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 분야별 스테디셀러 검색을 하면, 생명과학에선 8위, 심리학에서 43위에 오른 책이 바로 이 ‘오래된 연장통’이다. 제목을 보면 영락없이 인문학책인데, 사이언스북스란 출판사를 보면 과학책이다.
저자 전중환은 생물학과 최재천의 제자로 개미를 연구하고, 심리학과 데이비드 버스의 제자로 진화심리를 연구했으니, 과학책 같은 인문학책이, 인문학책 같은 과학책이 나왔으리라.
물론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인문학 연구이니 인문학자에게 문과생들에겐 다소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젠 문, 이과의 구분이 사라진 (물론 입시엔 여전히 남아있지만) 통섭의 시대가 아니겠는가.
연재된 글을 묶어 낸 것이라 다소 산만한 감은 있지만, 적자생존은 약육강식이 아니라는 것 하나 챙긴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한 독서였다.
<밑줄>
적자생존은 크고 강하고 거친 ‘적자’가 작고 약하고 여린 ‘부적자’들을 꼼짝 못하게 찍어 누르는 모습을 우리에게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는 자연선택 이론에 대한 완전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다른 경쟁 형질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개체의 번식을 높여 준다면, 그 형질이 어떤 형질이건 선택된다고 다윈은 역설한다. 몸을 지나치게 크게 만들거나 근육만 부풀리는 형질은 오히려 자연 선택에 의해 제거되기 십상이다.
어떤 지역의 토착 병원균들을 잘 다스리는 면역 능력을 비슷하게 지닌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게 된다. 다른 지역에 살면서 그곳의 토착 병원균에 나름대로 적응한 외부인들과 함부로 접촉했다간, 전혀 새로운 병원균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도 있으니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요컨대, 병원균에 대한 심리적 방어가 외인 혐오증과 자민족 중심주의를 낳았다.
주소를 쓸 때 한국인들은 큰 집단에서 작은 집단으로 좁혀 가서 마지막에 자기 이름을 쓰는 반면, 미국인들은 자기 이름을 먼저 적고 점차 작은 집단에서 큰 집단으로 넓혀간다. 한국인들은 회의나 토론장에서 웬만하면 중론을 따르려는 반면, 미국인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의견을 내세운다. 왜 이렇게 어떤 문화권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집단주의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일단 나부터 튀고 보자는 개인주의가 발달했을까?
덥고 습해서 병원균이 더 많았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나라들이 춥고 건조한 북유럽이나 극지방의 나라들과 비교해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상기해 보라.
이야기는 극 중 인물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독자에게 유용한 가르침을 주게끔 설계된 적응이다. 다양한 역사적, 시간적 배경에서 다양한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의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많다. 따라서 소설과 같은 가상 체험을 통해 유용한 사회적, 생태적 정보를 얻고, 기술을 연마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