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 1 - 거문고의 비밀 길 없는 길 (여백)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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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인호의 작품은 책보다 영화나 드라마로 먼저 만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젊은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하니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그의 생각과 손을 통해 태어났을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깊고 푸른 밤>, <해신>, <상도>...와 같은 제목들은 책제목이라기보다는 영화의 제목이나 드라마의 제목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게다.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소위 말하는 인기작가나 베스트셀러라는 말에는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을 내가 선택해서 읽어본다는 것이 쉽진 않았음이다.  이 책 <길 없는 길>을 만나게 되는 동기 역시도 지인의 소개때문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불교의 경전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이렇다하게 불교의 형식을 이해하지도 못했기에 처음 이 책을 접한다는 것에 불쑥 두려움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누군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랴 싶은 마음에, 그것도 아니라면 뭔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총 4권의 책을 모두 앞에 두고 이제 손에서 내려놓아야 할 첫번째의 만남.  첫만남치고는 너무나도 강한 느낌을 내게 각인시켜버리고 말아버렸다. 왠지 가슴이 설레인다.

일종의 모티브였을 것이다. 거문고의 비밀은.. 그 거문고를 찾아 길을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을 쫓아가는 나 역시도 무엇을 만나게 될지 풍선처럼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고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 태어남이 축복이 되지 못했던 의친왕과 만공스님의 만남. 그 짧은 만남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작가가 기울여야 했던 모든 노력들.. 카톨릭 신자였다던 작가가 찾아 헤맸을 모든 과정들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불교라는 또하나의 세계속으로 빠져들었다던 작가의 마음.. 그 마음처럼 내게도 또다른 세계의 경이로움이 제대로 전달되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보게 된다. 작가조차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 책 <길 없는 길>, 아직 남은 세번의 만남이 내게 행복한 시간이기를..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거문고와의 만남이었지만 거문고와 주인공의 만남으로부터 비밀은 하나씩 옷을 벗기 시작하는 듯 하다. 거문고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주인공의 사연조차도.. 이미 지나가버린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모든 기억은 시작되어진다. 일곱알의 염주.. 그 염주속에 새겨진 이름.. 그 이름의 주인들이 엮어나가야 할 고된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야 할 순간이다. 이제 시작이지만 만공스님과 그의 스승 경허스님의 여정은 또하나의 세계로 내게 안내되어질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우리의 조선사를 따라 맥을 짚어줄 의친왕의 흔적속에서 마주칠 역사의 숨결이 기대되기도 한다.

시작은 만공스님과 의친왕의 만남이었다. 왕자로 태어났다는 부처와 의친왕의 배경이 비슷하다는 설정은 작가가 무언가 작정한 듯 보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만공스님의 여정을 따라가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허스님이었다. 경허스님의 깨달음과 주인공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묘하게 얽혀드는 깊은 감정이 있다. 돌림병이 돌아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아버지 의친왕이 살아야 했던 거친 삶속에서 내가 보아야 했던 것은 무었이었는지.. 어쩌면 주인공의 마음속에 바위처럼 자리했을 무거운 그 어떤 것.. 아직은 알 수 없다. 만공스님과 의친왕이 서로 주고받았다던 염주와 거문고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아이비생각 


부처님이 어떤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러자 사문이 대답했다.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실망하여 말하였다. "너는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하였다. "너도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또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마침내 말하였다. "그렇다. 생과 사는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 너야말로 도를 이루었다"
부처님의 말씀은 비유가 아니다. 그의 말은 진리이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며칠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밥 먹는 사이에 있음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숨을 들이마실 때 있고 우리의 죽음은 숨을 내쉴 때 있다. 우리는 숨을 들이마실 때 살고 숨을 내쉴 때 죽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쉴 새 없이 눈을 끔벅이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을 때 우리는 장님이 된다. 그러나 뜰 때 우리는 빛을 본다. 그 장님과 봄()의 찰나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도 우리는 그냥 '보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심으로써 죽음의 문턱을 하루에도 수만 번씩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324~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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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 외 지음, 박지향 외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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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처음인듯 싶다. 