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떠나는 순간을 상상한다. 눈 앞에 닥칠 캄캄한 어둠, 미지의 세계. 나는 다시는 나를 낳아준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감도는 어떤 충동. 보이저 1호는 뒤를 돌아 지구를 바라본다. 앞으로 평생을 고독할 우주비행체는 엄마를 사진으로 남기고자 한다. 그것은 인공위성이 부모에게 올리는 '전 상서'이자 외로운 항해에 나서는 자식이 간직할 최후의 유품이 될 것이었다  


  비행체가 남기고간 사진 한 장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우주를 밝히며 나아가는 인공위성의 역주에 자부심을 느꼈다, '창백한 푸른 점'을 두고 천문학자 칼 셰이건은 우주의 광대함에 대비되는 인간의 초라함을 느끼며 상념에 잠겼다. 지독한 쓸쓸함도 있었다. 자신의 모체를 떠나는 그 어떤 존재건  단지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다면, 보이저 1호는 떠나면서 자신을 낳아준 엄마, 지구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김초엽의 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과학기술이 새로 빚어낸 눈부신 미래의 세상에 대한 재기발랄한 묘사면서도, 그 세상에서 살아갈 인간들의 쓸쓸함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보이저 1호의 첨단 항해에서 외로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이 책에 굉장한 애착을 갖게될 것이 분명하다.  



2.


<과학의 날>이면 어린이들은  대개 우주의 모습을 그렸다. 유년기 아이들은 누구보다 우주에 관심을 갖고 누구보다 신속하게 그것을 잊어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현실주의자가 된다는 것일테니까, 아마도 현실 밖에 펼쳐진 것들에 관심을 줄 상상력이 모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SF라는 장르를 잊고 소설이라는 문자매체를 멀리하며 살아온 우리와 달리, 김초엽은 첨단기술의 시대상을 담은 일곱가지 수록작품을 통해 어른스럽게 또 꽤나 정교하게 미래를 상상해냈다. 


김초엽의 주제의식은 '완전함을 추구하는 기술 진보와 그럼에도 전혀 진보할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세상의 대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들'로 함축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작가의 시선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먼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는 장애와 추함없는 세상을 위해 개조 인간을 만든 결과가 천국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빈부격차는 인류를 개조인간과 장애인으로 양분시켰고 이들은 공간적으로 격리되었다. 그 반대로 결함있는 이들만 모여사는 평등의 마을도 따분한 종교인들의 세상과 닮아 있었다. 천국은 없었다. 오직 단절된 이 두 세계를 넘나들다 사랑에 빠져 불시착해버린 돌아오지 못한 순례자들만이 인간다웠을 뿐이었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는 우주 탐사를 위해 인간을 사이보그로 만드는 역대급 프로젝트를 소재로 했다. 하필이면 지구대표 선수가 '왜소한' , '동양인', '여성'으로 선출되어 벌어진 일을 계기로, 사이보그 개조기술이 인간의 몸은 고쳐도 인간의 편견은 전혀 고치지 못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이보그의 강한 육신을 얻게된 여성이 자유를 위해 나아간 곳은 어디였을지는 직접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에서는 경제논리 앞에 무력한 개인을 재현한다. 타 행성으로 이주한 가족을 간발의 차로 놓친 여인은 우주 항법의 변화로 인해 170세가 될 때 까지 이주한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가족이 떠난 곳은 지구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광년에 놓인  행성이었으나, 정류장을 지을 경제성이 떨어지는 관계로 워프를 제외한 기존 운송수단을 정부에서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노인은 이 하염없는 생이별을 마무리 짓기위해 무모한 출발을 감행한다. 노인은 뻔히 실패를 알면서도 갈 수 밖에 없었다. 고집과 의지 사이의 묘한 지점, 어쩌면 이런 게 인간성이 아닐까 싶다.


그 밖에도 색체언어를 사용하는 외계인 '루이'와 소통의 벽을 넘어 교감하는 이야기를 담은 「스펙트럼」, 감정을 직접 손 안에 쥐고 소유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다룬 「감정의 물성」, 인간의 선함과 도덕감정이 사실은 외계로부터 건너왔다는, '인간성'이 사실은 '외계성'이 아니었을까 제시하는 독특한 작품 「공생가설」 또한 시간을 투자하기에 충분히 흥미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울렸던 작품은 바로 「관내분실」이다.



3.


   「관내분실」은 미래 도서관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다. 더 이상 미래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지 않는다.그 대신 죽은 이의 인격을 보관하고 재현하는 일종의 가상 영화관으로 변모한다. 도서관에서는 '마인드 업로딩' 이라는 작업을 통해 죽은 망자의 기억, 유품, 일대기를 조합하여 살아 생전의 캐릭터를 재현해내는 '영혼재생' 작업을 한다. 물론 망자를 재현한 홀로그램 분신일 뿐이지만 실제와 꼭 같이 대화도 나눌 수 있어,망자를 떠나보낸 유가족들이 고인을 만나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한다. 


