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
에린남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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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집안을 둘러봤다. 뭘 버릴까? 책을 다 읽고, 집안 곳곳 버릴 것을 찾아냈다. 이사온지 3년 됐고, 딸가 태어난지 23개월 된 것 치고 집이 많이 좁아지지는 않았다. 이사오기 전부터 집안에 꼭 필요한 것들만 채워넣기로 했었다. 다행히 우리 부부 둘다 물건 욕심이 많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저것 늘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늘어나는 짐들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가 커갈수록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는 
건들의 부피 또한 커져서 필요없는 물건들은 처분하고 싶었다.


'미니멀리스트'. 일반적으로 미니멀리스트는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가진 채 삶을 가볍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24p)


집안일이 하기 싫어서, 너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는 저자. 물건을 비워내고, 버려지는 쓰레기도 줄이며,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물건 비우기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게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이었단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받았던 편지나 쪽지를 한참 동안 간직했다. 결혼하고 1년 후, 새 집으로 이사하며 친정에 있던 내용 없는 편지와 쪽지를 잔뜩 비워냈다.





우리는 중고 거래로 물건도 비울 수 있었고,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될 만한 약간의 돈을 벌기도 했다(물론 원래 썼던 돈의 일부가 되돌아온 것뿐이지만).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중고 거래는 참 매력적인 물건 비우기 방법 중 하나임은 확실하다. (82p)


몇 년 동안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방치한 채 살아왔다. 열심히 공부했던 외국어 학습자료들, 셀프웨딩촬영하며 썼던 화관과 부케 등. 다시 꺼내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에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 외국어교재와 프린트물,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는 과감히 버리고, 화관과 부케는 중고로 팔았다. 결혼하고 남편 덕분에 알게 된 중고 거래 사이트. 결혼 전에는 읽지 않는 책을 몇 상자 기부한 정도였는데, 지금은 새 제품에 가깝거나 비싼 물건은 중고로 팔고 있다.


저자는 쓰레기 줄이는 방법으로 썩지 않는 소재의 사용을 줄이려는 실천인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알려준다. 대나무 칫솔, 천연 세제 소프넛, 샴푸 바와 올인원 비누 사용, 유리 공병 재활용 등.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사용하기나 물 끓여 마시기는 실천 중이고, 새로운 방법도 알 수 있어 좋았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후, 더는 소비를 즐기지 않게 되어서 조금은 재미없고, 조금은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롭게 됐지만 전에는 몰랐던 가벼운 하루하루를 살게 됐다. 정말 값진 삶이다. (225p)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내 몫의 여행 짐을 싸는 것,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내 삶에 필요한 것을 채우고, 필요 없는 것을 비우는 과정이 바로 미니멀 라이프!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는 결혼하고 호주로 간 저자가 3년 사이에 미니멀리스트가 었고,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살던 집을 비우고 새 보금자리를 채우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덮고서 안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닦아내는 청소가 아니라 베란다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물건들과 창고 에 아무렇게나 채워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버릴 것은 버림으로써 생활하는 공간이 좀더 넓어지고 쾌적해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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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취향수집 에세이
신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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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는 운명에 맡기고 항상 성장하는 삶의 과정에서 행복을 찾아낸다. 최선을 다해 완전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생각을 빌려 왔지만, 내가 만든 최소 취향의 결론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 (255p)





제목만 봤을 때는 최소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범위가 작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목차를 보면서 작가의 삶 전체에 대한 최소 취향을 말하는구나 싶더라. 좋은 식사, 편안한 잠자리부터 풍수인테리어까지, 스타일과 건강, 일과 휴가, 지적 유희와 지적 갈망 그리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어울리는 법.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담백한 글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20대에 일주일 이내의 짧은 여행이든 한 달간 긴 여행이든 배낭여행을 할 때면 숙소는 무조건 값싼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호텔이지만 저렴한 곳을 골랐다. 대신 되도록이면 조식 포함인 곳으로. 하지만 30대가 되고 결혼을 하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런가. 여행하게 되면 무조건 좋은 숙소에서 머물고 싶다. 작가는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든 좋은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 두 가지는 꼭 지키고 싶다고 한다. 잘 자는 데 필요한 물건을 사는 돈이 건강을 위한 가장 좋은 투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 가장 볕이 좋은 곳에 앉아 식사를 한다. (20p) 햇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무한대로 주어진다. (중략) 어두운 구석 아닌 볕으로 나가 식사를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건 행복하고 싶은 나의 선택이다. (23p)


