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
토미 바이어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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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동안 로또 열풍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매주 몇백 억이 넘는 당첨금이 모일 정도로 전국은 로또 열풍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때 로또를 샀건, 사지 않았건 누구나 ‘로또에 당첨된다면…’이라는 몽상을 한 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로또만 되면’ 회사도 그만두고 내 마음대로 싫은 소리 듣지 않고 살겠노라고, 그동안 돈이 없어 사지 못한 물건도, 집도, 차도 모두 사겠다는 생각. 그것은 어쩌면 백일몽이라 하여도 어쩌면 무료한 삶에 조금은 활기를 불어넣어주지 않았을까? 이 책은 실제로 그렇게 궁색하고 무료했던 삶에서 벗어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때 밴드를 하고, 음반 회사도 운영했던 주인공 알만. 동업자의 배신으로 음반 회사를 접고 현재는 의사인 아내의 경제력이 기대어 간간이 짧은 글을 써서 일시적인 수입만으로 살고 있는 처지다. 전날 저렴하게 구입한 와인 때문에 숙취로 고생하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으니, 다름 아닌 ‘로또에 당첨’됐다는 것! 게다가 그 액수가 600만 유로나 된다는 말에 그는 그동안 여러모로 고마웠던 아내를 더이상 고생시키지 않을 수 있겠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하지만 아내에게 당첨 사실을 알리려는 순간 아내와 작은 일로 다투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세미나 차 출장을 떠나버린다. ‘아내가 돌아오면 이 기쁨을 나눠야지’라고 생각하는 알만. 하지만, 우연히 아내의 컴퓨터 속에서 불륜상대로 추정되는 인물의 메일을 보게 되고, 아내의 사랑이 떠났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홀로 남은 알만은 비록 돈은 넘쳐나지만, 돈 때문에 주변 사람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돈만 해결된다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거액의 돈 때문에 알만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흔히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돈이 없기 때문’이라 여기지만 국가별 행복지수를 보면 꼭 부유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과연 돈 말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이 책은 거액의 돈이 생기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남자를 통해 행복이란 사실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알만은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게임 한 판 하고, 좋은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듣는 것 등 소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을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잃고 난 뒤 깨닫는다. 거액의 돈은 행복보다는 의심을, 인생을 고민 없이 명료하게 만들어주기보다는 거짓말과 의심으로 인생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초반에 알만이 당첨 전화를 받고 나서 멋진 차를 뽑고, 사고 싶었던 물건들을 거침없이 질러대는 부분에서는 ‘혹,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마음에 조마조마했다가, 돈이 들어오자 마치 내 통장에도 돈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심리 묘사가 괜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알만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실시간으로 툭툭 등장해 ‘알만의 마음은 지금 어떨까’보다는 저절로 나도 알만처럼 느끼게 해줬다.

  로또 당첨으로 인한 한바탕 소동이라는 설정은 결국 돈이 행복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될 것임을 예상케 하기에 다소 식상할 수 있지만, 이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의 재주와 유머 때문에 결코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책 뒷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에게 620만 유로가 없더라도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을 좋아했을 것이다!’ 가볍고 유머러스하지만 삶에 대한 따뜻한 메시지가 느껴졌던 책. 마지막에 그가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계획을 세운 것이 모두 이뤄져 그의 인생이 좀더 행복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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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10-02-12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또에 당첨이 되고 나서도 꾸준히 사회활동을 해야죠.
그렇지만 포인트는 마음의 부담을 덜고 즐겁게 하는 것, 저의 로망입니다. ㅋㅋ

