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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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러나 별로 반갑지 않은 위안들. 애도는, 우울은, 병과는 다른 것이다. (18쪽)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이 우습고도 말도 안되는 시도). (20쪽)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니!" 이 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어떤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21쪽)

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중략)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47쪽)

이 순수한 슬픔. 외롭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 (50쪽)

이 당혹스러운 부재의 추상성. 그런데도 그 추상성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비로소 추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추상은 부재이면서 고통이다. 그러니까 부재의 고통. 그런데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까. (52쪽)

슬픔은 잔인한 영역이다. 그 안에서 나는 불안마저 느끼지 못한다. (64쪽)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78쪽)

일에 열중하고 일에 쫓기는 흥분상태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면. 그때 가장 깊은 비애 속에 빠지고 만다는 사실. 내면 안에 머물기. 조용히 있기. 혼자 있기. 오히려 그때 슬픔은 덜 고통스러워진다. (110쪽)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111쪽)

그런데 이런 애도(지금 내가 겪고 있는 애도)의 슬픔은 래디컬하게 그러니까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 길들이는 일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의식이 예전에는 그저 남에게서 빌려온(졸렬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철학에서 얻어낸) 것이었다면, 지금 그것은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고통스러운 건 죽음의 의식 때문이 아니다. 그건 나의 애도 때문이다. (129쪽)

마망의 죽음 때문에 빠져버린 고독은 이제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영역으로까지 팔을 뻗는다. (중략) 온몸을 탕진케 하는(공황 상태와 같은) 외로움의, 슬픔의 환유. (133쪽)

사랑이 그런 것처럼 애도의 슬픔에게도 세상은 비현실적이고 귀찮은 것일 뿐이다. (136쪽)

애도의 슬픔으로, 마음의 번민으로 내내 시달리면서도 (그것도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결코 거기서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지독하게), 전혀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거의 막돼먹은 아이처럼) 여전히 잘 돌아가는 습관들이 있다. 욕망의 낄낄거림, 작은 탐닉들, 난-널-사랑해라는 욕망 -- 아주 빨리 사라져버리는, 곧 다시 다른 사람에게로 방향을 바꾸는 -- 그런 욕망으로 가득한 담론의 습관들. (151쪽)

마망의 사진들을 오래 바라보는 일. 그 사진들에서 출발하는 글쓰기 작업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두려움을 (중략) 늘 똑같은 의견이 있다: 애도의 슬픔은 점점 익어가는 것이라는 생각. 그러나 내 경우 애도의 슬픔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그런 것이다. 그 어떤 진행의 과정도 거기에는 없다: 때문에 너무 이른 애도의 슬픔 같은 것도 없다. (159쪽)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216쪽)

삶의 결핍 상태가 서서히 구체적인 얼굴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새로운 일을 꾸며서 만들어갈 수가 없다(글쓰기는 예외지만). 우정도 사랑도 그 밖에 다른 일들도. (234쪽)

자살
죽으면 괴로워하는 일도 없게 된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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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살림지식총서 476
박인철 지음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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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의 철학은 이른바 ‘현상학‘으로 특징지어진다. (중략) 말하자면 의식과 세계와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적 틀로서 현상학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25-26쪽)

후설의 철학에서 세계를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태도란, 어느 특정 존재 영역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총체적이고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태도를 후설은 ‘철학적‘ 혹은 ‘현상학적‘ 태도로 부른다. (34쪽)

자연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 내지 초월론적 환원과 더불어 후설 현상학의 방법론을 특징짓는 또 다른 대표적인 방법이 ‘본질직관‘이다. (46쪽)

본질직관은 내가 이미 이전에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본질에 대한 선지식을 구체화하고 확증하는 과정이 된다. (중략) 선지식은 이른바 우리에게 하나의 습성 형태로 저장되어 온 것임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습성이란 근본적으로 개인적,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 (54-55쪽)

세계는 지향적 체험 속에서 구성된(의미 부여된) 것으로 주어지고 파악된다. 그리고 그 세계는 주관성에 의존한다. (중락) 의식과 세계와의 관계는 이제 지향적 관계로 밝혀졌다. 세계는 초월론적 주관성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지향적 대상이다. 지형적 대상성이 주관성에 의해 형성된다. (71쪽)

