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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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정천 가족』을 시작으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거쳐 모리미 도미히코와 세번째 만남. 사실 같은 작가의 책을 거의 연달아 읽는 것은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야금야금 읽으려고 했는데, 마침 모리미 도미히코의 신작도 2권이나 나오고 해서, 『밤은 짧아~』에 등장한 인물이 나온다는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를 읽기 시작했다. 

  대학 3학년인 주인공. 2년간의 대학생활을 돌아보건대 이성과의 건전한 교제도, 학업 정진도, 육체 단련 등 유익한 일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이성으로부터 고립, 학업 방기, 육체의 쇠약화 등 깔지 않아도 되는 포석만 족족 깔아대며 시간을 허비한다. 문득 돌아보니 1학년 때 눈에 들어온 4개의 동아리 중 다른 곳에 들어갔더라면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고, 인생의 방해꾼 오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가 펼쳐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지만 운명의 검은 실로 묶어져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주인공은 오즈를 만났을 것이고, 오즈는 온힘을 다해 주인공을 괴롭혔을 것임을 각각 다른 동아리에 들었다는 설정의 네 개의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아주 오래 전(찾아보니 1994년)에 방영한 '인생극장'이라는 코너가 떠올랐다. A와 B라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각각을 선택할 경우 일어났을 일들을 보여주는 프로였는데, 한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던 프로로 기억한다. 만약 A를 선택했더라면, B를 선택했더라면 하는 설정 자체는 비슷하지만,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는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기보다는 어떤 것을 선택했더라도 인생은 그렇게 굴러가게 되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각 화의 시작과 끝이 같고, 중간에 들어가는 내용만 약간씩 다른 독특한 구성이라 사실 첫번째 이야기를 다 읽고, 두번째 이야기를 읽을 때만 해도 '이거 앞에 나온 건데 내가 착각한 건가' 싶었는데, 장난스러운 작가의 속임수(?)임을 알고 유쾌해졌다. 영화 동아리 '계'에 들어갔어도, 제자 구함이라는 전단지에 이끌렸어도, 소프트볼 동아리 '포그니'에 들어갔어도, 비밀기관 '복묘반점'에 들어갔어도 주인공은 대학 생활을 하며 만나야 할 사람을 모두 만나고, 겪어야 하는 일은 모두 겪는다. 물론, 네 가지의 선택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굴러간다면 재미없는 법. 각각의 이야기만으로도 재미있었지만, 네 가지 이야기를 모두 합할 때 수수께끼 같은 아이템(예를 들어, 암중전골이나 찰떡곰맨)을 이해할 수 있어서 한층 더 재미있었다.  
 
  『밤은 깊어 걸어 아가씨야』에 나오는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읽었는데, 술 취하면 상대방의 얼굴을 핥는 하누키씨와 텐구 스승인 히구치가 등장하는데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서 '어이' 하고 잠시 아는 척만 하고 스쳐 지나가서 아쉬웠다. 그래도 한 권 한 권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을 읽다보니 그가 소설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교토도 점점 익숙해지는 느낌이고, 그만의 분위기에도 빠져드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읽고 나니 어쩐지 집밖에 나가서 고양이라면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고, 『해저 2만리』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어차피 인생 이렇게 흘러갔을 거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리'라는 달관(?)의 자세가 되어버렸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을 읽고 다소 얼간이가 된다 해도, 어떠랴. 어차피 이것도 내 나름의 사랑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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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4-03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독특하네요. 이런 책 좋습니다.ㅎ

이매지 2010-04-03 22:44   좋아요 0 | URL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오쿠다 히데오 같은 작가를 좋아하신다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꺼예요:)
 
