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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1 - 거문고의 비밀 ㅣ 길 없는 길 (여백)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호의 작품은 책보다 영화나 드라마로 먼저 만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젊은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하니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그의 생각과 손을 통해 태어났을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깊고 푸른 밤>, <해신>, <상도>...와 같은 제목들은 책제목이라기보다는 영화의 제목이나 드라마의 제목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게다.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소위 말하는 인기작가나 베스트셀러라는 말에는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을 내가 선택해서 읽어본다는 것이 쉽진 않았음이다. 이 책 <길 없는 길>을 만나게 되는 동기 역시도 지인의 소개때문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불교의 경전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이렇다하게 불교의 형식을 이해하지도 못했기에 처음 이 책을 접한다는 것에 불쑥 두려움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누군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랴 싶은 마음에, 그것도 아니라면 뭔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총 4권의 책을 모두 앞에 두고 이제 손에서 내려놓아야 할 첫번째의 만남. 첫만남치고는 너무나도 강한 느낌을 내게 각인시켜버리고 말아버렸다. 왠지 가슴이 설레인다.
일종의 모티브였을 것이다. 거문고의 비밀은.. 그 거문고를 찾아 길을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을 쫓아가는 나 역시도 무엇을 만나게 될지 풍선처럼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고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 태어남이 축복이 되지 못했던 의친왕과 만공스님의 만남. 그 짧은 만남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작가가 기울여야 했던 모든 노력들.. 카톨릭 신자였다던 작가가 찾아 헤맸을 모든 과정들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불교라는 또하나의 세계속으로 빠져들었다던 작가의 마음.. 그 마음처럼 내게도 또다른 세계의 경이로움이 제대로 전달되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보게 된다. 작가조차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 책 <길 없는 길>, 아직 남은 세번의 만남이 내게 행복한 시간이기를..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거문고와의 만남이었지만 거문고와 주인공의 만남으로부터 비밀은 하나씩 옷을 벗기 시작하는 듯 하다. 거문고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주인공의 사연조차도.. 이미 지나가버린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모든 기억은 시작되어진다. 일곱알의 염주.. 그 염주속에 새겨진 이름.. 그 이름의 주인들이 엮어나가야 할 고된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야 할 순간이다. 이제 시작이지만 만공스님과 그의 스승 경허스님의 여정은 또하나의 세계로 내게 안내되어질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우리의 조선사를 따라 맥을 짚어줄 의친왕의 흔적속에서 마주칠 역사의 숨결이 기대되기도 한다.
시작은 만공스님과 의친왕의 만남이었다. 왕자로 태어났다는 부처와 의친왕의 배경이 비슷하다는 설정은 작가가 무언가 작정한 듯 보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만공스님의 여정을 따라가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허스님이었다. 경허스님의 깨달음과 주인공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묘하게 얽혀드는 깊은 감정이 있다. 돌림병이 돌아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아버지 의친왕이 살아야 했던 거친 삶속에서 내가 보아야 했던 것은 무었이었는지.. 어쩌면 주인공의 마음속에 바위처럼 자리했을 무거운 그 어떤 것.. 아직은 알 수 없다. 만공스님과 의친왕이 서로 주고받았다던 염주와 거문고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아이비생각
부처님이 어떤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러자 사문이 대답했다.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실망하여 말하였다. "너는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하였다. "너도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또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마침내 말하였다. "그렇다. 생과 사는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 너야말로 도를 이루었다"
부처님의 말씀은 비유가 아니다. 그의 말은 진리이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며칠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밥 먹는 사이에 있음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숨을 들이마실 때 있고 우리의 죽음은 숨을 내쉴 때 있다. 우리는 숨을 들이마실 때 살고 숨을 내쉴 때 죽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쉴 새 없이 눈을 끔벅이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을 때 우리는 장님이 된다. 그러나 뜰 때 우리는 빛을 본다. 그 장님과 봄(視)의 찰나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도 우리는 그냥 '보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심으로써 죽음의 문턱을 하루에도 수만 번씩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324~3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