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인생에 관한 26가지 거짓말
에밀리 프랭클린 지음, 서현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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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보느니 차라리 와인 병을 따고 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이 이 책을 집어 든 것을 보면 어엿한 어른이 되었지만 갑작스레 주어진 무거운 책임감이 마냥 낯설기만 했던 나의 과거가 지금 여러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행복을 안겨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정말로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 시기가 혼란스럽기는 나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40p)

이 부분을 읽고 울컥했다. 이 책의 제목 '20대 인생에 관한 26가지 거짓말'을 보면서도 20대가 2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 책을 읽어 마땅한가 그렇지 않은가 고민했다. 20대 인생에 관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대충 짐작은 가지만, 읽지 않는 것보다 한번 읽어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스물 여섯 명의 언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맙소사,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고민하고 걱정하고 실망했던 나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직장은 나에게 맞지 않고, 현실과 다른 삶을 막연히 꿈꾸기만 하고, 모든 것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내가 꿈꾸던 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이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기대했던 것만큼 근사하지도 않고, 나를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자기 생각에 빠져서 혼자 괴로워하고, 정해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비단 나뿐만은 아니겠지. 

이미 20대를 보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때가 그리울지 몰라도, 막상 20대의 입장에서는 그 현실이 기가 질릴 정도로 두렵고 불안할 수도 있다. (174p) 20대는 노력하고, 걱정하고, 자신에게 회의를 느끼고,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성적으로 직업적으로 자신을 실험하면서 기뻐도 하고 실망도 하는 시기다. (177p)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 우정, 일을 비롯한 모든 일에서 실수를 할 수 있고, 실수를 해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허락하면 그만큼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20대 시절에는 가능성과 기회라는 선물이 늘 곁에 있다. 자신의 꿈과 자신만의 색깔에 솔직해지면 생각하지도 않았던 미래가 나타나게 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언니들 중에는 좁디좁은 거실에서 혼자 신세 한탄을 하다가 지금은 집필한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큰 성공을 거둔 작가, 멋진 아파트에서 공짜로 살며 6년간 기숙사 사감을 했던 사람, 20대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던 사람, 옛 애인 아홉 명과 친구가 된 사람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신기하게도 스물 여섯 명 중에 70%가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고, 20대에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한 사람도 많았다. 

20대, 환상이 깨지는 순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난 과연 모든 환상이 깨졌을까? 아직 아닌 것 같다. 운명을 바꾸기 위한 투자를 하고, 돈을 제대로 알고, 프로페셔널한 습관을 가지고, 사랑한다면 지금 고백하고, 인생을 즐기라고 충고한다. 나에게 투자하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뜻대로 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메모하는 습관, 한 달에 두 권 이상 책 읽기, 한 달에 한 번은 공연이나 전시회 가기, 혼자만의 여행 떠나기, 적어도 하나 이상의 외국어 익히기 등 모두 마음에 든다. 실천할 만한 것들이다.

내 나이 스물여덟이라서 그런지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있었다. '28세는 제 2의 18세다.' '스물여덟 살의 나는 열여덟 살에 꿈꾸던 삶이 아니라 열여덟 살 그 순간에 살고 싶던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깨달음이었다. (155p)' 열여덟 살이면 고3때인데 지금 나는 그 순간에 꿈꾸던 삶을 살고 있나? 나 역시 그 순간에 살고 싶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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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카토 라디오
정현주 지음 / 소모(SOMO)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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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그마한 책이 참 예쁘다. 벽돌색 바탕 표지의 타자기가 탁탁탁 경쾌한 소리를 내는 듯하다. 마치 스타카토로 연주하듯이. 라디오 작가 그녀가 소소하고, 정답고, 따뜻하고, 즐겁고,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상, 친구, 사랑,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옆집 언니처럼 편안하게, 친한 친구처럼 부담 없이 얘기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맘에 와닿는다. 프롤로그의 첫 구절부터. '여행지의 아침 창가처럼 우리의 매일매일 설렘으로 시작되기를….'

