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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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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허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전국 시청률 40%를 넘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드라마였다. 드라마에서 허준이 어의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었는데, 그는 권력을 좇는 의사이기보다는 사람에 대해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던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다. 물론 허준의 측은지심과 별도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었다. 드라마 속에서보면 어의로서 궁궐내의 왕을 치료하고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왕이 승하하기라도 하면 어의 또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그만큼 어의의 역할이 중요했고 왕의 건강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번에 읽은『왕의 한의학』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참고로 해 왕이 처방받은 약을 통해 왕의 질병을 살펴보았고, 왕의 질병을 통해 조선의 역사, 역사속의 비밀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사람에게는 체질도 중요하지만,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당쟁에 휩싸여, 혹은 왕족들의 권력싸움의 한가운데서 버텨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조선의 왕들이 특히 많이 걸린 병이 종기라고 했다. 최근에는 보기 드물지만, 오래전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종기가 꽤 많았었던것 같다. 고약을 사러 약방에 심부름을 가곤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때도 종기가 있었던 듯 한데, 조선 시대에서야 더 흔한 질병이었으리라. 종기 뿐만이 아니다. 조선의 왕들은 학질도 많이 걸렸으며 안질, 소갈병(당뇨병)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소갈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했다. 왕에게는 왕의 곁에서 왕의 건강을 보살피는 어의가 있었는데, 어떤 어의가 있는가에 따라 왕을 살리기도 했고, 잘못된 판단으로 왕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환자의 역사, 즉 환자가 살아온 삶의 흐름과 이력을 읽고 질병의 함의와 맥락을 통찰하려 한다. 환자가 느끼는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이유를 되새기면서 환자의 상태를 수용하고 이해하려고 애쓴다. 한의사는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질병이 던지는 메시지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157페이지)

 

  우리가 흔히 야사(野史)가 진짜 숨겨진 역사가 아닐까 싶다. 야사속에서 많이 나오는 정조 독살설에 대해 나도 어느 정도 사실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책 속에서 정조에게 처방했던 약들과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니 저자가 말한 것이 사실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인삼을 강하게 거부했지만, 정조의 체질을 간과했던 어의의 실수가 정조의 죽음을 부르지 않았는가 말이다.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장수한 왕 영조가 특히 인삼을 많이 복용했다고 했다. 인삼의 효능이 아무리 좋아도 정조의 몸에는 맞지 않았다는 것. 아무리 좋은 인삼이라도 결국엔 사람의 체질에 맞게 처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왕들의 한의학을 읽으며 조선의 역사에 더 깊이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진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에서 사관들이 적은 내용, 자신의 병세에 대한 왕의 설명, 신하들의 처방약에 대한 권고 등을 읽으며 왕의 건강이 곧 조선을 살리는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 비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침과 뜸을 이용한 치료보다는 보약등의 예방약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직 한의사가 쓴 글이어서 왕에 처방한 약들로 왕의 병을 진단하는 책이려니 했지만, 여느 역사서 못지 않게 왕의 질병과 질병이 생기게 된 원인등을 역사속에서 찾았다는 점이 특별했다. 역사의 비밀과 질병의 상관 관계를 제대로 살펴본 느낌이었다. 우리가 심리 상담을 받을때도 우리가 살아온 내력을 알아야 하듯, 우리의 질병도 우리가 살아온 내력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배운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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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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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은지 20년이 지났다. 도서관에서 몇 권씩 빌려읽고, 다음 책이 들어오지 않아 애를 태우곤 했었다. 열 권의 책을 다 읽고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던 시간이기도 했던 때. 이제 시간이 꽤 흘렀고, 『태백산맥』의 내용마저도 희미해져 가는 때 그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허수아비춤』과 『정글만리』였다. 이 책들을 읽고 내가 그동안 『태백산맥』을 잊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들을 말하는 작가, 조정래의 책을 다시 읽었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꺼내주는 이야기, 『조정래의 시선』이다. 소설에서 느끼지 못했던 조정래의 민낯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에세이라기보다는 강연과 방송 출연을 하면서 했던 말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말을 하고 나면 흩어져버릴 귀중한 말들을 책으로 한데 엮어 놓은 책을 읽고 있노라니 우리가 생각해야 할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글만리』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리라. 우리가 그동안 중국을 너무 몰랐음을. 물론 사업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알고 있었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그저 중국은 저가 상품을 많이 내는 나라, 우리의 70년대쯤 되는 나라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중국인들을 무시하던 시대는 지났다. 십 년전의 중국여행에서 내가 느꼈던 중국과는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중국의 위상이 지금 어떻게 되었던가. 갑자기 G2로 등극해버려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작가 조정래의 시선은 명확했다. 우리나라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하는 방법들을 이야기한다. 군사적으로 미국과 얽혀 있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많은 교역을 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미국과 중국을 잘 저울질하며 우리나라가 어떻게 나서야 하는지를 말한다. 조정래의 시선은 여느 정치가나 경제학자보다 훨씬 낫다.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지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대하소설을 세 편이나 쓰는 동안 작가는 두문불출하며 하루에 몇장씩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가르켜 그는 '황홀한 글감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오랜시간동안 취재를 바탕으로 글을 썼고, 그는 작품속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했다.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는 그는 그동안 쓴 작품들의 원고지를 쌓으면 몇 층짜리 건물과 맞먹는다고 한다. 

