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기억의 세계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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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든 일을 단기 기억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데, 몇 분에서 수십 분 후에는 그것을 장기 기억으로 넘긴다. 이 시스템이 파괴되면 기억은 몇 분에서 몇 십 분만 유지된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 그런 상황에 빠지면 그 이후의 인생은 추억이랄 게 없다. 추억은 그 이전의 일로 국한되는 것이다.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정보가 넘어가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거의 없다. 지금에 와서는 관찰할 수도 실험할 수도 없으므로,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98쪽)


기억이란 뭘까? 그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세가지 의미를 보여준다.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사물이나 사상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복잡하다. 그냥 받아들인 것을 저장하거나 꺼내는 기능이라고 간단하게 말해도 될 것을. 기억이란 것은 오늘이다. 오늘은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이기도 하다. 그래서 복잡한가?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추억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말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 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추억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듯 하다.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라. 단순히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추억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추억 역시 기억의 일면일 뿐이다. 인간이 그런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한다. 치매라는 병을. 기억상실이라는 말을. 그런데 이 책은 인간이 그런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도입부분에서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SF인가? 공상과학이라면 머리 아파질 것 같은데 어쩌지? 결국 끝까지 읽는데 꽤나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사실 이 책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 것은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눈 뜬 자들의 도시>라는 책과 같은 부류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버리고 말았던 거다. 하지만 결코 그건 아니었다.


"지금은, 지성이란 게 인간의 신체 내부에 머물지 않고 외부의 광대한 인터넷 공간에 흩어져 있다고 할 수 있죠. 혼란스럽고 엄청나게 거대한 네트워크와 그 내부에 흩어진 지성의 핵심인 개별 인간의 정신, 저는 이게 인류가 도달한 지성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중략" (-82쪽)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책속에서 만난다는 건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둥 광대한 네크워크라는 둥 이런 따위의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현실은 그 두개의 단어에 구속된 삶의 형태로 살아가게 되어 버렸다. 엄밀히 따지고보면 자승자박이지만. 기억을 잃은 인간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메모를 했다. 그러다가 잃어버린 기억들을 하나로 모았다. 결국 기억을 저장하는 칩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그 칩을 인간의 몸 어디에든 장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칩을 제거하면 갓난아기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다는 설정하에. 우스운 것은 그 기억의 칩을 어느 누구에게도 꽂을 수 있다는 거였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자신의 몸에 꽂게 되면 몸은 '나'이면서 기억 혹은 정신은 '타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죽은 사람의 칩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라도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그 사람을 다시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끔찍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토록이나 커다란 욕망덩어리인 인간이 그 기억의 칩으로 무슨 일을 저지르며 살아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인 까닭이다.