이매지 2010-02-12 15:02   좋아요 0 | URL
뭐 이 책 주인공이야 원래 사회활동을 안 하던 사람이라 ㅎㅎㅎ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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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동안 서재인들 사이에서 화제의 대상이었던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을 드디어 읽었다. 나온지 일 년 조금 지났을 뿐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품절이라 겨우겨우 도서관에서 빌려 건지 아일랜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던 건지 섬. 영국 자치령이지만 위치상 프랑스에 더 가까운 이곳에 살고 있는 도시는 어느날, 이제 갓 작가로서 첫 성공을 거둔 줄리엣에게 찰스 램과 관련한 책에 대한 편지를 보내게 된다.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줄리엣은 도시의 편지를 통해 건지 아일랜드의 북클럽인 '감자껍질파이 클럽'에 대해서 알게 되고, 도시와의 편지를 계기로 건지 섬 사람들과 서신 교환을 시작한다. 이제 갓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난 건지 섬 사람들. 그들의 글을 통해 책에 대한,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단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책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였다. 이메일과 편지라는 매체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글을 통해 교감한다'는 설정이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의 주인공 줄리엣과 『새벽 세시』의 주인공 에미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새벽 세시』쪽이 연애소설에 가깝다면, 『건지 아일랜드-』는 연애보다는 삶에 주목한다. 줄리엣이 건지 섬 사람들과 편지를 교환하며 주인공처럼 등장하지만, 오히려 건지 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은 엘리자베스가 더 주인공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넘치는 재기로 감자껍질파이 클럽을 만들어 독일군의 눈을 속이기도 하고, 수용소에서 결국 자신에게 걸맞는 행동으로 죽음을 받아들인 엘리자베스는 평생을 그녀와 알고 지냈던 건지 섬 사람들 뿐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직접 건지 섬으로 간 줄리엣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친다. 

  사실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에, 내용도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특히 결말!) 다소 아쉬운 마음은 들었지만, 전쟁 속에서 고통을 겪는 개인의 모습과 문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지역 신문의 편집자 및 도서관 사서로 평생을 책과 함께한 저자가 오랜 문학회 친구의 "닥치고, 글을 쓰라고!"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쓰게 된 이 소설. 비록 그녀는 완성된 책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따뜻한 메시지만큼은 건지 섬을 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닿은 것 같다. 혹 자격이 주어진다면, 나도 '감자껍질파이 클럽'에 가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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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11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6월부터 품절이라 결국 8월에 토론했지만 이 책을 읽은 독서회원들에게
"언니는 우리들의 엘리자베스야!"라는 찬사를 받았어요.
내게는 과분한 찬사였지만 내 인생 최고의 찬사로 생각하고 살아요.^^
이 책 너무 좋아요!!

이매지 2010-02-11 09:55   좋아요 0 | URL
언니는 우리들의 엘리자베스야! 정말 순오기님께 딱 어울리는 걸요? ^^

다락방 2010-02-1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이요. 저도 같이 감자껍질파이 클럽에 가입해요, 이매지님.

그나저나 우리 건지아일랜드 먼저 가는게 순서 아니겠어요? 브론테님하고 가요 우리. 채링크로스 84번지에도 가고. 히힛 :)

이매지 2010-02-11 09:5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브론테님 모두 손잡고 건지 섬으로 ㅎㅎㅎㅎ
저 아직 채링크로스 안 읽어봤는데
채링크로스 84번지에도 가려면 어여 읽어야겠군요! ㅎㅎㅎ

다락방 2010-02-11 10:10   좋아요 0 | URL
아 이매지님. 아직도 그걸 읽지 않으셨다뇨!!!!!어떻게 그러실수가 있어요!!

채링크로스84번지, 건지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새벽세시 바람이 부나요, 서재결혼시키기 이거 네게가 셋트에요.(라고 저 혼자 정했습니다. ㅎㅎ)

이매지 2010-02-11 10:30   좋아요 0 | URL
이제 채링크로스만 남았군요 ㅎㅎㅎㅎ
조만간 꼭 읽어볼께요!!

하늘바람 2010-02-1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모르는 저는 좀 왕따인 느낌~

이매지 2010-02-11 11:3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도 꼭 읽어보세요 :)

Kitty 2010-02-1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 ㅋㅋ 지난번에 입이 근질거렸지만 스포라서 꾹 참았어용 ㅋ
저는 부잣집 남자를 밀었다구요 흥 ㅋㅋ

이매지 2010-02-12 09:07   좋아요 0 | URL
즈는 그것보다 모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끝나서 그랬어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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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이야기할 때면 떠올리는 키워드가 '마술적 사실주의' 혹은 마르케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요새 들어 조금씩 제3세계 문학이 소개되고는 있지만, 그동안 영미 문학 중심으로 소개됐던 지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르케스 외에는 딱히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접하기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뿐이지 이 책의 저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도 엄연히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국내에 몇 권의 책이 소개된 바가 있는데 언제 읽어봐야지 하고 쌓아만 놓고 있다가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로 드디어 요사와 첫만남을 갖게 됐다. 