파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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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문학을 접하고, 일본 근대문학에 관심을 갖게 될 때쯤 시마자키 도손의 이름을 처음 접했었다. 시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이 작품 『파계』를 통해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가 된 시마자키 도손. 하지만 국내에 단편 정도 소개됐을 뿐이라 제대로 된 그의 작품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그의 대표작 『파계』가 수록되어 읽기 시작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나름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사로 살아가는 우시마쓰에게는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었으니, 자신이 백정 출신이라는 것. 백정 해방령 이후 신평민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의 차별이 존재하는 시대 속에서 그는 세상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웅크리며 살아가는 쪽을 택해 살아간다. 신평민이 같은 하숙집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그를 쫓아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회, 신평민 가운데 빼어난 지식인인 렌타로를 돌연변이 취급하는 사회, 그런 인심을 잘 알고 있었던 우시마쓰의 아버지가 "설령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백정이라고 고백하지 마라. 한때의 분노나 비애로 이 훈계를 잊으면 그때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거라 생각해라"라고 신신당부한 사항을 지킨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이런 '숨겨라'라는 훈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얽히며 그는 점차 자신이 백정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또 숨기려 한다. 자신이 신평민이라는 것을 망각할 수 있다면, 차라리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고뇌에 휩싸이는 우시마쓰. 그 와중에 자신과 같은 신평민인 렌타로를 사상적, 인간적 선배로 모시게 되고, 언제까지 비밀이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의 출신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며 우시마쓰는 파계의 유혹에 번뇌하기 시작한다.

  『파계』라는 하나의 작품을 통해 시마자키 도손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지만, 자연주의 문학이 일본에서는 어떤 식으로 수용됐는가를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백정이라는 신분을 감추고 교사로 살아가는 우시마쓰와 유서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점차 몰락한 집안 출신의 시마자키 도손은 교사로 재직했다는 사실이 어쩐지 비슷하게 느껴져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은 사소설과도 연계가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떠나서 『파계』는 작품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도 물론 백정을 천대했지만(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형평사 운동이 일어나 백정이 해방되었다는 공통점도 있을 듯) 이 소설 속에서 백정을 대하는 모습은 우리가 노비를 대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분제가 타파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언성을 높일 때면 '상놈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자신과 다른 모습(장애인 혹은 노숙자 같은)을 한 사람들에게는 무서우리만큼 차갑게 대하는 우리의 모습도 우시마쓰가 맞선 세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 신분제는 결국 외형상 사라진 것일뿐 우리 개개인의 내면에는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서 우시마쓰는 두 인물 사이에서 번뇌한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고향을 떠나 최대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목장에서 홀로 살아가고, 죽어서도 고향 사람들에게는 부고를 알리지 말라고 한 우시마쓰의 아버지, 그리고 신평민의 신분이 드러나 학교에서 쫓겨나자 오히려 활발한 저술 활동과 연설을 통해 세상과 맞서 싸우는 렌타로, 우시마쓰는 끊임없이 아버지가 가슴속에 새긴 '숨겨라'라는 계율을 의식하면서도 렌타로에게만은 자신이 신평민임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렌타로의 죽음을 통해 우시마쓰는 마침내 자신의 삶을 억눌렀던 계율을 깨고, 세상에 당당히 자신이 '백정'임을 밝힌다. 그의 아버지가 생각했던 대로, 파계 이후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달라졌다. 하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듯 그의 앞에는 새로운 삶이 열린다. 백정임을 감추고 살아왔던 날들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그가 이후 어떤 일을 겪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끝없는 어둠 속으로 침잠한 교사 시절과는 달리 학생 시절로 돌아가 좀더 홀가분하게 당당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의 선배 렌타로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역자가 해설에서 언급했듯이 『파계』는 차별받는 부락민의 문제를 취급한 사회문제로도, 봉건적인 가족제도로부터의 자아해방을 다룬 소설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를 꼭 부여하지 않아도, 사범학교 시절부터 우시마쓰와 절친하게 지내 같은 학교에 재직중인 긴노스케, 무능한 아버지 게이오신, 그리고 가난 때문에 절에 맡겨진 그의 딸 오시호, 양녀인 오시호에게 눈독을 들이는 렌겐 사의 주지와 여색을 탐하는 주지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그의 아내,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가려고 하지만 무능한 남편 때문에 히스테릭해진 게이오신의 아내, 재력 때문에 신평민의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하고 아내의 신분을 속이는 다카야기, 우시마쓰나 긴노스케를 내쫓고 자신의 조카를 1인자로 끌어올리려는 교장 등 다양한 인물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많은 작품이 소개되지 않아 안타깝지만, 아쉬운대로 그의 단편이라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그리 두껍지 않았지만 담백함 속에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충격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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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3-2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는 무겁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가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특히 주인공의 학교 동료교사들 묘사한 것이 재밌었지요.저는 헌책방에서 본 정음사판 번역본으로 읽었어요.나가노 산골 자연풍경 묘사도 좋았습니다.올 봄 가기 전 또 읽어봐야겠네요.네 번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이매지 2010-03-29 22:4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 말씀처럼 주제는 무거운데 인물 묘사나 배경 묘사가 매력적이라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아요 :) 저도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한 번 읽어보려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손이 <파계> 이후 이 작품에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좀 더 밀고갔다면 일본근대문학의 모습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더러 생각해봅니다. <파계> 이후에는 가정사(<家>)와 같은 신변잡기적 소재를 벗어나지 못하거든요. 이후 사소설이 일본문학의 주류가 되구요.
작가의 이후 행적을 보면 그 걸출함이 외려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이매지 2010-04-13 15:3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일본 근대문학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도손의 <파계> 이후 이야기도 흥미롭네요. 한편으로는 도손의 신변잡기적 소설도 조금은 궁금하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3 16:53   좋아요 0 | URL
저는 사소설과 자연주의 문학을 비판적으로 보는 터라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줄 압니다.

