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7분 드라마 - 스무 살 김연아, 그 열정과 도전의 기록
김연아 지음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연아 엄마의 책(2008), 연아 코치의 책(2009)에 이어 마지막 연아 자신의 책(2010)을 읽었다. 연아에게 스케이트를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은 아버지였고, 연아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류종현 코치였다. 중도 포기를 막은 사람은 김세열 코치였고, 예술적 감성을 끄집어 내 준 사람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이었으며,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정점을 찍게 해준 사람은 브라이언 오서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함께 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연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의 재능보단 그를 돕는 많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심지어 그와 경쟁했던 수많은 선수들 덕분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시합 자체를 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밑줄>

만 나이로 다섯 살 때, 엄마 아빠 언니와 함께 과천 실내 스케이트장을 찾아갔다. 부모님은 어려서 즐겨 타던 스케이트에 대한 추억을 갖고 계셨고, 우리 자매에게도 그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하셨다. 아빠는 두 발을 딛고 서는 것부터 발을 밀고 나가는 방법까지 내 손을 잡고 찬찬히 가르쳐주셨다.

 

당시 나를 지도해 주시던 류종현 코치님께서 갑자기 엄마를 뵙자고 하셨다. “어머님 연아가 피겨에 재능이 있습니다

 

그 후 내 생활의 중심은 피겨가 되었다. 일 년 넘게 배우던 피아노 학원도 정리하고, 체력 낭비를 막기 위해 방과 후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자제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피겨 스케이팅을 더 오래 할 수 있었기에 괜찮았다.

 

훈련을 하다 보면 늘 한계가 온다. 하지만 이때 포기하면 안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 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 것 마지막 1,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해도 안 뜬 깜깜한 겨울 아침, 일어나기 싫어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으면 깊은 한숨이 절도 나왔다. ‘오늘만 쉬면 안 되나? 너무 추운데링크로 가는 차 안에서 비몽사몽 졸다가 링크에 들어서면 차가운 공기에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눈뜰 때마다 드는 생각. ‘나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돼

 

초등학교 6학년, 나에게도 사춘기란 녀석이 찾아왔다. 학교 가고 학원 다니느라 엄마와 함께 지낼 시간이 별로 없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 온종일을 엄마와 붙어 있어야 했다. 내가 사춘기의 고비를 넘는 2~3년의 시간 동안 혼나고 싸우고 화내고 울고 하면서 엄마와 긴 전쟁을 치렀다.

 

나 그만둘래. 진짜 아파서 못하겠어그런 나를 지켜보는 데 지쳐 있던 엄마도 결국 그러자고 했다. 게다가 당시는 IMF 시절로 아빠 회사가 어려워져 더 이상 피겨를 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선생님, 우리 연아 피겨 그만 두기로 했어요김세열 코치님께서 긴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그럼 마지막으로 전국체전만이라도 나가고 정리하시죠. 너무 아깝잖아요우리는 20032월에 있을 동계체전을 마지막으로 피겨를 끝내기로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다. 왠지 몸도 가벼웠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전국체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렇게 끝인가? 대회는 끝났는데 뭔가 못한 숙제가 남은 것처럼 개운하지가 않았다. 스케이트를 안 타도 되니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엄마와 코치님은 은근슬쩍 계속 해보자고 나를 달래셨다. 그러자 한편으로 마음이 놓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아프고 싫다고 울고불고 했었는데 오히려 정말로 그만두게 될까 봐 조마조마하다니.

 

누구도 강요하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없다. 스스로를 움직일 수 있는 꿈의 이유가 없다면 금세 포기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롤러코스터처럼 격하게 변하던 내 마음 속에 피겨는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으로 자리 잡았다.

 

경쟁 상대가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된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라이벌이라 규정하고 매 시즌 경기 성적을 비교하기에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스케이팅을 하는 거니까.

 

내 속에 숨겨둔 감정들, 가지고는 있었지만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 표정과 동작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데이비스 윌슨이다. 어느 날은 차가 너무 막힌다고 해서 기다리는 걸 포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늦어지는 일은 흔히 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어딘가에서 아무도 생각해 낼 수 없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었는지도 모르니까.

 

어릴 적 한국에서 훈련할 때와 지금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함께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를 들자면, 우리는 코치로서 선수를 가르치고 선수로서 코치에게 가르침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 느끼는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의견을 모아서 언제나 둘이 한길을 가고 한마음이 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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