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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논산훈련소를 떠나 새벽에 도착한 곳은 용산TMO.

옆에 있던 동료들이 쓰리쿼터 트럭에 올라타서 마지막 담배 일발장전을 하던 모습이 선하다. 낙하산에 날개가 달린 문장을 보니 영락없는 공수부대 행. 필터 끝까지 타들어가던 꽁초를 털어 윗호주머니에 넣고 <사나이로 태어나서>를 목 터지게 부르며 새벽 안개속으로 떠나가던 그들.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나는 용산역 안팎을 샅샅이 청소하면서 날 데려갈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오렌지색 운동복에 슬리퍼를 끌고, 위에는 야전상의를 대충 꿴 상병님이 나타나더니 검지로 까딱까딱 날 불렀다. 그날 나는 검정색 세단 뒷자리에 앉아 헌병의 받들어총 경례를 받으며 쏜살같이 국방부 안으로 들어갔다.

 

대한민국에 딱 세명 있는 국방부 장관실  행정병. 그게 내 보직이었다. 다들 안 믿지만 빽은 없었다. 여하튼 현역병 숫자가 장군 수보다 적다는 곳. 12.12의 주역들이 머릿기름 번질거리며 무시로 들락거리는 곳. 현관에 그 유명한 국방부 시계가 돌고 있는 그 곳에 나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오도카니 앉아 있게 됐다. 

 

며칠 후 내겐 두 장의 신분증이 지급됐다. 뒤에 문서수발병이라고 적힌 국방부출입증. (휴가때 대학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한 여자애가 깔깔 웃으며 하는 말. <너 거기 가서 문서 수발드는구나. 진급하면 문서 수청병이 되겠네.>쪽 팔렸다. 재수없는 계집애. 그 아이는 모대학 영문과 교수가 됐고 지금도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별 안되는 말을 하고 다니며 물색없이 욕을 먹는다는 소문.)

 

또 한 장은 아주 특이한 노란 색의 <비밀취급 인가증>. 실제론 일급비밀까지 취급하는데 사병이라서 이급 인가증을 준다고 했다. 군대의 특성상 남들에게 없는 신분증은 그 자체로 권력이었다. 일상업무에선 단 한번도 쓴 적 없는 이 신분증은 휴가 때나 외박땐 나의 수호신 노릇을 단단히 했다. 시외버스를 타면 예외없이 무서운 헌병들의 검문을 받게 되는데 나는 이등병 시절부터 결코 휴가증 따위의 종이 쪽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너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쳐다도 안보고 노란색 비취증을 두 손가락으로 척 꺼내주면, 헌병들은 예외없이 워커 뒷꿈치를 딱 소리나게 붙이며 <수고하십니다.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경례를 하곤 했다. 간혹 이게 뭔가 싶어 요리조리 구경하는 촌놈 헌병에겐 <너 밤샐래?> 한마디면 족했다. 옆에 애인이라도 앉아있을 양이면 그 으쓱함은 대통령도 안부러웠다.

 

우리 사무실 금고에는 빨간색, 노란색으로 X표시를 한 비밀문서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때 나는 이미 실미도 사건, 북파공작대, 다대포 사건 등의 극비를 알고 있었지만, 죄다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일 뿐. 정작 비밀문서의 내용들은 하나같이 재미도 없고, 뭐 이런게 비밀인가 싶은 것들 천지였다. 하지만 어쩌다 그걸 수발(?)들 때면 엄청 긴장하게 되는 것은 그놈의 X표시 겉장 때문이었다. 이른바 X-파일이었던 것이다.

 

X-파일이란 말이 대중화된 것은 멀더와 스컬리라는 FBI요원이 등장하는 미국 TV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부터. FBI의 영구미제사건 기록중에 극비로 분류된 것을 X-파일이라고 한다는데 실제로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워낙 뒤가 구리고 암수가 많은 친구들이라 뭔가 그 비슷한게 분명히 있으리라는 심증은 가지만 없다는데야 뭐. 어쨌든 그 드라마 이후 우리 사회엔 X-파일이란 이름의 괴문서들이 심심찮게 출몰했다.

 

최근 버전은 <연예계 X파일>이라고 알려진 연예인 종합평가 어쩌구하는 문건이었다. 그동안 연예가에서 횡행하던 괴문서들은 대개 음해성 루머 또는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황당무개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건은 제일기획이라는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가 CF모델 캐스팅자료로 작성한 공식문서라서 쯔나미의 충격을 방불케 한다고 입방아가 대단들하다.

