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이 두 가지를 두고 내가 어느 유형이냐고 묻는다면 아침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아침형 인간은 지지난해 말부터 작년 초까지 한창 유행했다. 이제는 한물 간 듯하다. 한물 간 유행일지 모르겠지만 내겐 진행형이다.

주위 사람들 중에는 - 아니 대부분 - 내가 선천적으로 잠이 없는 줄 안다. 네 시간을 자면 하루를 사는 데 별 무리 없고, 다섯 시간을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가끔 내 입으로 말하면서 반복하여 상기하니, 노인네처럼 잠이 없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세상에 어디 처음부터 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미 중고등학교 때 잠자는 것 역시 습관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던 것이 수면 시간을 비교적 내 뜻 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 이유라면 이유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일단 억지로 몇 번 새벽에 일어나 보니 그 성취감이 상상 이상이었다. 그 때는 열 두 시에 자서 새벽 네 시에 일어났는데, 새벽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 하는 FM 라디오를 여유있게 들을 수 있었다. '나를 이겼다'는 성취감과 '새벽의 여유'는 그 어떤 느낌보다 강렬했다. 새벽 시간에 특별히 공부한 것 같지는 않다^^. 중학교 때 시작한 '네 시간 자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별 무리 없이 진행됐다. 내 머릿속에 수면은 통제 가능하다는 인식이 깊이 박히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 습관을 되찾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교 때의 흐트러진 생활, 사회 초년기의 무작정 일하기 기간을 거치는 동안 '새벽에 일어나기'는 먼 옛날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기를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01년이었던 것 같다. 갑작스레 시작한 사업이 허무하게 실패로 끝나게 됐을 즈음, 그 실패가 주는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패배감을 긍정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 그 처음은 Windows2000 Active Directory.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액(?)을 들여 주말반 수업을 들었다. 겨우 몇 번 듣지도 않았고, 수업 내용도 크게 마음에 들지도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처음 몇 번 들은 것을 정리할 필요가 생겨 개인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었다. 그 때 만든 것인 바로 ww.itmembers.net 이다.
서버에 남은 낡은 파일을 살펴보니, 2001년 9월 18일에 <재미로 배우는 윈도2000 액티브 디렉토리>라는 강좌를 처음 개설했다. 사실 '강좌'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민망했지만, 내가 아는 것을 조금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 그렇게 붙였다. 이틀 뒤에 <재미로 배우는 리눅스 입문>, 몇 달 뒤에 <재미로 배우는 비주얼베이직 6> 등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인터넷 정보검색사, 오라클, PHP, XML, 자바스크립트 등등을 차례대로 시작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 정리한 시간이 바로 새벽시간이었다.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무언가에 몰입하기 위해 '배웠고', 이를 정리하면서 '익혔으며', 홈페이지를 통해 나의 지식을 '나누었다'. 전화위복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패배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배우고 익혀서 나누는 새로운 즐거움을 얻게 됐다. 소중한 나의 습관을 다시 찾았고, 새로 얻은 즐거움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세포분열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독서노트다. 홈페이지의 주제는 어느새 강좌에서 독서노트로 완전히 옮겨왔다.

말이 샜다. 원래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여전히 힘들 때가 많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추억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아직도 새벽에 일어나면서 힘들어 할 때가 많다. 아마 주중에 최소 한 번 이상을 마시는 술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술을 마셨으니 오늘을 괜찮다는 식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 타협하고 싶지 않다. 타협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안의 내가 나를 무시하는 것 - 나는 그것이 싫은 것이다. 타협은 금연 중의 담배 한 모금처럼 한 순간에 좋은 습관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애써 다시 찾은 좋은 습관을 다시 잃어버리기는 정말 싫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새벽에 일어나기는 습관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훈련 프로젝트'이다.

성상근 습상원 性相近 習相遠 이라 했다.
가진 것도 없고 똑똑하지도 못한 내가 유일하게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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