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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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 강유원, 살림(2004)

살림지식총서 085

 가족 모두를 괴롭히던 감기가 사그라졌다. 어른들은 거의 나았고 아이들은 약간의 감기 불씨가 남았지만 그럼에도 예배가 끝나자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며 오후까지 놀았다. 덕분에 꽃잎이 날리는 모습을 오늘은 오래도록 볼 수 있었다. 책을 들고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그 순간을 즐기는 게 더 좋았다.

 책이라는 텍스트를 늘 지니고 있어도 좋겠지만 이런 유형의 텍스트가 아닌 무형의 텍스트가 모두에게 있으니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공중으로 떠다니고 흩어지는 것들이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사실 어느 이웃분이 감기 걸렸다고 하니 즐거운 책을 읽으라고 처방을 내려주셨다. 그래서 책장을 쭉 훑어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 책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손길이 가는 책은 대부분 인문쪽이거나 우울하다고 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발랄하다고 생각하는 김애란 작가의 책등도 있었지만 결국 손이 간 책이 「책과 세계」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은 즐겁기보다는 진지하다. 서론이 길었는데 각설하고 간단하게나마 이 책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살림지식총서 대부분의 책이 얇고 가격도 싸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아주 진득하다. 얇으니 대략적이며 입문하기 좋고 다른 쪽으로 의식을 확장하는 길을 열어준다. 이 책 또한 고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저자의 의도이기도 했다. 훌륭하다. 저자의 의도가 성공했으니까. 그럼에도 저자의 말처럼 버려둘 수 없는 책이었다.

>> 나는 이 책을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썼다. 하나는 고전에 대한 자극을 주면서 그것들로 직접 다가가는 길을 알려주고, 다른 하나는 그 책들을 읽기 전에 미리 그 책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고 대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목적이든지 이루어진다면, 이 책은 불필요해진다. 결국 이 책은 잊혀지고 버려지기 위해 쓰여진 셈이다.

>> 관심사와 연구계획은

인간의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세계가 만나는 접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색하고 정리하여, 가능하다면 그 오고감과 산물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다. 철학은 객관세계를 잊은 채 공상에 몰두하고, 자연과학은 인간을 내버려둔 채 물신숭배에 빠져, 그 둘이 도저히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지 해볼 작정이다.

- 책날개에서 발췌.

 이론적으로 체계화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 저자라면 가능할 거 같다. 저자의 저서를 찾아보니 인문학, 철학, 고전 쪽으로 책을 내고 번역했음을 알았다. 어떻게 풀어가는지 조금씩 만나봐야겠다. 무언가를 정의하기 위해 고심해본 적이 있다면 그 사고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알 것이다. 몰입의 즐거움과 결과는 색다른 희열을 안겨준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을 읽고 흩어진 사고들이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거나 한 단계 성숙해진 나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이 책을 읽고 그런 희열을 느끼진 못했지만 생각해본 적 없는 시선을 발견해서 좋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고대세계의 텍스트들은 본래 기억에 의지하여 암송되어 전해지다가, 진흙판, 금속 그릇, 거북 등껍질, 죽간, 파피루스 등에 기록된 것들이다. 그것들을 기록한 매체가 대중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아무리 고대세계의 텍스트들이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우리에게 전해지는 내용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텍스트들의 유통은 근본적으로 지배계급-사회의 상층 일반이기보다는 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력과 부를 지닌 집단-에 의해 좌우되었음을 알 수 있다. (39쪽)

  역사가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 않던가. 역사학자들이 새롭게 찾아내 조금씩 달라지는 세계사 등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텍스트 자체를 두고 그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을 추론하고 추적하는 것은 독자 대부분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나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의 어느 한 조각(혹은 조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느낀 순간! 그 틀에서 우린 벗어날 수 있다. 아니 의식이 벗어나도록 다른 틈을 찾게 되는 적극적인 태도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이 이 책의 강점이다.