21개월 딸아이는 식탁의자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 오래 앉아 있는 걸 답답해 하면 상 펴고 바닥에서 먹였는데, 아침에는 햇볕을 등지고 벽에 그림자놀이도 해주며 먹였다. 그런데 작가의 햇볕 예찬론을 읽은 후로 따뜻한 볕이 들어오는 아침에는 베란다를 향해 앉아 먹이고 있다. 



 

가끔 행복이라는 모호한 희망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소박한 찬에 볕이 드는 자리에서 밥 먹는 순간에 느끼는 이 감정이 행복 아닐까 싶다가도 왜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걸까 궁금해진다. 부족한 면만 좇다 보니 알 수 없었던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의 무게. (22p)


신랑이 설거지하던 주말 아침, 햇볕이 내리쬐는 베란다에 커다란 목욕의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딸아이가 자기도 나오겠다고 문을 두드리더라. 요즘 집에만 있으니 따스한 햇볕 드는 시간이 반갑다. 아예 베란다에 돗자리를 펴고 딸아이와 누워있으니 신랑이 베개를 가져다 주더라. 


 


그래서 찾은 건 작은 그림엽서. 가장 심플하고 가볍게 작품을 소유하는 방식이었다. (43p)


미술 작품이나 예술 세계를 잘 알지 못하지만, 나도 그림과 풍경 사진을 좋아한다. 제주도 김영갑 갤러리, 도쿄 하라미술관의 요시모토 나라 작업실 등 여행할 때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러 좋아하는 작품 감상하는 걸 좋아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사진이 있다면, 관람 후에 엽서를 구입했다. 나 역시 작가처럼 친구의 결혼식 날 축하 카드로 주거나 친한 친구와 언니들에게 짧은 편지를 써서 나눠주곤 했다.





작가는 옷을 적게 가지고 있지만, 좋은 품질의 옷을 사고 잘 관리해 오래 입는다고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 리를 하면서 입지도 않은 옷을 왜 버리지도 못하고 넣었다 꺼냈다 하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입지 않아서 버려겠다 마음먹었다가도 한번 입어보니 괜찮네, 하며 다시 놔두게 된다. 집안에 필요없는 물건은 들이지 않고 되록 짐을 최소화하고 싶은 생각은 변함없는데, 옷 정리할 때마다 머뭇하게 되더라.


목걸이나 반지보다는 귀고리를 좋아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스승의 날이면 직접 만든 귀고리를 많이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디자인이 촌스럽기도 하고 색상이 나이에 맞지 않기도 해서 항상 착용하는 귀고리만 하게 된다. 첫 스승의 날이었나 엄마가 선물해주신 귀고리를 몇 년 동안 하다가 끊어져서 한 달 여행 함께 했던 언니가 선물해준 귀고리를 또 한참 하고 다녔다. 결혼하고부터는 함 들어오던 날 어머니가 해주신 예물 귀고리를 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추운 겨울에도 짧은 치마를 잘도 입고 다녔다. 출산 후에는 무릎이 보이는 치마는 못 입겠더라. 겨울에는 목도리가 필수였는데, 이제 체질이 바뀐 건지 두꺼운 니트도 목도리도 안 하게 된다. 20대에는 신발도 저렴한 걸 사서 신다가 헤지면 다시 구입했었다. 지금은 좋은 신발을 사서 오래 신으려고 한다.