  주인공 지민은 아이를 갖자 죽은 엄마 은하가 떠올랐다. 딸은 자신의 삶을 옥죄고 간섭하는 엄마가 미웠고 질렸고 지겨워서 또 외면했다. 자기 삶을 살지 못한 채 딸의 인생에 사사건건 자신을 투영하는 엄마의 답답한 삶에 자신마저 질식할 듯 잡아먹힐 것만 같아서 딸은 엄마에게서 자꾸만 도망쳤고, 엄마 은하는 고독하게 메마른 삶을 살다 건조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렇게 싫어했던 엄마인데, 막상 자신이 엄마가 되자 한 번은 봐야겠단 순간이 지민에게 덜컥하고 찾아왔다. 그러나 어렵게 발을 디딘 도서관에서 엄마의 기억이 분실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사서는 난처한 표정으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엄마 '김은하' 씨의 검색 연결을 끊었다고 알렸다. 분명 존재하지만 접근할 수 없는 '관내 분실' 상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심스레 도서관 측에서 새로운 검색 방법을 통해 연결을 복원할 수 있다 알렸왔다. 그 조건으로 검색의 용이성을 위해 최대한 다량의 '김은하씨의 정보'가 필요하다 알렸다. 지민은 엄마의 분신을 되찾기 위해, 그녀의 삶을 추적하면서 자신이 엄마의 인생에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말만 혈연이었을 뿐이지, 사실상 관내분실 이전부터 그녀와 관계가 끊겨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도." p.252 


 


  그뿐만 아니었다. 은하는 지민을 갖자마자 직장을 잃었고, 엄마가 되자마자 양육에 온 시간을 쏟느라 자기자신을 잊었다. 엄마의 굴레에 갇혀서 자아실현을 하기란 그 종류도 터무니없이 적고, 기회도 부족했다. 그렇게 딸이 자라는 것에 온 정신을 쏟다보니,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이 답답했다. 유일한 해방구인 딸과 소원해지자 마지막 연결인 혈연마저 끊겼다. 은하는 단지 엄마로서만 존재했을 뿐, 사회와 그리고 딸과도 연결이 끊기고 만  '존재분실' 상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p.271


4.


  우리 엄마, 그러니까 그녀는 겨울에 태어난 섬마을 딸이다. 8남매의 맏딸로 '여덟에 일번'을 맡고 있다. 식구, '먹을 입'이 많아 부득이하게 첫째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그녀의 지나온 삶보다, 그녀가 분실했을 많은 나날들에 연민이 생긴다.  


  철없던 때, 나에게도 독립된 어른이 되겠다며 엄마의 모든 것에 반발하고 또 부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서떠나간 부천과 떠나온 부산 사이 거리만큼이나 뜸한 연락에 치기어린 원망의 나날들.  


  그녀는 내가 살아온 날만큼이나 나를 지켜봤으나, 나는 이제 그녀의 절반이 조금 넘게 그녀를 보았을 뿐이다. 우리 사이에 있는 그 공백의 시간만큼이나, 나는 엄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의 풍파와 출생의 제비뽑기로 인해 무수히 분실해야 했던 그녀가 이루지 못한 꿈과 기회들. 많이도 잃어버리고 산 그녀의 인생.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핸드폰을 바꿔드렸다. 엄마는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시무룩해했다. "스마트 폰이 주인보다 더 똑똑해서 성질나 죽겠다!" 한때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물어물어 새로 익혀야 한다고 투정이다.  


  새 핸드폰을 여기저기 눌러보는 엄마를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세상이 변한만큼 엄마도 많이 변했구나. 조금씩 가시고 있는 눈의 탱기, 핏발이 하도 서서 마치 붉은 그물을 친듯한 흰자, 요즘들어 부쩍 잔고장이 많아 앙상해진 팔뚝. 그 모습이 눈에 밟혀 무척이나 측은하고 애달픈 마음이 들었다. 


  나는 눈치채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조금씩 엄마를 데려가고 있다. 그리고 엄마와 조금씩 이 세계에서 멀어지는 중이다. 언젠간 엄마와 나 사이의 연결도 그 감도가 희미해지다 결국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마치 보이저 1호와 지구 사이의 멀어지는 거리처럼, 언젠가 나는 엄마를 잃어버린 빈 세상에서 오래오래 외로운 길을 뚜벅걸음을 하고 걸어갈 것이다. 그것이 모체와 자식이 갖는 숙명이다. 


  앞으로는 엄마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 기왕이면  목소리도 한가득  남겨놓고 싶다. 나에게는 엄마를 기록해줄 <미래 도서관> 같은 건 없으므로. 시간이 데려가는 만큼 나는 엄마라는 사람의 인생 장면을  하나하나 붙들어 남겨 놓을 생각이다. 그리고 간절히 그 기록들이 분실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비로소 나는 보이저 1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