시마자키를 번역하고 연구하는 노영희 교수의 시마자키 번역서가 몇 권 있네요. <春>과 <家>가 번역되어 있는데요. 뒤의 책은 '민문고'란 데서 번역되어 있는데, 구하기가 힘들어요. <클 준비>란 단편이 창비세계문학전집 일본편에 실려 있습니다. 말 꺼낸 김에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이매지 2010-04-13 23:48   좋아요 0 | URL
말씀해주신 책들 도서관에서라도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저도 일단 파고세운닥나무님처럼 <클 준비>를 먼저 읽어봐야겠네요 :)
 
소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4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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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판에 대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점을 꼽자면 일단 원고가 완성되면 바로 책으로 출간된다고 여긴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도 몇 번이나 편집자와 저자 사이의 수정에 대한 의견이 교환되고, 그 사이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편집의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입 아프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 책 『소설』을 한번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나의 소설이 작가의 손을 거쳐 편집자에게로, 그리고 조율을 거쳐 비평가와 독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촘촘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다소 원론적인 제목의 이 책은(심지어 제목 때문에 한 번에 찾기도 힘들다) 제목처럼 그야말로 '소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인 루카스 요더와 편집자인 이본 마멜, 비평가 칼 스트라이버트와 독자 제인 갈란드는 각자 자신에게 소설이란 무엇인지, 문학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야기한다. 다소 고루한 방식이지만 잊혀져가는 문화를 소설 속에서 되살리는 요더도, 잘 읽히는 소설에 끌리는 독자 제인도, 소설이란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스트라이버트에게도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 독자가 중점을 두는 점은 이 책 속의 등장하는 사람처럼 제각각일 수 있지만 결국 독자에게 교훈을 주는 책도, 사회의 문제를 담고 있는 책도, 후대에 문화를 전해주는 책도, 재미있고 충격적인 책도 모두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이 얼만큼 큰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와 고통이 필요한지 새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많은 『편집자란 무엇인가』 같은 편집 관련 도서에서 이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됐는데, 읽고 나니 왜 그들이 이 책을 권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집에 대해, 그리고 한 권의 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정말 많은 책이 독자의 선택을 기다리며 세상에 나왔다. 그중 많은 책은 이 책 속의 소설가 요더의 초기작들처럼 "날개 찢긴 새처럼 퍼덕이다가 죽"어갈 것이다. 좋은 글을 쓰는 저자도, 좋은 원고를 알아볼 줄 아는 편집자도, 책의 운명 앞에서는 그저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물론, 그저 '좋은 책이니까 잘 팔리겠지'라고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효과적인 마케팅으로 운명을 개척해야겠지만 말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 네 명의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답'을 얻었다고 할 수는 없다. 애초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품고 있는 의미가 다 다른 것이니 '정답'이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소설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그래프의 축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사실 네 사람이 각자의 입장에서 본격적으로 소설에 대한 썰을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 속에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양념처럼 들어가 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제법 두껍지만,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나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어쩐지 책을 읽고 나니 책 속에 등장한 요더씨의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공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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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3-26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참 오래 전에 읽었는데 아직도 절판되지 않고 나오고 있다는 게
저로선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출판 세계 10위 안에 드는 강국이라고 자랑하지만 좋은 새로운 책을 발굴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판율을 떨어 뜨리고, 절판 됐을지라도 복간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저는 이책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래 전 이사하면서 박스에 담긴 후로
만져 볼 수도 없게 되어버려서 참 아쉬워요. 흐흑~