 

소설은 상상의 소산이되 시대와 무대가 명확하면 거기에 맞는 사실과 진실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허황된 이야기를 황당하게 지껄이다가 독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쓰레기 더미를 생산할 수 밖에 없습니다.  (110페이지) 

 

문학은 그런 척박함에 뿌리내리며 피어나는 꽃입니다. 그래서 그 꽃은 영원을 향하여 시들지 않습니다. 문학을 하며 호화롭게 살기를 바라지 말고, 굶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학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그 확신 위에서 좋은 작품은 탄생하며, 굶주리며 쓴 좋은 작품은 영생을 얻습니다. 문학은 어차피 어느 시대에나 절대다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수가 선택하되, 그 소수가 인간사회를 이끌어갔습니다.. '작가란 인류의 스승이고, 그 시대의 산소다.' 인류적 동의로 주어진 명예입니다.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실존입니다.  (292페이지)

 

 

 

   작가는 한국문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데, 장편소설이 전부 1인칭이라는 말을 한다. 1인칭은 '나'를 통해서만 다른 주인공들이 움직이게 된다. 인물들의 자율성이 박탈되고, 소설의 스토리텔링이 허약해지고, 결국은 장편소설이 소설이 되지 못하고 멈춰지게 된다. (213페이지)  작가는 역사를 치열하게 다루는 작품이 없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다.

 

  작가의 문학론, 작가의 인생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오래전에 『태백산맥』을 읽은후에 다시 『태백산맥』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0~50대가 읽어도 좋겠지만, 20~30대가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정글만리』또한 아이들에게도 방학동안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소개시켜 주었다. 아이들이 방학동안 『태백산맥』과 『정글만리』를 펼쳐놓고 읽는 모습을 보고싶다. 그래서 좀더 나은 시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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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7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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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을 꽤 좋아한다. 여러 음악을 골고루 듣는 편인데 한가지 음악을 한동안씩 오래 듣는것 같다. 최근엔 팝송에 빠져있는데, 오래전엔 클래식 음악과 뉴에이지 음악이라 불렸던 연주곡을 많이 들었다. 음악을 듣기만 했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은 많지 않다. 그저 나를 위로하는 음악에 빠져있었을뿐. 연주곡은 일하면서 듣기에도 좋았다. 피아노곡도 좋지만, 특히 현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래서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곡을 특별히 좋아해 자주 들었다.