첫장을 넘겼고, 글의 소제목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걸 눈치 못채고 읽었을 때 느낌이 좋았다 ; I have a typewriter. 매일 30분 in cafe. 눈을 뜨면 화분에 물주기. 오후 2시 날마다 소풍. 밤은 시간이 아닌 공간. 토요일엔 전원이 꺼져 있어. 일요일 12시 그림수업. Language Exchange와 사진 수업. 내 나이가 몇이더라? ; 읽으면서 참 여유롭게 생활하는구나 생각했고 부러웠다. 하나같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진들도 예쁘다. 하루 30분을 카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보낸다니 그 시간이 행복할 것 같다. 달콤한 커피 한 잔에 들리는 것을 듣고 보이는 것을 보면서 온전히 나를 위한 휴식 시간. 

그녀의 '친구들'처럼 나도 책을 쓴다면 소개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어릴 적에 생각했던 넓은 인맥보다 이제는 깊은 인맥을 바란다. 정말 소중한 내 친구들. 중2 때 단짝 예쁜 그녀. 말도 행동도 웃음도 예쁘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항상 그대로다. 대학교 때 기숙사 살면서 친해진 꽁. 대학 시절 내 여행 파트너였다. 보름간 배낭 여행하며 사소한 말다툼 한번 한 적이 없다. 결혼한 지 50일도 안 된 새색시 꽁과 우리의 두번째 배낭여행을 계획 중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만난 소중한 친구 BK는 일본에 산다. 늦게 만나서 더욱 아쉬운 친구. 1년여 만에 도쿄 여행 중에 만나 반가웠다. 일하면서 알게 된 언니. 난 자꾸 동갑내기 친구처럼 느껴져 생각 없이 '야'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언니는 나를 만나면 편안하고 자신이 착해지는 것 같단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 내 소중한 여인네들이 열 두명정도 있다.

그녀가 말한다. '끝도 없는 시행착오와 눈물과 상처를 넘어 이제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고. 나는 적당한 시행착오를 겪은 걸까. 눈물과 상처를 받을 만큼 받은 걸까. '우리는 너무 다른 세계에 속해서 지나치게 긴 시간을 홀로 살아왔던 사람들이라 결국 헤어졌다'라는 말에 공감하기도 하면서 이의를 제기하고도 싶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른 세계에 속해 살아온 게 아닌가. 이제는 예쁜 사랑을 하고 싶고, 행복한 연애를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레몬향 비누 냄새, 흙내음 나는 시골길, 영화 <If only>,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전화로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곡,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남겨준 편지, 눈이 살짝 내린 맑게 개인 겨울 날씨, 그리고 소중한 추억들 정리하기.