이매지 2010-03-26 11:27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몇 번 절판과 개정을 계속하면서도 계속 나오기는 하는 것 같더라구요. 사실 이 책도 몇 번이나 옷을 바꿔입고 나온^^;
정말 좋은 책들이 절판되면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죠 -_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맥주니 스파게티니 온갖 먹을 것들의 유혹에 빠져드는데, 모리미 토미히코의 <밤을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으며 머리 속에 온통 '술, 술, 술'이라는 단어가 떠돌았다. 애주가는 아니고 가끔 맥주가 땡길 때 한 캔 정도 마시는 편인데, 이 책을 읽고 있던 12시 무렵에 나는 정말 심각하게 맥주를 사러 밖에 나가야 하는 건가 고민을 했다. (결국 고민만 하다가 다음 날 마트에 갔을 때는 영 끌리지 않아 내려놨다. 결국 이 책은 술을 마시며 읽어야 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주된 줄거리라면 한 남자가 짝사랑하는 자신의 후배인 검은 머리 여학생을 쫓아다니는 것 뿐.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동안 선배는 우연을 빙자한 만남을 통해 후배와 자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해자를 조금씩 메워간다. 과감하게 후배에게 고백하기를 택하기보다는 '최눈알(최대한 그녀의 눈앞에서 알짱거리기)' 작전을 통해 후배가 자신을 친근하게 생각하게 하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선배의 최눈알 작전은 생각보다 그리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결혼식 날 피로연 2차 때 몰래 빠져나가는 후배를 따라갔다가 바지를 뺏기는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헌책시장에 갔다가 책을 얻기 위해 불냄비 요리를 먹기도 하며, 대학 축제 때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그녀를 만나기까지 하는 등의 고난이 뒤따른다. 선배는 후배의 뒤를 쫓으며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어"라는 그 한마디를 건내기 위해 죽을 고생을 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후배는 그저 "아, 선배, 또 만났네요!"라고 할 뿐. 하지만 선배의 해자 메우기가 유효했는지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하는데...

   사실 기본 스토리만 봐서는 이 책은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하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캐릭터와 유머러스한 서술,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인 설정이 이 책을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게 만든다. 운명의 그녀를 만날 그 날까지 팬티를 벗지 않는 '빤스총반장'을 비롯하여, 자칭 텐구 히구치, 술을 좋아해 어느 모임에도 끼어들어 공짜 술을 즐기는 하누키, 고리대금업자이면서 가짜 전기부랑 등으로 향락을 즐기는 이백씨, 궤변춤을 함께 추는 궤변본부 동아리의 사람들 등등. 이 책은 현실이라 하기엔 말도 안 되게 보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뭐 이런 캐릭터들이 없으라는 법은 없지라는 생각까지 들게한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어떤 인연"이라는 후배의 말처럼, 모리미 토미히코와 만난 것도 하나의 인연 같이 느껴진다. 온통 복잡함으로 꽉 찬 머리에 잠시나마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기 위해 읽은 책이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었던 것 같다. 조만간 이 책 속에 나온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도 읽어야겠다. 한 번도 교토에 가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교토에 가고 싶게, 그리고 교토에 온 것 같이 만드는 책. 역시 교토 작가라 불릴 만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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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1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리미 토미히코의 모든 책을 다 가지고 있어요. 신간으로, 중고샵에서 하나 둘씩 모았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한 권도 제대로 안 읽었더라구요 ㅠㅠㅠㅠ