전통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 것이. 그리고 새삼스럽게 전통이란 말의 의미를 찾아보게 되었던 것 같다. 통상적으로 전통이라는 것은 옛부터 내려오면서 지속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는 까다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관습이나 인습을 전통이라는 말로 포장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객관적인 가치판단보다는 주관적인 가치판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관습처럼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문화유산을 전통이라고 한다는 말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다시말해 전통이라는 것은 어떤 신념을 강화시킨 것이라고 알면 더 빠르게 다가올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때로는 정치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일종의 구속력이 필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그것... 가만히 보면 꽤나 무서운 어감을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혹은 조직적인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그들을 묶어둘 수 있는 것으로 사용되어졌던 전통.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전통들이 그 시대의 사람들 위에 군림했었다는 건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대중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뭉치게 할 수 있고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어떤 장치는 필요하다. 그런 도구로써 전통이라는 말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전통과는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랐던 그 전통이라는 의미앞에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보통은 식민지를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전통들이 많았었던 것 같다. 익히 알고 있는 왕정국가인 영국의 대관식마져도 그렇게해서 근래에 태어나게 된 전통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일종의 세뇌작업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문화처럼 거리낌없이 다가가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켜버리고 마는 그런 존재. 그런 역할을 했었던 것이 바로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것인데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왠만한 전통들이 모두가 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전통을 발명해내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것도 대량으로 생산되었다는... 어쩌면 지금 현재도 그런 전통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보이지않는 힘에 의하여 우리는 세뇌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만들어지는 전통들은 때론 소멸해가는 것들을 재탄생시키기도 하고, 멀쩡하게 잘 있던 것들도 때론 소멸시킨다. 필요에 의해서. 문제는 그 만들어진 전통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사회속으로 혹은 정신속으로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문화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의 온도를 느끼지 못한채 죽어가는 개구리와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가끔씩은 전면전을 치루어야 할 때도 있었을테지만  거부한다는 그 자체가 마치도 이단아가 된 것만 같은 분위기라면 어느 누가 그 대열에서 이탈하고자 할까?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채 홀로 떨어져나간 사람들의 그 고립감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전통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그것의 배경을 알게 되고 힘없이 만들어지는 전통이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그러니 개구리처럼 익어갈밖에... 집단적인 힘을 필요로하는 것이니 좋은 효과를 얻어도 또한 나쁜 효과를 얻는다해도 그 파장은 클것이다. 흥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처럼 말이다.

빽파이프를 불며 행진하는 스코틀랜드의 치마 입은 남자들의 모습은 누가 뭐래도 꽤나 낭만적인 풍경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씁쓸한 것이 어디 그것뿐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가히 그럴만 하구나 싶은 사실들이 꽤나 많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하기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었다. 600쪽에 달하는 무시할 수 없는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덥석 손에 들긴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마도 가장 오래도록 손에 잡고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날들이 스쳐지나가 버렸다. 아주 오래도록 놓지도 못하고 전진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한숨만 푹푹...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일종의 연구서와도 같이 어렵고 딱딱하게만 다가오던 책. 전문적인 성격마져 보이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던 거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해서 책속의 문장들을 빌려와 다시한번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① 만들어진 전통에서 무엇보다도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기념행위다. 