"계속 같은 일을 되풀이했어. 문명이 저지른 잘못을 또 다른 문명의 힘으로 억지로 수정하지. 그 결과 또 다른 잘못이 일어나고. 이런 일을 되풀이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야. 우리는 그 연쇄를 끊겠다고 결심한 거야." (-233쪽)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런 문명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가지는 않는다고 이 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억의 칩이라는 장치없이도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것은. 다분히 개인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이 든다. 책의 말미에 붙여진 해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어쩌면 작가 역시도 인터넷이니 네트워크니 하는 문명의 단어들에게 지쳐버린 건 아닐까 하는....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현실은 가상이고 가상은 현실이다. 둘에 차이는 없다. (-335쪽) 인간이 제 아무리 잘났다한들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잃어버린 인간성에 대해 혹은 인간다워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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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마법사입니다
아이나 S. 에리세 지음, 하코보 무니스 그림, 성초림 옮김 / 니케주니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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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끝은 일단 해피엔딩이다. 계몽과 교훈을 목적으로 둔다.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낸 것이 전래동화이고, 현대 사회에 맞게 다시 태어난 창작동화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두가지 모두 동화의 특성상 교훈을 목적으로 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원작은 이런 내용이었다면서 어른들을위한 잔혹동화라는게 눈길을 끌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잠깐 그런 싯점으로 바라본 동화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던 듯 하다. 어찌되었든 동화라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아이들을 위하여. 맑고 순수한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우화'라는 책도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의 상실감을 채워주기 위해서. 물론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다고는 해도 동화만큼은 그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반적인 동화 한편으로 또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진 이야기속에 아이들과 함께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과학적인 요소나 관습과 같은 것을 함께 다루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어른인데도 읽을 때의 느낌이 꽤나 괜찮았다. 주변에 아이가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그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큼 내용도 충실하다.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동화책임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식물이야기가 함께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림이 있는 책이라면 식물은 빠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 그런 그림을 보면서 이 식물은 어떤 이름을 가졌을까 궁금할 때도 있었는데 이 책은 바로바로 그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예를 들자면 백설공주가 먹었던 독이 든 사과를 통해 이 세상에 약 2만종의 사과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전부 똑같이 생긴 사과만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접목'을 하기 때문이다. '접목'은 식물들만 할 수 있다. 접그루 나무에 복제하고 싶은 사과나무의 가지를 붙이기를 수십, 수백 번을 하면 원하는 품종의 사과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하나 있다. 바로 마차로 변해 신데렐라를 태우고 갔던 호박에게는 자매가 있었으니 옥수수와 덩굴강낭콩이다. 그래서 그 셋을 호박 밭의 세 자매로 부른다는 것이다. 이 세 자매는 함께 있으면 더 강해진다는 것도. 이와같이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가 있었으니 <식물은 마법사>라는 책의 제목은 꽤나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세계명작동화를 한편도 읽지 않고 자라는 아이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동화는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세계위인전도 아이들에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책이긴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그건 부모의 욕심이 더 큰 게 사실이다. 잘 된 결과보다도 잘되기 위한 과정의 일부속에서 위인들의 진솔한 생활이 밝혀지고 있는 昨今의 현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 아이가 훌륭한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램은 아마도 끝나지 않을 듯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딱딱한 위인전을 읽히기 보다 차라리 이런 책을 함께 읽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오히려 더 훌륭한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위인전을 읽으라고 독촉하기 보다는 이렇게 부모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책이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샤를 페로, 앙투안 갈랑, 가브리엘 쉬잔 바르보 드 빌뇌브, 야콥 그림, 빌헬름 그림, 조지프 제이콥스...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도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이라는 이름을 보면서 동화작가라는 짐작을 하게 되었겠지만 작가의 이름보다도 <신데렐라>, <빨간 모자>,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알라딘과 요술램프>, <미녀와 야수>, <헨젤과 그레텔>, <백조왕자>, <잭과 콩나무>, <아기 돼지 삼형제> 와 같은 동화명이 먼저 떠오른다. 책의 끄트머리에 붙여진 작가소개글을 통해 새삼스럽게 동화작가의 이름을 다시한번 불러보게 된다. 멋진 이름들이다. 커다란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도 모르게 두번을 읽어버렸다. 정말로 재미있는 책이다. 추천하고 싶은 책!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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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나라 - 마의태자의 진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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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마지막 왕은 경순왕이다. 그가 왕건에게 신라를 고스란히 주어버리자 그의 아들 태자는 나라잃음을 슬퍼하며 마의를 입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는 게 우리가 아는 역사의 단면이다. 麻衣는 삼베옷이다. 옛 조상들은 수의로 삼베옷을 입었으니 나라의 죽음을 슬퍼하며 마의를 입었다는 말이다. 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 심었다는 나무가 용문사 은행나무이며, 오빠를 따라가다 도중에 홀로 남아야 했던 동생 덕주공주의 전설이 남은 곳이 바로 덕주사마애불이다. 어찌되었든 서글픈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스님이 되기 위해 금강산으로 떠난 것은 그저 왕건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으며 그를 따르던 무리들과 함께 힘을 길러 다시 신라를 찾기 위해 떠났다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멈춘 곳이 인제의 한계산성이라고 하는데 역시 마의태자와 관련된 전설을 안고 있다. 신라의 부흥을 꿈꾸었던 곳이라고.


