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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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한 신라의 역사를 엽기 발랄하게 그려내고 있어요.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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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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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9ㆍ11 테러 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내가 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전부였다. 그들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과거 우리나라가 무수히 많은 침략을 당한 것은 지리적인 탓도 있다고 했다. 그제서야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이 나라를 지도에서 찾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란과 파키스탄 사이에 있으며, 소련이 무너진 이후에는 무려 6개국과 국경을 나란히 학 있는 나라다. 수도 카불(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알게 된 사실)은 아프가니스탄의 동쪽, 그러니까 파키스탄과 가까운 곳에 있다. 지도를 보고서야 그들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미르는 부유한 아버지를 둔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에게는 자신보다 한 살 어린 하인 하산이 있었다. 부잣집 도련님 아미르가 아무리 고약한 짓을 해도 하산의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산은 하자르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국민의 80% 이상이 수니파로, 시아파인 하자르인은 소수민족인 것이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소수민족들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경우는 허다하다. 게다가 하산은 언청이로 태어났으며, 그의 엄마는 그를 낳자마자 도망가 버렸다. 비록 그가 부잣집 도련님을 모시고 있긴 했지만,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사람들은 하산을 놀렸다. 특히 아미르 아버지의 친구 아들인 아세프 일당이 심했다. 물론 처음부터 하산이 표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미르가 당연히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아미르는 축구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의 아버지 바바 조차도 그런 모습을 걱정할 정도였다. 아세프 일당이 그런 아미르를 괴롭히자 하산은 자신의 특기인 새총으로 아세프를 위협했고, 아세프는 복수를 다짐하며 도망갔다.
겨울이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연날리기 대회가 열렸다. 이 연날리기의 승자는 연을 오래 혹은 멀리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고 최후에 남는 사람이었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이 대회의 승자였고, 자신의 아들도 승자가 되길 원했다. 이 대회에는 또 한가지의 선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승자가 마지막으로 끊은 연을 쫓아가 차지하는 것이다. 하산은 연이 떨어지기도 전에 떨어질 곳으로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연을 차지했다.
아미르가 13살 되던 해, 그는 연날리기 대회의 승자가 되었고 하산은 아미르를 위해 연을 쫓아 갔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뒤늦게 하산을 따라가기 시작한 아미르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막다른 골목에 하산과 연, 벗어놓은 하산의 바지, 그리고 아세프 일당이 있었다. 하산은 연을 지키기 위해 아세프의 몹쓸 짓에도 저항할 수 없었다. 아미르는 그것을 몰래 숨어서 지켜만 보았다. 그날 이후 하산은 한동안 아팠고, 아미르는 하산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하산을 보는 것이 괴로웠던 아미르는 결국 하산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고 집에서 나가게 만들었다. 하산의 아버지 알리와 함께 자란 아버지 바바는 울면서 알리에게 애원했지만, 알리는 하산의 손을 잡고 집에서 나가버렸다.
그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있었다. 부자였던 아버지 바바는 달랑 옷가지 몇 개만 챙겨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존경받던 바바가 미국에서 한 일은 주유소 충전과 벼룩시장에서 중고물품을 파는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아미르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알리와 하산을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는 아버지가 싫었다. 아미르는 자신이 태어남과 동시에 엄마가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아미르는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깨닫고 생활은 어려웠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게 된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미르가 결혼하자마자 바바는 암이 전이되어 돌아가시고 만다. 다행히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아내의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원했던 소설가가 되어 네 권의 책도 펴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 아이가 없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오랜 파트너인 라힘 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병 때문에 파키스탄의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소설가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해준 라힘 칸을 만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라힘 칸은 그동안 숨겨 두었던 아버지 바바의 비밀에 대해 털어 놓기 시작하는데.