 

나 역시 비밀취급을 해온 남다른 경력으로 그 X-파일이란 걸 들춰보게 됐다. 가나다 순으로 연예인들 이름과 그들의 장단점, 사생활, 성격, 향후 전망, 상품성 등에 대해 정말 되는대로 적어놓은 3류 저급 문서였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훑어보다가 나중엔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생각. 이러니까 우리나라 광고업계가 요모양 요꼴이군. 그 똘똘한 것들이 앞다투어 들어간 광고업계가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는 이유를 궁금하게 생각했었다. 이런 류의 문건을 자료랍시고 돌려보면서 광고의 핵심인 모델을 선정한다니 한심한 노릇 아닌가. 너희들도 많이 힘들겠구나.  

 

두번째 생각, 그 문건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기자, 매니저, 리포터 등도 답답한 인사들이긴 매 한가지. 그래도 그 동네 마당발이요, 전문가랍시고 자문을 해줬을텐데, 어디 단 한구석도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분석이 없이 <그 놈 싸가지 없어><걘 안돼> 수준의 인상비평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번째 생각, 그걸 갖고 호들갑을 떠는 매체들의 경박함도 그냥 넘어가기 아깝다. 내가 아는 한 그걸 본 사람들은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이다. 군대 비밀처럼 별 재미도 없고 그저 그런 정도다. 지금은 기억조차 안난다. 그런데 인터넷 매체 등에선 마치 대단한 사고라도 터진 양 연일 <연예계 X-파일>관련 선정성 기사들을 쏟아내며 대목 만난 듯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기사들도 하나같이 함량 미달에, 독자 농락 수준인 건 말할 나위 없다. 

결국 연예계 X파일도 내용은 별 볼일 없는데 겉장만 씨뻘겋게 X자를 그어놓은 꼴이다.

 

살다보면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집단과 사회에 영향을 미칠 만한 정보 중에 영원한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인간에겐 <대답 본능>이란게 있다. 물어보면 제 발등 찍을 줄 알면서 자꾸 대답하려고 한다. 그래서 묵비권이 있어도 사람들은 그 권리를 행사하는 걸 몹시 힘들어한다. 덕분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 기자, 검사, 선생님, 임성훈(퀴즈가 좋다) 그리고 코치들이다. 어쨌든 누군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 눈치채면 그 비밀이 무장해제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 비밀을 숨기거나 덮으려 할 때 항상 큰 사단이 난다. 워터게이트가 그랬고 광주와 각종 ~풍 사건, 대통령의 아들 사건들이 모두 그랬다. 반대로 르윈스키 스캔들을 비롯해 온갖 비리의 옴니버스였던 클린턴 일가는 영리하게도 뻔한 비밀을 고집하지 않고 적절한 고백을 통해 면죄부를 받아내지 않았던가. 대단한 클린턴에 더 대단한 힐러리가 아닐 수 없다.

 

비밀이 없는 나라, 싸구려 X파일이 없는 사회가 돼야 한다. 

지하철에 3류 주간지가 안팔리는 나라가 돼야한다.

비록 감춰진 카리스마는 없을 지언정

투명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서푼짜리 비밀 따위에 허투루 눈 돌리지 않고 사는,

그런 세상을 원한다.    

 

엊그제 대학 동창회에 나가서

<내가 입 벌리면 여럿 다쳐>라고 한 마디 했더니

어라 분위기 희한해지데.

학교 다니면서 과 커플로 소소한 염문을 일으켰던 것들이

죄다 내 눈치를 슬슬 보며 비위를 맞추는데,

거 기분 좋더구만.

 

얘들아 나 사실 아무것도 모르거든.

내 X-파일은 달랑 겉장만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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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30분. 외출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주섬주섬 외투를 꿰며 나의 모질지 못함에 짜증이 났다. K씨의 전화였다. 전직 고위공무원으로, 햇병아리 사장였던 나와 회사를 좌지우지하던 사람이다. 악연은 아니지만 그다지 좋은 인연이었다고 볼 수 없다. <어디 있냐?><분당 집입니다.><그래? 여기 청담동인데 모범타고 나와라><.........><나도 분당이잖냐. 이따 같이 들어가자구.> 배웅하시는 어머니는 늙은 아들의 엄동설한 밤마실이 걱정되시는지 연신 술마시지 말라는 말씀만 뒤통수에 더깨가 앉도록 하신다.   

