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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초청하려면 시간당 100은 줘야돼. 차도 보내줘야 하지만 까짓거 그냥 내가 가지뭐."

자칫하면 큰 실수할 뻔했다. 그렇구나. 그 정도 강사에게 특강을 부탁할 땐 한시간에 백만원은 쓸 생각을 해야겠군.

이 삼년전 대학 교수 친구에게 나 일하는데 한번 와서 강의좀 하라고 편하게 얘기했다가 그 친구의 몸값을 알게 됐다.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과연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까 잠깐 의심도 했다. 그래도 워낙 당당하게 얘기하니까 저 녀석이 믿는 구석이 있겠거니하고 그냥 넘어갔다. 

 "죄송해요. 시간당 10만원인데 너무 적죠?" 한참동안 망서렸다. 저를 어찌 보시는 거냐며 정중하게 거절할까? 이왕 얘기했던 건데 눈딱감고 해? 말어? 솔직히 기분 좋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백만원 받던 놈은 뭐고, 지금 십만원 받는 난 뭔가. 창피하고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한참 진정한 후에 승낙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내 몸값이 정말 시간당 십만원어치는 되는지> 반문해보게 됐다. 

 지난 일년동안 40여 시간의 코치 교육을 받았다. 실제 코칭 경험은 약 100시간 정도. 코칭관련 서적 열 권 남짓 읽고, 별것아닌 잡문 몇개 쓴 것 말고 내세울 게 또 있나 찾아봤다. 쩝쩝... 없다. 이런 얄팍한 경력이 시간당 얼마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고객이 나를 한시간 사서 어떤 효용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답이 쉽게 안나온다.

 왕년에 내가 뭘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고위 공무원이 미국 이민가서 청소부할 때 과거 경력이 무슨 소용인가. 내가 살아오면서 코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적이 있었어야 경력으로 쳐주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옛 경력을 들추면 오히려 그나마 모아놓은 호랑이 어금니같은 코칭경력마저 깎아먹을 판이다. 그렇다면 나는 코치라는 이름을 내걸기도 민망한 처지임에 분명하다. 

 사실 작년말에 소원 하나를 열심히 빌었다. <부디 내년엔 한달에 한번씩만 강의를 하게 해주소서.> 언감생심 강의료는 바랄 엄두도 못냈다. 코칭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도 훌륭한 코칭 전도사로 역량을 쌓고 싶었다. 아무나 불러주기만 하면 한사람도 좋고 두사람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그 소원을 들어주셨다. 그렇게 읍소하며 간구하던 놈이 시간당 10만원 주겠다니까 발딱 일어나 주둥일 댓발이나 내밀고 있는 것이다. 

 "꼭 그렇게 생각할 건 아냐. 너보다 못한 사람도 그보다 많이 받어. 몸값이란게 시장에서 결정되는 거잖아. 괜히 맘좋은 척 하지 말고 네 친구처럼 당당히 요구하라구. 아니면 말 심 대구."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이 문제를 꺼냈더니 다들 한마디씩 한다. 여보시오. 내가 못믿는 것은 시장 기능이 아니라 내 실력이올시다. 여태 이십년 가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살았지만, 단 한번도 그게 많다 여긴 적 없었다. 그만큼 노력도 했고, 적어도 밥 값의 몇 배는 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코치로서 나는 아직 그만한 수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옷깃을 여미는 것 뿐이다.

 한시간에 백만원을 받는 프로 코치가 되려면 어느 정도 수련을 해야 될까? 국제코치연맹(International Coach Federation)의 예를 찾아보았다. 전문코치는 가장 등급이 낮은 어소시에이트 코치(Associate Certified Coach), 그 위가 프로페셔널 코치(Professional Certified Coach), 맨 위 고수가 마스터 코치(Master Certified Coach). 이렇게 3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어소시에이트 코치는 60시간 교육을 받고 실제 250시간 코칭을 해야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코치라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는 프로페셔널 코치는 자격 시험 보는데만 125시간 교육에 750시간 코칭경험이 필수다. 750시간 중에 유료코칭이 90%이상이라 하니 프로가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조건이다. 

 프로가 그 정도인데 최고수 마스터 코치는 말해 무엇하랴. 200시간 교육받고 실제 코칭을 2,500시간해야 마스터 코치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어소시에트 코치가 마스터가 되려면 최소 3,000시간 코칭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 정도 되니까 포춘 500대 기업 CEO들이 전세기를 보내 코치를 모셔온다는 얘기가 나올 만 하다.