​ 마키아벨리 역시 본질적으로 궁정 지식인이었다. 그 역시 지배자를 위한 이념과 실천 지침서, 즉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그였다. 그러나 그는 전원에 파묻혀 고요한 질서를 찬양하는 비현실적 궁정 지식인이 아니라, 분열과 반목, 침략과 방어라는 날것의 현장에서 동분서주했던 서기관이었다. 그의 텍스트들은 역사적 현실이라는 컨텍스트에 너무나 철저하게 밀착되어 있어서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그에 대한 텍스트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64쪽)

 일반적인 혹은 상식적인 시선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고전이 왜 고전일 수밖에 없는지는 읽어봐야 아는 일이지만 그 고전의 배경이나 시대상까지 알고 읽으면 더 풍부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몰랐던 이야기들을 저자는 들려준다. 대략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 이 책을 펼치면 좋을 거 같다. 특히나 서양철학과 중세, 르네상스 시기의 책을 읽을 계획인 독자라면 먼저 이 책을 읽거나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책과 세계, 텍스트와 컨텍스트에 대해 잠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읽을 계획이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늦추고 있다. 이 책을 만나며 다시 한 번 빨리 읽고 싶어졌다. 즉흥적으로 읽는 책도 있지만 때를 기다리는 책이 있으니 내게 아퀴나스의 책이 후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에필로그를 남기며 이 책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파우스트』의 한 구절처럼 '모든 이론은 잿빛'이어서 이론은 현실에 맞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이론적 파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론적 파악의 출발점인 읽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극단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고전이 보여주는 자아들을 자기 몸에 넣어보고, 다시 빠져나와보고, 다시 또 다른 것을 넣어보고, 또다시 빠져나와본 다음에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질 자아가 과연 진정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텍스트를 손에 잡지 말아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92~93쪽. 에필로그 부분 발췌)


 ■간단 서평: 인문학이나 고전 입문서로는 추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읽고 그것들과의 접점을 찾거나 새로운 시각에 눈 뜰 독자에게 추천하는 책.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 :)

『파우스트』의 한 구절처럼 `모든 이론은 잿빛`이어서 이론은 현실에 맞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이론적 파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론적 파악의 출발점인 읽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극단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고전이 보여주는 자아들을 자기 몸에 넣어보고, 다시 빠져나와보고, 다시 또 다른 것을 넣어보고, 또다시 빠져나와본 다음에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질 자아가 과연 진정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텍스트를 손에 잡지 말아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92~93쪽. 에필로그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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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in BLUE - 꿈꾸는 여행자 쥴리와 져스틴의 여행 에세이
쥴리.져스틴 글.사진 / 좋은생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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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중해 in BLUE - 쥴리&져스틴, 좋은생각(2007)

 한때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는 나라들이 ​무진장 부럽던 때가 있었다. 사실 지금도 지중해는 언젠가 꼭 떠나보고 싶은 나라들을 고루 끼고 있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이집트, 터키 등 생각만으로도 눈부신 햇살과 반짝이는 바다가 손짓하는 느낌이다. 유럽 문명에서 무척이나 중요했던 지중해. 그 역사는 찬란하지만 수많은 충돌이 있었다. 특히나 동서 양 문명 간의 충돌을 체험하고 겪어낸 터키가 궁금하다.

 지중해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지중해의 매력에 빠지게 했을까. 그곳에 가면 알베르 카뮈나 장 그르니에 등을 추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중해의 풍경 앞에서 그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심장만이 뛸까.


 이 책의 저자는 쥴리와 져스틴 두 명이다. 사진과 글을 썼는데 따로 구분해두지는 않았지만 읽으며 대략적으로 누가 썼는지 느껴졌다. 아마도 한 장씩 번갈아 가면서 쓴듯한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재미 있는 사실은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네이트 주관 여행 공모전에서 상을 타고 이후 만나서 함께 그리스, 이집트, 터키를 여행하며 쓴 책이 바로 「지중해 in BLUE」이다. 첫만남과 여행으로 이들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었다는데 여행자라 가능한 이야기인 거 같다.

 오래전 파리에 여행 갔을 때 만난 외국인들(그들 또한 여행자라서)은 현지인과는 확실하게 다르지만 미묘한 동질감을 느꼈으니까. 낯선 공간에서 스친 잠깐의 만남 동안 웃어줄 수 있는 여유와 격려가 떠오른다. 쥴리와 저스틴도 함께 3개국을 여행하면서 그런 동질감과 위안, 공감 등을 나누었을 거 같다.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직접 찍은 여행 사진이 가득하다. 상대적으로 글은 적어서 짧은​ 단상을 기록한 느낌이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느꼈을 감정이 공유되는 순간이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 정보나 여행기로만 만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지중해를 마음에서 불러내주었다. 솔직히 그런 정보는 여행책을 참고해야 하겠다. 지중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슴이 뛴다!