불경기를 벗을 기미가 도통 안보인다.  강남에서 잔뼈가 굵어선지 청담동 인근을 획 지나가면 절로 느낀다. 밤 11시면 한참 흥청망청할 때. 그런데 적막강산이다. 조명도 침침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뜸하다. 여기가 이 정도면 딴 데는 보나마나다. 20년을 지켜 본 결과, 강남은 대한민국의 실물 경기를 드러내는 정확한 바로미터다. 현 정권의 청렴한 위정자들이 강남을 4대 개혁대상의 첫손으로 꼽았다더니 숫제 발걸음도 안하는 모양이다. 이동네에 단골집 하나만 있었어도 그렇게 불감하진 않았으리. 구중궁궐에 틀어박혀 있으면 세상이 자기들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게 마련이다. 문득 조금 후에 만나게 될 전직 공무원과 비교해보았다. 둘다 무책임하고 피곤하긴 난형난제요, 민폐의 크기로는 우열을 따지기 힘들다. 아나키스트들에게 존경의 꽃다발을.

K씨 덕택에 평생 안 겪어도 될 일을 치렀다. 결국 내 침잠의 큰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그는 검사앞에서 한사코 비리를 부인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검사도 바보가 아닌데 모를 리 없다. 지금 그가 이렇게 술집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딱 한가지.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돈 준 놈이 외국으로 도망갔는데 입증할 방법있나. 이년여 잠수를 타던 K씨는 <관재수는 없으니 걱정 말라>는 무꾸리 결과를 믿고 검찰에 출두했다. 그는 자기가 무죄라고 떠들었고(진짜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공연한 불똥이 튈까봐 어림없는 그 얘기에 맞장구를 쳤다. 내가 지금 그를 만나러 가는 건, 친해서도, 술이 그리워서도 아니다. 검사 앞에서 나와 웃기는 해프닝을 벌이고 그만 끝이었던 어처구니 없는 한 인연에 대한 맹목적인 애틋함이랄까.

<우선 살이 빠졌고, 둘째, 경제적으로 곤란한 것 같진 않고, 세째, 눈에 독품은 건 변함 없고.> 악수하면서 물끄러미 날 쳐다보더니 대뜸 인상분석부터 한다. (살 빠진 거 보니 부럽죠? 경제적으로 좀 도와주시구요. 눈에 독품은 건 술취한 당신이구마는.) 어찌 지내십니까....그저 이렇게 지내지. 너는?.... 보시다시피 백수 올습니다.... 뭐 할건데?.....아무 생각 없습니다.... 그러지 말구 얘기해봐..... 생각 있으면 이러고 있겠습니까?.... 그럼 너 이거 안해볼래? (주절주절).... 재미없네요.....이거 괜찮은 아이템이야..... (당신도) 하지 마세요.

녹차캔만 네개째 따고 있는 내게 물었다. <너 내가 어떤 놈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를 악물고 하면 안된다. 어떤 대답도 관계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며,  그 대답에 대한 질문자의 평가는 언제나 부정적이다. 잘 못 봤으면 잘못 봤다고 코웃음칠 것이고,  제대로 봤어도 너절한 변명이나 지어내면서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좋게 얘기해줘도 아니라 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죽을 때까지 앙심을 품는다.  따라서 그런 질문을 툭 던지는 자는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현재의 친소관계에 무관하게 그런 인간들은 치명적인 암살자들이기 십상이다.

<극단적인 가치 때문에 평생 고생할 인간이지요. 한쪽에는 터무니없는 욕심. 다른 한끝에는 나 혼자 잘먹고 잘살려는게 아니다 라는 허위에 찬 공인의식.  한때는 세상을 다 갖고 싶었겠지만 이젠 늙어버린 심신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을 허둥지둥 다시 찾아봐야 하는 조급한 인생. 사람들은 불신하면서도 자기는 믿어주길 바라는 이기주의자. 그나마 하늘의 보살핌으로 술추렴해주는 몇몇 친구들이 남아있는 인복있는 남자. 시간만 주신다면 더 얘기해 드릴 수도 있는데.>(이상은 속엣말이고 겉으로는 훨씬 부드럽게 돌려서 말했다.) 그는 예상대로 손을 휘저으며 <아냐 아냐> 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교과서적 인간이 맘에 든다. 어쩌면 이렇게 전형적인지 원. 그는 내게 대답을 원한게 아니었다. 자기가 어떤 놈인가를 들어주길 바랬던 것이다. <네가 비밀을 지켜준다면 얘기할께.>라며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그에게 <그럼 그만두시죠.>라고 말했다. 이런 거 보면 내가 꽤 단호한 놈인데 말야. 이런 양반은 동네 방네 자기입으로 얘기하고 돌아다니다가,  누군가 그얘기 알고 있다고 하면 대뜸 내 이름을 떠올리며 육두문자를 끼워넣을 사람이다.