결국 왕건에게 쫓겨 다시 길을 떠나지만 그의 후손들에 의해 마의태자는 꿈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일 수도 있다고. 사실 이 책을 통해 따라가는 일정속에는 우리와 비슷한 문화와 생활습관을 가진 민족이 꽤나 많다. 우랄알타이어족이라 일컬어지는 민족은 서로 유사성을 갖고 있다. 터키에서 중앙 아시아, 몽골, 한국과 일본에 이른다. 거기에 더 보탠다면 만주어, 몽골어, 터키어, 일본어, 헝가리어등이 비슷하다는 말도 보인다. 바로 그 여정들을 이 책이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사료와 함께.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새 심장박동이 빨라지기도 한다.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마의태자의 후손들이 일궈낸 역사들은 중국마저도 우리의 역사였음을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우리는 왜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할까? 한국전쟁 당시 우리를 도왔기 때문일까? 그 이유를 안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아일라'라는 영화를 통해서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알게 된 터키와 우리나라의 기나긴 역사의 흔적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그러면서도 하아, 한숨을 내뱉게 된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이라면 그토록이나 장대한 우리의 역사가 왜 후손들에게 외면을 받아야 했는지 한탄스러워서 그렇고, 허구라면 그런 것들이 모두 우리의 역사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에 한번 더 큰 한숨을 내뱉게 된다.


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찾아보았으며 책을 읽는 중에도,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눈길이 갔던 것은 역시 끝부분의 사진들이었다. 저자가 그 흔적을 더듬어가며 이야기의 흐름을 짚어냈다는 게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던 까닭이다. 답사를 다니며 이런 저런 문화유적을 많이 보았지만 어디서도 배우지 못한 우리의 역사를 안고 있는 유적이라 생각하니 새삼스러웠다. 여전히 일제의 식민사관에 사로잡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며 일제 식민 사학자들에 관해 성토하던 책 속의 내용이 떠올랐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 사학에 단군조선의 역사를 빼앗긴 것이라면 만주 벌판을 넘어 실크로드를 지배했던 우리 조상들의 뿌리는 중국의 동북공정 속에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283쪽) 동북공정으로 인해 우리의 고구려 역사를 빼앗기고 있다는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임에 분명해 보인다. 고구려도 백제도 신라도 그리고 발해도 모두 우리의 역사인데 왜 이토록이나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의 역사는 지금 어디에서 후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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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 2020년 제1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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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말은 다분히 매력적인 말이다. 그만큼 세계문학상이 배출한 작품이 많다는 말이고, 그만큼 그 작품의 매력에 빠졌던 사람이 많다는 말일터다. 개인적으로도 세계문학상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그러니 이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읽는 내내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끝에가서야 작가의 말을 읽게 된다. 아무런 것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하지만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는지는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채게 될거라고. 그러니 당신도 마음에 품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한번쯤은 이렇게 글을 써 보라고. 이쯤에서 아주 당연하게 짐작할만 하겠지만 이 책의 주제는 도서관과 그 도서관에서 기증받은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의 화자가 도서관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나중에는 이 책들이 진짜 있는 책인가 싶어 찾아보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게다가 도서관의 풍경도 어딘가에 있을 법하다. 하긴 여느 도서관의 풍경이라는 게 그렇게 특별할까 싶기도 하지만. 거두절미하고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가상의 도서관과 그 도서관에 소장된 가상의 희귀본을 소개하는 것이다.


제목처럼 도서관을 떠나야 하는 책들을 위하여 그들의 목록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책이 있어야 할 자리인 도서관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재단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아무런 이익도 내지 못하는 도서관을 매각하기로 한다. 그러니 그곳의 책을 정리하라는 말과 함께. 이런 저런 이유로 책을 정리하고 나니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어진 책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책만 남게 되었다.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책을 위한 곳,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책을 위한 곳....원래 이 도서관의 목적이 그랬다. 소개하고 있는 가상의 책들은 모두 개개인이 쓰고 싶어서, 혹은 남기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만든 책들이다. 버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었던,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을 그 한 권의 책은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책이었던 것이다.