그것이 없다면 일정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일시적일 수 밖에 없는 집단적 기억을 안정화시키려는 계산된 전략이다. 그것은 과거로 하여금 현재에 돛을 내리게 하고 시간이 멈춰있을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 역자 서문에서- .. 지금 읽어도 참 무서운 말인듯 싶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념하기를 좋아한다. 뭔가 특별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도 될 것이고 그것이 아주 오래도록 곁에 머물러 나를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 그런 심리를 이용한 하나의 전략인 셈이다. ② 만들어진 전통의 특수성은 대체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인위적으로 내세우려 든다는데에 있다. 적응은 새로운 상황에 처해 낡은 것들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목적을 위해 낡은 모델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한 법이다. 엉클 샘은 미국정부와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로 United States의 이니셜 US로 만들어졌다. ③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에서 볼 때 역사적 사료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하며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된 서술은 실은 권력의지에 의해 구성된 담론일 뿐이다... 역사는 힘있는 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어차 피 모든 사회적 구조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사실일테니 말이다.  ④ 전통의 창조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차이점들을 극복하고 '상상된 공동체' 를 만들어내는 공통분모를 형성해내는 데 기여한다는 말과,  '근대사회는 여전히 신화와 의례를 필요로 한다' 던 이안  길모어의 말을 마지막으로 기억해둘까 한다.  숨겨놓은 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의 심리적인 취약점을 교묘히 건들이며 만들어지는 것이 전통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면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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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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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자이건 아니건 사찰을 찾는다는 자체에 대한 의미는 조금 남다를 수도 있을게다. 일단은 유래깊은 사찰들이 안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과 그 의의를 우리가 모른 척 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가하면 자연을 찾아나설때마다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것이 또한 사찰이다 보니 어지간한 사람들은 한번쯤 사찰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보았으리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개인적으로 불교라는 종교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까닭에 배우고자하는 욕심을 부려보았으나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은 배우는 것보다 행하는 것에 더 많은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은 그 욕심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중이기도 하다. 한때 유적답사 동호회 활동을 하였던 탓에 많은 사찰을 다녀보았다. 특히나 역사적인 배경을 안고 있다고 하면 어김없이 찾아가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깊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그야말로 수박겉핥기식이었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껴야 했으니 하는 말이다. 

사찰을 찾으면 가장 먼저 건축물에 대한 것부터 논하기 시작한다. 어느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언제 무슨 일로 소멸되었다가 다시 창건되었는지, 그 건축물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지 등등등... 그리고 나서 그 사찰이 안고 있는 문화재에 눈을 돌린다. 역시 그것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 문화재가 안고 있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또한 구전되어지는 이야기들, 민화나 설화를 예로 들어가며 열심히 그것에 대하여 알아가곤 한다. 그것이 안고 있는 참뜻보다는 이론적으로 책에서 배운 것들을 확인하고 돌아갈 뿐이다. 어찌되었든 불교라는 종교가 안고 있는 경전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경전에 대한 거리감이 약간은 좁혀질 수도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어렵다고 생각했었던 것들이 저자의 재미있는 해설로 좀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책을 읽다보면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사찰의 평면적인 모습보다는 처마밑 공포에 조각되어진 작은 동물이 왜 그곳에 있어야만 했는지, 석탑의 부분부분에 걸친 해설을 보면서 각 단마다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부도들에 얽힌 사실들을 하나둘씩 알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아하~를 외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그것이 그곳에 있어야만 했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면서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야말로 사찰의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저자의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 도편수와 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라는 설화가 깃들어 있는 전등사  나신상에 관한 것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웅전 처마밑에서 네 귀퉁이를 떠받치고 있는 나신상.. (강화 전등사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보게되는 조각상이다) 그 모습이 전생에 원숭이들을 살리신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원숭이들의 끝없는 존경심을 나타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변심한 여인에 대한 도편수의 복수라는 다분히 통속적인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알려져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아주 재미있는 해설로 다가가는 저자의 말솜씨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무언가를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사찰을 찾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많이 궁금했던 것은 탱화였다. 