수다는 여성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지만, 남자들의 비열한 수다는 말도 못한다. 연신 위스키잔을 비우던 K씨는 무슨 얘기 끝에 <엊그제 사람들을 만났는데 다 네가 한 일이라고 알고 있어>라고 했다. 십수년도 더 된 얘긴데, 당사자도 아니고 목격자도 아닌 자들이 바로 엊그제까지 만나 그런 얘길 쏘삭거렸다는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닳아지지 않는 혓바닥들과 시궁쥐같은 눈깔들.  한술 더 떠 K씨는 내가 자기를 찾아올 때 무슨 차를 타고 왔는지도 기억하고 있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날 몰아세웠다. <그 자들 총기도 대단하고, 게다가 요즘 신간이 편안한 모양이네요. 모여서 그런 수다나 떨고 앉아있고.>  한참 신이 난 K씨는 나에게 그런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이래저래 해야한다고 훈계(?)까지 했다.  남 걱정할 입장은 아닐 터인데. 여하튼 <그런 RSOB(Real Son of Bitch)들 보기 싫어서 그 동네 발 끊었습니다.><너 뭐할 건지 알면 걔들 글루 쫓아올까봐 말 안하는거지?>  그날의 대화는 이말 끝에 껄껄 웃음으로 끝났다.

자꾸 뒤따라 나오길래 <그냥 계시라>며 계속 주저 앉히고, 또 나오면 <왜 이러시냐>며 떠밀어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아마 조금만 더 싱갱이 했으면 필경 그는 오줌을 싸고야 말았을 거다. 현관문 옆에 화장실로 허겁지겁 뛰어들어가는 그를 보면서 나의 눈치없음을 반성했다. 씩 웃고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그가 외쳤다. <난 널 믿는다. 알지? 너는 일어설거야.>  (약주 고만 하십쇼 헹님. 글고 저 이미 일어서 있습니다 헹님.) 어디 포장마차라도 있으면 나발이라도 불겠구만. 이 동네는 포차도 죄다 들어갔네 그려.  빌어먹게 불경기로세. 엇 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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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2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23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택배로 온 책 보퉁이를 뜯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절세미인의 옷고름을 푸는 즐거움이 그에 비할까. 성정이 포악하고 손끝이 거칠어 처음엔 아무거나 들고 있던 것으로 무지막지하게 열어 젖히곤 했다. 그러다가 그 재미를 알고 부터 가급적 그 시간을 느긋하게 즐기려고 애를 쓴다. 개봉행위의 절정이라면 상자의 양 날개를 펼치고 널찍한 가슴을 열고 난 직후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투탕카멘의 황금관을 열듯, 그 안에 정말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흥분, 떨림.

게다가 나는 어제가 무슨 요일인지도 가물가물한 한자릿수 기억력의 소유자. 닷새전 쯤 주문한 책이 무엇인지 단 한권도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개봉의 신비감은 더욱 짜릿하고 감미로울 밖에.  음. 그날 난 마치 리마리오처럼 두눈을 지긋이 감고 입가엔 니끼한 미소를 머금으며 첫 대면의 환희를 만끽하려는데....

앗 이게 모야? 상자에 담긴 맨 위의 책은 촌스런 무지개색이 동심원을 그리며 파스텔톤으로 빛났다. 반투명 트레이싱 페이퍼로 만든 띠지(이걸 뭐라고 하던데. 여기선 띠지라는 우스꽝스런 이름이 어울린다)에는 반갑지 않은 이름의 만화가가 썼다는 <남자들의 속마음 어쩌구>라고 제목이 붙어있다. 내가 미쳤나? 이런 책이 왜 들어가 있는 거야? 혹시 딴데 갈게 여기 왔나? 상자 겉면을 뒤적거려 주소를 확인했다. 주손 맞는데. 쩝.

