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법칙 세트 (전2권) - 양장본
허브 코헨 지음, 안진환 옮김 / 청년정신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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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온라인 서점에서 협상을 키워드로 판매량순으로 검색을 하면, 협상의 기술1, 2(2021)1, 2위이다. 그런데 이 책은 협상의 법칙1, 2(2011), 협상의 법칙1, 2(2005), 협상의 법칙(2001), 이것이 협상이다(2003), 협상만으로도 세상을 얻을 수 있다(1998) 등의 개정판이다. 원본은 You Can Negotiate Anything (1982)Negotiate This! (2003)이다. 모두 허브 코헨의 저서이다.

 

코헨은 가장 흔한 히브리 성으로 제사장이란 뜻이라고 한다. 허브 코헨은 역시나 유대인이다. 1930년대생인 듯한데, 그의 50대와 70대에 각각 쓴 책이다. 지금은 90대가 된 노인이라 사실 공감이 잘 되진 않는다. 백인남성, 미국인, 유대인, 공화당, 반공 중심의 편견이 독해를 방해한다. 그래도 그나마 2003년에 쓴 책이 1982년에 쓴 책보다는 잘 읽힌다.

 

양장본에다가 각각 400쪽이 넘는 총 900쪽에 가까운 분량 때문에 수학정석이나 성문영어처럼 협상에 관한한 모든 것을 담았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지만 그냥 허브 코엔의 두서없는 인생이야기 정도인 듯하다. 오래전에 한번 읽었고 이번에 혹시나 해서 다시 읽었는데 3번 읽을 책은 아니다.

 

그래도 가장 기억나는 건 2편 마지막에 자식과 협상한 내용이다. 테러인질협상 전문가였던 그가 정작 자식과의 협상에선 백전백패한 솔직한 고백이 재미있다. 협상가를 다룬 영화 '네고시에이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당시 나는 아버지로서 지나치게 감정을 개입시킨 감이 없지 않다. 사소한 것에까지 너무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는 자식 셋을 키우며 충분히 경험한 덕분인지 자녀와 협상을 할 때면 '이상과열'와 완전한 포기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밑줄>

뛰어난 협상 기술이란 결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학문이 아니다. 나는 역사상 최고의 협상가로 약 2천 년 전에 살았던 두 사람을 든다. 그 두 사람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공식적인 권위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힘을 행사했다.

두 사람 모두 초라한 옷차림으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한 사람은 삼단논법으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비유의 형식을 빌려서 질문을 했다.

그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은 양자 모두를 승리로 이끄는 윤리의 협상가였고, 또한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나는 고객을 대신해 상대와 협상하면서 돈을 벌었다. 나는 되도록 돈 많은 사업가나 대기업을 고객으로 삼으려 애쓰고, 그들을 대신하여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엄청난 금액이 오가는 협상이 끝나면, 나는 약간의 사례금 내지는 몇 퍼센트의 성공보수를 챙긴다.

 

나는 그 일과 관련해 성공의 열망이나 실패의 두려움에 의해 상대적으로 덜 방해 받는 입장에 있었다. 인질로 잡힌 사람들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감정에 좌우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제삼자였기에 사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라나 기업, 사업 등을 위한 협상에 나서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의사결정권자라고 말하겠다.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자신을 위한 협상에 나서지 말아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제삼자인 토크빌은 미국인들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첫째, 미국인들은 흑백을 쉽게 가릴 수 있는 간단명료한 쟁점을 좋아한다.

둘째, 미국인들은 언제나 쾌활하고 희망에 차 있고, 맹목적일 정도로 낙천적인 사람들이다.

셋째, 미국인들은 친근하고 진실한 사람, 결점이 있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을 좋아한다.

 

저는 공법 550조에 의거, 한국전에 참전하여 공산당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을 구한 참전용사 허브 코헨입니다. 제가 아니었다면 공산당이 시카고까지 점령했을 겁니다.

 

나는 해야 한다 고로 할 수 있다 (임마누엘 칸트)

 

불만은 무소유의 상태에서 조금 소유하는 경우보다, 많이 소유한 상태에서 조금 더 소유하려는 경우에 더 크다 (에릭 호퍼)

 

상냥한 말만 사용하는 것보다 상냥한 말과 함께 권총을 들이댈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알 카포네)

 

모든 것이 끝장날 것처럼 보이거나 아이들이 당신을 미치도록 몰고 갈 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20년 뒤에 과연 이 순간을 기억할까?”