수영, 요가, 목욕, 마사지 등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했다. 뜨거운 날에도 열심히 걸어다니던 30대 초반의 나는 이제 없다. 얼굴에는 색소침착이 생겼고, 까맣게 탄 팔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몇 년이 걸렸고, 조금만 걸어도 발목과 무릎이 아프다. 운동은 아예 안 하는 내가 좋아하는 '걷기'도 이제는 좋아한다고 못하겠다. 처음 해본 온천여행이 너무 좋았고, 가족여행을 계획하면 스파욕조 있는 펜션을 찾게 된다. 마사지라고는 결혼 전에 테라피 마사지와 산후조리원에서 받은 전신마사지가 전부다. 집에서 작은 마사지기로 피로를 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과 비교할 수는 없어서 가끔 몸이 힘들 때 마사지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가는 기한 지난 대용량 파일을 삭제하고 라벨을 나누고 태그를 붙여 정리하면 메일이 깔끔하게 각 서랍에 수납된 듯하고, 잘 안 나온 사진을 몽땅 지울 때 쌓아둔 쓰레기를 버린 듯한 시원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지금은 받는 메일이라고는 쇼핑 주문확인 메일과 스팸 메일이 대부분이지만, 결혼 전에는 메일함을 여러 폴더로 정리했었다. 지금 찍는 사진은 딸아이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잘 나온 사진만 놔두고 휴지통을 비울 때면 속이 다 시하다.





대학생 때 학교 도서관과 동네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많이도 읽었다. 20대 초반에는 역사추리소설과 의학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고, 졸업할 무렵에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었다. 보통 읽는 분야가 한정적이었는데, 예술, 과학, 경제 서적도 골고루 읽기 시작했다. 3년간 한 분야 책을 읽으면 준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해도 작가는 책을 편식하는 건 생각이 꽉 막힌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라며 여러 분야 책을 골고루 읽는다고 한다. 책을 좋아해서 작가의 책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여전히 벽 한쪽을 채우는 책꽂이를 사고 미술과 철학 서적을 가득 꽂아두고 싶다.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가진 것만으로 그 지식을 소유했노라 착각하는 지적 허영. 그런 나를 애써 누르는 건 사두고 꺼내 읽지 않았던 수많은 책을 정리했던 과거 때문이다. (190p)


대학 졸업할 무렵부터 여러 도서 이벤트에 응모했고, 당첨된 책들로만 커다란 책장이 꽉 찼다. 그때는 책 욕심이 있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의 책들도 많이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보지 않을 책들이 생겨서 결국 기부를 하거나 중고서점에 팔기도 했다. 그 후로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꼭 읽고 싶은 책들만 받는 편이다. 결혼하고 내 집이 생기면서 오랜 로망이었던 서재를 꾸미지는 못했다. 서재를 꾸밀 정도로 큰 방이 아니라서 한쪽 벽을 책장으로 꾸민 정도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가득 꽂아두니 보고만 있어도 좋다.





입에서 걸리는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람과 어울린다. 가까울수록 예의와 배려, 선을 넘지 않는 것. 편안한 사이여도 지킬 건 지킨다. 내가 계속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런 이들이다. (250p)


작가의 최소 취향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 공감했다. 작가는 불만족스러웠던 본인의 많은 면을 지우고,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무척 느리게 다듬어나가며 사람은 어떤 방향을 갖느냐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니 '이렇게 살아와서 그렇게 바꿀 수 없다'는 말은 핑계임을 알겠다. 따뜻한 봄날, 공원 잔디밭에 돗자리 펴고 읽고 싶은 책이지만 요즘은 나갈 수가 없으니 집에서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 읽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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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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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얼마 만에 재미있게 읽은 책인지 모르겠다. 읽는 도중에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잠깐 훑어보기만 하려고 책을 처음 펼쳤는데, 나도 모르게 계속 읽고 있으니까 옆에 있던 20개월 딸아이가 책을 뺏어버리더라. 보통은 아이가 잘 때 책을 읽는 편인데,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이 책은 틈틈이 읽었다. 육아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었다.





