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존슨의 <모던 타임즈 I,II>를 졸꾸하게 빡독하여 완독했다. 한 대가의 조예가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1. 폴 존슨은 전향한 사회주의자다. 보수주의자면서 자유시장주의적 입장에서 극단적 이념의 시대, 그로 말미암은 열전과 냉전의 시대를 그렸다. 물론 보수적인 그의 사관이 다소 진보적이고 좌파에 호의적인 나와는 맞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명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대 진영에 악랄한 저주를 퍼붓거나 비열한 공격을 가하기보다는 역사가로서, 또 저술가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부드럽고 재치있게 역사를 정리했다. 정체성 정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시대에 꽤나 귀감이 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충만한 정의감의 발산 보다 차분한 비판을 기다리는 태도 말이다.

 

 

2.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고하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입증함에 따라, 인류는 도덕적으로 의지할 곳을 잃게 되었다. 이른바 상대주의의 시대, 절대적인 도덕이 사멸하고 인간의 책임은 갈피를 잃었다.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할 줏대를 상실했다. 상대주의의 시대는 상실의 시대였다.

 

그 결과 인간은 종교 대신 이데올로기에 의존하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지적처럼 인간에게 기독교나 공산주의는 같은 역할을 맡는 일종의 믿음 체계였다. 아니 이데올로기는 현대의 종교였다. 열전과 냉전은 현대판 종교 전쟁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신과 교회 대신, 이념과 정치에 열광했다. 이념에 따라 현실을 개조하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못했다. 그것은 사회공학이라는 지적인 오만이었고, 오만의 결과 열광을 제어하지 못한 인류는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 스탈린주의 따위의 전체주의 괴물을 만들어냈다. 

 

사회공학이 낳은 이념의 프랑켄슈타인은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냉전시대를 야기했으며, 탈냉전시대 제 3세계 국가의 독재자들을 잉태했다. 후쿠야마의 말대로 역사가 끝났는지는 모르겠으나, 폴 존슨은 이제 막 인류가 사회공학의 괴물에게서 벗어나 다시 자유를 회복한 상태라 말하며 책을 끝낸다.

 

3. 1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읽으면서도 단 한 번도 지루하거나 난삽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의 글에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묘미가 있었다. 번역자가 실력이 좋은 덕인지, 원문이 좋았던 것인지는 추후 원서를 재독하면서 파악해 보기로 하겠다.

 

확실한 것은 그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문장력, 사상과 역사의 흐름을 하나의 큰 줄기로 모아내는 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배울 점이 많은 책이었다. 폴 존슨은 기억해둘만한 사건과 이야기들을 자기가 잡은 역사의 큰 가닥에 덧붙여 전개하면서도, 소위 문돌이들이 취약점인 과학, 철학, 예술도 빠짐없이 정리해낸다.

 

4.

오랜만에 읽으면서 머리에 스파크가 튀는 책을 만났다. 독자를 추종의 길로 이끌기보다는 읽는 이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는 책이었다. 왼쪽 심장이 타오르는 청년에게 꽤나 당혹감을 안겨주는, 공부하는 보수의 지적인 결실물이라 할 수 있겠다. 니체와 다윈, 프로이트, 그리고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를 새로 봐야겠다는 감정이 완독의 만족감과 함께 떠오른다. 이만하면 방학에 떠난 해외 여행치고 괜찮은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말

 

최근 학위논문 일정과 출판원고 마감으로 인해 알라딘 서재/북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랜만에 간략한 서평으로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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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픈 일이 있어야 슬픔이 찾아오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일 것입니다. 찾아왔다는 것은 돌아갈 것이라는 기약과 한쌍이기 때문입니다.


제때 항복하지 못한 패잔병은 막다른 길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차라리 혁명을 열심히 할걸!" 공무원 시험에 수차례 낙방한 친구 녀석의 눈에는 공허함이 숱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잔에 투명한 술을 잔뜩 털어주었습니다.