 

젊은이의 기쁨은 불순종에 있다 (제임스 베리)

 

발견이라는 진정한 항해의 목적인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마르셸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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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리바이벌 플랜
미네 나오노스케 지음, 이재춘 옮김 / 일송미디어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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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현재 약 18개의 자동차 회사가 있다. 대개 1950년 이전에 창립을 했다. 다이하츠(1907), 스즈키(1909), 이스즈(1916), 마쓰다(1920), 닛산(1933), 토요타(1937), 혼다(1948) 2022년 기준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가 토요타(1,040)이다. 2위는 폭스바겐(830), 3위가 현대(684)이다.

 

1962년 일본 닛산의 블루버드를 우리나라 새나라자동차에서 수입하여 새나라호라는 이름으로 판매한 것이 일본차와 첫 인연이다. 닛산 블루버드는 2002년에 삼성자동차에서 수입하여 sm3라는 이름으로도 판매하였다. 현대차는 미쓰비시, 기아차는 마쓰다, 삼성차는 닛산의 기술로 시작하여, 현대차가 그 회사들을 다 제치고 당당하게 세계 3위가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지인이 몰던 2007년형 삼성 SM5를 인수하게 되었다. 2010년 이후 나온 차들은 대개 현란한 외모를 가졌는데, 이 차는 참 단정했다. 외관도 좋았지만 실내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들었다. 특히 한옥 처마 같은 대시보드, 흙벽 같은 센터페시아, 마루 바닥 같은 센터콘솔 등이 마치 목조 건물의 실내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범상치 않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의문점이 풀렸다. 일본 전통주택의 나무로 된 가구, 특히 목제난로인 '나가히바치'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망해가는 닛산과 똑같이 망해가는 르노는 동업을 시작하고, 르노에서 구원투수(라 쓰고 노동자학살자로 읽는다)로 카를로스 곤 사장을 보내는데, 그의 첫 작품이 티아나이다. 그리고 그 티아나를 삼성에서 수입해서 판매한 것이 삼성 2세대 SM5 또는 1세대 SM7이다. 이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번 읽어볼 만하다. 후에 카를로스 곤(Ghosn)은 횡령죄로 일본에서 수감될 위기에 처하자 고향인 레바론으로 몰래 (Ghost)처럼 도망 가버린다(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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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어너란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유어로 여명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의 캐릭터를 끌어당기는 것은 익스테리어 디자인이다. 상품의 얼굴, 즉 외관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고 하는 것이 정통적인 상품개발의 접근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신상품은 오히려 내부 인테리어의 특색을 전면에 내세운다고 하는 특이한 컨셉으로 설정되었다.

 

차의 내부에 나뭇결무늬의 느낌을 주는 가구를 배치한 듯한 디자인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컨셉이 응축되어 표현되어 있었다. 나뭇결무늬의 느낌을 충분히 적용시킨 안은 그것만으로도 가구적 느낌을 충분히 어필하였고 여기에 센터 콘솔을 나가히바치(長火鉢 거실에 놓고 쓰는 서랍이 있는 직사각형의 목제난로)와 같은 이미지로 마련하였는데 그 아이디어를 검토한 뻬라타 부사장은 그야말로 기발하게 가구의 세계를 카 인테리어에 적용시켰다고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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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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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분야별 스테디셀러 검색을 하면, 생명과학에선 8, 심리학에서 43위에 오른 책이 바로 이 오래된 연장통이다. 제목을 보면 영락없이 인문학책인데, 사이언스북스란 출판사를 보면 과학책이다.

 

저자 전중환은 생물학과 최재천의 제자로 개미를 연구하고, 심리학과 데이비드 버스의 제자로 진화심리를 연구했으니, 과학책 같은 인문학책이, 인문학책 같은 과학책이 나왔으리라.

 

물론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인문학 연구이니 인문학자에게 문과생들에겐 다소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젠 문, 이과의 구분이 사라진 (물론 입시엔 여전히 남아있지만) 통섭의 시대가 아니겠는가.

 

연재된 글을 묶어 낸 것이라 다소 산만한 감은 있지만, 적자생존은 약육강식이 아니라는 것 하나 챙긴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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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은 크고 강하고 거친 적자가 작고 약하고 여린 부적자들을 꼼짝 못하게 찍어 누르는 모습을 우리에게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는 자연선택 이론에 대한 완전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다른 경쟁 형질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개체의 번식을 높여 준다면, 그 형질이 어떤 형질이건 선택된다고 다윈은 역설한다. 몸을 지나치게 크게 만들거나 근육만 부풀리는 형질은 오히려 자연 선택에 의해 제거되기 십상이다.

