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시선 121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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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한달앞으로다가왔다.

무슨 전쟁을 선고하는 사람처럼 달력은 무섭게 버티고 있다.

한달 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텐데...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나는 이 시집을 다시 펼쳤다.

제목때문이었나, 이 시집은 그 시절에 세상에 널리 퍼졌었다. 물론 나는 그 때 너무 어렸고 그냥 이 시인이 어딘가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여성시니 뭐니 하는 말 싫어한다.

시면 시지, 무슨 굳이 여성시냐. 남성시는 남성시라고 안하면서...

나는 페미니스트니뭐니 그런것도 아니면서 이런 말만은 퍽이나 싫다.

이상하게 오늘은 문장이 왜 이렇게 착한척하게 써지는 걸까.

자기 자신에게 이 시집을 바치고 싶다는 말이 이상하게 아프게 느껴졌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은 사람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서른살이 아니라 언제 읽어도 그런 쓸쓸한 맛이 날게다.

최영미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이 시인, 마흔에는 어떤 느낌이었을까가 궁금하다.

세상은 거칠고 메마르고 아픈 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치들, 허무한 계절...아무리 살아봐도 살아봐도 모든 것은 끝나고 만다.

회색화면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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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 시선 16
김경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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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리뷰를 쓴다. 영광이라고 해야하나...솔직히 처음에 이 시집을 읽고 다시는 읽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좀 혼란스러웠다. 지나치게 말이 많고, 어떤 사상을 강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를 멀리하는 무리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말은 '시는 어렵다'라는 것이다. 김경주의 시는 어렵다. 아무나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수히 많은 각주와 아무데서나 튀어나오는 철학자들과 서적들...이 시는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 느낌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어려운데 헤겔이라니 현상학이라니,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말들, 게다가 책의 뒷면에서는 한국시단에 이름을 남기게 될 대단한 시인이 될 것이라니...영화를 하고 카피를 만들고 우리는 이 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제목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책의 색깔도 마음에 든다. 일단은 그래서 다시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읽겠다. 시를 내는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은 동일하다. 사람이다. 사람의 글이라면 받아들여야한다. 시는 그렇게 쉽게 내버려둘 수 없는 정체이기에...

다시 읽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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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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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이라는 시인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시를 한참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다시 앞날개를 열어서

이 시인의 나이를 확인했다.

그래, 나이가 사람의 무게를 전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니렷다!

늘 자연을 마주하기가 부끄러웠다. 내가 그네들을 잘 모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에게 나를 노출시킨 적도 전무후무한 일이니 그것이 더욱 미안한 일이라서였다.

그래서 그렇다면 인공물들에게는 얼마나 살가운 인간이었나생각해보면 그 역시 아니다. 왜 이렇게 모든 것들에게 적당한 정도 이상의 이물감을 가지고 살아남은 것일까.

문태준의 가재미,라는 시집은 뒤늦게 생각이 났다. 친한 벗과의 여행에 벗의 가방안에 얌전히 자리잡은 상태로 처음 마주하였다. 먼길 가는 동안 훔쳐보기도 하고, 실제로 빼앗아 보기도 하며 정을 들인 탓인지 내가 소유한 시집이라고 생각하여 사는 일을 미루었다.

그리고 어느 날, 책장에 그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사들였다. 사서는 한동안 들추지 않고 이리저리 만지기만 하고 앞쪽에 그림과 뒷쪽에 문장들만 즐거이 읽었다. 제목만 보고 있어도, 책의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그 여행이 기억나서 어찌나 잔잔하게 기뻤다.

다시 천천히 곱씹어 시를 읽어 보았다. 이 사람은 살아있든 죽어있든 정답게 바라보고 또 정결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구나싶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역시 나는 심하게 기교를 부리거나 제 얼굴을 빤빤히 드러내는 시를 선천적으로 사랑할 수가 없구나하는 것을 실감한다.

조금은 촌스럽게 새를 보고, 길을 보고, 자루를 보고, 또 가재미를 보면서...제 안으로 깊숙하게 들이밀면서 주절거리듯이 좀 큰소리를 내어보라고 호통을 치면서...이런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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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313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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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그리고 슬프다.

하루종일 이정록을 읽었다. 그리고 천안으로 한번 뵈러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내가 당신의 시를 읽고 나서 웃고, 울었다고 말하면 싫어하실까.

이 시인은 자신의 주변을 찬찬히 바라보는 법을 알고 있다. 모든 시에 스스로가 가졌던 시간들을 빼곡하게 꽂혀 있다. 단 한순간도 마구 보내지 않았구나...어떤 순간이든 땀을 흘리고 있다. 얼마나 의미깊게 살아내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내가 이 시집의 첫번째 리뷰를 썼으면 좋을 뻔했다.

다시 책장에서 이정록의 다른 시들을 뽑는다.

세숫대야와 소똥이야기...한편도 빼놓을 수가 없다. 삶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문학을 할 수 있는가 . 내가 내 삶을 주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삶을 거론할 수 있는가. 세상을 곰곰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나까지도 긴장하게 만든다.

지금 주저앉아 있는 주변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글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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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랜덤 시선 8
최치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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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말이 많니? 무슨 시가 그렇게 수다스러워. 시가 좀 비어 있는 맛이 있어야지..." 나는 그의 잔에 술을 채우면서 좀 슬퍼졌다. 말로 하지 않으면 이제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걸요...라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어른이니까. 그는 이미 시에게 한 생을 다 내어준 분이니까.

그것만으로도 그의 머리에는 아우라가 보였으니까. 나에게는 절대로 생겨나지 않는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니까. 나는 늘 열등감으로 목이 마르다.

시를 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고, 시를 쓰겠노라고 종이와 연필에게 선언하기를 수년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시는 나만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나만이 깊게 읽고 있으며, 나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그러다가 이렇게 맛나는 시를 만나는 것은 기쁨이다.

나는 늘 고급독자가 되고싶다고, 아니 이런 건방진 말은 삼가하자. 글을 풀어내는 이들을 이해해주자고 다짐하였다. 그래서 내가 나 혼자만의 글을 쓰더라도 혼자서 기꺼워라도 하자고 다독이고 그랬다.

어떤 사람이 그랬다. "자신을 열등감으로 몰아넣은 시인이라고..." 그래서 나는 그 날밤 취한 눈을 부비고 알라딘에서 이 시집을 주문했다. 다음 날 아침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간밤에 주문한 시인의 이름...최 치 언 이라는 세 글자조차도...그러나 책은 내 기억의 빈 구멍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읽었다. 많이 아파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설혹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시인은 어딘가가 불편하다. 어딘가가 아프네. 어딘가가 아파서 숨을 잘 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전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도 그런 맛이 나는 시라는 것이 기뻐서 웃고 울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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