도날드닭으로 이름을 냈다가 요즘은 노빈손 시리즈로 지가를 올린다는 이우일군을 처음 만난 때는 96년 경이었다. 그때까지 신문에 나오는 만화는 고바우, 왈순아지매 같은 4단만화 아니면 2면에 한컷으로 나오는 만평이 고작이었다. 물론 스포츠신문은 논외로 치고. 전혀 새로운 신문용 만화를 생각했던 나는 홍대 출신의 아트디렉터에게 만화동아리 애들을 데려와 보라 했다. 야구모자를 쓴 떠꺼머리 총각들 몇이 왔다. 일주일 시간을 줄테니 신문에 집어넣을 만화를 그려오라고 했다. 컨셉은 섹시하게 젊은 애들 취향으로. 열흘 쯤 지나 눈이 쾡해서 나타난 그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못그렸노라 했다. 그중 한명은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 탈모증에 걸렸다고 울상을 지었다. 감당하기 어려웠을게다. 만화책도 아니고 국내 최대라는 일간지에 그것도 컬러면 반을 채울 사람이 몇이나 되랴.

한참 뒤에 나타난게 우일군이다. 배포가 있는 친구였다. 키가 멀쑥하고 눈이 찢어진게 전형적인 몽골계인데 웬만해선 주눅이 안들고 농담으로 맞장구를 치길래 이 놈 봐라 싶었다. 사실 그 친구를 알아본 양반은 인보길 사장이었다. 포트폴리오랍시고 남자 여자 성기만 잔뜩 그려놓은 포스터를 들고 사장실에 들어갔더니 인사장님 왈, <재밌다 야.> 그래서 우일의 신문만화가 시작됐다.

밖으로 나갈 얘기가 아니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는 신문에 만화가 게재되고나서야 지금의 부인하고 결혼승락을 득할 수 있었다. 맨 그런 그림만 찍찍 그려대는 정신나간 만화쟁이한테 귀한 딸을 줄 부모가 어딨을까. 그러나 그 신문에 만화를 올린다면 얘기는 완전히 틀려진다. 결국 장가가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게된 나는 <아무거나 소원있으면 하나만 말씀해보시라>는 우일군의 성화에 못이겨 당시 연령 제한으로 엄두도 못냈던 홍대앞 락카페를 그날 밤부터 새벽까지 다섯 군데를 도는 접대를 받았다.

나와는 면식이 없었던 광수는 한참 후 그 신문의 본지에 실려 이른바 광수생각으로 대박을 쳤고, 우일은 동아로 건너 가서 <도날드닭>이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걸고 전성기의 문을 열었다. 그땐 수많은 아이디어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신문만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일이 된 셈이다. 그래서 만화를 유독 싫어하는 내가 그 두 사람의 만화 만큼은 애정어린 눈으로 쭉 보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중 한사람이 오랜만에 낸 책을 그토록 흰눈으로 갈겨보며 타박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선 광수의 무사안일, 나아가 쟁이정신의 포기를 마뜩찮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책의 맨 뒤를 보면 이름 두자만 들으면 알만한 연예인과 그 언저리의 사람들로 장장 두페이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오랜만에 내는 책이라면 그동안 신세진 사람들에 대한 인사는 용납할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광수는 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돈주고 이 책을 산 사람은 아예 안중에 없다는 태도다. 원래 그런 인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이 나오는데 수고한 사람들의 노고를 함께 기억하자고 쓰는 것이다. 건방진 인사같으니라구.  도대체 내가 이문세와 황경신과 전화번호까지 적힌 허섭한 성형외과의사의 이름을 왜 기억해야 한단 말인가.

책 내용이 그나마 좋다면 눈을 질끈 감아줄 용의가 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기대조차 안했다. 스스로 유명인사 연하며 들떠서 다니는데 단 한치의 발전이 있을 턱이 있겠나. 결국 화장실에서 휘리릭 몇번 뒤적거리고 책꽂이 저쪽에 꽂아버렸다. 여자들이 궁금해하는 남자들의 속마음이라. 이 친구는 어쩌다 이런 내용의 책을 낼 생각이었을까. 한참 여기저기다 제 마누라 새끼 얘길 장님 산대 놓듯 주절주절 늘어놓더니 들리는 말에 이혼하고 딴 여자와 산다던가. 그래서 그 노하우를 다른 여자들에게 남김없이 전해주려는 선의일까? 

몇가지 얘기는 겉으론 그럴 듯해서 골빈 계집애 몇몇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지도 모른다. 허나 남자들의 그따위 속마음을 안다는 것이 여자들에게 도움이 될 리가 만무하다. 차라리 모르는 게 훨씬 낫다. 광수는 자기 딸을 생각해서 솔직하게 썼다지만 그도 제 딸에게는 정작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남녀관계를 그런 날라리 양아치 시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술한잔 찌끄리며 저희들끼리 킬킬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책으로 펴내는 건 잘못이다. 그 유명한 사람들과 매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얘기가 무엇이길래 고작 이런 입냄새나는 쪼가리 글밖에 못쓰는가.

