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금요일 저녁무렵부터 잇몸이 솟는다 싶더니 영락없이 몸살이다. 말 그대로 몸에 살이 낀 것이다. 지난 일주일 만사가 귀찮아 운동을 작파했었다. 어젠 하루 종일 공사판에, 부동산 업자에, 협회 간사님들까지 쉴새없이 만나고 돌아다녔다. 연거푸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인상을 썼더니 백수의 수호신께서 응징에 나선 것이다. 뭔 놈의 백수가 그러고 다니냐. 너같은 놈 때문에 다른 일백만 백수들이 낮잠한번 발뻗고 편히 못자는게야. 네 놈을 일벌백계해야쓰것다. 아무렴입쇼. 제 죄를 소인이 잘 압지요.
오후 다섯시만 되면 어둑어둑한게 집에 가고 싶다. 오늘 저녁엔 뭘 해먹을까 하며 지하철 역으로 막 들어서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안갔으면 좋겠는데....) 일주일 전에 한 약속을 친구가 잊지 않고 챙긴다. 광화문으로 꼭 가야하나. 그냥 강남에서 만나면 안돼? <그냥 광화문으로 오셔. 앞으로 두시간 있다가 세종문화회관 뒤에서 만나.> 누구누구 오는데? < 잘 아는 사람. 여자만 둘. 나까지 셋. 복터진 줄 아시고.> 아 예~. (혹시 ?)
오랜만에 타본 퇴근시간 지하철은 여전히 지옥철이었다. 역삼에서 교대, 교대에서 종3가까지 땀으로 미역을 감았다. 딴에는 책을 보면서 쉬엄쉬엄 가보자고 탔던 것인데 세상은 여전히 바쁜 인파로 차고 넘쳤다. 압구정에서 한강을 넘어 가는 동안 내내 마음 조렸다. 이러다 한강물에 거꾸로 박히는 거 아냐. 그러면 완전 죽음인데. 아까 압구정에서 내릴 걸 그랬나. 에이XX., 아프다고 집에 가는건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잡생각으로 식은땀을 흘리노라니 벌써 옥수역 플랫폼이다. 나의 이런 병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옛날엔 비행기 타는게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어쩌다 다른 사람 돈으로 비즈니스를 타고 태평양을 건널 때는 스튜어디스의 엽렵한 섬김도, 골라 먹을 수 있는 기내식 메뉴도 내 허영기를 더 바랄 나위없이 만족시켜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탑승 몇분전에 동행인이 재수 옴붙는 얘길 한마디 한 것을 그만 한 귀로 듣고 말았다. 비행기 추락사고의 80%가 이륙후 5분내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날 따라 그 얘기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뜩이나 찜찜한 판인데 하필이면 이 빌어먹을 비행기가 뜨자 마자 요동을 치는게 아닌가. 그날 일기도 괜찮았는데 탁자의 커피가 쏟아질 정도로 흔들릴게 뭔가 말이다. 나는 오금을 발발 떨어가며 마의 5분을 간신히 넘겼다.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짧지 않은 인생을 오롯이 반추했으며, 내가 잘못을 저지른 많은 분들께 용서를 빌었고, 천운으로 살아난다면 정말 착하게 살겠노라 철석같이 다짐했다. 그날의 사건 이후 나는 두시간이 넘는 비행은 극구 사양했다. 당연히 미국 출장도 딱 끊었다. 물론 그날의 약속은 곧바로 잊었다가 지금 생각났을 뿐이다.