후설의 존재론은 개체 중심이 아니라 공동체 중심의 전체론적 세계관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전체론적, 목적론적 세계관에 따를 때, 각 개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존재 가치가 있으며 타자와의 관계가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나와 타자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가 주된 관심사가 된다.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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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라는 종교
폴 라파르그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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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억누르려면 종교가 필요합니다.하지만 어떤 종교? 새로운 종교여야 합니다. 여나 지금이나 시대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는 자본이라는 종교뿐입니다.(44쪽)

돈은 자본가의 영혼이다. 행동의 동원력이다. (80쪽)

라파르그는 물려받은 유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평생을 살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는 어떤 종류의고정적 직업을 갖 지 않아도 되었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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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위로 - 점과 선으로 헤아려본 상실의 조각들
마이클 프레임 지음, 이한음 옮김 / 디플롯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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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크게 달랐을까? (중략) 대다수는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계속 떠올리곤 한다. 몇몇 선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우리를 이끌곤 한다. 지금 경로를 바꾸어도, 이후의 삶은 열 해 전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펼쳐질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가 닿지 못한 곳들이 있었을 수 있으며, 우리는 이 상실을 비통해한다. 내가 택한 경로는 - 수학의 몇몇 구조를 탐구하는 일 - 비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나는 비통해하기가 수학하기와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본다. (15쪽)

당신의 삶에서 어떤 순간에 일어난 변화와 그 결과만이 다를 뿐 다른 모든 면에서 똑같은 평행 우주가 매번 생겨난다. (71쪽)

비탄은 돌이킬 수 없으며, 우리는 우발적인 사건을 비탄할 수 없고, 예견된 비탄이란 없다. 그리고 남의 비탄을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그 방법은 공감이라는 렌즈를 통해 초점이 맞추어진다. (91쪽)

비탄에는 불가역성 외에 다른 무언가도 필요하다. 비탄은 상실의 정서적 무게 및 초월성과 결합된 불가역성이다. 상실한 것이 자신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상실에 비탄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139-140쪽)

우리가 보는 것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또는 더 추상적인 환경에서 거의 모든 규모에 걸쳐 되풀이되는 패턴이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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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9호 : 외모 인문 잡지 한편 9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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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외모의 매력에 대한 우리의 차별적 선호는 ‘도덕적‘ 잘못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윤리적‘으로는 중대한 문제이다. 여기에서 나는 로널드 드워킨을 따라 윤리를 도덕과 구별하고 있다. 도덕이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규율하는 원리와 규칙을 뜻한다면, 윤리는 개인이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관련된다. 이러한 구별에 따르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특별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서도 윤리적으로 잘못 살 수 있다. (25쪽)

날 때부터 주어지 생김새는 변형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옷은 의도에 따라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 패션은 외모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중략) 즉 패션은 세상에 보내는 시그널이다. 그 결과물은 타인에게 심는 내 이미지가 되거나 나에게 거는 최면이 된다. (67쪽)

실제로 편견은 고정관념과 같은 인지적 요소보다 호감과 같은 감정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주목할 점은 편견을 강화하는 감정적 요인이 강한 적대감 같은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무지와 정보 부족, 낮은 접근성으로 생기는 불안과 불편함이다. 다시말해 우리는 잘 모르고 많이 접하지 않은 낯선 대상에 대해 편견을 강화한다. (92쪽)

음식의 소비와 섭취는 누군가에게는 건강에 이로운 취향의 실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삶 속의 달콤한 위안이다. 음식을 먹는 다양한 맥락이 지워지고 건강의 윤리가 소비의 쾌락과 결합되어 전시될 때, 전시할 수 없는 뚱뚱한 몸들의 삶은 지워진다. (124쪽)

언젠가부터 우리는 얼굴과 대화를 선물처럼 순환시키는 법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서로의 성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얼굴과 말이 따로 놀고, 진정성과 상업성이 뒤섞이고, 얼굴을 놓고 누구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시대에 그래도 ‘당신의 얼굴은 내게 선물이다‘라는 인정을 주고받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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