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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아이는 외로운 어른이 된다 -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관계를 치유하는 시간
황즈잉 지음, 진실희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1월
평점 :
제목을 읽는 순간 나는 상처받은, 외로운 어른으로 자라났을까? 란 질문과 나는 내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감정은 아니지만 일종의 양가감정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관계를 치유하는 시간’이라는 부제를 눈여겨본다.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제목이다. 대부분 혹시 나도? 란 생각이 들 듯 하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처가 될때 내가 알아야 할 것들’ 은 무엇이려나.
상처받은 아이는 외로운 어른이 된다.
황즈잉 지음, 진실희 옮김
더퀘스트
대인관계치료 상담심리자인 저자는 대인과정이론에서 볼 때 개인의 인내심, 매정함, 무관심은 모두 타인과의 상호작용, 특히 어린 시절 부모와 상호작용하면서 필요에 따라 발전시킨 효과적인 대응 전략이라고 말한다. 대인과정이론에서는 개인의 특질이나 개성, 인격은 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한다고 보며, 대처 전략을 조정하면 운명을 바꾸고 대인 관계의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p7)고 설명하며 시작한다
<상처받은 아이는 자라서 어떤 관계 문제를 겪는가> 에 대해 1장에서 다양한 사례와 함께 풀어내고, <외로운 어른은 어린 시절 어떤 상처를 받았는가>를 2장에서 다룬다. 3장에서는 <부부는 무엇으로 살고 또 멀어지는가> 에 대한 사례를 담았다. 각 사례와 더불어 중간 중간 [마음의 쉼터] 라는 코너를 두어 자가 진단을 할 수 있는 질문들도 제시하고 있다.
상처받은 아이가 겪는 문제(1장) 는 외로운 어른의 모습에서 다시 드러나고 (2장), 그 어른들이 상호작용하는 부부의 관계(3장) 에서 더욱 극명해진다. 여자친구를 우울의 바다로 끌어내고 싶어 구세주 역할을 자처했던 햇살남 알렉스와, 알렉스의 밝은 기운에 물들어 조금씩 달라지던 벨라 커플의 사례를 보자. 조금 달라지던 벨라는 사실 ‘내가 괜찮아지면 날 떠나지 않을까?’ 란 두려움을 키우고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각자의 인생에서 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p228)
'각자의 인생에서 원하는 역할' 이라는 문장이 마음에서 콕 박힌다. 나르시시즘과 콤플렉스가 공존하는 상태로 ‘자신과 역할을 동일시하면 그 역할에 맞는 상대를 관계로 끌어들이게 된다’(p228)는 지적 또한 그렇다.
고통스러운 관계는 쌍방에 책임이 있다.
당사자는 자기가 희생하고 봉사한다고 여기지만, 상대방은 그 희생과 봉사를 전혀 모르거나 오히려 그 속에서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참고 견디면서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상황이 지속되도록 부추긴다. 이를테면 부부 싸움에서 한 명이 싸우려 들어도 다른 한 명이 무시한다면 싸움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할 수 없다.
- p229, 3장 부부는 무엇으로 살고 또 멀어지는가
'그들 사이에 서로가 원하는 극본이 있으며, 그 드라마는 양쪽 모두의 성취가 있기 때문에 지속됐다는 점' 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혹은 현실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는 이어 프로이트의 ‘투사 개념’과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 개념’을 끌어와 이 관계를 분석한다. 이 개념은 앞선 2장의 어린 시절 상처받은 어른의 경우를 설명하면서도 자주 등장한다. '투사'는 본래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자기 내면에서 용납할 수 없는 부정적인 평가를 일방적으로 외부에 던져버리는 일종의 방어기제를 말한다. 반면 '동일시'는 일종의 수용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모든 관계 중 배우자에 대한 판타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며 종종 관심이나 사랑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내 뜻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는 메시지가 숨겨있다고 설명한다. 실제적 사례와 함께 이론적인 설명을 읽다보니 더욱 쉽고, 객관적으로 해당 사례를 들여다보게 되는 듯 했다.
말만 하면 서로를 자극하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서로 툭툭 내뱉는 한마디와 논점 없는 말다툼이 쌓이면 결국 관계의 초점을 잃게 된다. 사실 사례 속 부부는 거친 말을 주고받았지만 내면의 가장 핵심적인 두려움과 기대를 터놓고 이야기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아이가 병이 나자 엄마인 쟈위 씨는 불안하고 어쩔 줄 몰랐고 남편이 그에 관해 물을 때마다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불안할 수록 진심을 드러내기가 무서워서 융한씨가 걱정하는 바를 밖으로 표출하거나 요구 사항을 제시하지 못했다.
융한씨는 아내가 자기만큼 이 일에 몰입하지도 걱정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나만큼 아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내가 그 중요성을 더 과장되게 드러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강력하게 말했는데 그때마다 쟈위 씨는 불안감이 증포됐고 남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결국 부부는 무환순환에 빠졌다. 한쪽은 ‘저 사람 지금 통제력을 잃을 것 같아. 신뢰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고 다른 한쪽은 ‘저 사람은 나만큼 이 문제를 중시하지 않아’ 라고 여겼다.
- p272
학술적으로는 이런 현상의 ‘부정적 상호작용의 고리 nagative interaction loop’. 라고 한다. 주변 사례를 보면 아이의 건강보다는 교육 문제에 대한 대화에 있어서 이런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 듯 하다. '소통이 인정과 부정, 옳고 그름, 흑과 백을 표명하는 데 갇혀버리면 논쟁과 반박으로 변질하기 쉽다. 그리고 논쟁이 한번 부정적인 순환을 타게 되면 상대방이 멀게 느껴지고 서로의 진심에 닿기 더욱 어려워진다.' (p273)
충돌을 유난히 두려워하는 내 성격은 어떤 과정으로 형성된 성격인지를 책 속에서 찾아보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 내 아이는 나라는 부모의 영향아래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부모는 좌충우돌하고 전전긍긍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은 상대방 집의 대문을 허무는 일과 닮았다. 특히 가족을 향한 사랑은 더욱 그렇다. 어떤 부모는 자신의 불안과 초조를 아이에게 투영하고 이내 그 감정을 '너는 내 말을 들어야만 해' 라는 통제 욕구로 변질시킨다. 부모들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모른다. (...)
부모가 될 준비를 마치고 부모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 p97
어린 시절의 가족의 사랑을 지키는 동시에 성장에 따른 고통과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탄생한 생존 전략은 '순종하기와 환심사기', '공격하기와 저항하기', '회피하기' 등 여러가지가 있다. 내 스스로가, 그리고 아이가 어떤 전략을 택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지점이다. 이런 상호작용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예측의 여지를 주지만, 갑자기 변하게 되면서 상대를 낯설게 하게 만들기도 한다. 저자는 읽는 이에게 묻는다. '당신도 자녀로서, 부모로서 전환기를 거쳤나요?' 라고.
태그를 빼곡하게 붙여놓고 오래 곱씹게 되는 책이다. 내가 알아채지 못했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것들을 다시금 발견해보게 되기도 하고, 그럼으로 나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지는 듯 하다. 더불어 반복되는 관계 패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