화려한 단청.. 그리고 법당의 안팎을  빙 둘러가며 그려져 있는 그림들.. 그 그림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늘 그것이 궁금했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으면 했지만 안타깝게도 일상적인 그림에 관한 설명은 그리 많지가 않은 듯 하다. 십우.. 보통은 심우도라고 하는 그 그림을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애를 태웠었는지... 본성을 찾는 불도의 수행경로를  소를 찾는데 비유하여 설명하는 그림이긴 하지만 그것을 알기까지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그림중의 하나였었다. 심우 (牛), 견적(), 견우(牛), 득우(), 목우(), 기우귀가(), 망우존인(), 인우구망(), 반본환원(源), 입전수수()... 지금도 사찰에 갈 때마다 기회가 되면 찾아보게 되는 심우도지만 탱화를 보는 눈이 틔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책속에서 정말 반가웠던 부분중에 하나가 바로 사천왕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무서운 모습의 사천왕상을 통해 법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설은 재미있기도 했다. 그 밖에도 여러 부처상에 관한 이야기라거나 흔히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인 범종이나 석등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들도 참 많았다. 윤장대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것인지, 혹은 명부전의 그림들이 보여주었던 많은 의미들.. 파격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수미단,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단을 떠받들고 있는 사자나 원숭이와 같은 동물들의 모습, 그저 단순히 비석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부도에 관한 설명, 16나한이나 오백나한 그리고 천불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자세, 백중과 49재에 얽힌 이야기등..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책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찰마다 그림으로 표현되어져 있다던 부처님의 일대기 또한 새로웠다. 과연 석가탑과 다보탑이 안고 있는 깊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알고 바라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나를 심히 부끄럽게 만든 한권의 책... 단 하나의 조각상일 뿐인데도, 단 한점의 그림일 뿐인데도 그 안에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정서를 담았다던 이야기들을 접하고보니 새삼스럽게 감동이 인다. 비켜가지 않고 숨기려하지 않았던 그 솔직함 앞에서 잠시 숨을 멈춰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좀 더 많이 찾아내기 위해 이곳저곳을 누볐을 저자의 마음씀씀이가 너무 고맙게 다가온다. 내게는 정말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고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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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절에서 역사적으로 쉬고 오다 - 그 누가 가도 좋을 감동의 사찰 27곳 순례기
이호일 글.사진 / 가람기획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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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알아보자. 도대체 팔작지붕이 무엇이고 맞배지붕이 무엇이며 다포식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를... 보통은 잘 들어볼 수 없는 말들이 우리문화의 유적지를 돌게 되면 끝도없이 나오는 말들이다. 지붕구조의 하나로 지붕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끝은 우진각지붕과 같다고 나오는 팔작지붕.. 여기서도 우진각지붕이라는 말이 또 나온다.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으로 지은 집을 우진각집이라고 한단다. 그럼 또 추녀마루는 무얼까?  당마루에 이어 추녀를 기와로 덮은 부분이라고 나온다. 그럼 또 당마루는 무얼까? 당마루를 찾아보면 너새라는 말이 나온다. 너새가 또 궁금하다. 너새는 지붕머리 양쪽으로 마루가 되도록 기와를 덮은 부분을 말한다.  맞배지붕이라는 것은  가장 간단한 지붕형식으로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지어 자형으로 되어있다. 처마의 양끝이 조금씩 치켜올라가고 용마루 중앙부를 처지게 해서 서로 어울리게 해 놓은 지붕을 말한다. 또한 다포식이란 말도 자주 듣게 되는데 공포가 많다는 뜻이다. 공포는 지붕과 지붕사이의 구조물로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적절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준다. 기둥의 바로 위에에 올리는 것이 기본인지라 복잡한 모양으로 장식효과가 뛰어나기도 하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린 것을 '주심포식'이라고 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올린 것을 '다포식'이라고 한다. 이때 기둥과 기둥 사이에 올려진 공포는 지붕을 받치는 효과는 없고 단지 장식의 역할만 한다)  이렇게보면 정말 끝도없다. 우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렇게 낯선 언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쉽진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좀 더 알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보게 되었다.