  아마존에 배치된 페루군. 습한 기후와 무더위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좀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인근 마을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 군 대내외적으로 골머리를 썩인다. 이에 페루 군 윗선에서는 일평생 여자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고 도덕적으로도 깨끗한 삶을 살아온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에게 특별봉사대를 만들게 해 이 문제를 해결코자 한다. 병사들의 성욕을 채우면서 민간에 피해를 주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었지만, 문제는 외부에 군에서 매춘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비난이 쏟아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 이에 판토하 대위는 자신이 군인임을 숨긴 채 특별봉사대를 조직하게 된다. 자신의 가족에게도 임무를 비밀로 한 채, 판토하 대위는 특별봉사대를 좀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오히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특별봉사대를 이끌고 가는데...

  애초에는 아무도 이렇게 특별봉사대가 잘 꾸려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판탈레온 대위의 놀라운 분석력과 꼭 특별봉사대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의지 때문에 특별봉사대는 점점 덩치가 커진다. 각 대원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봉사를 할 수 있게 시간 제한을 둬 한 사람당 20명 정도의 군인만 받게 한다던지, 대기 시간동안 야한 소설을 보여줘 바로 서비스에 돌입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으로 판탈레온은 끊임없이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분석한다. 그렇게 점점 규모가 커지자 당연히 눈에 띄게 된 수국초특(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 군 내부에서도 부사관이나 장교 들까지로 범위를 확장해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군인 뿐 아니라 오지에 있는 민간인들에게도 서비스를 해달라는 항의까지 수국초특의 명성은 점점 하늘을 찔러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이때 수국초특 외에 또 하나의 조직이 아마존을 흔들고 있었으니 신흥종교라 할 수 있는 프란시스코 형제가 이끄는 '방주의 형제단'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흉내낸 그들의 신봉자들은 동물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심지어는 어린아이까지 그 대상으로 삼는다.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수국초특과 방주의 형제단. 이들은 아마존 사람들을 점점 욕망이라는 광기로 몰아넣는다.

  처음에 이 책을 몇 페이지 읽고는 대체 이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방식으로 서술이 진행된다. 흔히 볼 수 있는 액자식 구성의 경우는 어느 정도 그 경계가 느껴진다면 이 책은 한 문단 단위로 다른 이야기가 동시에 서술된다. 게다가 단순히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전지적 작가의 서술로 사건이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판탈레온 대위가 상부에 제출하는 보고서의 형식으로, 때로는 아마존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는다는 '신치의 소리'라는 라디오 멘트 혹은 신문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쌓여간다. 그동안 많은 책들 읽고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이 조각조각을 짜맞춰간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이야말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이쪽 구석을 조금 맞췄다가 저쪽 그림 형상이 나올 때까지 맞췄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가서 조각을 맞추는 것 같았다. 딱히 어떤 시점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통통 튀는 구성에 일명 짱꼴라라고 불리는 이의 독특한 말투 등이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더 유머러스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군인을 상대로 한 매춘봉사대라는 설정 때문에 자연스럽게 위안부 문제가 떠올라 읽고 나면 불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단 위안부와는 그 성격 자체가 달라 크게 개의치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소재 자체는 굉장히 무겁고, 중간중간 사회·정치적 비난이 담겨 있어 만약 요사가 이 작품을 진지하게 써내려갔다면 읽으며 '도무지 지루해서 견딜 수 없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문제의식을 익살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에게 뼈 있는 웃음을 안겨주지 않았나 싶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인 성욕을 중심으로 성공에 대한 욕망, 부귀에 대한 욕망, 그리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 등 갖가지 욕망에 대한 작가의 냉소와 촌철살인이 유머러스하게 등장하는 이 책 때문에 지하철에서도 몇 번이나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는지 모른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후의 요사의 소설은 유머러스하다고 하는데, 조만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도 읽어봐야겠다. 유쾌하지만 어쩐지 씁쓸한 판티랜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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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0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이런 내용이었군요! 저도 읽어볼게요, 이매지님.

