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하겠다는 청년들은 하나같이 양복 차림일까? 교복도 자율화가 이루어진 마당에 ‘양복의 교복화’ 현상이 눈에 자꾸 밟힌다. 두발 규제도 사라진 마당에 2대 8의 머리칼 분배는 국정 가르마라도 되는 것인가. 도덕 교과서적인 발성법은 어째서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연장자를 예우하고자 빼입었다는 궁색한 대답은 듣고 싶지가 않다. 청년 세대의 정치혐오를 생각할 때면, 나는 왜 정치 지망생들의 차림새부터 떠올리는 것일까?




정치가 영화와 닮았다면, 정치 지망생들도 ‘정치인’이라는 캐릭터를 해석한다. 문제는 그 해석이 양복에 갇혔다는 것이다. 빈약하고 획일적이며 낡은 내가 난다. 으레 정치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지레짐작들이 모여 굳어진 일종의 업계 상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눈여겨볼 점은 젊은 정치 지망생이 기존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오히려 강박적으로 선호한다는 점이다. 다 큰 어른에 대한 복장 지적이 양복이 상징하는 비릿한 청년 정치의 한 단면으로 드러났으면 한다.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기분 나쁜 순간은 “시장은 유능하고 정치는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다. 그러나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있노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최소 인재풀에서 만큼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시생이 시험공부를 할 때, 취준생이 사회 경험을 쌓을 때, 정치 지망생은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 투자했을까? 행사에 기웃거려 가방을 들고, 술잔을 따르며 불콰한 사진 찍는 허드렛일 외에 특기할 것이 없다. 이른바 ‘존재 노동’도 노동이라면 노동이지만, 이력서의 공란처럼 헛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 일회용 존재 노동의 필수품이 양복이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청년 정치 지망생은 동년배 취업 준비생보다 확연히 스펙과 역량이 뒤떨어진다. 사실 청년이라는 기회를 이용했으나 사실 그게 전부기 때문이다. 어리다고 하대 받을 이유가 없다면, 사실 젊어서 우대받을 이유도 없다. 젊음은 사회가 특별히 배려하는 하나의 상태일 뿐이지, 정치의 이유나 자격이 될 수 없다. 생물학적 청년이 꼭 청년의 사회 문제를 잘 푼다는 보장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귀속된 정체성이기보다는 자질과 능력이다. 무엇이든 업(業)이 되려면, 시각이 독특하거나, 컨텐츠가 새롭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남들 하는 것을 더 잘해야 한다. 정치도 그렇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청춘이면 아파야 한다로 둔갑하더니,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니까 정치 청년들만 몰려온다. 청년성을 양복에 포장하는데 급급한 정치풍토의 범람에서, 나는 공부하는 청년 정치인을 보고 싶다. 기성 정치인은 학창 시절 사회 운동에 전념하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손 쳐도, 우리가 이끌어갈 새로운 시대의 정치인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자본과 원천기술 없는 기업이 오래 버티지 못하듯이, 자기 분야가 없는 청년 정치인이 자라 정치 자영업자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청년을 위한 것과 청년에 의한 것은 다른 개념이다. 준비 부족이 기회 부족의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세상이 청년 정치를 일회용으로 소비할지라도, 정치 지망생들은 배움을 멈춰선 안 된다. 그래서 한 정치학도가 다른 정치 지망생들에게 감히 고하고 싶다. 취준생들과 자신을 구별 짓기 전에, 최소한 취준생만큼은 공부하시라고. 적어도 알맹이 없는 정치의 시대는 우리 손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나호선(정치외교학 석사 17)  press@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_ 본문은 필자가 <부대신문>에 보낸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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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일 종족주의>에서 군데군데 녹아있는 묘사처럼, 조선시대에 여성인권, 특히 시골처녀들의 인권이 극악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유교 근본주의에 희생된 여성들이 시골농촌이라는 폐쇄적 우물에 갇혀 온갖 잡일을 도맡아했던 것은 아마도 안타깝고 부끄러운 사실이었을 것이다.
 