 

 

  책이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친구이듯 이처럼 음악도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슬픈 일이 있을때에도 마음을 다독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음악을 듣는 이들이 많다. 작가들중에 작품을 쓸때 어떤 특정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쓴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예외는 아닌지 그는 특히 재즈 음악을 좋아하고, 클래식 음악도 좋아한다고 했다. 음악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연주회가 있으면 직접 찾아다닐 정도로 열정을 다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그걸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대화라 책으로 엮고 싶다고 했다. 특정한 음악가의 음악을 들으며 연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걸 읽다보면, 우리도 어느새 그 장소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3번을 들을때에도 같이 듣는듯한 느낌을 가졌다. 음악을 듣지 않아도 음악을 듣는 느낌, 이 책이 그랬다.

 

 

오자와  나는 이 대화란 걸 마니아를 위해서 하고 싶진 않아요. 마니아한테는 재미없지만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읽다 보면 재미있는 걸 만들고 싶군요. 나는 그런 지침으로 하고 싶어요. (89페이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자와 세이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오래전에 어느 카페에 가면 지휘자 카라얀의 사진을 액자로 넣어 벽에 걸어둔 곳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오자와 세이지는 이 유명한 지휘자 카라얀에게 사사를 받았다. 또한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도 활동을 했다.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일했을뿐만 아니라 빈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으로도 활동을 한 음악가라는 것이다.

 

 

 

 

  책의 표지 또한 커다란 포스터를 반으로 접은듯이 사용해 표지를 펼치면 하나의 포스터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에 대한 지식, 그의 음악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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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1 - 팥알이와 콩알이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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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아파트 앞을 걷다가 누런색을 띈 고양이가 우리 부부를 따라오는걸 발견했다. 아파트에서 자주 보이는 녀석인데 자세히 살펴보니 배가 불룩한것 같았다. 새끼라도 밴듯 했다. 배가 고픈지 걷는 동안 계속 따라왔고, 신랑 다리를 비비적거릴려고 했다. 신랑은 왜 따라오느냐며 말을 걸고 고양이는 계속 따라왔다. 더이상 따라오지 말라고 소리를 한번 질렀다. 고양이는 깜짝 놀라더니 움찔하고는 주춤거렸다. 어렸을때부터 유달리 고양이를 아꼈던 신랑은 지금도 고양이를 보면 사랑스러운지 그렇게 말을 걸곤 한다. 신랑 말에 의하면 학교갔다 돌아오면 집밖에서 기다릴 정도였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사는 길고양이를 본날 우연히 고양이에 관한 만화를 읽게 되었다. 만화라 가볍고, 금새 읽었다. 콩알처럼 작은 고양이라 하여 콩알이, 팥알이라고 불리는 고양이들. 입양한 집에 들어가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누나와 누나네 오빠와 함께 하는 동거기이다. 우리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듯 고양이들에게도 새로운 환경은 낯설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게 되는 팥알이와 콩알이의 이야기는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고양이들의 시선에서 만나는 가족들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고양이들의 눈에는 이 사람들이 이방인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마 콩알이만 입양한게 아니라 팥알이까지 입양하게 되었으니 고양이들로서는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입양한 경우, 남매나 자매 혹은 형제를 같이 입양해 주었으면 하는 우리의 바람처럼.

 

 

  시골에서 제사를 지낼때면 생선 냄새에 부엌을 기웃거리는 커다란 어미 고양이들과 새끼 고양이들은 다를 것이겠지만, 가족들과 더불어 적응해가며 생활하는 고양이들의 이야기에 점점 고양이들이 싫지는 않은것 같다. 내가 키우지는 못해도 무조건 싫어하지만은 않을거라는 것. 이제는 고양이건 강아지건 쓰다듬어 줄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 이런 것은 친구들이 고양이를 기르기 때문이고, 책 속에서 만나는 고양이나 강아지에 대한 글을 읽어서 일수도 있겠다.