무거운 짐을 들고, 졸린 눈을 뜨고,

매 순간의 공기와 햇살,

그리고 차창에 박힌 어두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스스로가 정한 마음의 국경, 자신만의 나라,

자신만의 사랑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 그리스 007_먼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일부발췌.​ 

 

 

 

 

퍼즐을 맞추듯 나를 채운다.

여행을 하며 나를 채울 조각들을 찾는다.

살아 있는 한 퍼즐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그것이 정상이며 그래야만 움직인다.

완성된 퍼즐은 정지해 있다.

내가 채울 다음 조각은?

당신이 채울 다음 조각은?

 

-​ 그리스 027_퍼즐놀이 일부발췌.

기대했던 것이 없다고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고

미리 탓하거나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만 더 길게 생각하면 기대 이상의 멋진 세상이 보인다.

조금만 더 길게 생각하면 거기에 뜻하지 않은 선물이 있다.

(…중량…)

조금만 더 길게 생각하면

잃는 것이 없다.

 

- 이집트 021_조금만 더 길게 생각하면 일부발췌.

익숙해지면 떠나고

떠나면 낯설고,

또 익숙해지고 또 떠나고,

여행.

낯섦과 익숙함의 반복.

- 터키 02_여행, 낯섦과 익숙함의 반복 일부발췌.  

 

 

 

길을 잃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길을 잃고 헤매기를 자주 반복한다. 길을 잃으면 찾으면 되고,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고, 유연성과 융통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길을 잃어본 자는 다시 길을 잃더라도 당황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어쩌면 길을 잃는 것부터가 참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 터키 010_길을 잃는 것에 대해 일부발췌. 

 지중해 바다와 잘 어울리는 온통 하얀색 벽의 집들. 가보지 않았어도 유명한 그리스 산토리니의 풍경. 새파란 바다와 새하얀 집들 그리고 그 위에 쏟아지듯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기자 피라미드의 이집트. 마지막으로 이스탄불로 기억하는 나라 터키까지 이어지는 여행자들의 노래(나는 이 짧은 글들이 노래처럼 들렸다)에 잠시나마 빠져보았다. 그 나라들의 특색도 다가왔지만 특히나 인상적인 건 여행과 여행자에 대한 글들이었다. 사실 우리 모두 여행자가 아니던가. 기약 없이 유한한 삶을 사는 여행자.


 우리가 여행에서 얻는 것들은 추억이 되고 살아가는 자양분이 된다. 마음속 보물 한가득. 여행자 쥴리와 져스틴에게서 느낀 것은 그런 마음속 지도가 끊임없이 펼쳐지며 더욱 깊어지리란 것이었다. 그들이 여행지에 남겨둔 것들 또한. 그러기에 여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 마음의 우물이 말라버리지 않도록 단비를 뿌려준 거 같다.




+ 저자 중 한 명 져스틴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jrkimceo

 

■간단 서평: 지중해 그중에서도 그리스, 이집트, 터키를 여행하며 쓴 책. 낯선 이들이 처음 만나 3개국을 돌며 그들이

            쓴 짧지만 여운 있는 글에서 공감할 수 있는 책. 이 책은 여행정보나 여행기가 아닌 여행, 여행자에 대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길을 잃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길을 잃고 헤매기를 자주 반복한다. 길을 잃으면 찾으면 되고,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고, 유연성과 융통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길을 잃어본 자는 다시 길을 잃더라도 당황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어쩌면 길을 잃는 것부터가 참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 터키 010_길을 잃는 것에 대해 일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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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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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 조지 오웰, 민음사(2001)

원제 Homage to Catalonia (1938년)​

 책장에 오래도록 있었던 조지 오웰의 책을 잡았다. 사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버려서 즉흥적으로​ 선택했다. 스페인 내전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우리네 5.18처럼 부당한 상황을 재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혹은 일어났던 일에 대해 더 알고 싶었는데 마침 눈에 띈 책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2006년 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책인데 이제야 제대로 읽어보았다.


 배경은 스페인 내전(1936~1939. 한참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던 시대)이며 당시 직접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전한 오웰의 기록문학이다. 당시 파시즘에 반대하고자 반파시즘으로 즉 파시즘과 싸우고자 스페인에 온 외국인들이 많았다. 오웰을 비롯한 헤밍웨이 등의 지식인들도 있었는데 이 책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헤밍웨이」를 통해 당시 상황을 만날 수 있으며 특히 조지 오웰의 책은 기록문학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읽어보니 알겠다. 왜 그런 것인지.