군인들에게도 그렇지만 요즘엔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가장 큰 문제가 풀지 못하는 성욕이라고 하더군요.
말씀하신 것 처럼 위안부 문제가 떠올라 불편해지지 않을까 걱정될 것 같긴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읽을 수 있다니, 믿고 도전해볼랍니다. 잘 읽었어요, 이매지님. 안그래도 이 책에 대한 리뷰가 매우 궁금했던 참이었거든요.

이매지 2010-02-07 12:56   좋아요 0 | URL
저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성 문제에 대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나네요. :)
그래도 이 책은 세계문학전집 다른 책들과는 달리 멋진 리뷰가 많던데요 뭐^^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구성도 신선해서 저는 좋았어요. 다락방님 취향에도 맞는 책이었으면 좋겠네요~
 
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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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의 아니게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과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이 그것인데, 두께도, 내용의 진행방식도 많이 달랐지만, 읽고 나서 한동안 그 여운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점만큼은 같았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고독을 느끼는 남자(에브리맨)와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쫓아 그를 애도하는 남자(애도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내게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애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 이를 메모해 느릿느릿 걸으며 그 장소를 찾아가 애도하는 한 사람(시즈토)이 있다. 대체 그는 왜 이런 괴짜 같은 행동을 하는 걸까? 자극적인 기삿거리만을 찾아 다니는 기자 마키노, 암에 걸려 죽어가는 시즈코의 엄마 준코, 남편을 살해한 죄로 복역 후 갓 출소한 유키요. 애도하는 사람과 얽힌 이 세 사람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애도하는 사람을 바라본다. 때로는 시즈코의 행동을 위선이라 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그의 진의를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마키노도, 준코도, 유키요도, 그리고 시즈코 스스로도 삶에 대해, 생명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흔히 누군가가 죽으면 사람들은 살아생전 그의 모습 혹은 그의 죽음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병으로 인한 죽음인 경우도 그렇지만, 특히 사건사고로 인한 죽음일 경우에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보다는 그의 죽음의 원인인 사건사고에 관심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죽음이라 해도 어린아이 혹은 평소 많은 사람의 선행을 베풀며 살았던 이들의 죽음은 안타까워하지만, 얼마 전 자살한 연쇄살인범 정남규를 비롯해 악행을 일삼던 이의 죽음은 죽어 마땅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렇게 생명에 대해 차별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우리가 누군가의 죄를, 누군가의 생명을 판단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작가는 누구의 죽음도 차별이나 구별 없이 애도하는 시즈코를 통해 휴머니즘의 희망을 찾는다.

  "그분은 누구에게 사랑받았습니까?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가 그분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습니까?" 애도하는 사람 시즈코는 애도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죽은 이를 알고 지냈던 이들에게 이 세 가지를 묻는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단 한 가지라도 누군가가 감사할 만한 일을 했다면 시즈코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애도한다. 그의 애도는 '편안히 잠드세요, 성불하세요' 하고 명복을 비는 것과 다르다. 그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저 가슴속에 담는다. 바쁘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그의 삶의 흔적은 너무나 빨리 사라진다. 죽음을 접한 순간에는 충격과 슬픔에 싸여 잊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상처는 아물어가고 그의 존재는 어쩌다 떠오를 뿐. 그렇게 서서히 기억 속에서 죽은 이는 잊혀져간다. 하지만 애도하는 사람은 죽은 이를 잊지 않겠다고 한다. 그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애도할 수 있게 된 것도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의 죽음을, 그리고 그런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돌아가신 분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기억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차피 생(生)이란 그렇게 왔다가 가는 것이지만, 나 또한 죽게 된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뉴스에서는 몇 건이나 되는 죽음을 보도한다. 책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뉴스를 보니 오늘도 제강소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으로 인해 숨진 사람도, 실종된 지 5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50대 여성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저런 사건이 있나보다’라고 넘겼을 텐데 오늘만큼은 자꾸만 애도하는 사람처럼 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을까, 누군가를 사랑했을까, 누군가에게 감사받은 적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아버지의, 남편의 생사를 알지 못해 오열하는 모래운반선 실종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가에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비단 애도하는 사람 시즈코가 아니라도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어머니의 죽음과 딸의 임신이 겹쳐져 진행되는 부분은 삶과 죽음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줬다. 처음에는 너무나 괴짜 같다고, 결국은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읽어가며 나도 조금씩 애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였다. 삶에 대한 긍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이 좀더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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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1-3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어제 경향신문에 신간 소개로 이 책이 나와있었거든요. 아, 너무 읽어보고 싶은거에요. 그런데 이매지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애도하는 사람이라니!