초점을 잃은 사람의 눈은 오드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통일된 흑갈색 눈이 빛에 많이 삭아 희미해졌습니다. 역시 빛과 희망은 강렬하고 또한 악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꿈을 꾸게 하니까요. 글쎄 그만 저는 그에게 서툰 동정을 들키고야 말았습니다. 미안함을 씻고자 샤워기가 뿜어내는 뜨거운 물을 거울에 힘껏 쏘았는데, 매끈해진 거울이 끈적하게 말하더군요.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2.

사람은 한번도 패배해보지 않고도 패배주의자가 될 수 있는 지적 생물체입니다. 포기도 도전도 하지 않는 방법은 역시 비겁하게 현실을 연장하는 방법입니다. 거기 눌러 앉아 상실한 의지를 껴안고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을 늘려놓고도 그 현실을 미워하며 부정하는 일입니다.


살다보면 노는 게 무섭고 지겨워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래서 늘 하던대로 도망쳐야지 마음을 굳게 먹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도망을 단념합니다. 숨차는 것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저앉아 세상에 굴복하는 과정은 항상 이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령 다시 기회가 주어진들, 안도하기 보다는 덜컥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게지요.


남들 보다는 잘하고야 말겠다는 치기의 투사들은 어느새 보통과 평범과 평균의 무게에 짓눌리고 맙니다. 무엇보다 시간을 다시 준다 한들, 또 몇 번을 과거로 되돌아 간다고 한들 더는 해낼 자신이 없다는 의지의 쇠락에 빠지고 맙니다. 철저하게 무력하고 지독하게 권태로우며 노력보다 잔꾀를 다독이는 총체적 무정부상태 말이지요.


상투적인 표현은 정말 싫지만 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른이 되는 과정입니다. 더는 자신이 특출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입니다. 살아보니 별 수 없구나. 그렇게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잃고 신나는 일이 쪼그라든 채 사회에 녹아버리면, 비로소 청춘은 사회인으로 징집됩니다. 요새는 예비 사회인의 복무 대기줄도 꽤 길다고 합니다.





3.

삼수를 하던 시절의 고민은 세상에 나를 받아줄 학교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더는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외로움, 세상에 내가 머물 곳이 줄어든다는 막막함 따위로 재현되었습니다. 지금은 존재증명에 실패할까 전전긍긍해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감히 미래를 예측하려 드는 습관과 결별해야한다고 합니다. 불확실성으로 머리가 가득차 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비우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농구공을 천 번쯤 땅에 튕긴다거나, 무의미한 낙서따위를 끼적이며 인지하지 못하는 반복을 계속하는 것이지요. 머리를 식힌다고도 하던데, 사람은 이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머리로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다만 가슴이 받질 못하는 게지요. 공부하는 방법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소망이 떠나버린 자리에는 연민만이 남아버렸습니다.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자기 자신을 가여워 하기로 했습니다.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시시한 인생이라 생각이 들 때 마다 있는 힘껏 자신을 가여워 하기로 했습니다. 사랑보다는 그게 쉽고 더욱 필요한 일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존재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상실에 익숙해지면서 말입니다. 나의 존재 증명 방식, 그것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펩시콜라를 기다리는 북극곰처럼, 녹아내리는 빙하 위에서 어쩔줄 몰라하면서 말입니다. 탄산이 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연민의 시간>_2019.05.21 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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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의 한반도 


반도에는 원래 벼랑이 많은지 전혀 아는 바가 없으나,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세는 항상 벼랑 끝에서 이루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북한의 정상은 서로를 향해 '화염과 분노', '불망나니' 따위의 말 폭탄을 던지며 신경전을 벌이더니, 다시 핵실험과 코피를 터뜨리겠다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쟁은 일촉즉발일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늙다리 미치광이'와 '로켓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화를 재개하였고 싱가폴에서 역사적인 양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합의는 편지 한 장에 무산되는가 싶더니, 또다시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여기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양국관계의 총론을 합의(혹은 복원)하였다.