 프로페셔널 코치와 마스터 코치의 가치는 고객의 생산성으로 바로 입증된다. CEO나 고급임원의 경우, 업무상 또는 업무 이외의 요인에 의해 받는 스트레스는 해당 기업의 생산성을 급격히 추락시킨다. 골치 썩히는 자녀들 때문에 CEO가 며칠동안 회사 일에서 손을 놓으면 위기적 상황에서는 기업이 치명상을 입게 될 수도 있다. 이때 훌륭한 코치 덕분에 로스 타임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백지수표를 준다한들 아깝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마스터들의 몸값은 어마어마하단 얘긴 들려도 정확히 공개된 바 없다.  

 훌륭한 고수들이 그랬듯이 훌륭한 코치라면 시간당 몸값을 계산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 받은 몸값이 어제보다 올랐다고 기뻐하지도 않고, 떨어졌다고 낙담하지 않을 게다. 코치로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만족을 줄 수 있는지 그것에만 몰두할 것이다.

 비록 내 일년짜리 뱁새 코치일망정 생각만큼은 황새다리로 해볼 작정이니,

불초 소생을 믿고 십만원을 주신 고객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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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1-2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왕자 그림까지...
제목도 끝내주고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안보면 보고싶고 헤어지면 그리워지는 건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정말 좋아하는지 궁금하면 이 공식에 대입해보라. 안보면 무척 보고픈데, 막상 헤어지면 가물가물한 게 하나 있다. 영화가 내겐 바로 그렇다. 신간 소개 못지않게 뚫어져라 영화평을 읽어본다. 옆에 색연필이라도 있으면 대뜸 순위를 매기고 언제가 길일이겠다 짚어보기까지 한다.

이번 주에도 그랬다. 양조위의 <2046>을 첫손에 꼽고, <콜래터럴>과 <21그램>이 검지에, <주홍글씨>와 <비포 선셋><내머릿속의 지우개> 등의 미개봉작들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이들 대부분을 DVD로 보거나 출발 비디오여행의 맛뵈기로 만족할게 분명하다. 그나마 돌아서면 가물가물할 게 뻔하고.  

더구나 하늘이 이렇게 높고,  오늘내일이 단풍의 절정이라고 다들 난리굿인데 영화보러 굴로 들어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나는 오늘 영화보기를 결행하고야 말았다. 푸른 하늘을 망연자실 우러르기 민망하고 울긋불긋 단풍이야 이 고비만 어떻게든 넘기면 되겠다싶었다. 일종의 도주본능이다.  그럼 그렇지 <2046>은 없고 <콜래터럴>뿐이란다.

가운데 서너줄만 옹기종기 사람이 있고 극장 안은 텅비었다. 군데군데 노인네들도 눈에 띤다. 웬만한 영화 매니아가 아니면 여기 낄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 쿨한 표정으로 자세 잡고 내 자리 아닌 곳에 깊이 몸을 던진다. 의자 안쪽으로 쑥 기대고 나서  다리를 척 꼬았다. 이럴 때 팝콘을 와삭대고 콜라를 쪽쪽 빨아댔다간 치명적 이미지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나는 그 두가지 음식물의 도움 없이는 이  예측불허의 러닝타임을 내내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LA의 택시운전사로 분한 제이미 폭스의 차분한 오버 연기가 돋보인다. 물론 생전처음 악역을 맡았다는(흡혈귀는 악역이 아닌가보다) 톰 크루즈의 변신도 박수 받을 만 했다. 별을 준다면 3개하고 4분의 3정도. 살인청부를 맹렬히 비난하는 폭스에게 크루즈는 <이 우주에 티끌만도 못한 존재가 하나둘 없어진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느냐> 한다. 더구나 <엠네스티도 아니고, 그린피스도 아닌 주제에, 지하철에서 사람이 죽어도 6시간이 지나도록 방치된다는 이 지겨운 도시에 살면서 무슨....>  그러면서도 크루즈는 폭스를 계속 살려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폭스의 총에 맞아 고개를 떨군다.