 

어떤 지역의 토착 병원균들을 잘 다스리는 면역 능력을 비슷하게 지닌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게 된다. 다른 지역에 살면서 그곳의 토착 병원균에 나름대로 적응한 외부인들과 함부로 접촉했다간, 전혀 새로운 병원균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도 있으니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요컨대, 병원균에 대한 심리적 방어가 외인 혐오증과 자민족 중심주의를 낳았다.

 

주소를 쓸 때 한국인들은 큰 집단에서 작은 집단으로 좁혀 가서 마지막에 자기 이름을 쓰는 반면, 미국인들은 자기 이름을 먼저 적고 점차 작은 집단에서 큰 집단으로 넓혀간다. 한국인들은 회의나 토론장에서 웬만하면 중론을 따르려는 반면, 미국인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의견을 내세운다. 왜 이렇게 어떤 문화권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집단주의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일단 나부터 튀고 보자는 개인주의가 발달했을까?

덥고 습해서 병원균이 더 많았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나라들이 춥고 건조한 북유럽이나 극지방의 나라들과 비교해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상기해 보라.

 

이야기는 극 중 인물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독자에게 유용한 가르침을 주게끔 설계된 적응이다. 다양한 역사적, 시간적 배경에서 다양한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의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많다. 따라서 소설과 같은 가상 체험을 통해 유용한 사회적, 생태적 정보를 얻고, 기술을 연마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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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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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학교를 대표해 발명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중학교 때는 컴퓨터를 다루면서 미래 과학자를 꿈꿨지만, 수학 못하니 문과 가라는 고1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문과 남자가 되었다. 국어 교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국어 교사로 밥벌이는 하고 있는데 이루지 못한 과학자의 꿈은 늘 마음 한켠에서 오랫동안 세들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국어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란 책을 읽게 된다. 순간 잊고 지냈던 그 셋방살이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렇게 최재천, 윌슨을 만나게 되었다. 문과 남자가 만나서 대화하기엔 아무래도 생물학자가 적격인 듯 했다.

 

그런데 이젠 슬슬 김상욱, 파인만을 만나러 갈 때가 된 것 같은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어 좋았다. 늘그막에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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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보통은 어리석어진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데이터라는 세 요소를 종합하면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몸의 하드웨어는 20대에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리막을 걷는다. , 근육, 관절, 시력, 청력이 다 그렇다. 뇌세포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뇌의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달리 더 더 늦게까지 스스로를 개선한다. 학습과 경험을 통해 뇌가 획득하는 데이터는 노년기까지 계속 증가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성능 개선과 데이터의 증가 효과는 하드웨어 퇴화로 인한 기능 저하를 상쇄하는 동안은 더 지혜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화로 인해 하드웨어가 심하게 나빠지면 소프트웨어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기존 데이터를 상실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신규 데이터 유입은 줄어든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보다 덜 똑똑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덜 똑똑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 어리석어질 것임을 알 정도로는 똑똑하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본능을 직시하고 통제하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유전자, 타인, 사회, 국가, 종교, , 그 누구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겠다.

 

원자는 도대체 왜 최외곽 전자껍질의 빈자리를 없애려고 발버둥치는 것일까? 나는 모른다. 그렇다는 사실만 안다. 원자는 최외곽 전자껍질을 채우려는 욕망 때문에 다양한 분자와 이온화합물을 만든다. 그 분자와 화합물들이 결합해 자기를 복제하는 유기분자를 형성했다. 단순했던 최초의 생명체는 자연선택이라는 필연과 유전이라는 우연을 통해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 그 진화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 종이 탄생했고, 80억 호모 사피엔스의 한 개체인 내가 있다. 이보다 더 신기하고 극적이고 장엄한 창조 신화나 탄생 설화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

 