싱가폴에서 이제 한 번 만났을 뿐인 두 정상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각별한 우정을 과시하면서, 일 년 만에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국 정상은 각론에서 크게 견해차를 보이며, '노딜 서밋'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남기고 재차 어색한 사이로 돌아섰다. 

이어 어김없이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전형적인 북한식 으름장이 나왔고, 미국은 '제재와 압박'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면서, 대화가 끊긴 침묵을 긴장이 비집고 들어서고 있다. 웨딩카를 몰 것이라 낙관하며, 양국의 맞선을 지켜봤던 '한반도의 운전자'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시름만 그만큼 깊어졌을 뿐이었다. 



이처럼 예측불허의 북미 관계는 상승과 추락을 밥 먹듯이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와 닮았다. 그러나 CNN에서 특파원을 하면서 1989년 이후 15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대북 통 마이크 치노이에 따르면, 이것은 크게 놀랄 일이라기 보단 지긋지긋하게 반복되어왔던 일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북미협상 과정에서 벌어진 롤러코스터와 같은 막전막후를 가감 없이 담았다. 

마이크 치노이는 시기적으로는 클린턴 행정부에서부터 조지 부시 행정부 집권기, 상대방으로 김정일이 맞서던 때의 대북이슈를 다뤘다. 그러나 그는 부시 행정부 내 국방부를 주축으로 한 네오콘의 매파와 국무부와 동아태국을 중심으로 한 비둘기파의 권력투쟁을 특히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북핵문제의 장기화에는 플루토늄 동결에 합의하였으면서도 우라늄 방식의 핵개발을 비밀로 추진했던 북한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동시에 부시 행정부 내에서 협상과 대결이라는 모순된 신호가 동시에 흘러나와, 어느 것이 신호이고 어느 것이 소음인지 불분명하게 만들어 사안의 불확실성을 키운 미국의 책임도 일정부분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한국에는 2010년에 번역되어 소개된 지 약 10년 가까이 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김정일이 죽고 그의 3남 김정은이 수령에 올랐으며, 부시를 지나 오바마가 물러나고 다시 트럼프가 들어선 지금에도 여전히 효용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그때의 주축들이 여전히 상당수가 대북전선 전면에 요직에서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존 볼턴이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①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이 책에는 굉장히 방대하면서도 세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서평에서는 지면 관계상 주목할 만한 인물의 일대기를 위주로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소개할 인물은 대한민국의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혈기왕성한 아들 부시 대통령이 이데올로기적 혐오로 인해, 1994년에 북미 간에 성사된 '제네바 합의'를 섣불리 어그러뜨릴까 일본보다 앞서 급하게 한미정상 회담을 잡는다.

미국으로 날아간 김대중은 국무장관 파월에게 효과적으로 자신을 어필하였으나,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관여정책의 지속을 요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조지 W. 부시는 김대중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며 오히려 동맹국 한국의 정상을 'this man'이라 모욕하며 돌려보낸다.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면 심지어 악마와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네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김대중은 아이젠하워, 닉슨, 그리고 레이건 등 3명의 공화당 대통령이 증오스러운 공산 적대국과 대화를 한 바 있음을 환기시켰다. 
  김대중의 이어지는 말. "심지어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를 때도 그는 대화를 가졌다. 그럴진대 북한과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 그래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또 한 번의 전쟁을 벌여야 하더라도 그것은 최후의 수단, 마지막 선택이 되어야 하고, 대화를 포함한 다른 방법을 다 써본 뒤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그 당시 북한은 일관되게 미국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왜 당신은 대화 옵션을 취하지 않는가?" pp.144-145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이후 재야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아버지 부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북문제의 엄중함을 설명하고 일시적으로 부시의 강경기조를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한다. 고군분투하는 김대중의 모습에서는 우리보다 강한 동맹국에게 자기주장을 포기하며 국익을 저버릴 것인지, 혹은 자기주장을 펼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고민과 수완이 엿보인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② 조지 부시와 국방부 및 네오콘 네트워크




조지 W. 부시와 부통령 딕 체니, 국방부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그리고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 존 볼턴은 공화당 내에서 '네오콘'이라 불리는 강성 이데올로기 동맹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념은 다음과 같다. 