당대 여성들에게는 혼인 선택권도 없었고, 가정폭력도 심했을 것이고, 항상 가난했기에, 입이라도 덜자는 가족의 결단에 제일 먼저 집에서 방출되어 돈벌이의 역마살에 떠돌아야 했던 처지였을 것이다. 이렇듯 위안부-정신대 문제에는 민족 요소만큼 젠더 문제가 상당부분 들어가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날의 지방의 여학생들이 서울로 떠나고 싶듯이, 해외를 선망하듯이, 당시의 조선 처녀들도 시골과 집구석이라는 지옥을 떠나고 싶어했을 것이다. 시대가 하수상하여, 그것을 교묘하고 악랄하게 이용해먹고, 남의 비극을 팔아 장사하던 브로커들이 있었을 것이고 배움이 모자라거나 세상을 잘 알지못한 어린 처녀들, 혹은 아버지나 집안의 성급한 결정따위로 인해 발을 떠난 처녀들의 숱한 동기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납득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다.
 
  
2. 
 
그렇게 가난과 가정폭력을 피해 열악한 환경을 탈출한 처녀들은 한마디로 취업사기를 당했다. 오늘날에도 가출한 여중생이 성매매로 이어져 인격을 파괴당하듯이, 취업사기의 끝은 인신매매였으며, 본질적으로 전쟁과 식민지라는 거대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성적인 착취였다. 미국의 노예 12년 처럼 밧줄에 채찍을 가해야만 꼭 노예인것인가. 노예와 노동자의 차이를 모르거나, 그런 구분따위가 필요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가능한 발상인가 싶다. 
 
작은 비극을 피하려다 더 큰 재앙을 만난 이들의 서사가 어떻게 '자발적' , '설렘', '로망', '고수익 직장' 따위로 포장되고 단정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란 말인가. 비극 앞에 나타난 또 다른 비극은. 비극의 허위를 증명하는 사료가 아니라, '비극의 중첩'을 나타내는 또 다른 증거일 뿐이다. 일반적인 수난을 교묘하게 덧칠해서, 작달만한 능동성을 부각해 시대적 참상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이영훈 류의 헛소리에는 평소 사람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가 녹아있어 정말 역겨울 따름이다.
 


3. 
 
이 책에선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말을 아주 중요한 사실로 다룬다[pp.347-351]. 그것은 팩트가 맞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사람의 과장된 거짓말이 어떻게 시대의 왜곡으로 이어지게 되는지에는 납득할 설명을 고의적으로 누락하고 있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노예 이미지는 노예사냥식 강제연행의 참거짓이 아니라, 성착취라는 본질적 요소 그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후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아래와 같은 생각으로 이끌도록 몰아간다. 아 물론, 자칭 보수 유튜버들과 논객, 지식인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내가 추정한 내용임을 알린다.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이 부각되어, 피해사실이 신격화 되었는데 그 타이밍이 묘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잠자코 있다가 90년대 갑자기 등장했다. 그래서 그 갑작스런 등장이 혹여나 정치적 선동목적의 기획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역사문제에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함으로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말이다.
 
여기에도 큰 맥락이 누락되어 있다. 한국이 식민지 배상문제를 폭력적으로 마무리지은 한일 협정이 박정희 정권 때였고, 그 연장선인 전두환 - 노태우 군부정권이 92년까지 이어졌으며, 성노예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사회통념상 어려운 시대였으며, 그 사이 민주화가 있었고,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90년대 김영삼 정권에서 일어났으며, 위안부할머니들 분들이 인생을 정리할 노인이 되어 비로소 발언할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생각은 전혀하지 못한다. 
 
그 대신에 그녀들이 타협없는 강경한 근본주의로 인지되도록, 그래서 현실의 정치에 압력을 행사하여, 마치 한일관계를 좌지우지하는 막후 실력자인양 자연히 몰아가고 있다고 보인다.
 
위안부 정신대 할머니들이 근본주의였다면, 정말 폭탄이라도 들고 대사관으로 달려가 '지하드'를 벌였을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도 거짓이다. 신문기사 조금만 검색해봐도 나온다. 할머니들이 권력을 쥐었다면, 역사문제가 이랬겠나? 자기 주장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평화적인 시위조차 강성으로 몰고, 항의조차 근본주의로 몰아가는 평소의 인식이 반영 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4. 
 
정리하자면, 이쪽 계열의 학자들은 항상, ① 사소한 거짓을 발견하고 ② 그 사소한 거짓을 부각해 전체적인 맥락을 도외시하며 ③ 사회과학적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④ 사실은 우리가 거짓 신화 속에 살아왔다 선동한다. 한마디로 침소봉대가 아니라 침대봉소인 것이다.
  
