한 같은 의미일 서양의 대대(원어로는 뭔지 모른다. 찰스 폰즈의 <카발라>에서는 대대라 언급한 음양에 해당하는 개념)를 떠오르게도 한다. 인간은 이 세계에 헤아릴 수도 없는 문제들을 양산해내지만 또한 그 헤아릴 수도 없는 문제들을 통해서 또는 그것에 저항하거나 그를 해결해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하지 않는가? 

 

인간을 관계성의 원리(불가의 緣起)를 통해 영구적으로 끊임없이 문제의 양산과 성장을 거듭해 가는 존재로 제작한 것은 하나님의 탁월하신 계획이지 불완전함이 아니라 여겨진다.

 

-불교에서 부처님 가르침이 일승(깨달음과 그에 이르는 과정)을 말씀하시기 위해 삼승(일승에 3가지 다른 방편이 있다는)을 말씀 하신 것과 같이...

각자의 근기와 오성(달리 표현하자면, 내적 수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가르침의 수준을 달리 하신 것과 같이...

영지주의 또한 캐논(예수님 사망과 부활 200 여년 후부터 몇 차례에 걸친 종교회의의 결과 정립된 현재의 구약과 신약경전, 그 이전에는 <아포크립파>라 불리는 외경과 동등하게 전혀 구별없이 통용되었다고 한다)과는 다른 가르침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가르침의 방식과 정도를 달리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像이 정형화 될 수 없음을 상징으로서 전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리라. 그것이 서양인 특유의 정언적 논리에 부합되며 저자가 지적하는 무한한 하나님과 유한한 하나님(저자가 말한 불완전한 하나님)체계(카발리즘)를 탄생시킨 것이리라.-

 

아담과 이브가 실락을 맛본 것이나 카인(형제를 죽이고), 노아(하나님의 지시로 방주를 통해 살아남는 은혜를 받고서도 술주정뱅이 짓이나 하였다), 아브라함(죽음이 두려워 자기 아내를 여동생으로 속여 다른 남자들에게 보냈다, 하나님이 죽이란다고 제 자식을 죽이려했다), 롯(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제외되는 혜택을 입고도 가장 먼저 근친상간부터 했다), 여호수아(하나님의 지시라며 이교도라는 이유만으로 연령과 성별의 구별없이 각지의 사람들을 전멸시켜 버렸다), 다윗(부하장수의 아내를 탐해 부하장수를 죽을 것이 뻔한 전쟁에 고의로 출전시켜 죽이는 등 부도덕함이 극치에 이른다), 솔로몬(하나님으로부터 세계 제일의 지혜를 은혜로 받고도 결국 배교한다)등등 구약 전체를 꿰뚫는 인물들을 보더라도 하나 같이 문제 많은 인간들일 뿐이다. 그리고 현시대만 보더라도 이제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숱한 문제들이 심대하게 인간을 역습할 숙명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문제 많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인간은 제 몫의 삶 속에서 아프게나마 성장해 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지 않은가?

신약에서 예수를 죽이라 하나같이 사주하고 아우성치던 무리들도 바로 유태인들이었지 않은가? 그리고 2000년이 넘도록 우리 가슴 깊은 곳에 메아리로 울리고 있는 한 인간의 사역과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상징성을 몸소 보여준 이 또한 유태인... 바로 그들 중 한명이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면모 중 하나라 여겨진다.

 

이 시대에 만연하는 기아와 질병과 전쟁과 기만 등 이기주의와 무관심으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문제점들도 그리고 나날이 점증하며 보여지는 대재앙의 전조들도 이미 요한계시록이나 4개 복음서에서도 예수님께서 직접 언급한 내용들과 일치하고 있다. 이전에 이미 언급하였듯 나는 이것을 의도된 것이라 추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적 유도 역시 진실로 이를 기획한 분의 자기충족적 예언이 완수되는 요소이며 이것이 진정 새로운 시대로의 전제일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독교의 바이블이나 불교의 경전들을 근거해보아도, 이 불완전함 속에서마저 우리 안의 것을 우리가 낳을 수 있는 구조로 우리를 만든 것이 하나님임을 자각할 시대가 되리라 못내 기대된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환희의 송가>가 울려퍼질 그 순간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두루 도는 화염검이 생명나무를 지키도록 한 하나님의 지시 또한 때가 이르러 준비된 후의 인간들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취하게 되기까지,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인간에게 임하도록 하려 않은 하나님의 배려이신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피조물까지도 자신과 같아질까 봐 질투하는 하나님의 모습 따위는 정말이지 불완전함에 머물기에 지루하지 않은 인간이나 지니고 싶어 만든 논리가 아닐까?