절집이라는 걸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람소리나 풍경소리를 떠올리게 되고 아늑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우선적으로 자연속에서 자연과 함께 어울어진다는 그자체부터가 황홀하다. 산행을 할 때마다 그곳에서 마주치는 절집들을 그냥 지나쳐가지 않고 꼭 한번은 들러보곤 했었다. 참 많다. 종파가 많으니 그 종파에 따른 절집도 얼마나 많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일반적인 절집보다 천년고찰이라 할 수 있는 절집들을 찾아갈 수 있다. 천년고찰이라는 말자체가 안고 있을 역사적 의미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음이다. 단지 우리가 그 역사적인 의미를 얼만큼이나 해석할 수 있으며 얼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이 책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전통사찰에 대한 소개를 해주고 있다. 답사형식으로 찾아가는 사찰들의 모습을 직접 찍고 각 사찰에 대한 유래에서부터 역사적인 배경이나 건물들의 구조와 배치를 설명하면서 그 안에 담겨진 의미등을 소개해주고 있다. 또한 각 사찰마다 보유하고 있는 우리의 보물들에 대한 설명도 놓치지 않았다.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佛寶사찰 통도사, 法寶사찰 해인사, 僧寶사찰 송광사를 일러 한국의 삼보사찰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법당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오대산의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를 한국의 5대적멸보궁이라고 한다. 또한 관음보살을 모셨다는 동해 낙산사의 홍련암, 서해 낙가산의 보문사, 남해 금산의 보리암을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세곳의 관음성지가 모두 바다를 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사자산 법흥사를 찾았을 때 법당에서 뵈지않는 부처의 모습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각 사찰마다의 창건설화가 참 재미있다.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어진 것도 있지만 하나의 떠도는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 삼보사찰이라는 말을 굳이 한자로 쓴 이유는 그 절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쉽게 알기 위해서였다. 일명 '스님 사관학교'라고 불리운다는 송광사를 僧寶사찰이라고 부르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며칠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도 송광사 출신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렇게 우리 절을 돌아보기 전에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각 보살들이 뜻하는 바를 알고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처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세상을 소리를 들어 중생의 고통을 돌보아주신다는 관음보살이나(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 들어주신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지혜를 상징한다는 문수보살, 이 理· 定 · 行 · 의 덕 을 맡아본다는 보현보살과 같이 좌우로 부처를 모시는 보살님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나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질테니 하는 말이다. 석가모니불에 이어 미래에 나타나 중생을 구원해주신다는 미륵불에 대한 예는 동학의 접주 손화중을 보더라도 잘 알 수가 있음이다. 문득 내 것이 아니라하여 무조건 견제하고보는 것은 빨리 버려야 할 습성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전국의 많은 절집들을 돌아보게 되면 정말로 놓치고 싶지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자연과 함께 어울어지는 모습이다. 그곳에 가면 그토록이나 아름다웠던 풍경이 있었다고 누구나 한번쯤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모습말이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지만 월정사 전나무길과 내소사의 전나무길은 정말이지 두고두고 다시가고픈 길 중의 하나였다. 오래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가면 들려오는 산새소리와 맑은 숲의 냄새가 아직도 그리운 것을 보면 자연은 우리와 멀어져서는 안될 존재임이 분명하다. 오래전 내소사를 찾았을 때 그 맑은 숲을 지나 연꽃문양의 창살과 마주섰을 때 얼마나 감정이 북받치던지... 책에서 소개해 주었던 절집들중에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많다. 언젠가 한번쯤은 들러보리라 다짐하지만 그래도 내가 가보았던 곳중에서 한번 더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서산의 개심사가 있다. 우연히 찾게 되었던 절집이었는데 그 소박함과 정갈함이 얼마나 좋았었는지 모른다. 절집까지 오르는 길에 으름을 내밀며 이것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던 허름한 아저씨의 웃음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한켠이 따스해져온다. 작년 여름 남편과 찾았던 부안의 개암사도 잊을 수가 없다. 백제의 마지막 유민들이 항거를 했다던 울금바위가 개암사 뒤에서 멋지게 버텨주고 있는 곳.. 그곳 대웅전의 닫집이 얼마나 신비로웠었는지.. 닫집이 있는 법당이 그리 많지 않다던 보살님의 설명이 얼마나 귀하게 다가오던지...