나도 극일은 경계한다. 한일관계의 전환을 일으킨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을 정말 높이 평가하고, 이전에도 현정부가 지나치게 대일외교를 직선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는 시각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 아무리 학문의 자유에 성역이 없다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상처를 입혔다면, 해명보다 사과가 먼저였을 것이다. 자유에 성역이없다면 책임에도 성역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상식이다.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것과 건조하게 그대로 인식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건조한 인식에는 문학적 표현이나, 흥분-욕설, 비유따위가 필요하지도 않다. 학문적인 자세도 아니다. 
  
피해사실의 신격화를 경계한다면서 막상 피해자의 마음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 도덕적 단죄에 저항한다면서, 먼저 도덕적인 공격을 가했다. 정당방위란 무엇인가. 학술적인 이야기라 해놓고 곳곳에 문학적 표현들이 눈에 보인다. 사회과학에서 '문학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모욕인지 아는 사람들이 저런다. 
   
박해에서 신앙이 깊어지고, 깊은 신앙이 순교로 이어지려는 모양이다 보니 아예 평정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영훈의 전작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래도 나름대로 참고할 부분이있는 학문적 최소요건을 갖춘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흑화의 끝. 졸작이라 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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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당달이 2019-08-2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가지 팩트와 데이터에 기반한 결론이 서평을 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영훈 교수가 이 책을 사회과학 학술서로 썼다고 명시한 적도 없는데
사회과학서에 문학적 표현을 썼다고 극렬히 비난하는 것은 쉐도우복싱일 뿐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동안 좌파들이 여러 문학, 영화,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온 일본에 대한 악마적 이미지가 거짓이었음을 처음으로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 서평을 졸작이라 평하겠다.

유동국 2019-08-20 15:37   좋아요 4 | URL
이 사람이 생떼를 쓰는 것을 보니 잘 쓴 서평이 맞다.

프리즘메이커 2019-08-21 17:27   좋아요 1 | URL
˝우리가 오로지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범했을 수 있는 잘못에 대한 엄정한 학술적 비판입니다˝ -<반일 종족주의> , p.5 책머리에서 이영훈

프리즘메이커 2019-08-21 17:28   좋아요 1 | URL
이영훈씨가 책에 직접 밝히셨는데, 댓글 다신분은 책은 읽으시고 비판을 하든 옹호를 하건 댓글을 다셔야죠. 얼른 독서하십시오.

연짱 2019-08-2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마침 ‘그것이 알고싶다‘에 이영훈씨 외 이승만학당 일원들이 나왔습니다. 강제징용노동자상을 만든 조각가가 강제 징용을 상징하는 여러가지 요소를 상징적으로 반영하여 정해진 모델없이 만들었다고 말하는데도 그들은 모델이 자꾸 일본노동자라고 우깁니다,,만든 조각가가 아니라는데 자기들이 생각하고싶은대로 추측하고 뱉는것이지요..또, 15세에 위안부로 끌려가셨던 할머니께서 그때를 기억하시는데..그들은 위안부가 20세 이상의 여성만 참여했다고 주장합니다. 당사자 분들이 떡하니 계시고, 그날의 회상하는데도요..그들은 위안부할머니들의 기억 왜곡 가능성, 사회가 바라는대로 기억할 가능성을 주장합니다..같은 국민으로써 부끄럽고 참담합니다..저런인간들이 교수라고..ㅋㅋ

연짱 2019-08-2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훈은 자아가 두개인가봅니다.

연짱 2019-08-2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youtu.be/1PGzh_RuA0A
 

 

 

폴 존슨의 <모던 타임즈 I,II>를 졸꾸하게 빡독하여 완독했다. 한 대가의 조예가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1. 폴 존슨은 전향한 사회주의자다. 보수주의자면서 자유시장주의적 입장에서 극단적 이념의 시대, 그로 말미암은 열전과 냉전의 시대를 그렸다. 물론 보수적인 그의 사관이 다소 진보적이고 좌파에 호의적인 나와는 맞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명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대 진영에 악랄한 저주를 퍼붓거나 비열한 공격을 가하기보다는 역사가로서, 또 저술가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부드럽고 재치있게 역사를 정리했다. 정체성 정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시대에 꽤나 귀감이 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충만한 정의감의 발산 보다 차분한 비판을 기다리는 태도 말이다.