세상은 원자로 꽉 차 있고, 원자는 모두 텅 비어 있다. 존재와 무를 어찌 구분할 것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양자역학과 엮으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나는 러셀의 말에 공감한다. 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엔트로피 법칙은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 우제에는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존재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진 의미는 없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 길든 짧든 사람한테는 저마다 남은 시간이 있다. 나는 그리 길지 않을 시간을 조금 덜어 이 책을 썼다. 쓰는 동안 즐거웠다. 남들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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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7분 드라마 - 스무 살 김연아, 그 열정과 도전의 기록
김연아 지음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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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엄마의 책(2008), 연아 코치의 책(2009)에 이어 마지막 연아 자신의 책(2010)을 읽었다. 연아에게 스케이트를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은 아버지였고, 연아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류종현 코치였다. 중도 포기를 막은 사람은 김세열 코치였고, 예술적 감성을 끄집어 내 준 사람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이었으며,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정점을 찍게 해준 사람은 브라이언 오서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함께 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연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의 재능보단 그를 돕는 많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심지어 그와 경쟁했던 수많은 선수들 덕분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시합 자체를 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밑줄>

만 나이로 다섯 살 때, 엄마 아빠 언니와 함께 과천 실내 스케이트장을 찾아갔다. 부모님은 어려서 즐겨 타던 스케이트에 대한 추억을 갖고 계셨고, 우리 자매에게도 그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하셨다. 아빠는 두 발을 딛고 서는 것부터 발을 밀고 나가는 방법까지 내 손을 잡고 찬찬히 가르쳐주셨다.

 

당시 나를 지도해 주시던 류종현 코치님께서 갑자기 엄마를 뵙자고 하셨다. “어머님 연아가 피겨에 재능이 있습니다

 

그 후 내 생활의 중심은 피겨가 되었다. 일 년 넘게 배우던 피아노 학원도 정리하고, 체력 낭비를 막기 위해 방과 후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자제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피겨 스케이팅을 더 오래 할 수 있었기에 괜찮았다.

 

훈련을 하다 보면 늘 한계가 온다. 하지만 이때 포기하면 안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 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 것 마지막 1,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해도 안 뜬 깜깜한 겨울 아침, 일어나기 싫어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으면 깊은 한숨이 절도 나왔다. ‘오늘만 쉬면 안 되나? 너무 추운데링크로 가는 차 안에서 비몽사몽 졸다가 링크에 들어서면 차가운 공기에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눈뜰 때마다 드는 생각. ‘나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돼

 

초등학교 6학년, 나에게도 사춘기란 녀석이 찾아왔다. 학교 가고 학원 다니느라 엄마와 함께 지낼 시간이 별로 없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 온종일을 엄마와 붙어 있어야 했다. 내가 사춘기의 고비를 넘는 2~3년의 시간 동안 혼나고 싸우고 화내고 울고 하면서 엄마와 긴 전쟁을 치렀다.

 

나 그만둘래. 진짜 아파서 못하겠어그런 나를 지켜보는 데 지쳐 있던 엄마도 결국 그러자고 했다. 게다가 당시는 IMF 시절로 아빠 회사가 어려워져 더 이상 피겨를 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선생님, 우리 연아 피겨 그만 두기로 했어요김세열 코치님께서 긴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그럼 마지막으로 전국체전만이라도 나가고 정리하시죠. 너무 아깝잖아요우리는 20032월에 있을 동계체전을 마지막으로 피겨를 끝내기로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다. 왠지 몸도 가벼웠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전국체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렇게 끝인가? 대회는 끝났는데 뭔가 못한 숙제가 남은 것처럼 개운하지가 않았다. 스케이트를 안 타도 되니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엄마와 코치님은 은근슬쩍 계속 해보자고 나를 달래셨다. 그러자 한편으로 마음이 놓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아프고 싫다고 울고불고 했었는데 오히려 정말로 그만두게 될까 봐 조마조마하다니.

 

누구도 강요하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없다. 스스로를 움직일 수 있는 꿈의 이유가 없다면 금세 포기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롤러코스터처럼 격하게 변하던 내 마음 속에 피겨는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으로 자리 잡았다.

 

경쟁 상대가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된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라이벌이라 규정하고 매 시즌 경기 성적을 비교하기에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스케이팅을 하는 거니까.

 

내 속에 숨겨둔 감정들, 가지고는 있었지만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 표정과 동작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데이비스 윌슨이다. 어느 날은 차가 너무 막힌다고 해서 기다리는 걸 포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늦어지는 일은 흔히 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어딘가에서 아무도 생각해 낼 수 없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었는지도 모르니까.

 

어릴 적 한국에서 훈련할 때와 지금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함께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를 들자면, 우리는 코치로서 선수를 가르치고 선수로서 코치에게 가르침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 느끼는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의견을 모아서 언제나 둘이 한길을 가고 한마음이 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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