 정부군과 군부 프랑코 장군의 반란군(쿠데타군)의 대치였는데 결국 프랑코 장군의 파시즘 세력이 승리한다. 오웰은 정부군 입장(통일노동자당)으로 패배했다. 그런데 오웰은 이 내전에 참가함으로써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 스페인 혁명을 가로막는 세력이 오히려 좌익임을 발견하며 자신이 속한 통일노동당이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사실 통일노동당을 오웰이 선택한 게 아니라 파시즘의 반대편이기에 자원했던 거였는데 결과는 그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것이었다. 이를 통해 혁명의 세력이 누구이냐에 따라 진정한 승리와 그 반대인 패배로 이어지는 결과를 겪었다. 패배란 그저 상대 세력에 눌렸다는 거뿐만이 아니라 배반으로 이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야말로 혼란의 시기였다.

 그러나 이를 통해 오웰은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를 확장해 가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다. 참여할 때는 파시즘에 반대한다는 정의감 등이 앞서서 자세한 상황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직접 참여해서 겪은 내전에서 총알에 맞아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체험하고 스페인 사람들의 엉뚱함과 색다름을 느낀다. 그래서 「카탈로니아 찬가」는 스페인 내전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에게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 책이기도 할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1984」, 「동물농장」을 다시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읽기 전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나는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마치 수동적인 물체처럼 그냥 존재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중략…)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러니까 나 자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전선에서 보낸 처음 서너 달은 내가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무익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일종의 휴지 기간이었다. 이전에 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으며, 아마 앞으로 살게될 어떤 삶과도 다를 것이다. 그 시기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중략…)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란 계급 없는 사회일 뿐이다. 그것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용군에서 보낸 몇 달이 나에게 귀중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제8장, 138~141쪽 부분발췌)

 

 영국에서는 아직 정치적 불관용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중략…) 자신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숙청>하거나 <제거>한다는 생각은 아직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셀로나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13장, 254쪽 부분발췌)

​ 책의 앞부분은 블랙코미디 같으면서 재치가 있다. 중반 이후부터는 당시의 상황과 특히 11장은 오웰의 정치적 견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셀로나 시가전에 대해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는 오웰이 사실은 왜곡시켰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관적이지만 기록적이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이 오보되고 있는지 짚어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읽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떠한 사건의 전말은 과연 진실일까? 그것들을 모두 제대로 가려 볼 수 있는 능력과 관심이 시급하다. 오웰이 말했듯이 말이다. '진짜 쟁점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있다. 비방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11장, 231쪽)' 특히 선거때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기만 하는 식의 경쟁을 추구하는 그들에게, 국회에서 싸우기만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다.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14장, 295쪽 부분발췌)

 책을 읽다가 불현듯 옛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전 드라마로 <제5열>이 있었다. 당시 이영하, 한진희 등의 배우가 나왔는데 내용은 거의 잊었지만 그 분위기가 기억난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원작자 김성종의 작품들이다. 책으로 읽은 적은 없지만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들. 한 시대를 풍자하고 사건과 그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의 환멸과 희망이 떠오른다. 조지 오웰 또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서 느꼈을 경험적 자산에 여러 요소가 있었을 것이다. 이후 그의 문학적 행보에 영향을 미친 정치적 견해나 의지의 뿌리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끝으로 이 책을 번역한 정영목 교수가 발췌한 오웰의 글을 나 또한 적어본다.

 정치의 목적 ㅡ <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넓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ㅡ​「나는 왜 쓰는가」에서  

 ■간단 서평: 조지 오웰에 의한 스페인 내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오웰을 이해하기 위한 책.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14장, 295쪽 부분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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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시선 326
천양희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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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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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5-05-14 14:07   좋아요 0 | URL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b

은비뫼 2015-05-14 15:33   좋아요 0 | URL
참 좋은 말... 맞죠. :)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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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5-05-13 16:13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에스프레소가 맛나 보이네요

은비뫼 2015-05-13 17:48   좋아요 0 | URL
역시 커피잔만 봐도 아시네요. :)

자목련 2015-05-13 21:37   좋아요 0 | URL
책보다 커피잔에 눈이 더 오래 닿아요, ㅎ

은비뫼 2015-05-14 08:01   좋아요 0 | URL
비둘기색과 비슷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