 

 

2.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고하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입증함에 따라, 인류는 도덕적으로 의지할 곳을 잃게 되었다. 이른바 상대주의의 시대, 절대적인 도덕이 사멸하고 인간의 책임은 갈피를 잃었다.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할 줏대를 상실했다. 상대주의의 시대는 상실의 시대였다.

 

그 결과 인간은 종교 대신 이데올로기에 의존하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지적처럼 인간에게 기독교나 공산주의는 같은 역할을 맡는 일종의 믿음 체계였다. 아니 이데올로기는 현대의 종교였다. 열전과 냉전은 현대판 종교 전쟁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신과 교회 대신, 이념과 정치에 열광했다. 이념에 따라 현실을 개조하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못했다. 그것은 사회공학이라는 지적인 오만이었고, 오만의 결과 열광을 제어하지 못한 인류는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 스탈린주의 따위의 전체주의 괴물을 만들어냈다. 

 

사회공학이 낳은 이념의 프랑켄슈타인은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냉전시대를 야기했으며, 탈냉전시대 제 3세계 국가의 독재자들을 잉태했다. 후쿠야마의 말대로 역사가 끝났는지는 모르겠으나, 폴 존슨은 이제 막 인류가 사회공학의 괴물에게서 벗어나 다시 자유를 회복한 상태라 말하며 책을 끝낸다.

 

3. 1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읽으면서도 단 한 번도 지루하거나 난삽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의 글에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묘미가 있었다. 번역자가 실력이 좋은 덕인지, 원문이 좋았던 것인지는 추후 원서를 재독하면서 파악해 보기로 하겠다.

 

확실한 것은 그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문장력, 사상과 역사의 흐름을 하나의 큰 줄기로 모아내는 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배울 점이 많은 책이었다. 폴 존슨은 기억해둘만한 사건과 이야기들을 자기가 잡은 역사의 큰 가닥에 덧붙여 전개하면서도, 소위 문돌이들이 취약점인 과학, 철학, 예술도 빠짐없이 정리해낸다.

 

4.

오랜만에 읽으면서 머리에 스파크가 튀는 책을 만났다. 독자를 추종의 길로 이끌기보다는 읽는 이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는 책이었다. 왼쪽 심장이 타오르는 청년에게 꽤나 당혹감을 안겨주는, 공부하는 보수의 지적인 결실물이라 할 수 있겠다. 니체와 다윈, 프로이트, 그리고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를 새로 봐야겠다는 감정이 완독의 만족감과 함께 떠오른다. 이만하면 방학에 떠난 해외 여행치고 괜찮은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말

 

최근 학위논문 일정과 출판원고 마감으로 인해 알라딘 서재/북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랜만에 간략한 서평으로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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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의 한반도 


반도에는 원래 벼랑이 많은지 전혀 아는 바가 없으나,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세는 항상 벼랑 끝에서 이루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북한의 정상은 서로를 향해 '화염과 분노', '불망나니' 따위의 말 폭탄을 던지며 신경전을 벌이더니, 다시 핵실험과 코피를 터뜨리겠다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쟁은 일촉즉발일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늙다리 미치광이'와 '로켓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화를 재개하였고 싱가폴에서 역사적인 양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합의는 편지 한 장에 무산되는가 싶더니, 또다시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여기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양국관계의 총론을 합의(혹은 복원)하였다.

싱가폴에서 이제 한 번 만났을 뿐인 두 정상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각별한 우정을 과시하면서, 일 년 만에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국 정상은 각론에서 크게 견해차를 보이며, '노딜 서밋'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남기고 재차 어색한 사이로 돌아섰다. 

이어 어김없이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전형적인 북한식 으름장이 나왔고, 미국은 '제재와 압박'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면서, 대화가 끊긴 침묵을 긴장이 비집고 들어서고 있다. 웨딩카를 몰 것이라 낙관하며, 양국의 맞선을 지켜봤던 '한반도의 운전자'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시름만 그만큼 깊어졌을 뿐이었다. 



이처럼 예측불허의 북미 관계는 상승과 추락을 밥 먹듯이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와 닮았다. 그러나 CNN에서 특파원을 하면서 1989년 이후 15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대북 통 마이크 치노이에 따르면, 이것은 크게 놀랄 일이라기 보단 지긋지긋하게 반복되어왔던 일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북미협상 과정에서 벌어진 롤러코스터와 같은 막전막후를 가감 없이 담았다. 