책에서 알려주고 있는 절집도 좋지만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저마다의 특징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절집도 많다.  산행을 핑게삼아 이곳저곳 가보긴 했지만 갈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예전보다는 속세와 더 가까워졌구나 하는 거였다. 지금은 절집마다 템플스테이라는 것을 한다. 절집이 속세로 내려오는 것인지 속세를 떠난 우리가 절집을 찾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변질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을 가져보기도 한다. 크기와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저마다의 진실된 마음 혹은 저마다 무겁게 안고 살아가는 것을 하나쯤 내려놓고 싶어 찾아가는 절집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책을 덮으면서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중과 좀 더 가까이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지금은 이런 서적들도 많이 보인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대중에게 동화되어지지 않는 종교의 의연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상芽相.. 자기의 학문이나 지위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태백산에 들어갔으나 문수보살의 현신을 알아보지 못해 몸을 던져 죽었다던 자장율사의 이야기가 가슴속에 남는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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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도감 - 꽃과 채소로 가득 찬 뜰 만들기
사토우치 아이 지음, 김창원 옮김, 사노 히로히코 외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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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시 도시로 오셨지만 강원도로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갈 때마다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던 그 많은 꽃들이 생각난다. 언젠가 한번 찾아뵈었을 때 마당 한 구석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작은 동산을 보고 저게 뭐냐고 여쭈었더니 봄에 와 보면 알거라고만 하셨었는데 그 다음해 봄 나는 탄성을 질렀다. 그 작은 동산을 수놓았던 할미꽃의 미소라니! 워낙 화초를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찾아갔던 자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하나씩 옮겨심은 야생화들이 작은 동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야생화들을 볼 때마다 우리 모두는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저마다의 꿈을 물어본다면 정원이 예쁜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만큼 꽃과 나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싶다.

화초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어 나는 화초와 좀 늦게 가까워졌다. 처음엔 신발장위에 화분 하나 덜렁 올려놓고 오며가며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두번째로 들여 놓았던 스파티필름이 어느순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방망이 모양의 꽃술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 후 어느날부터인가 거실 한쪽을 화분이 모두 차지해버리고 말았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실수로 그 많은 화분을 모두 잃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흔한 산세베리아나 행운목은 한번도 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 기초지식도 없이 그저 보는 것이 좋아 시작된 화초가꾸기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화분을 들이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는 나도 제대로 배워 화초를 보리라 기약할 뿐.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눈에 띈 이 책은 이제는 뭔가 새로이 시작해봐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처럼 내게 다가왔다.

책장을 펼치면 미니꽃밭에서부터 창가에 만드는 꽃밭이나 연못만들기까지 그야말로 나만의 정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일 보석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하여 나는 원예도구라거나 물주는 요령, 집 비울 때 물 주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분용 흙만들기, 화분갈이나 가지치기등 내게 필요한 부분을 꼼꼼하게 체크해 보기로 했다. 또한 집에서 간단하게 기를 수 있는 채소가꾸는 재미에 대한 부분도 관심있게 보았다. 중요한 것은 흙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정말이지 크게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채소를 기르는 요령이라거나 그 채소를 이용하여 샐러드나 요리를 해먹는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가끔씩 찾아가던 친구집에서 방울토마토나 청경채를 볼 때마다 부러웠던 까닭이기도 하려니와 내가 키운 채소를 이용해 요리를 한다는 것부터가 참 멋진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나만의 정원을 가꾸게 되리라. 그러면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많을테고... 가을에 끈끈이대나물과 샤스타데이지의 씨를 뿌리고 이듬해 봄에 백일홍의 씨를 뿌린다면 봄부터 여름에 걸쳐 온갖 나비가 찾아들거라고 한다. 나비를 부르는 꽃 베스트 3종이다. 향기있는 뜰을 원한다면 서향이나 수수꽃다리, 인동덩굴이나 치자나무와 같은 것들을 심어야 한다. 만약 뜰이 없다면 프리지어나 나리종류, 장미나 은방울꽃을 화분에 심으면 될 것이다. (프리지아의 향은 정말이지 황홀하다) 향기가 너무 좋아서 사왔던 꽃이 밤새 거실 한가득 향기를 채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를 너무나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치자꽃...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치자꽃을 진딧물에게 빼앗겨버리고 두번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았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들었던 모든 방법을 동원해보았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결국 그 치자꽃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치자꽃의 향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화초를 키우고 싶다면 물주는 요령도 중요하다. 흙의 상태를 봐서 물을 주라고는 하지만 사실 초보자에게는 그것조차도 어렵게 느껴진다.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서 주의깊게 살펴보아야만 알 수 있다. 몇번의 실패를 각오해야만 온전히 나의 꽃이 될 수 있기에 어떤 식물인지, 식물의 상태가 어떤지를 꼼꼼하게 챙겨줘야 한다. 그리고 정원에 물을 주는 것인지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인지에 따라서도 물주기는 달라야 한다. 계절에 따라서 그 방법이 달라야 하며 얼만큼의 물을 어느때 주어야 하는지도 잘 알아야 하니 화초키우기를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다가는 마음 아픈일을 몇번은 겪어야 할 게다. 작은 화분 하나를 온전히 내 것으로 잘 키워낸다는 것에는 정성그러운 마음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해도 부족해도 안되는 것이 식물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식물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겠지만 적당하다는 말의 의미는 정말이지 어렵다.