사람들과 사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이웃사촌들과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년을 살고 이사갈 때까지 옆집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섞여살면 재미는 있는지 몰라도 피곤한 건 사실이다.  어지간한 포용력과 이해심, 그리고 내 것을 고집할 게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니면 솔직히 별로 안내킨다. 회사 걷어치우고 집에서 한 일년 놀고 싶어도, 아파트 아줌마들 수근대는 소리가 벽을 뚫고 들리는 것 같아 눈치보여 못 놀겠다는 얘기도 이해가 간다.

공기좋은 곳으로 이사가자고 허겁지겁 분당으로 왔다. 전철역과 뚝 떨어져 불편하지만 산이 가까와 여기서 살기로 했다. 그런데 밤새 활짝 열어 놓았던 창문도 아침엔 모두 꼭꼭 닫아야 한다. 8시반쯤 되면 어김없이 밑에서 생선굽는 냄새가 모락모락 올라오기 때문이다.  생선냄새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로선 이게 웬 봉변인가 싶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역삼동 대로변 빌라가 백배 낫다. 아랫층 사람들은 생선구이를 몹시 좋아하는 모양이다. 거의 예외 없이 점심 때도 그 냄새가 올라온다. 그래도 아무말 할 수 없다. 먹는데는 개도 안건드린다며 눈꼬리를 치켜 올리면 솔직히 뭐라 할말도 없다. 나는 이런 군집생활을 혐오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조차 없으면서 이렇게 아래윗집으로 천장을 바닥삼아 기대사는 건 그 자체로 불행일 뿐이다.

우리 아파트는 지난번에 보니까 <방송 반상회>란 걸 한다. 오프라인으로 집을 정해 모이라면 고작 서너집이 삐쭉 들여다 보고 그냥 간단다.  우리 반장님 고민 끝에 경비실 마이크를 빌려 10분 동안 일제히 방송을 한다. 물론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일방적으로 정한다. 반장님 왈, <이렇게 반상회를 대신하니까 반응들이 너무 좋아요. 한달에 한번 보는 것도 부담이라면 부담인데 이렇게 간단히 방송으로 대신하니까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고 다들 그러시네요. 호호호>  저녁 무렵에 방마다 층마다 쩌렁쩌렁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혹독한 고문이다. 반상회 안나가면 벌금이 5천원인가 그렇던데, 저 방송 꺼버리고 5천원을 내는게 낫겠다 생각한다. 이웃 사촌 어쩌구하면서 월 일회 반상회는 얼굴 안보는 방송으로 대체됐다. 다들 편하다고 그런단다. 이런게 인지상정이다.

COLLATERAL. <담보로 잡혀있는 물건> 또는 <곁에 항상 수반되는 대상>을 뜻하니 아마 폭스를 말하는 모양이다. 폭스는 뒷자리에 손님으로 탄 여검사조차 혹할 만큼 자상하고 사려깊은 이웃이다. 이루어지지도 않을 꿈을 하루에도 틈나는대로 수십번씩 되새김하면서, 십이년째 하고 있는 운전수 일조차 파트타임이라고 생각하는 고단한 소시민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처럼 위기상황에 있는 여검사를 구하려고 킬러와 맞짱 뜰 인물은 절대 아니다. 이에 반해 킬러 크루즈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눈꼽만치도 없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모더니스트. 긴 말이 필요없다. 내가 잘 아는 전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폭스와 크루즈의 예견된 갈등은 이미 폭스의 승리로 정해져 있었다. 이 영화가 별 넷이 되지 못하는 가장 어정쩡한 판타지다.  

사람들은 겉으론 폭스처럼 말하지만 실제론 크루즈처럼 느끼고 행동한다. 내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선 안면없는 사람들의 목숨따위는 안중에 없다. 상황이 조금 심각해지면 까짓것 안면 좀 있어도 상관없다.  IMF당시 몇백명을 스스로 목줄라죽게 했던 금융기관의 채무추심 전문가들이 자신의 행위를 후회한 나머지 참회록을 썼단 얘기 들어본 적 없다. 지금도 곳곳에서 수천 수만의 어린아이들의 발목을 자르는 지뢰 판매상들이 반성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다만 얼마라도 기부금을 냈단 소식 역시 들어보지 못했다. 크루즈는 악마가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이다. LA에서도, 서울에서도 수없이 눈에 띄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도 감독은 폭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마치 아무리 우리가 지옥에 살지언정, 인간성(휴머니즘)만은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냐고 절규하면서.   