마이크 치노이는 시기적으로는 클린턴 행정부에서부터 조지 부시 행정부 집권기, 상대방으로 김정일이 맞서던 때의 대북이슈를 다뤘다. 그러나 그는 부시 행정부 내 국방부를 주축으로 한 네오콘의 매파와 국무부와 동아태국을 중심으로 한 비둘기파의 권력투쟁을 특히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북핵문제의 장기화에는 플루토늄 동결에 합의하였으면서도 우라늄 방식의 핵개발을 비밀로 추진했던 북한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동시에 부시 행정부 내에서 협상과 대결이라는 모순된 신호가 동시에 흘러나와, 어느 것이 신호이고 어느 것이 소음인지 불분명하게 만들어 사안의 불확실성을 키운 미국의 책임도 일정부분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한국에는 2010년에 번역되어 소개된 지 약 10년 가까이 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김정일이 죽고 그의 3남 김정은이 수령에 올랐으며, 부시를 지나 오바마가 물러나고 다시 트럼프가 들어선 지금에도 여전히 효용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그때의 주축들이 여전히 상당수가 대북전선 전면에 요직에서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존 볼턴이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①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이 책에는 굉장히 방대하면서도 세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서평에서는 지면 관계상 주목할 만한 인물의 일대기를 위주로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소개할 인물은 대한민국의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혈기왕성한 아들 부시 대통령이 이데올로기적 혐오로 인해, 1994년에 북미 간에 성사된 '제네바 합의'를 섣불리 어그러뜨릴까 일본보다 앞서 급하게 한미정상 회담을 잡는다.

미국으로 날아간 김대중은 국무장관 파월에게 효과적으로 자신을 어필하였으나,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관여정책의 지속을 요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조지 W. 부시는 김대중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며 오히려 동맹국 한국의 정상을 'this man'이라 모욕하며 돌려보낸다.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면 심지어 악마와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네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김대중은 아이젠하워, 닉슨, 그리고 레이건 등 3명의 공화당 대통령이 증오스러운 공산 적대국과 대화를 한 바 있음을 환기시켰다. 
  김대중의 이어지는 말. "심지어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를 때도 그는 대화를 가졌다. 그럴진대 북한과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 그래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또 한 번의 전쟁을 벌여야 하더라도 그것은 최후의 수단, 마지막 선택이 되어야 하고, 대화를 포함한 다른 방법을 다 써본 뒤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그 당시 북한은 일관되게 미국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왜 당신은 대화 옵션을 취하지 않는가?" pp.144-145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이후 재야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아버지 부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북문제의 엄중함을 설명하고 일시적으로 부시의 강경기조를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한다. 고군분투하는 김대중의 모습에서는 우리보다 강한 동맹국에게 자기주장을 포기하며 국익을 저버릴 것인지, 혹은 자기주장을 펼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고민과 수완이 엿보인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② 조지 부시와 국방부 및 네오콘 네트워크




조지 W. 부시와 부통령 딕 체니, 국방부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그리고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 존 볼턴은 공화당 내에서 '네오콘'이라 불리는 강성 이데올로기 동맹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념은 다음과 같다. 

'무력행사를 통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미국식 정치경제 체제를 이식할 수 있고, 독재국가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안보를 위해 봉쇄와 억지를 넘어서 '선제적 공격'도 불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신보수주의적 강경 이상주의자들의 신념이다.

네오콘들의 득세에 따라,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직접 북한을 드나들었던 숙련된 대북 전문가들이 모조리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차지한 강경파들은 구체적인 정보나 데이터보다는 자의적 해석과 힘과 끓어오르는 분노, 특히 혐오감으로 북한 문제를 다뤘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다뤄야 했던 대북전략이 속된 말로 '뇌피셜'의 음모론에 지배당했던 것이다. 여기서 대북 투쟁과 미국 내 대북 관여파와의 노선투쟁에서 활약했던 인물이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중역을 맡고 있는 존 볼턴이었다.

파월을 비롯한 국무부 북핵 실무를 담당했던 동아태국의 제임스 켈리, 주한대사 토머스 허버드 등은 구체적인 정보와 현안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여전히 북한의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해법은 대북 관여라고 파악했다. 그러나 그들은 외교를 선전포고의 전단계정도로 생각하는 치기어린 네오콘들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에도 바빴다.