번역가의 책은 아마도 처음 읽은 것 같다. 일본 문학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권남희 번역가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 무레 요코의 소설과 에세이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28년차 번역가. 책장에서 일본 소설을 모아둔 칸을 오랜만에 찬찬히 보았다. 한창 일본소설을 읽던 때가 벌써 10년도 더 돼서 권남희 번역가의 책은 3권 뿐이더라. 영화와 소설 모두 좋아서 가보고 싶은 나라 목록에 핀란드를 올리게 한 <카모메 식당>(2011) 그리고 <프랭크자파 스트리트>(2009)와 <우연한 축복>(2008). 시간 날 때, 그녀가 번역한 책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그녀는 세상에서 없어져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존재감 없던 아이였다고 한다. 게다가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여서 수업 시간에 책 읽기를 시키면 달달달 떨며 읽었단다. 나도 학창 시절에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게 되면 목소리가 떨렸다. 1999년 고2 문학 시간에 연구 수업을 했었는데, 아마도 20대였을 갓 부임한 문학선생님과 수업 작 에 얼굴을 마주쳐 화이팅을 외쳐드렸다. 근데 수업 중간에 내게 책읽기를 시키신 것이다. 그때도 목소리가 떨더랬다. (사족: 문학선생님과는 아직도 연락을 한다.) 그런데 또 수학 담당이던 중1 때 담임 선생님이 수학 시험이 끝나고 시험지 한 장을 칠판에 문제풀이 하라고 시켰을 땐, 친구들 앞에서 잘도 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습지 교사를 할 때도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한자 문제풀이를 했는데, 팀장님이 잘 했다고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사는 중이다.


책의 앞부분에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스무살에「상실의 시대」를 읽었고,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정말 최고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가 열렸고 권남희 번역가도 질문을 올렸는데,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으로 메일이 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읽고, 2010년 어느 날에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났다.『1Q84』100만부 돌파 기념으로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이벤트를 했었다. 하루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면 20명을 뽑아 하루키에게 전달한다는 이벤트였다. 문법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어와 한글로 편지를 썼고, 하루키에게 내 편지가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20명 안에 들어서 음악 CD를 선물받았었다.




책을 읽으며, 읽기 쉽고 재미있는 권남희 번역가의 문체가 맘에 들었다. 상황 설명 후에 무심하듯 던지는 말 한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며 웃음이 나더라. 왜 그녀의 글에 이제서야 빠진 거지. 그녀가 번역한 소설과 에세이는 물론이고, 번역 생활 이야기와 번역 팁이 넘쳐나는『번역에 살고 죽고』도 읽어보고 싶다. 책을 읽으며 재미있었던 부분을 적어보았다.


왐마, 하루키 님도 재수 옴 붙은 느낌이 드는 이 상황에서는 긍정적일 수 없을 거다. 그렇게 개념 없는 사람한테 긍정력을 발동해서 뭐하나. 타는 전철마다 연착되라고 빌었다. (32)


오래된 일이다. 아마 지금쯤 그녀는 예의 바르고 노련한 편집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나도 아마 요즘 같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아, 그건 아니네.(46)


A, B선생님 다음에 내 이름을 떠올려 주어서 고오맙습니다. (75)


이런저런 퇴사 위로 멘트 고민을…… 대체 취준생 엄마가 왜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82) 

 

정말로 착하고 똑똑하고 개념 있고 효녀다. 그러나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예쁠 때 이외에는 엄마를 괴롭히는 게 자식이다. 지랄 총량을 맞추느라. (143)


혹시 저를 만나서 얘기하다 갑자기 눈물 흘리더라도 옆집 개가 하품할 때처럼 무시해 주세요. (162)




패키지투어는 시간에 쫓기며 점만 찍고 다닐 뿐 즐기지도 못하고, 단체로 다니니 불편하고, (중략) ……라고 생각했는데 '패키지투어성애자'가 된 마스다 미리의 여행기 (219)『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를 번역하며 패키지투어에 가진 선입견이 깨졌다고 한다. 나 역시 패키지투어 보다는 자유여행, 배낭여행을 좋아하는데, 싱글인 작가가 더 늙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여행 다녀오고 싶다는 일념으로 혼자 씩씩하게 패키지투어를 다니며 알차게 설명해놓았다는 그 책을 읽어보고 싶다.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츠바키 문구점』을 번역하며 역자 후기로 가마쿠라 기행문을 썼다는 그녀. 이 책도 꼭 읽어 봐야지. 나도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며 작품 속 도시에 반해서 여행을 떠난 건 아니고, 여행지를 결정할 때 도움 된 적이 몇 번 있다. 예를 들면,「그리스인 조르바」와「도쿄펄프픽션」이 그렇다.