차라리 우일군처럼 문 쳐닫고 애들 참고서 비슷한 만화책이나마 부지런히 그려 돈 잔뜩 버는 쪽이 훨씬 영리하고 사회적으로 유익하다. 서점에서 들쳐보니 내용도 그만하면 좋고 만화도 받은 돈 만큼은 성의있게 그려대는 것 같다. 자기 그릇을 보이기 창피하면 겸손해야 한다. 소설이나 시도 아니고 삼척동자들도 다 아는 만화를 그리면서 그리 눈가림하면 못쓴다. 분하면 일년동안 배낭여행 돌면서 고생 바가지로 하고 돌아와 컨셉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른 그런 만화를 그리던가. 고작 연예인들과 시시덕대며 사람들 눈길이나 즐기는 3류 환쟁이로는 얼마 못버틴다네.

뜨는 것도 어렵지만 떠있는게 더 힘들다. 패러다임을 만든 사람중에서 정말 성공한 자는 다음 패러다임까지 만드는 사람이다. 자기 패러다임에 안주하는 자의 무덤은 초라할 수 밖에 없다. 새벽에 느닷없이 험담하고 자려니까 무척 민망하다. 이래서 백수는 허구헌날 속상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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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0 0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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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0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5-01-1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쓰셨는데요 뭐. 찬물 한바가지 뒤집어 쓴 기분입니다. 광수씨가 그렇게 됐군요. 예전에 TV에도 잠깐씩 얼굴 비추고 그랬는데...저도 그닥 만화는 좋아하지 않는데 광수 생각 만화 보고, '아, 만화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새삼 달리 봤었는데. 이 사람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재대로된 만화 좀 다시 그렸으면 좋겠네요. 그 좋은 재주 썩이고 뭐하는 건지...남 얘기할 때는 아닌데...>.<;;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오랜만에 쓰는 이 글의 서두에서 어줍잖은 표절의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남자는 개의치 않는다. 드디어 평생에 한번 맞고자 염원했던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내려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 아무도 없다. 건너편 빵집 앞에 좀전까지 오도방정 떨던 가짜 트리도 집안으로 들여놓았는지 흔적조차없다.

실로 얼마만인가. 이토록 무심할만큼 고요하고, 게다가 온전히 나홀로 거룩하게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마흔 네해만에 처음이다. 돌이켜보면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제 애비 생일날도 기억 못하는 천하의 망나니 여드름딱지들이 명동으로, 종로로 휩쓸려 다니며 엉터리 캐롤을 불러쌓는 것도 남자의 눈에는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었다. 그보다 나이 좀 먹었다는 놈들은 어떻게 하면 계집애들을 집에 안보낼까 궁리하고 전파하는데 족히 한달을 탕진했으며, 급기야 그날에 이르러는 죄다 똥마려운 강아지들처럼 바지춤을 움켜쥐고 새벽 이슥토록 떼지어 종종걸음을 치곤 했다.  

나 클 땐 이랬다 했더니 젊은 선수들 말이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단다. 다만 예전엔 룰도 없고 노하우, 노웨어, 노훔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들이댔다면,  요새는 제법 잘난 척/ 까진 척/ 쿨한 척 하는 꼬마들이 있는 정도란다. 어디가면 물이 좋고 누구한테 얘기하면 히트율이 높으며 어떻게 다뤄야 X팔리지 않게 윈윈하는지 레벨별로 공유가 된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런 하루살이들이 올해는 크게 줄었다 하고, 내가 눈이 있어 어제 오늘의 거리를 둘러봐도 도통 성탄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다들 역부족인 듯하니, 꼴보기 싫은 것들을 안보게 된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실로 감개무량할 뿐이다. 자고로 성탄전야는 이래 조용하고 성스럽게 가족끼리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어머니는 일년내내 십원짜리 삼립 크림빵이나 샤니 카스텔라 이상을 사주신 적이 없다. 애당초 장식적인 사치엔 관심이 없는 분이다. 마룻바닥은 내려다 보고 눈꼽도 뗄만큼 반들반들 윤을 내시는 양반이지만 쓸데없는 호사는 용납치 않는 청교도적 세계관의 소유자이다.  더구나 기독교에 대해선 <행실 못된 계집아이들이 연애질하러 가는 곳이 예배당>이라는 깜짝 놀랄만한 종교관을 오랫동안 견지해오신 분이다. 그런 어머니가 일년에 딱 한번 케잌이라는 묘한 물건을 사는 날이 바로 성탄전야였다.