'무력행사를 통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미국식 정치경제 체제를 이식할 수 있고, 독재국가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안보를 위해 봉쇄와 억지를 넘어서 '선제적 공격'도 불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신보수주의적 강경 이상주의자들의 신념이다.

네오콘들의 득세에 따라,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직접 북한을 드나들었던 숙련된 대북 전문가들이 모조리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차지한 강경파들은 구체적인 정보나 데이터보다는 자의적 해석과 힘과 끓어오르는 분노, 특히 혐오감으로 북한 문제를 다뤘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다뤄야 했던 대북전략이 속된 말로 '뇌피셜'의 음모론에 지배당했던 것이다. 여기서 대북 투쟁과 미국 내 대북 관여파와의 노선투쟁에서 활약했던 인물이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중역을 맡고 있는 존 볼턴이었다.

파월을 비롯한 국무부 북핵 실무를 담당했던 동아태국의 제임스 켈리, 주한대사 토머스 허버드 등은 구체적인 정보와 현안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여전히 북한의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해법은 대북 관여라고 파악했다. 그러나 그들은 외교를 선전포고의 전단계정도로 생각하는 치기어린 네오콘들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에도 바빴다.

콜린 파월을 비롯한 비둘기파는 어떻게든 대북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보려고 애썼으나, 부시 대통령 본인부터 북한 인민을 굶겨 죽이는 악성 독재자이자 피그미 김정일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뒀던 터였다. 쉽게 말해서 부시 행정부는 대북혐오는 있었지만 대북정책은 전무했다. 

대화를 포기했으면서도 그 빈자리를 채울 미국의 채찍은 모조리 이라크를 향해 있던 상황이었다. 네오콘들은 북한을 위협하면, 위협에 굴복한 북한이 핵을 저절로 포기할 것이라 순진하게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더는 제네바 합의가 존속할 수 없다고 파악했으며, 사담 후세인의 말로에서 핵이 없으면 이라크와 같은 꼴에 처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휩싸여, 네오콘의 의도와 정반대로 핵무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③ 일본 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와 동시에, 일본의 지도자는 훗날 정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방식으로, 부시에게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고려해보라고 권고했다. 고이즈미는 말했다. "당신은 김정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소. 김정일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오. 그는 신뢰를 받을 수도 없소. 하지만 당신은 그와 직접 대화를 가져야 하오." pp. 184-184


일본의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한국 국민 일반에서 전범국 일본의 재흥을 노리는 극우 수장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대북이슈에서 만큼은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 충분히 재평가 받을 가치가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충동을 제어하는데는 김대중-노무현의 대한민국 정부의 반대뿐만 아니라, 부시의 친구로 불렸던 고이즈미의 설득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동아시아 동맹국들과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대북 압박책을 펼쳤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의 전쟁위기를 고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미국으로부터 소외되기 보다는 미국의 지휘에 불응하고, 한국과 일본 각자가 단독으로 북한과 접촉하는 쪽을 택했다. 부시의 대북정책은 대북관계도 악화시켰으나, 동맹국들의 협조도 얻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불쾌한 심기를 무릅쓰고 직접 평양에 건너가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고이즈미는 김정일로부터 납북자 문제를 공식적으로 사과 받는 성과를 올린다. 양국은 '평양선언'을 도출해내며, 향후 식민지 배상 및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고, 납북자문제를 처리하며 관계를 정상화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납북자 문제 해결은 일본 외교의 큰 성과였으나, 김정일의 납북자문제 인정은 일본 국내의 국민정서를 악화시켰다. 대북 강경론자로 유명했던 아베 신조는 이 같은 국민 정서를 이용하여, 이것을 일약 거물 정치인으로 오르는 기회로 삼았다. 