딸을 임신했을 때 모자교실에서 만난 세 명의 친구들과 21년 만에 도쿄에서 만났던 날이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이라는 그녀. 일본어과 학생이 된 딸이 세 명이나 되는 제2의 엄마들 덕분에 교환학생으로 간 도쿄에서 무사히 한 해를 보냈단다. 한국에서도 4자 회동을 하자고 했다던데, 나는 왜 그 모임이 잘 진행되었는지가 궁금할까? 


외국 배우 줄리 델피 닮았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기에 줄리 델피를 검색해 보았고, 정적을 좋아하는 그녀가 어느 노래에 반해서 유튜브에서 10년 치 영상을 다 보고 말았다는 록밴드 국카스텐도 바로 찾아보았다. 에세이집을 읽고 글쓴이에 대해 이렇게 궁금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처음 책을 펼치기 전, 앞표지에 적혀 있는 "권남희 번역가의 글은 정말 재미있다!"는 한 마디를 보고 궁금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책을 다 읽고 나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 진짜 재밌다!


막막한 바다를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그 바다를 건너는 누군가에게 한 줄쯤 도움이 되길 바라며 (9) 글을 썼다는 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집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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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엄마
신현림 지음 / 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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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관련 책을 읽다가 태아에게 동시를 읽어주면 좋다는 말을 보았다.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받았던 동시집이 있었는데, 결혼하고 이사하면서 버렸는지 보이질 않더라. 동시 대신에 태교동화만 여러 권 읽어주었다. 그러던 중 <시 읽는 엄마>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임신 전에도 제목에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책에 눈이 갔지만, 임신하고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시 읽는 엄마, 엄마라는 무게 앞에 흔들릴 때마다
시가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엄마라는 위치가 얼마나 힘든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시는 얼마나 위대한지 책 표지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딸아, 너와 닿으면 희망이 보여 ; 에 관한 이야기
2. 가끔은 엄마도 위로가 필요해 ; 엄마로서 의 이야기
3. 엄마, 곁에 계실 때 더 잘해드릴걸 ; 내 엄마에 관한 이야기

우선 시를 소개한다. 세계적인 고전 명시, 현세대의 세계 명시, 한국 대표 시인의 작품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좋은 시인의 작품들.

그리고 시와 연결지어 신현림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가 딸을 임신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어서 더욱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딸이 곁에 있어 견디고 인내할 수 있었다. 그 위대한 사랑의 능력은 엄마가 되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5p)

생계부터 육아까지 1인 5역을 하며 고단하고 속상한 엄마, 자기를 떼어놓고 일하러 가는데도 울고 보채지도 않는 어린 딸이 안쓰러우면서도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란 딸이 너무 예쁘다.


옆에 있는 딸을 꼭 껴안았다. 이렇게 껴안을 땐 서로 부드러운 스펀지가 되어 각자가 가진 염려와 슬픔을 빨아들인다. 딸과 내가 껴안는다는 건 ' 엄마는 네 속에 있을 테니, 언제 어디서든 두려워하지 마 ' 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곁에 누군가 함께 있다는 기쁨은 돈으로도 셀 수 없을 만큼 애틋하다. (53p)

신랑 회사일이 바빠서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출근하면, 나 혼자라는 느낌이 강했다. 임신 후기가 되고 보니 불러온 배 만큼 태아의 존재도 커졌나보다. 출산을 한 달 앞둔 지금은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안다.


엄마는 자식과의 정을 먹고 산다. 그렇게 엄마는 자식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다. 내가 내 딸의 엄마가 됨으로써 어머니의 소중함을 느낀 만큼, 내 딸에 대한 애정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따금씩 이렇게 묻는다. '내 딸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내 피붙이가 있다는 사실이 이리도 다정하고 따뜻할 수 없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딸이 주는 경이로움이 이렇게 클지 처녀 시절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내 안의 씨앗이 어느새 자라 걷다니……. 직립 인간으로 성장하기까지 순간순간 맛보는 인생의 신비. 내겐 이 모든 순간이 하나의 기적이었다. (130p)
 
갓난아이를 어찌 키워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함을 나도 곧 느끼겠지, 세상 모든 어둠이 우리 딸을 피해가기를 바라겠지, 딸이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둘 만의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으며, 밤새 수다 떨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다.