그렇게 부대끼며 광화문 뒷골목까지 겨우 찾아갔다. 옥호가 뭐라고? <그냥 오향장육이라고 써있대.> 주식회사 짜장면이군. 그래 뭐 요즘 중국집 이름 다양하긴 하더라. 진짜루, 빠떼루, 몽고반점, 짬짜볶짜, ... 골목어귀에서 세번째 집을 찾으니 말 그대로 가로 간판에 <오향장육 전문점>이라고 써있었다. 물론 옆에 세로로 一龍 이라는 고유명사도 있었지만. (삼룡이나 구룡은 들어봤어도 일룡은 전원일기 일용엄마 말곤 처음이다. )
대학 졸업한 이후 그런 중국집은 처음이었다. 봉천 사거리 관악구청 맞은편 미도관이 그랬다. 쌍팔년도를 풍미했던 비닐 꽃자수 테이블보가 깔린 탁자와 황학동 고물시장에나 있을 법한 의자들이 등에 때 밀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침 구석자리가 비어 잔뜩 구부리고 앉은 나는 주섬주섬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주인장은 내던지듯 네 개의 물잔과 물수건을 놓고 가버렸다. 딴 집은 식은 보리차라도 따라주더구만. 에이. 진즉에 온다던 친구는 그후로 이십분쯤 지나서야 도착했다. 그 친구도 주위를 둘레둘레 살피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도 여긴 처음이야. 이따가 올 사람이 여기가 그렇게 맛있다고 해서. 하여튼 좀 깬다.>
그 친구가 주차하러 나간 사이, 이 집을 강추했다던 여인(편의상 제2의 여인이라 부른다.)이 도착했다. 곁눈질로 보니 그녀 같았다. 내가 겸연쩍게 눈을 맞췄는데 이 여인 쓰윽 외면하는게 아닌가. 쳇 아닌가 두고보자. 딱 넌데. 이따 친구 오거든 얘기하지뭐. 일찍 수인사해봐야 어색하기만 하고. 난 읽던 페이지에 눈을 돌리고 금새 몰입했다. (그게 가능한 까닭은 제2녀에게 실례가 될 것이므로 밝히지 않는다.)
3~4분 지났을까. <어 안녕하세요>어쩌구하는 귀익은 소리가 들렸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왜 그 친구는 어렵게 사적 모임을 주선하면서 참석자들의 친소관계를 미리 짚어보지 않았던 것일까. 가급적(절대로) 이렇게 만나길 원치않는 제3의 여인이 나타나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제3의 여인에 대한 나의 불편한 심사를 밝히고자 한다. 한때 딱 일년동안 이벤트로 날새고 해떨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남몰래 쑈PD를 꿈꾸었던 나는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코엑스 전체를 빌리는 엄청난 규모의 전시회를 그것도 한해에 네개씩이나 저질렀다. 물론 그때 이후로 나는 집안 행사조차 자제할 정도로, 이벤트없는 조용한 세상을 지향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때 만났던 그쪽 업계(이래야 어딘지 불분명할 터)의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타가 공인하는 삼류(속칭 산마이)였다. 공사장 노가다들보다 일하는게 두서없고, 막무가내 꼴통인데다, 양아치식 위계질서를 숭상하고, 여우처럼 자기보호에 급급한 치들이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아니겠구나 했다. 회사에서 만나면 언제나 씩씩하고 남 잘 챙기는 직원이었기에 내 직업적 편견쯤은 언제라도 내동댕이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수호신이 있다면 , 그녀는 나를 밖에서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나도 그녀를 그렇게 만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 쪽이 싫어서 여기로 왔다던 그녀는 그쪽의 대마왕이었으며, 그 삼류근성을 기대이상으로 유감없이 내게 보여주었다.
<말로 듣던 얼굴이 아닌데요? 얼굴에 살집이 있으며 눈썹이 짙은 형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잖아요.> 어라. 첨보는 남정네한테 대뜸 얼굴 얘기부터 들이대시는구려. 허허 아마 몇년전의 모습을 얘기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지금은 그렇게 호남형은 아니신 듯 한데.> 미친X. 그럼 영남형이냐. 아님 범죄형이겠지. 말뽄새하곤. 허허. 반갑습니다. 그렇게 여자 셋과 남자 하나가 초라한 중국집 귀퉁이에 바퀴벌레처럼 몰켜 앉았다.