콜린 파월을 비롯한 비둘기파는 어떻게든 대북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보려고 애썼으나, 부시 대통령 본인부터 북한 인민을 굶겨 죽이는 악성 독재자이자 피그미 김정일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뒀던 터였다. 쉽게 말해서 부시 행정부는 대북혐오는 있었지만 대북정책은 전무했다. 

대화를 포기했으면서도 그 빈자리를 채울 미국의 채찍은 모조리 이라크를 향해 있던 상황이었다. 네오콘들은 북한을 위협하면, 위협에 굴복한 북한이 핵을 저절로 포기할 것이라 순진하게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더는 제네바 합의가 존속할 수 없다고 파악했으며, 사담 후세인의 말로에서 핵이 없으면 이라크와 같은 꼴에 처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휩싸여, 네오콘의 의도와 정반대로 핵무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③ 일본 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와 동시에, 일본의 지도자는 훗날 정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방식으로, 부시에게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고려해보라고 권고했다. 고이즈미는 말했다. "당신은 김정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소. 김정일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오. 그는 신뢰를 받을 수도 없소. 하지만 당신은 그와 직접 대화를 가져야 하오." pp. 184-184


일본의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한국 국민 일반에서 전범국 일본의 재흥을 노리는 극우 수장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대북이슈에서 만큼은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 충분히 재평가 받을 가치가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충동을 제어하는데는 김대중-노무현의 대한민국 정부의 반대뿐만 아니라, 부시의 친구로 불렸던 고이즈미의 설득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동아시아 동맹국들과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대북 압박책을 펼쳤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의 전쟁위기를 고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미국으로부터 소외되기 보다는 미국의 지휘에 불응하고, 한국과 일본 각자가 단독으로 북한과 접촉하는 쪽을 택했다. 부시의 대북정책은 대북관계도 악화시켰으나, 동맹국들의 협조도 얻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불쾌한 심기를 무릅쓰고 직접 평양에 건너가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고이즈미는 김정일로부터 납북자 문제를 공식적으로 사과 받는 성과를 올린다. 양국은 '평양선언'을 도출해내며, 향후 식민지 배상 및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고, 납북자문제를 처리하며 관계를 정상화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납북자 문제 해결은 일본 외교의 큰 성과였으나, 김정일의 납북자문제 인정은 일본 국내의 국민정서를 악화시켰다. 대북 강경론자로 유명했던 아베 신조는 이 같은 국민 정서를 이용하여, 이것을 일약 거물 정치인으로 오르는 기회로 삼았다. 

일본 자민당 내 파벌보다 국민 여론에 기대어 자기 정치를 펼쳤던 고이즈미 또한 여론 악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소신과 달리, 더 이상 대북 관여정책을 유연하게 유지할 수 없었다. 고이즈미가 물러나자, 일본은 대북 강경책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었다.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의 유연함보다는 대북강경론을 앞세워, 일본의 재무장과 연계해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미래는 어디로?

대북 매파의 흐름은 오바마 행정부 8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일본 아베 장기집권으로 일치된 압박 정책을 보이며 지속되었다. 말미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까지 가담하였다. 그러나 결국 북한은 핵을 완성하였고 붕괴하지 않았으며, 대북정책은 협상으로 되돌아왔다. 

분명 아베는 대북 문제에 있어서 아베는 고이즈미보다 못한 인물이며,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유연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부시보다 현실적이고, 김정은은 김정일보다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관되게 한-미-일-북-중-러가 끼어있는 한반도의 '6차 방정식'을 풀기 위해 분투 중이다. 섣부른 낙관은 경계해야하지만, 그렇다고 하노이에서의 합의 연기(혹은 결렬)에 넋 놓고 비관할 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이후 한반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과거의 패턴이 또 다시 반복될 것인가. 과거에서 교훈을 삼을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날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다시 한 번 과거를 살펴볼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대북 보도와 기록을 알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2019.03.18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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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9-03-1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출간 준비 중인 원고 막바지 작업과 학위논문 준비로 인해 새글이 뜸했습니다...
빨리 일정이 정리되어 속편하고 여유롭게 책 읽고 서평쓰는 삶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화면을 터치해주세요. 본 서평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것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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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메님 명절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행복한 일상들 되시길^^👍

프리즘메이커 2019-02-02 02:33   좋아요 1 | URL
설연휴였군요! 카알벨루치님도 즐거운 연휴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