 

자신과 같아질까 두려웠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본따 우리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자(창세기 1:24)"며 인간을 자신과 같은 구조로 만들었겠는가?

 

인간이 '불완전하다' 인식하는 것도 하나님의 완전함 속에서는 인간을 완성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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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08-11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 사이트에 2007년 5월 18일에 올렸던 것을 옮겨왔습니다
 
소스필드 - 그 모든 의문, 그 모든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
데이비드 윌콕 지음, 박병오 옮김 / 라의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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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주기에 대해서 언급한 책들 중에서도 이런 설득력과 일목요연함을 갖춘 저작은 드물 것이다. 본서의 2부는 무엇 보다도 세차운동... 우주가 그려내는 내지는 우주의 근본구조인 신성기하학을 바탕으로 신비주의와 과학을 아우르는 주장을 펼친다. 


뉴에이지 운동시기에 포톤벨트의 정렬인가(?) 지구와 태양계, 우리은하계, 대은하계의 영향력으로 인간은 변화하고 진화된 인류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거란 내용의 예언서들이 넘쳐났었다. 헌데 이 책 《소스필드》의 통찰들을 보면 그간의 채널링 저작들이 그 변화를 설파하는 중의 설득력이 얼마나 유치한 수준이었던 것인가를 알 수 있다. 


1부 부터 크고 작은 신비적 분야들을 언급해나가면서 대변혁을 자연스럽게 납득하도록 만드는 저자의 필력에 약간은 감동했다. 다만 지금은 벌써 2017년인데... 어쩔겨~ 이런 반문이 일기도 했다. 하긴 ±몇백년에서 몇천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는 것이지 해야겠지만 가장 빠른 시기 안에 별변화가 없다면 저자에게 좀 실망은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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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필드 - 그 모든 의문, 그 모든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
데이비드 윌콕 지음, 박병오 옮김 / 라의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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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익숙한 내용들이었지만 이렇게 맥락을 연결지어 꿰뚫는 저서는 더 반가운 게 사실이다.

현재 1부2부로 나누어져있는 저작의 1부까지를 읽어본 결과 이런 분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남다른 분들은 놓치지 말아야할 저작이라고 생각된다.

중학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식물의 정신세계』와 『생명과 전기』, 『초자연, 자연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세상을 바꿀 일곱가지 실험』, 『탄압받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발견』, 『피라밋 파워 히란야 파워』, 『살아있는 에너지』, 『홀로그램 우주』, 『필드』 등등의 책들을 좋아했었다. 그 퍼즐 조각 하나하나 같은 책들의 내용들이 소스필드에 와서 하나로 대통합되는 느낌이다. 


식물과 동물과의 정서적 영적 교감, 명상가들의 세계에 대한 영향력, 유체이탈, 자각몽, 원격투시, 원격치료, 피라밋 에너지의 진정한 영향력, 세차운동 등등 너무도 익숙한 내용들도 있었지만, 더더 충격적인 것은 DNA유령 효과와 은하시소 운동이었다. 솔방울샘의 기능에 대해 언급하던 초반 부터 『태을금화종지』(서양에서는 '황금 꽃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더 익숙할 그 책의 원본)의 수행법이 떠올랐지만 DNA유령효과에서 중국의 '영보필법'이나 티벳의 '대장공' 수행법의 진짜 심의가 느껴지는 듯 했다. 은하시소운동은 증산도의 『이것이 개벽이다』 같은 도서에서 보았던 지구의 지축변이(세차운동) 이후 새세상이 열린다는 내용이나 뉴에이지 운동이 한창일 때 범람하던 채널링 서적들에서 이야기하는 황금시대 운운하던 예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른 많은 과학적 영적 저작들의 주장에는 열려있었지만 세차운동 이후 격변이 일며 새시대 새인류가 등장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인도신화와 로마신화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신화상의 내용일 것이라고 나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들의 일관성이 강력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1부만으로도 독자적인 하나의 저작이 될 수 있을 책인데 이후 2부도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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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3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2013년에 처음 나오고, 올해에 다른 출판사를 통해서 나왔군요. 똑같은 표지의 책 두 권이 보이길래 1, 2권인 줄 알았어요.. ^^;;

이하라 2017-07-31 17:43   좋아요 0 | URL
네, 출판사를 옮겨서 재출간했더라구요 번역한 분도 똑같은 같은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