누르끼한 버터 덩어리가 두껍게도 발라져있는 기성품 케익에 규칙도 없이 촛불을 있는대로 꽂아놓고 전깃불을 끄면 고단하고 궁핍했던 우리의 일상도 함께 사라졌다. 그 어느때보다 엄격한 기다림속에서 아버지와 나, 남동생, 여동생의 순서대로 한조각의 빵이 전달되면 우리는 덩어리의 크기를 곁눈질하다 그 위에 고명으로 꽂힌 장미꽃크림과 이파리 설탕조각의 유무에 희비가 엇갈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처럼의 노블한 분위기를 깨는 어떤 행위도 용서치 않았다. 새끼들은 돌아가며 캐롤을 불러야 했고, 저마다 인민군 박수를 치면서 분위기를 고양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 코너가 끝나면 다같이 TV시청을 해야 했다. KBS에선 흥청망청인 시내를 흑백화면이 터지게 생중계하고, MBC에선 어김없이 종교영화를 상영했다. 위풍이 말도 못하게 심한 방에서 식구들은 흥부네 집처럼 큰 이불을 뒤집어쓰고 성탄의 거리풍경을 신기한 듯 또랑또랑 바라보곤 했다. 그때 아버지가 쯧쯧 혀를 차며 하신 말씀.  저 자식들은 제 애비에미 생일도 모르는 놈들이 예수가 제 부몬가 왜 저 지랄들을 하고 있는겨. 도대체 공자와 부처를 반만년 넘게 모신 백성들이 워쩨 저러는지 알다가도 모르겄어~. 속으로 맞장구를 치면서 나는 궁금했다. 그럼 아까 혀를 깨물어가며 먹은 케익은 뭐하자는 음석인가? 그래도 우리는 성탄이 이러면 못쓴다고 생각했다. 그후로도 쭈욱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러고나면 부모님은 옆동네에 모여사는 회사 분들과 만나기 위해 나란히 집을 나선다.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좀 이상하지만 여기서 회사란 경찰서, 회사분들은 당연히 경찰 아저씨들, 만나서는 속칭 도리짓고 땡 또는 섯다라 불리우는 도박놀이를 하셨다. 난 그게 나쁜 짓이라고 생각 안했다. 물론 지금도 그닥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건강에 나쁜 정도. 그땐 올 성탄절에 끗발이 어느 분에게 붙을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속기화투의 달인인 아버지실까? 철저히 운에 모든 걸 맡기시는 어머니의 지구전이 빛을 발할 것인가.

그러다가 강도도 잡았다. 어른이 집을 비운 틈을 타 윗동네 도둑이 강도로 변해 들어온 것이다. 맏이인 남자가 초등학교 5학년,  끄트머리 여동생이 1학년. 신나게 TV를 보고 있던 우리는 부엌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자 일단 부모님이 가신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끗발을 방해하는 새끼들의 귀찮은 제보를 건성으로 들으시며 그 집 꼬마에게 수화기를 대신 들고 있으라 하시고는 힘차게 갑오를 던지며 환호를 터뜨리셨다. 

일단 통신축선 상에 위치한 우리 세 남매는 다소 안심하며 짧은 막대기를 호신용으로 움켜쥐고 부엌쪽으로 갔다. 벽에 붙은 냉장고를 툭툭 치며 <나와, 나와> 호기있게 외쳤는데. 어둠속에서 집채만한 덩어리가 걸어 나오며 <이 쉐끼들, 들어가. 안들어가?>하는게  아닌가. 게다가 손에는 반짝거리는 짧은 칼이 들려져 있었다. 기겁을 한 우리는 엉덩이를 발로 채이며 안방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갔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강도는 천천히 장농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역사에 길이남을 멋진 기지를 발휘했으니, 발길에 걷어채인 소년이 아직도 교신상태에 있는 전화기로 넘어지며 <살려달라>고 연호했던 것. 건성 수화기를 들고 있던 그 집딸의 귀에도 단말마의 비명소리는 들렸나보다. <엄마. 이상해. 오빠가 살려달래.> 그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화투판은 엎어지고 2킬로 미터에 달하는 성탄절 축하 단축마라톤대회가 즉석에서 개최돼 불과 몇분만에 집 주위는 민완형사 겸 심심풀이 도박사들에게 완전히 포위되기에 이르렀다.