이매지 2010-01-31 16:31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마지막 몇 장 더 읽고 잔다고 버티다가 다음날 아침에 대박 늦잠자서 반차까지 썼어요 -_ㅜ 간만에 마음에 든 나오키상 수상작이네요~

다락방님도 어여 읽어보세요! ㅎㅎㅎ

stella.K 2010-02-14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최근에 많은 사람이 읽더군요. 저도 읽고 싶어요.
쫌 늦었지만 축하해요.^^


이매지 2010-02-14 17:4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도 꼭 읽어보세요 :)
잔잔한 감동이 있는 책이예요!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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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서 필립 로스에 대한 호평을 읽으며 가장 최근에 나온 『휴먼스테인』을 들었다가 '2권짜린데 괜히 시작했다가 실망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일단 그가 어떤 작가인지 간이나 보자는 마음으로 훨씬 두께가 얇은 『에브리맨』으로 경로를 수정했다. 검은 바탕에 어쩐지 고독해 보이는 한 남자의 얼굴이 그려진 표지처럼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어쩐지 쓸쓸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직 이십대라 그런지 죽음이란 아직 먼훗날의 이야기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이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어쩐지 불안해졌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그리고 이제는 혼자 살고 있는 주인공은 부와 명예, 그 모든 것을 가졌지만, 자꾸만 삐그덕거리는 몸을 이끌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겪는 죽음을 향해 한걸음씩 고독한 여정을 시작한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위험도가 높은 수술도 하고, 젊은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료의 죽음 혹은 투병을 접하며 그는 죽음에 대해 실감하고, 마지막으로 여자가 아닌 삶에 자신의 온 애정을 쏟는다.

  책의 앞부분에도 등장하지만 "죽음이라는 현실"은 "흔해빠진" 것이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 경험하는 죽음. 그것은 그저 죽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죽음과 대면하는 주인공은 "그저 살아 있기 위해 그가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뿐이었다. 늘 그랬지만,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그는 종말이 꼭 와야 하는 순간보다는 일 분이라도 더 일찍 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점점 근력이 떨어지고, 남성으로서의 매력도 다하지만, 사랑을 잃고, 자식도 잃고 홀로 남은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독, 두려움을 곱씹는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작년 이맘 때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아흔이 넘을 때까지도 정정하셨지만 그럼에도 점점 기력이 쇠해져 종내에는 거동도 하실 수 없게 될 때까지의 모습. 그 모습은 얼마나 안쓰러웠던가. 그렇지만 마지막이 되기 전까지 잠꼬대로 "(죽기) 싫다"고 하실 정도로 삶에 대해 애착을 가지셨던 할머니. 결국 자식도, 손자손녀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시고 조용히 숨을 거두시는 모습을 보곤 호상이라고는 했지만 가슴 한 켠이 쓸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책 속의 주인공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나 둘씩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겪으며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더 쓸쓸해졌고, 삶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일까.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의 과오에 대해 후회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이 만든 덫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그들을 배신했던 주인공. 그는 그렇게 혼자 쓸쓸하게 죽는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이 남겨둔 채 떠난 그. 죽음에서 시작해 삶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죽음으로 끝나는 책처럼 어쩌면 인생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일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겠지만, 누군가는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짧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필립 로스는 이 책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모든 것을 간결하게 드러낸다. 어딘가 건조한 듯 느껴지지만 그 건조함과 쓸쓸함이 매력적인 작품. 조만간 『휴먼스테인』으로  필립 로스를 다시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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