이매지 2010-03-14 11:42   좋아요 0 | URL
저는 이게 두번짼데, <유정천 가족>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이 더 좋네요 :) 아, 정말 새벽에 어찌나 술이 땡겼는지!

stella.K 2010-03-14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림이 이쁘장 하다는 것 외엔 책이 그다지 끌리지는 않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것에 속지 말고 읽어보면 의외의 재미를 볼 수 있는 책인가 봅니다.^^

이매지 2010-03-14 11:58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표지가 너무 말랑해보여서 그랬는데요, 읽다보니 표지와 내용의 싱크로율이 거의 100%더라구요 ㅎㅎㅎ

2010-03-14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4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4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10-03-1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브리핑에서 음주유발도서라는 제목을 보고 궁금해하면서 클릭했는데
책 보고 바로 동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주유발도서 맞아요 ㅋㅋㅋ

이매지 2010-03-14 18:13   좋아요 0 | URL
책 보고 바로 동감하셨으면 추천이라도 한 방 ㅎㅎ
왜케 다들 추천에 박하신지 ㅎㅎ

다락방 2010-03-1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읽어봐야겠군요. 굳이 음주 유발을 하지 않아도 음주를 즐기기는 하지만. 물론 일년뒤에 주문할겁니다. 저 일년간 책 주문 보류에요. ㅎㅎ

이매지 2010-03-14 18:56   좋아요 0 | URL
일년간 책 주문 보류 ㅋㅋㅋ일년 뒤에 꼭 읽으세요! ㅎㅎ
 
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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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 작가들을 접할 때면 어쩐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의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노벨상 수상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이번에도 어렵겠거니'라고 왠지 주눅든 상태로 어떤 의무감에 책을 읽곤 했다. 하지만, 르 클레지오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읽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라는 다소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은 '밤'이라는 의미의 '라일라'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녀의 이야기다. 유괴를 당해 랄라 아스마에게 팔려와 온갖 집안일을 하며 자라는 라일라. 그녀는 낳아준 엄마 아빠의 이름도, 고향도 알지 못하고 자랐지만, 랄라 아스마가 죽으며 남겨준 귀걸이를 통해 자신의 근원을 조금이나마 짐작한다. 하지만 랄라 아스마의 죽음 이후 홍등가, 프랑스, 미국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타인에 간섭으로 이곳저곳을 떠돈다. 먼 길을 돌아 결국 자신의 근원지인 고향으로 향한다. 

  라일라의 삶은 마치 물살을 거슬러오르는 연어의 그것처럼 고통스럽다. 한쪽 귀는 들리지 않고, 라일라를 만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런 행동이 호의에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결국은 그들은 라일라의 순수성을 훼손하려 한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세상을 떠도는 라일라. 뒷표지에서 이 책을 '성장소설'이라 칭했지만 그동안에 만나온 성장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접해온 성장소설은 주인공이 고난 혹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성장하는 과정까지를 담고 있었다면, 이 책은 성장 자체보다는 고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라일라는 이 책에서 성장했다기보다 성장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감내한다. 물론, 결국 고향에 도착한 그녀가 그동안의 시련을 영양분 삼아 새로운 삶을,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갈 것임은 명백하지만, 그 방식이나 앞으로의 전개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어릴 때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부터 라일라가 자신의 삶의 영역을 지키지 못함을 의미한다. 성장하면서도 라일라는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려는 이들과 투쟁한다. 어린 소녀가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련이 찾아온다. 하지만 작가는 라일라의 고통을 연민하기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삶의 고달픔, 괴로움,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보여준다. 한 소녀가 겪기엔 너무나 안쓰럽고 끔찍한 일들이었지만, 그런 사건을 감정을 배제하고 보여줘서 더 라일라라는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지만, 두께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르 클레지오가 들려줄 다른 이야기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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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2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매지님도 노벨문학상은 그런 느낌이군요. 나도 그랬는데...
작년에 황금물고기 리뷰에 나도 그런 말 썼거든요.ㅋㅋ

이매지 2010-02-26 23:3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그런 느낌이시군요 ㅋㅋ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거죠 뭐 ㅠ_ㅠ
조만간 나올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헤르타 뮐러도 기대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