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초청하려면 시간당 100은 줘야돼. 차도 보내줘야 하지만 까짓거 그냥 내가 가지뭐."

자칫하면 큰 실수할 뻔했다. 그렇구나. 그 정도 강사에게 특강을 부탁할 땐 한시간에 백만원은 쓸 생각을 해야겠군.

이 삼년전 대학 교수 친구에게 나 일하는데 한번 와서 강의좀 하라고 편하게 얘기했다가 그 친구의 몸값을 알게 됐다.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과연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까 잠깐 의심도 했다. 그래도 워낙 당당하게 얘기하니까 저 녀석이 믿는 구석이 있겠거니하고 그냥 넘어갔다. 

 "죄송해요. 시간당 10만원인데 너무 적죠?" 한참동안 망서렸다. 저를 어찌 보시는 거냐며 정중하게 거절할까? 이왕 얘기했던 건데 눈딱감고 해? 말어? 솔직히 기분 좋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백만원 받던 놈은 뭐고, 지금 십만원 받는 난 뭔가. 창피하고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한참 진정한 후에 승낙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내 몸값이 정말 시간당 십만원어치는 되는지> 반문해보게 됐다. 

 지난 일년동안 40여 시간의 코치 교육을 받았다. 실제 코칭 경험은 약 100시간 정도. 코칭관련 서적 열 권 남짓 읽고, 별것아닌 잡문 몇개 쓴 것 말고 내세울 게 또 있나 찾아봤다. 쩝쩝... 없다. 이런 얄팍한 경력이 시간당 얼마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고객이 나를 한시간 사서 어떤 효용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답이 쉽게 안나온다.

 왕년에 내가 뭘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고위 공무원이 미국 이민가서 청소부할 때 과거 경력이 무슨 소용인가. 내가 살아오면서 코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적이 있었어야 경력으로 쳐주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옛 경력을 들추면 오히려 그나마 모아놓은 호랑이 어금니같은 코칭경력마저 깎아먹을 판이다. 그렇다면 나는 코치라는 이름을 내걸기도 민망한 처지임에 분명하다. 

 사실 작년말에 소원 하나를 열심히 빌었다. <부디 내년엔 한달에 한번씩만 강의를 하게 해주소서.> 언감생심 강의료는 바랄 엄두도 못냈다. 코칭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도 훌륭한 코칭 전도사로 역량을 쌓고 싶었다. 아무나 불러주기만 하면 한사람도 좋고 두사람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그 소원을 들어주셨다. 그렇게 읍소하며 간구하던 놈이 시간당 10만원 주겠다니까 발딱 일어나 주둥일 댓발이나 내밀고 있는 것이다. 

 "꼭 그렇게 생각할 건 아냐. 너보다 못한 사람도 그보다 많이 받어. 몸값이란게 시장에서 결정되는 거잖아. 괜히 맘좋은 척 하지 말고 네 친구처럼 당당히 요구하라구. 아니면 말 심 대구."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이 문제를 꺼냈더니 다들 한마디씩 한다. 여보시오. 내가 못믿는 것은 시장 기능이 아니라 내 실력이올시다. 여태 이십년 가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살았지만, 단 한번도 그게 많다 여긴 적 없었다. 그만큼 노력도 했고, 적어도 밥 값의 몇 배는 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코치로서 나는 아직 그만한 수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옷깃을 여미는 것 뿐이다.

 한시간에 백만원을 받는 프로 코치가 되려면 어느 정도 수련을 해야 될까? 국제코치연맹(International Coach Federation)의 예를 찾아보았다. 전문코치는 가장 등급이 낮은 어소시에이트 코치(Associate Certified Coach), 그 위가 프로페셔널 코치(Professional Certified Coach), 맨 위 고수가 마스터 코치(Master Certified Coach). 이렇게 3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어소시에이트 코치는 60시간 교육을 받고 실제 250시간 코칭을 해야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코치라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는 프로페셔널 코치는 자격 시험 보는데만 125시간 교육에 750시간 코칭경험이 필수다. 750시간 중에 유료코칭이 90%이상이라 하니 프로가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조건이다. 

 프로가 그 정도인데 최고수 마스터 코치는 말해 무엇하랴. 200시간 교육받고 실제 코칭을 2,500시간해야 마스터 코치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어소시에트 코치가 마스터가 되려면 최소 3,000시간 코칭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 정도 되니까 포춘 500대 기업 CEO들이 전세기를 보내 코치를 모셔온다는 얘기가 나올 만 하다.

 프로페셔널 코치와 마스터 코치의 가치는 고객의 생산성으로 바로 입증된다. CEO나 고급임원의 경우, 업무상 또는 업무 이외의 요인에 의해 받는 스트레스는 해당 기업의 생산성을 급격히 추락시킨다. 골치 썩히는 자녀들 때문에 CEO가 며칠동안 회사 일에서 손을 놓으면 위기적 상황에서는 기업이 치명상을 입게 될 수도 있다. 이때 훌륭한 코치 덕분에 로스 타임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백지수표를 준다한들 아깝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마스터들의 몸값은 어마어마하단 얘긴 들려도 정확히 공개된 바 없다.  

 훌륭한 고수들이 그랬듯이 훌륭한 코치라면 시간당 몸값을 계산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 받은 몸값이 어제보다 올랐다고 기뻐하지도 않고, 떨어졌다고 낙담하지 않을 게다. 코치로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만족을 줄 수 있는지 그것에만 몰두할 것이다.

 비록 내 일년짜리 뱁새 코치일망정 생각만큼은 황새다리로 해볼 작정이니,

불초 소생을 믿고 십만원을 주신 고객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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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1-2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왕자 그림까지...
제목도 끝내주고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