제2의 여인은 거침없이 오향장육 한접시와 오리알 두접시를 시켰고, <역시 꼬량주 아니겠어> 하며 술을 시켰다. 나는 욱신거리는 잇몸 핑계를 댔지만 그보단 예서 취하면 큰 사단 나겠다 싶어 청하를 한병 달라고 했다. 시커멓게 곯은 오리알이 먼저 나왔다. 입에 채 넣기도 전에 고린내부터 확 풍겼다. 보통 중식당 코스요리에 섞여 나오는 오리알을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한 입 넣은 나는 뇌에 미각중추를 즉각 마비시킬 것을 강력히 지시한 후, 침착하게 표정관리를 하면서 <먹고싶은 요리 리스트>에 등재돼있던 모든 오리알을 영원히 삭제해버렸다. 그보단 오향장육이 좀 나았다. 그게 정통인줄 몰라도 조그만 춘장접시에 수북히 담은 멀컹한 검은색의 오향 젤 덩어리는 있던 입맛도 떨어뜨리는 탁월한 효과를 냈다. 결국 오리알은 연신 <음 맛있어. 이렇게 맛있을 수가.>를 연발하던 제2녀가 말끔히 해치웠고 다른 두 여인과 나는 두 접시의 물만두로 저녁 겸 안주를 대신해야 했다. (그래도 난 오향장육을 부지런히 법도에 따라 먹었다. 나는 매너있는 남자임에 분명하다.)
그날 무슨 오찬에서 NGO계의 유명인사 최모씨가 식사 후 커피로 가글을 하더란 얘기, 이태원에 가서 신수점을 본 얘기, 요새 한참 수다방의 단골화제로 떠오른 혈액형 얘기, 남녀 궁합 얘기 등을 나오는 대로 주워섬기며 연신 잔을 부딪히고, 옆 테이블의 소음에 양미간을 찌푸려가며 두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만 가자고 일어나면서 제2녀를 제외한 두 여인이 강남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했다. <알어 알어. 이럴 줄 내가 알았남. 나두 깜짝 놀랐어. 걔 특이하데.> 내 질책어린 눈초리를 간파한 친구는 제2녀가 화장실 간 사이 먼저 선수를 치더니 빨리 가자고 팔을 잡아 끌었다.
밤 열시에 광화문을 떠나 강남에 도착한 것은 무려 한시간 뒤. 오늘의 악녀 제2의 여인께서 집 앞까지 차를 끌고 들어갔던 탓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안하무인의 행동방식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요즘 젊은애들이라면 모를까. 낫살이 마흔을 넘고 사회밥도 스무해 가까이 먹은 사람이. 참 4가지 없다고 생각했다. 불편한 중국집에서 구겨 앉았다가 다시 지프차에서 한시간을 앉아 있으려니 차멀미가 나고 온 입이 욱신거렸다. 긴 여정을 겨우 끝내고 바에 들어온 일행은 잭콕(여인들)과 코로나(나)를 시켜놓고 공짜안주로 나온 양파링을 우적우적 깨물어 먹었다. 그후로 일어났던 일들은 여기 적어놓으면 나중에 혹시 읽었을 때 다시 생각날까 무서워 아예 빼버릴란다. 그날 제3녀의 4가지는 인내의 선을 훌쩍 넘겼다.
분당으로 돌아오는 새벽 택시안에서 생각하니 한심했다. 바로 엊그제 다짐하길 놀 때 제대로 놀자, 꼭 못노는 놈이 그 시간에 안해도 되는 일을 열심히 하기 땜에 우리나라가 이 모양 아닌가. 타의 모범이 되게 잘 놀자. 일 잘하는 것보다 백배쯤 잘 놀자 했거늘 이게 무슨 횡액이란 말인가. 이러다 <아무래도 난 일이나 하는게 맞겠어> 하고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마음에 병이 있을 땐 오늘 같은 자리는 절대로 피하는게 옳았다. 특히 제2, 제3의 여인까지 등장하는 모임은 금기임을 확실히 기억하자. 간 밤에 구강소독제를 오래 물고 있었더니 아침에 혀 반토막이나 얼얼한게 무감각하다. 이마가 따땃한 것이 열이 나기 시작하고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삭신이 쑤신다.
그렇게 그날 밤 몸살은 내게 찾아왔다. 오랜만에 오신 손님이다. 게다가 내 부덕을 엄히 징치할 목적으로 찾아주셨으니, 잘 보살폈다가 편히 보내드려야겠다. Thanks God, It's Fri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