일본 자민당 내 파벌보다 국민 여론에 기대어 자기 정치를 펼쳤던 고이즈미 또한 여론 악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소신과 달리, 더 이상 대북 관여정책을 유연하게 유지할 수 없었다. 고이즈미가 물러나자, 일본은 대북 강경책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었다.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의 유연함보다는 대북강경론을 앞세워, 일본의 재무장과 연계해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미래는 어디로?

대북 매파의 흐름은 오바마 행정부 8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일본 아베 장기집권으로 일치된 압박 정책을 보이며 지속되었다. 말미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까지 가담하였다. 그러나 결국 북한은 핵을 완성하였고 붕괴하지 않았으며, 대북정책은 협상으로 되돌아왔다. 

분명 아베는 대북 문제에 있어서 아베는 고이즈미보다 못한 인물이며,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유연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부시보다 현실적이고, 김정은은 김정일보다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관되게 한-미-일-북-중-러가 끼어있는 한반도의 '6차 방정식'을 풀기 위해 분투 중이다. 섣부른 낙관은 경계해야하지만, 그렇다고 하노이에서의 합의 연기(혹은 결렬)에 넋 놓고 비관할 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이후 한반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과거의 패턴이 또 다시 반복될 것인가. 과거에서 교훈을 삼을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날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다시 한 번 과거를 살펴볼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대북 보도와 기록을 알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2019.03.18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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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9-03-1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출간 준비 중인 원고 막바지 작업과 학위논문 준비로 인해 새글이 뜸했습니다...
빨리 일정이 정리되어 속편하고 여유롭게 책 읽고 서평쓰는 삶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화면을 터치해주세요. 본 서평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것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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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메님 명절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행복한 일상들 되시길^^👍

프리즘메이커 2019-02-02 02:33   좋아요 1 | URL
설연휴였군요! 카알벨루치님도 즐거운 연휴되세요!!!
 


연애는 맨입으로 할 수 있을까?



사랑은 가슴이 시키고 섹스는 맨몸으로 하는 것이지만 연애를 맨입으로 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종종 간과되는 사실은 연애에는 교제비가 든다는 것과 모든 기회를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기회의 입구를 여는 데는 대개 돈이 든다는 사실이다.

 


모든 관계에는 유지비가 수반된다. 부모 자식도 서로의 도리를 다하려면 비용이 들고, 일정 연령대가 지나면 사람 만나는 게 다 돈이다.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사람 앞에선 최소한의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지만, 그것이 위클리나 에브리데이로 변한다면 소득 수준에 비례해서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더욱이 구애라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최상의 준비를 요구하게 만드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수려한 용모나 타고난 재치나 고운 성품을 물려받지 못하였다면(혹은 키우고 관리하지 못하였다면 ; 이것도 돈이 든다) 그만큼 준비에 더 큰 비용을 들여야 하고 결과의 차원에서도 어려운 확률싸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구애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것이든 투자비용을 상대적으로 더 들일 수밖에 없다. (수요공급의 냉혹한 법칙은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의 메시지 읽는 권한을 여성에게는 무료 남성에게는 유료 구매로 주어지도록 설정한다.) 그러나 생활비 압박이 크면 교제비를 없애거나 줄일 수밖에 없고 적은 자원으로는 그만큼 힘든 게임을 펼쳐야 한다. 연애의 당사자들에게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기초에 해당한다.

 


따라서 교제비가 아니라 생활비 자체가 허덕인다면 양자가 이루어 질 수 없을 확률이 높다. 관계의 시작은 무료일지 모르나, 관계의 유지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적어도 연애를 (안정적으로) 하려면 상대는 물론 그 상대에게 쏟을 사랑과 시간과 돈 삼박자 중에 최소 두 가지는 갖춰야 한다. 오늘 날의 청년 세대가 연애의 삼각형에서 과연 몇 가지나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면 어느 정도 청년들이 처한 외로움이 이해 될 것이다.