엄마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매일 하며 살아도 아쉬운 인생이다. 입으로 자꾸 되뇌다 보면 처음에는 힘들어도 잘하게 된다. 표현하지 않는 애정은 애정이 아니더라. 표현의 때를 놓치면 영영 기회를 잃을 수도 있더라. 자식이 먼저 던지는 사랑의 인사는 엄마의 인생에 큰 용기가 된다. (164~167p)

난 엄마에게 살갑게 하질 못한다. 신랑이 항상 장모님 안아드리라고, 메시지 보낼 때 하트도 보내드리라고, 한다. 엄마도 그런 나를 아니까 애 낳아 보면 알겠지, 하신다. 자식을 키우면, 엄마를 더 생각하고 더 이해하게 되겠지?


나는 내 딸을 책 많이 보는 사람으로 키우는 게 꿈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무릎에 앉혀두고 이솝우화며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애썼다. 인생을 좀 더 지혜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p)

나도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내 딸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엄마 아빠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이며 책 읽을 환경을 만들어주고, 장난감 대신 책을 손에 쥐어주고 싶다. 주말이면 손잡고 도서관에 가서 책구경도 하고, 서점에 가서 읽고 싶어하는 책도 사주고 싶다.



<시 읽는 엄마>는 단순히 시를 읽는 엄마의 이야기가 아니다. 엄마가 되고서 눈물이 많아진 그녀가 세상일에 치여 지친 날, 시를 읽으며 위로 받고 마음을 다잡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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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서른다섯, 그런대로 안녕하다 - 나만의 속도대로 살아도 행복할 수 있어
곽민지 지음 / 홍익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내년이면 서른다섯이다.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읽고 싶었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직은 괜찮겠지?' 했던 것들에

이제는 막중한 책임감이 든다.

30대 중반을 앞두고 뒤숭숭한 마음이 없지 않은데,

『여자 서른다섯, 그런대로 안녕하다라는 제목이

뭔가 안도감을 주는 듯해 읽어보고 싶었다.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배낭여행을 준비하느라 책을 잠시 접어두었다.

그래서 책 읽는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책을 다시 한번 손에 잡아보니 좀 두껍게 느껴진다.

하지만 짤막한 글들의 묶음집이라 읽기에 불편하진 않다.


part 1. 예전의 내가 아니야 / part 2. 죽겠어, 정말!

책을 펼치고, 이 두 부분을 읽는 속도가 정말 느렸다.

왜 그렇게 안 읽혔지?

작가의 경험과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행 다녀와서 읽은

part 3. 사랑이 밥 먹여주니 / part 4.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두 부분은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사랑과 결혼, 남편', '부모와 가족,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마치 내 얘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과 관련한 내용이나 엄마 이야기에서 공감을 많이 했다.

과연 앞부분은 공감이 덜 돼서 지루했던 건가?



part 5. 내 삶에 만족해요 / part 6. 와인을 좋아해요 / part 7. 혼자일 때가 제일 좋아

일과 생활, 거기에 역시 작가의 경험과 생각들이 풀어진다.



나도 올해 결혼을 했고, 크지 않은 신혼집에서 살림을 시작했고,

남편은 프리랜서지만 능력자에 돈도 많이 벌어온다.

나한테 돈 벌어오라는 소리는 안 하지만, 과외하는 학생수가 좀더 늘어나면 좋겠다.

가끔 싸우긴 하지만, 솜씨 없는 음식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고맙고,

함께 장 보는 시간, 함께 하는 집안일도 즐겁다.



『여자 서른다섯, 그런대로 안녕하다』를 읽다보니

일과 가정에 충실해야 할 나이가 바로 서른다섯이 아닌가 생각된다.

곧 만나게 될 나의 서른다섯, 그런대로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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