 

 

  이 글을 쓴 네코마키는 부부 일러스트레이터로 애묘 '냥코'와 동거중이라 한다. 고양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고양이의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 책을 내기까지 한 것 같다. 이 책은 곧 자신들이 키우는 고양이들의 이야기이도 한 것이다. 쉬엄쉬엄 쉬어가며 읽기 좋은 만화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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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 오늘의 젊은 작가 5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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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 시절을 함께 했던 음악은 뭐였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많이 읽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음악으로 달래던 시절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 하나의 뮤지션을 몇년씩 좋아하기 보다는 아마 몇 개월씩 주구장창 그 뮤지션의 음악만 들었으니.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음악을 주구장창 들었을때, 당시 한방을 쓰던 여동생으로부터 '제발, 이제 그만 좀 듣자'고 할 정도로 오랜시간 듣기도 했었지. 또 누가 있었더라. 그때는 시디가 없었고 LP시대라 LP를 꽤 모았었다. 테이프로 녹음해 듣다가 뮤지션의 음반을 사기 위해 시내를 온통 돌아다니기도 했었던 때. 문득 이 글을 쓰는데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박솔뫼 작가의 『도시의 시간』속에서 우나가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때문에 뉴욕을 그렸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 제니 준 스미스. 다. 그 다음이, 1954년에 태어남. 이고. 이 책은 제니 준 스미스로 시작해 재발매된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을 들으며 끝난다. 소설 속에 자리한 제니 준 스미스란 인물이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 우나의 아버지가 들었던 곡을 우나가 들었고, 우나의 친구인 '내'가 들고 있었으니. 이 책은 우나의 이야기이고, 제니 준 스미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뭘 참 못했던 우나. 우나와 나, 배정, 우나의 동생 우미. 이들 넷은 늘 함께 움직이며, 우나의 집 근처를 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이들. 그나마 '나'와 배정은 학원을 다녔지만, 우나와 우미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우나의 방을 상상한다. '내'가 바라보았던 우나. 늘 집에서 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좋아했고, 준이 살았다는 포틀랜드를 말했던 우나. 우나를 바라보는 '나', 우미와 배정을 바라보는 '나' 그들의 시간들은 늘 반복이었다. 제니 준 스미스 혹은 준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왔던 것처럼 이들의 시간도 반복되는 시간들이었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우나가 살았던 그 골목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던 이들. 도시에서의 시간들은 늘 반복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불안한 청춘. 불안한 미래. 어느 누구의 관계에서도 확실함을 알수 없었던 젊음의 시간들. 이들의 시간은 모호함의 시간일수도 있었다.

 

 

 

 

박솔뫼 작가의 책을 읽은 게 『을』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에서의 느낌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 예전의 리뷰를 살펴보니, 그래도 잘 모르겠다. 책의 내용은 자세히 적지 않고, 그때의 느낌을 적은 글이니 더 그럴지도. 한가지 기억나는건 박솔뫼 작가의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을』을 읽었을때부터 약간 모호한 글을 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어떤 것' 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그 무엇.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꽤 좋아하고, 알아가고 싶은데 그들의 삶, 두려움과 방황이 책 속에서도 나타나는가 싶기도 하다. 배정과 우미, 우미와 나, 나와 우나의 삶처럼. 늘 뉴욕의 거리를 그렸던 우나. 뉴욕의 지하철 노선도 마저 그렸던 우나가 미국으로 향했을때 우나는 좀더 잘하는 것이 생겼을까. 준의 첫 음반이 재 발매되고, 내가 음악을 듣고 밖으로 나가 어딘가를 향해 달려나가듯이 청춘들은 늘 달려나갈 준비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나는 미국에 가서 제니 준 스미스를 찾았을까. 그래서 대구에서와는 또다른 도시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 무엇하나 확실하게 말해준 건 없지만. 어떻게든 그 시간들은 흐르기 마련이고, 우나에 대한 기억, 우미에 대한 기억, 배정에 대한 기억들도 청춘들의 한 시간이었음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닫게 되는 일. 아마도 그건 그 시간들을 함께 보낸 이들의 마음 한 조각. 그리움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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