크루즈는 지하철 의자에 앉은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는 감독의 절규 따위는 들으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 뭐라고 비분강개하든 그는 그렇게 오늘 죽어갈 뿐이다. 조용히 앉아서 동터오는 새벽녘을 향해 실려가는 그에게서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린다. 아침마다 그들은 지하철에 그렇게 앉거나 또는 서서 죽은 채로 거리를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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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0-2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집 생활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어쩔 수 없이 지어진지 오래된 허름한 빌라에 살고 있지만, 빨리 부자가 되서 아니면 원주 어디쯤 단독으로 이사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상회 형식적이고 별로 도움은 안 되지만, 어떤 땐 필요할거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서로의 불편함과 양해를 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 창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안 그러면 자기네들이 평생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거 아니겠어요?
<콜래트럴> 저도 보고 싶은 영환데 효자님의 리뷰가 참 근사하군요. 어찌 그리 글을 잘 쓰시는지요? 흐흐.
 

제 대가리 못깎는 화상이 남의 짱구머린 얼마나 잘보이나 모른다. 요 며칠 몇사람을 만나 코칭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특히 코칭을 해준 경우는 전례없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러다가 작두 타는게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기분이 째질 만큼 좋았다.  튿어지는 입술을 추스리느라 고생깨나 했다.

어제 R선생과 장시간 코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내가 그동안 해온 코칭이 몽땅 사기 아닌가 의심이 생겼다. 도대체 상대방이 만족스러워 했던 것이 코칭 때문이었는지, 아님 서푼짜리 직관력 또는 신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만일 코칭이 준 만족이라면 상대방의 긴 사설을 꾹 참고 들어줬다는 것. 그게 경청이지 코칭이냐. 그나마 고개만 끄덕였지 말그대로 경청한 것도 아니잖은가.

엊그제 코치 몇사람과 오는 11월 20일에 열리는 <대한민국 코치대회> 준비때문에 장시간 토론하게 됐다. 샌디 바일러스는 마스터 코치가 그날 대회에 와서 코칭 시범을 보여주게 돼있다. 무슨 주제로 어떻게 코칭시연이 진행돼야 좋을까 의견을 모으는 회의였다.

기사는 야마요, 공부는 성적이며, 이벤트는 청중이다.  이게 본질이다. 야마(제목) 안잡히는 기사는 기사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차라리 즐겁게 노는게 낫다. 청중 없는 이벤트는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샌디가 와서 대한민국에게 던질 질문은 무엇인가. 너저분해선 안된다. 뜬구름을 잡는 얘기면 안된다. 촌철살인으로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 질문이어야 한다. 그게 코칭의 진수아닌가.

그런데 그가 설사 죽이는 질문으로 신문의 머릿제목을 장식한다 해도 의문은 남는다. 그게 과연 코칭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있느냐 말이다. 코칭에서 나왔다면 코칭 특유의 문제 접근방식이 있을 것이고, 문제를 해석하고 가설을 도출해서 증명가능하게 만드는 방법론이 시퍼렇게 살아있어야 한다.  거꾸로 코칭이 아니면 그런 명 질문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샌디는 어떤 공개적으로 증명된 코칭기법을 사용하고 있나. 만일 그의 성공이 오랜 경험과 타고난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코칭은 보통명사일 뿐, 고유명사가 될 수는 없다.

그러고보니 코칭 교육기관은 많아도 대학에서 코칭을 정규학과로 가르치는 곳은 없는 것 같다. 호주에서 정규과목에 코칭이 있다곤 하지만 뭘 가르치는지 확실치 않다. 내가 지금 온라인으로 들어가서 보고있는 미국의 강의도 학문으로 가르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적어도 코치로서 자격증을 따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성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겠다 맘을 먹었으면 내가 하는 코칭이 과연 학문적/이론적으로 타당하다고 입증된 것일까 의문을 품어야 마땅하다. 한 20년 코치라고 떠들고 다녔는데 누가 같은 질문을 던지면 험험하고 헛기침만 하며 피할 순 없는 노릇아닌가.

지금 나와있는 것은 프로세스, 즉 절차뿐이다. 시대상황에 맞서 한마디 의미깊은 말을 해낼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꿰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3류 운동권이요, 견강부회하는 시장 장사꾼에 불과하다.