어허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불속에서 빠꼼히 내다보니 강도 아저씨 너무 느긋한거라. 여차하면 장농의 이불까지 싸갈 요량이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월담을 하고 현관문앞까지 진출한 기동타격대가 간단없이 문을 두들겨 대자 그때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강도는 허둥지둥하면서도 그 와중에 방바닥에 흘린 값어치 나가는 것들을 되는대로 호주머니에 쑤셔넣더니 내게 물었다. <야, 어디로 나가는거야> 이런 젠장. 여기가 무슨 서울 한복판이라서 사대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문열고 나가면 된다고 했더니 이 아귀힘좋은 친구가 문고리를 그만 쑥 뽑아버린게 아닌가. 둥그런 손잡이를 들고 망연자실해 있는 강도로부터 손잡이를 빼앗아 문 구멍에 꽂고 엽렵하게 돌리니 방문이 쏙 열렸다. 평소 소년에게 손재주가 발재주라며 혀를 끌끌 차시던 아버지에게 다신 그런 말씀 마시라고 할만한 묘기였다. 여차하면 문을 부수고 들어올 태세인 타격대를 피해 부얶 들어온 문으로 나간 강도는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부모님과 감격의 해후를 맞게 된 우리 남매는 조별로 나뉘어 동네 어귀에 배치됐고 온동네를 이잡듯 뒤지는 색출작전이 전개됐다. 그때만해도 인심이 좋았던 터라 동네 사람들이 몽땅 쏟아져나와 한편으론 경찰을 안내해 집을 둘러보고, 다른 한편으론 오늘 성탄 전야의 대 활극을 저마다 밸류 애디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불운한 강도는 잡혔고 나는 겨울방학 중간중간에 있었던 소집일날,  전교생들 앞에서 영등포경찰서장이 수여하는 무슨 상을 타게 됐다. 물론 어머니는 따로 우리를 불러 <이번 쾌거를 과신한 나머지 용감한 행동을 아무때나 저질러선 결코 제 명에 못죽는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30여년 세월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남자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느닷없는 옛 생각들을 하나씩 떠올리다 희미하게 웃는다. 버석대는 얼굴의 촉감이 심난하다. 거리도 조용하고 집도 조용하다. 기름덩어리 케익도 없고, 어둠속에 동동 떠있던 노란 촛불도 없다. 아이들의 기다림도 없고, 흔해 터진 성탄특집방송도 없다. 아버지 어머니는 더이상 화투를 치러 나가지 않으신다. 강도가 들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더 이상 여드름쟁이도 아니고 압구정동 선수로도 불명예 퇴직한지 오래다. 어떤 계집애도 그때처럼 예뻐보이지 않는다. 성탄전야도 예외는 아니다.  

어엇 추워... 진저리를 치며 추리닝 지퍼를 턱밑까지 올려붙인 남자는 양손을 가랑이에 끼우고 싸삭싸삭 비벼대다가.... 크리스마스 더럽게 재미없네... 에이.XX.. .. 그러고 방으로 종종걸음친다. 하여튼 내년에 두고 보라며 남자는 절치부심의 흔적을 알라딘에 남겨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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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5 0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2-2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절치부심의 흔적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04-12-25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재밌네요. 소설 같아요.^^ 읽다보니 케잌이 먹고 싶어졌다는...^^

2004-12-26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stella.K > [퍼온글] 클릭, 사이버 갤러리를 찾아가는 24가지 방법(국내편)

클릭, 사이버 갤러리를 찾아가는 24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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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www.inauction.co.kr/defaul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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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www.neolook.net
 'neolook exhibitions'로 들어가면 현재 활동하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8. user.chollian.net/~rodin87/rodinframese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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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www.ekoart.com/SAF/asp/Default.asp
 산수화, 인물화, 영모화, 문인화 등의 한국화를 비롯해서 경주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 등의 탁본까지를 볼 수 있습니다.

10. www.moca.go.kr/intro/
 국립현대미술관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과 소장품의 작가 및 전시회에 관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으며, 각 부문별(한국화, 양화, 조각, 공예) 대표작품에 대한 검색도 가능합니다. 1910년대부터 연대기별로 당대 미술문화의 특성, 대표작가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당시에 제작된 미술관의 대표적 소장품을 감상하면서 한국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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