작고 얇은 책 '스타카토 라디오'를 읽으면서 기분 좋은 꿈을 꾸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학창시절 친구처럼 따스하고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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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나에게 쉼표 - 정영 여행산문
정영 지음 / 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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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휴식, 친구와의 추억. 나에게는 여행이 그랬다. 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바뀌었다. 나만의 쉼표로. 가족과 했던 어릴적 무수한 여행, 대학시절 친구와의 잊지못할 여행들에서 이제는 나 혼자 생각하고, 느끼고, 즐기는 여행에 푹 빠져버렸다.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여행하고픈 마음, 아니 휴일이 돌아올 때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그렇다. 때로는 나에게 필요한 그 쉼표가 바로 여행이었다. 가슴에 와 닿는 제목이며, 내가 좋아하는 하늘과 바다색의 표지 때문에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어로 '이야기'라는 뜻을 지닌 단어와 스페인어로 '편지'라는 뜻을 지닌 단어로 목차를 표시하고 있는데 색다르면서 표현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여느 여행 서적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진부터 훑어보았는데 선명한 색상과 예쁜 색감으로 인해 책이 더욱 돋보인다. 웃고 있는 사람들, 보는 것만으로도 향기가 느껴지는 꽃송이, 알록달록 예쁜 색의 페인트가 칠해진 골목길,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연두빛 초록빛의 나뭇잎, 보랏빛 벽과 분홍꽃과 어울리는 액자 속의 흑백사진 등 환하고, 따뜻하고, 즐겁고, 신 나는 느낌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온정(溫情)이 느껴지는 사람들 사진이 가장 많다. 작가는 지구 위를 걷다가 만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빵 만드는 일을 하루도 쉴 수 없다는 이스탄불 거리에서 만난 빵 파는 할아버지, 시계가 없어 매일 시간을 물어보는 쿠바 산티아고의 시계 수리공, 삶 자체를 퍼포먼스로 생각하는 옥스퍼드의 수학도, 매일매일 다른 바람 속을 달려 소식을 전하는 플렌스부르크의 우편배달부, 축축한 저녁거리에서 김광석의 <거리에서>를 틀어준 터키 셀축의 레코드 가게 주인, 이탈리아에 가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기 위해 하루 열두 시간씩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아바나의 스물다섯 청년, 물밑에서 따온 해산물을 입에 넣어주시는 하태도 해녀 할머니 등.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 따뜻했다. 여유롭고 행복한 모습이다.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젊은이를 걱정하던 인제 감자밭 노인, 자신에겐 모두가 선생이라는 경주 기차역 앞에서 오렌지 파는 여인, 식당 하나 없던 만재도에서 돈도 안 받고 밥상을 차려주던 백발으니 난쟁이, 보말죽을 끓여주시던 비양도 할머니, 구례 산동마을에서 머리를 잘라준 일흔 살 즈음의 미용사, 1940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문을 열었다는 치과의사 한택동 씨.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정(情)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따스하다.  

볼 것 다 보고 먹을 것 다 먹는 여행 말고, 나에게 쉼표가 되는 여행을 하고 싶다. 천천히 걸으면서 시야를 넓히고, 그 마을 사람들을 차근차근 살펴보고 싶다. 시골 마을에 홀로 사는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그들의 외로움도 달래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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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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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자의 책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름이 귀에 익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한참을 생각하다 올해 5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저자의 <도착하지 않은 삶> 사인회 장면이 떠올랐다. 아, 그분이었구나. 지나가다 사진을 한 장 찍었었다. 

제목이 맘에 들어 읽게 된 책이다. 어릴 적에 가족 여행을 많이 한 덕에 성인이 되고서도 여행의 짜릿함을 좋아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어디든 떠나고 싶어하는 중이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길을 잃어본 적이 있던가. 길을 잃는 것과 헤매는 것이 동일하다면 그런 경우가 몇 번 있다. 아테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한 캄캄한 새벽에, 담양 금성산성 오르는 중에, 그리고 도쿄 여행 중 하루에 한번씩은 길을 헤매었다. 어쩌면 그렇게 고생한 덕분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더욱 뚜렷한지도 모른다. 

여행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미술과 신화, 영화, 문학, 음악 이야기가 고루 섞여 있다. 글이 쉽게 읽히지 않아 지루했던 부분도 있다. 1부 아름다움에의 망명은 '여행'이라는 요소가 2부보다는 많이 포함되어 있고, 2부 예술가의 초상은 말그대로 예술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파리 드골 공항에서 마주친 여인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에 감탄하고, 바르셀로나를 혼자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이른 아침부터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해질녘이면 광장에 앉아 현지인들에 섞여 차를 마신다.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감상하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기차 안에서 일기를 쓰던 날 독일 여배우를 만나고, 파리의 카페에서 야채  타르트와 홍차로 식사를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고, 부에나비스타 카페에서 오믈렛을 먹는다. 그 모든 것이 느긋하고 한가롭게 느껴져서 좋다. 

