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 외 지음, 박지향 외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도 처음인듯 싶다. 전통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 것이. 그리고 새삼스럽게 전통이란 말의 의미를 찾아보게 되었던 것 같다. 통상적으로 전통이라는 것은 옛부터 내려오면서 지속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는 까다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관습이나 인습을 전통이라는 말로 포장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객관적인 가치판단보다는 주관적인 가치판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관습처럼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문화유산을 전통이라고 한다는 말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다시말해 전통이라는 것은 어떤 신념을 강화시킨 것이라고 알면 더 빠르게 다가올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때로는 정치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일종의 구속력이 필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그것... 가만히 보면 꽤나 무서운 어감을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혹은 조직적인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그들을 묶어둘 수 있는 것으로 사용되어졌던 전통.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전통들이 그 시대의 사람들 위에 군림했었다는 건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대중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뭉치게 할 수 있고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어떤 장치는 필요하다. 그런 도구로써 전통이라는 말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전통과는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랐던 그 전통이라는 의미앞에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보통은 식민지를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전통들이 많았었던 것 같다. 익히 알고 있는 왕정국가인 영국의 대관식마져도 그렇게해서 근래에 태어나게 된 전통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일종의 세뇌작업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문화처럼 거리낌없이 다가가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켜버리고 마는 그런 존재. 그런 역할을 했었던 것이 바로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것인데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왠만한 전통들이 모두가 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전통을 발명해내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것도 대량으로 생산되었다는... 어쩌면 지금 현재도 그런 전통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보이지않는 힘에 의하여 우리는 세뇌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만들어지는 전통들은 때론 소멸해가는 것들을 재탄생시키기도 하고, 멀쩡하게 잘 있던 것들도 때론 소멸시킨다. 필요에 의해서. 문제는 그 만들어진 전통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사회속으로 혹은 정신속으로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문화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의 온도를 느끼지 못한채 죽어가는 개구리와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가끔씩은 전면전을 치루어야 할 때도 있었을테지만  거부한다는 그 자체가 마치도 이단아가 된 것만 같은 분위기라면 어느 누가 그 대열에서 이탈하고자 할까?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채 홀로 떨어져나간 사람들의 그 고립감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전통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그것의 배경을 알게 되고 힘없이 만들어지는 전통이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그러니 개구리처럼 익어갈밖에... 집단적인 힘을 필요로하는 것이니 좋은 효과를 얻어도 또한 나쁜 효과를 얻는다해도 그 파장은 클것이다. 흥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처럼 말이다.

빽파이프를 불며 행진하는 스코틀랜드의 치마 입은 남자들의 모습은 누가 뭐래도 꽤나 낭만적인 풍경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씁쓸한 것이 어디 그것뿐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가히 그럴만 하구나 싶은 사실들이 꽤나 많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하기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었다. 600쪽에 달하는 무시할 수 없는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덥석 손에 들긴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마도 가장 오래도록 손에 잡고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날들이 스쳐지나가 버렸다. 아주 오래도록 놓지도 못하고 전진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한숨만 푹푹...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일종의 연구서와도 같이 어렵고 딱딱하게만 다가오던 책. 전문적인 성격마져 보이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던 거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해서 책속의 문장들을 빌려와 다시한번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① 만들어진 전통에서 무엇보다도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기념행위다. 그것이 없다면 일정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일시적일 수 밖에 없는 집단적 기억을 안정화시키려는 계산된 전략이다. 그것은 과거로 하여금 현재에 돛을 내리게 하고 시간이 멈춰있을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 역자 서문에서- .. 지금 읽어도 참 무서운 말인듯 싶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념하기를 좋아한다. 뭔가 특별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도 될 것이고 그것이 아주 오래도록 곁에 머물러 나를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 그런 심리를 이용한 하나의 전략인 셈이다. ② 만들어진 전통의 특수성은 대체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인위적으로 내세우려 든다는데에 있다. 적응은 새로운 상황에 처해 낡은 것들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목적을 위해 낡은 모델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한 법이다. 엉클 샘은 미국정부와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로 United States의 이니셜 US로 만들어졌다. ③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에서 볼 때 역사적 사료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하며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된 서술은 실은 권력의지에 의해 구성된 담론일 뿐이다... 역사는 힘있는 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어차 피 모든 사회적 구조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사실일테니 말이다.  ④ 전통의 창조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차이점들을 극복하고 '상상된 공동체' 를 만들어내는 공통분모를 형성해내는 데 기여한다는 말과,  '근대사회는 여전히 신화와 의례를 필요로 한다' 던 이안  길모어의 말을 마지막으로 기억해둘까 한다.  숨겨놓은 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의 심리적인 취약점을 교묘히 건들이며 만들어지는 것이 전통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면서...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