흙도 좋아야 한다. 특히 화분에서 키울 때는 더욱 더 그렇다. 화분에 담을 흙이 공기가 잘 통하는지, 수분을 잘 보존하는 능력이 있는지... 책을 보면 좋은 흙 또는 흙의 종류에 대한 설명을 아주 세세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직접 화분용 흙을 만드는 방법도 나와 있긴 하지만 쉽지 않을 듯 하다. 닭똥이나 깻묵, 뼛가루, 석회등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원에 가면 미리 만들어놓은 배양토를 살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그렇게 했었다. 모르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선택되어진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나같은 초보자에게는 그 쪽이 훨씬 나을 듯 싶다. 그러면서 화원주인에게 어느정도의 정보를 함께 얻어오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토끼풀이나 보리, 자운영을 심어 풋거름으로 쓸 수도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셈이다. 물론 식물의 성장을 도와준다는 비료의 종류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잘 나와있다.

한해살이 식물과 여러해살이 식물에 대해 알고 있는가? 한해살이 식물에도 봄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가을에 씨를 뿌리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나팔꽃이나 해바라기, 백일홍, 맨드라미, 코스모스같은 것들은 봄에 씨를 뿌린다. 스위트피, 수레국화, 금잔화, 개양귀비와 같은 것들은 가을에 씨를 뿌려야 한다. 그래야 다음해 봄에 꽃을 볼 수 있게 된다. 장점이라면 두가지 모두가 씨를 뿌리고 자라기까지의 기간이 짧고 한번 뿌리면 해마다 부쩍부쩍 식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내 정원을 갖고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일년내내 꽃을 볼 수 있다는 데 왜 안할까? 그런가하면 두해살이 식물도 있다. 씨를 뿌리고 다음해에 꽃을 볼 수 있는 것들인데 루나리아나 종꽃, 접시꽃등이 여기에 속한다. 컵과 같은 용기를 이용해 물로만 꽃을 피우는 수경재배 방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히아신스,크로커스,수선화같은 이름만 들어도 웃음짓게 만드는 예쁜 꽃들을 수경재배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심기만 하면 해마다 수확할 수 있다는 파, 부추,생강,파슬리,아스파라거스같은 채소를 겨울에도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방법은 한번쯤 알아볼 만 하다. 상추나 시금치를 창가 화분에서 키워내 먹을 수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나는 사실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에 관심이 많다. 꽃을 피우는 식물보다는 늘 푸른 색으로 곁에 있어주는 관엽식물을 더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아이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다. 하트모양을 한 잎새와 조금만 사랑을 주어도 풍성하게 잎을 틔우며 곡선으로 내려긋는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생명력 또한 강하다. 두번째로는 나무이면서도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는 목련을 좋아한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육식물 키우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통통하고 다부진, 그야말로 앙증맞은 모습에 유혹당한 탓이다. 아직 나만의 정원은 없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개나리로 담장을 치고 목련 두그루 심어 대문을 만들고 싶다던 어린 날의 꿈이 있었다. 현관 앞에는 능소화를 심어 흐드러지는 능소화를 위해 아치형 다리를 놓아주리라던 그 꿈은 아직 유효하다. 그 꿈의 실현이 멀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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