 

 



젠더갈등과 연애결핍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무슨 접촉이 있어야 일도 터지고 사랑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보편화 되고 고립이 심화된 세상에서 접촉자체가 드물고 앵간한 접촉에는 비용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는 구조적 원인을 잘 따지는 사람도 연애 문제만큼은 개인의 잘나고 못남의 문제로 쉽게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또한 한국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의 정신적 측면이 너무 미화되어 그 최소한의 물질적 필요가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고비용의 연애시장과 연애문화에서 더는 맨입으로 교제하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걸 모두가 인정하고 바라봐야 한다.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가 절대빈곤 시대의 절규로 들렸다면, 상대적 빈곤시대의 마음과 지갑과 사회적 여유가 모두 부족한 청년 세대에게는 원룸촌 유투브 댓글의 [팍팍한 혐오노래] 변주되며 메아리치는 것일 테다.

 


청년세대의 젠더 갈등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증폭조건 중 하나는 연애 기회가 적어지면서 성별간의 접촉이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애가 의무이며 신격화 되어야 하는 숭고한 행위인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부족한 꼭 그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 또한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연애의 영역이 결국 자존심을 걸고하는 투쟁이라면, 숙맥들이 벌이는 어설픈 싸움은 쉽사리 자존심의 손상을 가하기 쉽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 혹은 편견이 증폭된 환경에서 숙맥들이 그 아슬아슬한 도덕 감정의 경계선을 부드럽게 넘어서리라고는 일반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성비와 기성 문화에 따라 대개는 구애자의 입장에 처한 20대 남성에게 연상되는 찌질함의 문제 또한 상당부분 위의 요소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20대 남성 숙맥들은 예전처럼 마초나 젠틀맨으로 살기 어렵지만, 가부장적 고비용 연애 문화의 구습에서 아직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랑할 자원이나 기회를 받지 못한 초식남들이 여성을 두려워하거나 적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우리가 종종 목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과 혐오는 사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기회로 인해 연애 시장에 훈련된 남성이 아닌 숙맥 남성들을 공급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때다.

 



 

구조적 실업이 있듯이 구조적 솔로도 있다

 


젊은 층이 연애를 그만두고 있는 것은 미국, 일본, 한국 가릴 것 없이 유행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구적으로 젊은 세대가 윗세대 보다 못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젊은 사랑의 총량이 줄어들고 혈기가 섹스로 분출되지 못하고, 접촉자체가 희귀해진 시대에서 성욕의 프로이트가 재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개인이 노력이 부족해서 가난한 것이라는 주장이 신빙성이 없듯이, 사랑과 연애에도 구조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 기성세대는 전쟁 통에도 사랑이 싹텄다며 우스갯소리로 젊은 세대를 나무란다. 거기다 대고 전시만큼 평등이 유지되는 게 없고, 전쟁은 망설임을 제거 해준다는 진지한 반론을 가해야 한다는 것도 영 모양새가 이상하다.

 


그러나 자판기 커피로도 사랑을 나눌 수 있던 시대의 낭만이 이미 오래전 그 유통기한을 다했다는 것을 빠르게 인식해야한다. 못난 사람이 연애를 못한다는 주장을 단순하게 못난 세대라 연애 하지 못한다며 그대로 확대할 수 없듯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조적 솔로들의 고립이 성별혐오의 요람이 될 수 도 있다는 걱정이 벌컥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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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짱 2019-06-21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사랑, 시간 그리고 돈 삼박자 중에 최소 두 가지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웃프네요ㅋㅋㅋ 성별 간의 갈등뿐 아니라 많은 문제들이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아요. 인성 교육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서로 부딪히고 사랑하고,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에서 자연스레 배려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타인을 배려하라, 이해하라, 공감하라 이런 말을 할 필요 없이 연애의 과정을 겪으며 그런 것들을 배우고,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초기 ‘구애‘를 주로 담당하는 남성들에게는 더더욱 말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9-06-21 10:5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더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