상당히 많은 책을 소개하고 있다. 때로는 모르는 새 집중하게 되는 주제도 있다.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예를 들면 도서관을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라거나,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서의 시선, 그들끼리 서로 얼키는 작은 사건들... 사실인듯 허구인듯 잠깐의 혼란스러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책의 말미에 많은 사람의 추천사를 달아놓았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 작품을 선정했노라는 말이 보인다. 하지만 왠지 씁쓸한 뒷맛이 느껴진다. 작가 자신도 당선될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마치 그들만의 잔치에 불려가 앉아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조금 식상한 은유지만 사람은 우주다. 사람은 책이다. 한 사람의 깊이는 우주의 깊이와 같다. 그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그를 오래도록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는 새롭게 계속 쓰여지며 끝나지 않는 책이다. 그리고 어떤 책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새롭고 흥미롭고 신비로워진다. 그런 책을 읽어나가는 건 기쁨과 흥분을 주는 모험이다.(-88쪽) 분명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책은 사람처럼 오래도록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책이 있는 까닭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는 다르다. 그래서 책을 쓴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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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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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간 괜찮나? 하고 물었을 때, '천산산맥의 야크 방목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양 때 방목 사이의 유사점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비책 및 생산성 증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해서' 안된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 남자 '행운동'은 누군가 시간이 있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성질 꽤나 까탈스럽겠다는 느낌이 팍 온다. 하지만 의외로 '행운동'은 정의파다. 나보다 못한 이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없는 시간 쪼개서 남의 이야기도 들어준다. 물론 그럴 필요성이 있을 때뿐이지만.

'행운동'의 직업은 택배기사다. 집도 없이 택배사 옆의 컨테이너에서 산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붙여준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별로 말도 없고 주변상황에 전혀 개의치않는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살아갈 뿐이다. 그의 이름이 '행운동'인 것은 그가 택배를 하는 지역이 행운동인 까닭이다. 택배라는 직업을 낱낱이 해부한 것처럼 보이는 책속의 세상은 왠지 쓸쓸하다. 택배를 하고 있는 '행운동'도, 그가 배달하는 물건을 받는 행운동 주민들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문득 문득 다가오던 주민들의 모습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 모두가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다. 멍한 눈길로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시간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고도 없이.

“내 경우에는 바닥을 두 번 느꼈어. ‘이러다가 죽겠다’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하나 더 있더라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너도 다 큰 어른이니까 눈물 따위는 흘리지는 않을 거야. 내가 그랬듯이. 하지만 몸이 울어. 정말이지 몸이 울어. 하지만 다행인 게 하나 있다면 저 놈의 택배를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걸 느낄 사이가 없다는 거야. 시간이 꽤 지나서 일에 익숙해지면 아, 그때 내 몸이 울고 있었구나 싶지. 그러니까 별로 걱정할 건 없어.”(-151쪽) 신기한것은 그 남자 '행운동'의 이력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가 얼마나 힘겹게 살았는지를 가늠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말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갑'과 '을'의 갑질이 아니라 '병'이 '정'에게 하는 갑질을 못견뎌하는 그를 보면서, 때로는 부조리함에 맞서는 그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통쾌감이 이는 것은 또 왜일까? 뉴스를 통해 신종노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상당히 기분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대항하는 '행운동'의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기시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만큼 현실감이 있다는 말일터이고, 그만큼 몰입감이 크다는 말일 터다. 재미있기는 한데 왠지 서글퍼지고, 웃음이 나긴 하는데 왠지 슬픈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세계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라갔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책은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에게 혹은 사회에게 할퀴고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금 껄끄럽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 꽤나 많았다. 작가가 꽤 많은 책과 음악을 접했었다는 걸, 지금까지 힘든 삶의 여정을 걸어왔을거라는 걸 책을 통해 짐작하게 된다. 마치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실감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어서. 피식거리며 웃다가 문득 가슴 한켠에 바람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 이 책이 그렇다. /아이비생각

사회는 집념, 포기하지 않는 노력, 뭐 그런 걸 강요하지만 글쎄요, 제 생각엔 희망이란 게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괴롭히기만 할 뿐인 것 같아요. 그럴 땐 포기하면 편하죠. 정말 그래야 할 일은 살면서 한두 가지정도인 것 같아요. 대개의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니까요.(-189쪽)

진리와 진실은 달라요. 진리는 사는 데 도움이 되죠. 하지만 진실은 꼭 그렇지 않아요. 모를 때는 알고 싶지만 알고나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상처만 배부르게 먹는 거죠. 일어날 일은 일어난 대로 흘려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살면서 모든 일의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않겠습니까?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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