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랜덤 시선 8
최치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늙은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말이 많니? 무슨 시가 그렇게 수다스러워. 시가 좀 비어 있는 맛이 있어야지..." 나는 그의 잔에 술을 채우면서 좀 슬퍼졌다. 말로 하지 않으면 이제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걸요...라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어른이니까. 그는 이미 시에게 한 생을 다 내어준 분이니까.

그것만으로도 그의 머리에는 아우라가 보였으니까. 나에게는 절대로 생겨나지 않는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니까. 나는 늘 열등감으로 목이 마르다.

시를 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고, 시를 쓰겠노라고 종이와 연필에게 선언하기를 수년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시는 나만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나만이 깊게 읽고 있으며, 나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그러다가 이렇게 맛나는 시를 만나는 것은 기쁨이다.

나는 늘 고급독자가 되고싶다고, 아니 이런 건방진 말은 삼가하자. 글을 풀어내는 이들을 이해해주자고 다짐하였다. 그래서 내가 나 혼자만의 글을 쓰더라도 혼자서 기꺼워라도 하자고 다독이고 그랬다.

어떤 사람이 그랬다. "자신을 열등감으로 몰아넣은 시인이라고..." 그래서 나는 그 날밤 취한 눈을 부비고 알라딘에서 이 시집을 주문했다. 다음 날 아침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간밤에 주문한 시인의 이름...최 치 언 이라는 세 글자조차도...그러나 책은 내 기억의 빈 구멍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읽었다. 많이 아파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설혹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시인은 어딘가가 불편하다. 어딘가가 아프네. 어딘가가 아파서 숨을 잘 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전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도 그런 맛이 나는 시라는 것이 기뻐서 웃고 울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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