여행뿐 아니라 시와 영화, 그림과 음악까지도 접했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여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마치 학창시절 다음날 치를 여러 과목의 시험 공부를 한 과목이라도 제대로 해놓은 게 아니라 이것저것 조금씩 손만 댄 것처럼 말이다. 산문집이라서 그럴 지도 모르지만 읽는 게 조금은 불편했다. 그래도 여행 전 준비하는 대목에서는 내가 다 설레었고, 처음 방문한 도쿄가 낯설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공감했다. 이제는 볼거리가 많아 잘 짜여진 일정에 맞춰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여행 말고, 그저 풍경만 좋은 곳으로 휴식하러 가고 싶다. 공기 맑은 곳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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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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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쳤을 때 책갈피의 진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표지를 본뜬, 보통의 책갈피보다 좀더 넓적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파스텔톤의 연두색과 하늘색이 섞인 듯한 포근한 느낌이 책을 읽기 전부터 따뜻하거나 슬프거나 가슴 아프게 한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건 무슨 연유에서일까. 

드라마 작가 조진국의 '고마워요, 소울메이트'를 서점에서 읽었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문체가 마음에 들어 두 번째 이야기도 읽게 되었다. 각 장의 Love Letter에서 사랑의 단편을 보여주고 드라마의 한 장면을 결합시킨 독특한 구성이 특징이다. 에세이와 스토리텔링을 결합시킨 한 편의 드라마. 소설 같기도 하다.

가슴에 와 닿는 표현이 많았다. 내가 사랑을 하고 연애할 때를 생각하며 읽게 된다. 겨울 쪽에 사는 사람과 봄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그랬다. 상대의 무심한 말투나 차가운 손에 익숙한 겨울에 사는 사람과 기념일을 챙기는 상대의 따뜻한 손에 익숙한 봄에 사는 사람. 결국 난 겨울에 사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하며 내가 겨울에 태어난 것과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금세 아니라는 걸 깨우쳤다. 난 봄이 시작될 즈음 태어났고 그는 한겨울에 태어났으니까. 게다가 여름과 가을에 태어난 사람도 있지 않은가.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을 주기보다 받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를 만나라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은 나만 그런 걸까.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적인 선택이란다. 

기다리는 일에 지쳤었다. 수십 통의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 지났기에 무슨 일이 생긴 줄만 알았다. 그는 잠을 자느라 연락이 두절되었던 것이다. 처음엔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했다. 점점 기다리는 걸 지겨워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매번 기다리고 힘들어하면서도 참아냈다. 기다리는 쪽은 항상 나였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아프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것들. 다음에 하자고 했던 일들이 있다. 오무라이스 전문점에 가기로 했었고, KTX 타고 부산에 가자고 했었고, 야구장에 가기로 했었고, (지금은 예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동네 유원지에 놀러가기로 했었고, 일어능력시험 성적표 보여주기로 했었고, 그 당시 개봉한 영화 '그때 그사람들' 보기로 했는데...... 함께 하려고 했던 일들이 많았는데 우리는 헤어졌다. 

3년간의 다이어리를 펼치면 온통 그 사람과의 추억 뿐이다. 한 달에 몇 번을 만났고, 만나서 무슨 영화를 봤는지, 어디에 놀러 갔었는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의 주소도 적혀 있다. 편지 한 통 부치지 못할 주소가. 가슴 아픈 기억들이 남아 있지만 그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라고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다이어리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처음 놀러갔던 곳은 학교 근처 유원지였다. 같은 동아리였던 내 친구와 그의 친구와 넷이서 갔다. 바이킹을 탈 때 그는 나에게 파카를 벗어 주었다. 밸런타인데이 전날, 밤을 새워 놀고 다음날 나와 내 친구는 다른 상대방에게 초콜릿을 전해주고 헤어졌다. 그 이후 그와 사귀게 되었다. 

아픈 추억이 떠올려질 것을 알면서 꼭 읽게 된다. 행복했던 옛 추억이 생각나 오랜만에 가슴 시릴 것을 알면서도 읽게 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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