<우보천리>를 역설하신 정수일교수의 책을 읽어보고 나서 학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비록 학문하는 자는 아닐지라도 내가 하는 일이 학문의 끄트머리라도 잡을 수 있는 지는 알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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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0-1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 코치대회'란 게 있나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상담학에서 보면,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문제 반이상 때론 그보다 높은 퍼센테이지로 문제해결을 받는데요. 님이 잘 들어 주셨다면 잘 코칭해 주신거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전출처 : 보슬비 > 비가 내리면...

 
 
 
편안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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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허망한 것이 블로그에 글을 무턱대고 쓰는 일이다. 두시간여 쓴 글이 <새 페이퍼 등록> 버튼을 누르자 마자 사라졌다.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어디 한두번일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참극에 대비해 메모장 등에 카피해놓는 것을 왜 모를까마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대로 날려버렸다.

처음에는 신물같은 게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익숙해지니까 제법 여유로와진다.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는 뜻이다. 날린 것도 속터지는데 그것때문에 내내 끌탕해봐야 심란하기만 하다는 걸 안다. 그냥 <또 멍청한 짓을 했군>하고 자책할 뿐이다. 그래도 속은 안좋은 듯 이런 버림글을 몇 줄 적어가며 성질을 달래야 한다.

좀전에 날린 글의 요지는 이렇다.

골초들이 담배를 못끊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라면 먹고나서 피워무는 담배의 환상적인 맛때문이란다. 그 담배맛을 즐기기 위해 라면을 먹는 축도 있단다. 뭐니뭐니해도 그 멋진 컴비네이션은 전방에서 군복무를 한 사람만이 진수를 알리라. 꽁꽁 얼어붙은 몸이 마지막 국물 한방울에 의해 얼얼하게 풀어지면,  척하고 피워무는 담배 한 모금에 사지가 녹아내리는 그 맛. 

금연이 안되는 또다른 기억은 화장실이다. 초짜들은 화장실에 모여 담배를 빠끔빠끔 피워대지만,  변기에 앉아 담배를 무는 수준까지 가려면 적어도 일년은 걸린다. 하루 한갑정도는 돼야 그만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삶의 기본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바지를 내리고 고즈넉이  한 모금 내뿜으면서 내 삶을 생각해보는 시간. 담배를 거듭 붙여 무는 것은 궁상스럽다. 똑 담배 한개피의 길이면 족하다. 담배를 피우면서 신문을 뒤적거리는 것 역시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담배도 커피처럼 그 깊은 맛에 집중해야 마땅하다.

담배를 끊으려면 애꿎은 담배를 가위로 자르는 어처구니없는 이벤트는 안하는게 좋다. (그런 사람치고 금연에 성공하는 걸 본 예가 없다.) 오히려 담배를 피우게 되는 모든 정황조건들을 제거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술자리에 가지 말고,  커피도 마시지 말며, 라면은 적어도 반년동안 먹지 말아야 한다.  담배피우는 인간들과 마주치지 말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담배생각나니까 무조건 뛰어야 하며, 재떨이 라이터 등속은 땅에 묻어야 한다. 그러나 어쩌란 말이냐. 화장실에는 안 갈 도리가 없으니.

그래서 할 수없이 담배 말고 집중할 수 있는 대체물을 찾은 것이 책이다. 아무리 신호가 급해도 빈손으로 들어갈 순 없다. 책장을 훑고 근착도서가 쌓여있는 책상위를 뒤지다가 겨우 한권을 집어든다. 신문은 번잡스러워 피하고, 소설책은 오래 잡게 되기 때문에 삼가야하며, 어려운 책은 읽다가 집어던지게 되니 금물이다. 알라딘에 책 주문을 할 때 이런 용도의 책을 반드시 넣어놓지 않으면 일주일이 불편해진다.

<1분의 지혜>라는 책은 그다지 단정치 못한 자세지만, 가장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되는 공간에서 읽기 적합한 책이다. 한편을 읽는데 1분 남짓 걸리지만 그 뜻을 새기려면 한참 생각해야한다. 그중 몇편을 옮겨적었는데 몽땅 날렸으니 이번에는 쪽수만 남겨놓는다. 혹시 이글을 읽는 분께서는 서재 책상앞에 똑바로 앉아 정독하고 크게 깨우치시길 바란다.

35쪽 머저리,  42쪽 생일파티. 100쪽 가장 비싼 것, 164쪽 팝콘과 병아리,204쪽 꿀잠. 238쪽 쇼크사, 252쪽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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