『연을 쫓는 아이』는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그곳에는 지금도 겪고 있을 아프가니스탄 아이들 아니 모든 사람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비록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책이기는 하지만,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미드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나라가 가해자이고, 어느 나라가 피해자인지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소년들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아름다운 모습과 전통을 담아내고 있다. 마냥 이분법적인 잣대로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아프가니스탄은 나쁜 나라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내가 얼마나 수준 미달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우리가 겪어온 과거를 알면서,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인데 왜 한가지 밖에 보지 못했는지 미안할 따름이다. 게다가 우리와 비슷한 구석도 있지 않은가. 한 겨울에 연날리기를 하고, 간식으로 오디를 먹는 모습 말이다. 이 기회에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을 언급했다. 할레드 호세이니와 이창래는 어릴적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영어로 소설을 써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러나 이창래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할레드 호세이니보다 훨씬 어릴적, 그러니까 한국에 대한 그 어떤 기억도 가질 수 었었던 3살 때였다. 역자는 그가 소설에서 한국의 모습에 대해 잘못 묘사하고 있다고 아쉬워했지만, 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일부러 한국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조사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더 어색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나도 그 부분이 참 아쉬웠지만, 역자의 그런 언급은 나를 언짢게 만들었다.

2008/07/0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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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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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나는 우리 문학을 자주 읽지도 않을 뿐더러 쉽게 읽지도 못한다. 덕분에 즐겨 읽는 우리 작가가 있을리 없다. 심윤경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작가이다. 고작 한 편이었지만 심윤경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서라벌 사람들』은 그녀의 네번째 작품으로 서람벌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섯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연제태후」는 지증왕의 비이자 법흥황제의 모후다. 양물이 한자 다섯치(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한자는 30cm, 한치는 1/10자=3cm란다. 환산하면 45cm)나 됐던 지증왕은 배필을 구할 수가 없었다. 혼처를 구하던 한 신하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똥을 눈 처녀를 데리고 온다. 그야말로 커다란 양물만큼 덩치가 컸던 지증왕에게 딱 어울리는 처녀였다. 지증왕이 죽고 보위에 오른 법흥황제는 모후인 연제태후와 갈등을 겪는다. 연제태후는 중국의 문물과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에 반대했지만 법흥황제는 신하들의 복색을 바꾸고 은근슬쩍 이차돈도 가까이했다. 연제태후는 왕이 곧 신이요, 그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바로 신국인데 왜 스스로 신에서 인간이 되려고 하냐고 질타한다.

「준랑의 혼인」에서는 두 화랑이 등장한다. 혼인을 앞둔 준랑은 자신의 스승인 영랑과 함께 길을 나선다. 산길을 오르내리며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다. 한편 준랑의 처가 될 애혜낭주는 신나게 처녀파티(!)를 즐긴다. 주령구(주사위) 놀이를 하며 벌칙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도 하고 옷도 벗긴다. 동성을 향해 애틋한 마음을 품었던 낭도들을 남편으로 둔 아내와 예비 신부는 그들만의 유흥으로 그것을 풀어버린다.

「변신」에서는 성골을 향한 진골의 컴플렉스를 엿볼 수 있다. 최초로 진골 출신 왕이 된 김춘추, 그는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자고로 성골은 지증왕처럼 거인족이었다. 성골들은 그들의 고귀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성골들끼리의 혼인만 허락되어졌고, 세대가 거듭될수록 성골들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어 급기야 선덕황제에 이르러서는 결혼상대가 없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선덕황제를 가까이서 본 김춘추는 백성들이 선덕황제에게 보내는 이상한 믿음을 부러워했다. 선덕황제를 너무나도 사모한 천골 지귀는 불로 화하기도 했다. 김춘추는 성골처럼 거인이 되기 위해 먹고, 먹고, 또 먹으며 변신을 꾀한다.

「혜성가」에서는 서라벌 사람들의 성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남녀간의 합례를 신성한 의식으로 여겼고, 그 신성한 의식으로 어려움에 처한 나라까지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이런 전통을 지키려는 신궁과 새로운 종교로 급부상하고 있는 불교가 서로 대립한다. 혜성이 나타나자 불길한 징조라 여긴 사람들은 합례 의식을 치르고, 절 앞에서 그런 불경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항해 승려들은 염불을 왼다. 그러나 재밌게도 불길한 징조가 사라지자 왕은 승려들에게 하사품을 내린다.

「천관사」는 이승에서 못다 이룬 김유신과 천관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그의 동생 흠순공이 절을 지으려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절을 지을만큼의 충분한 재산이 없었다. 그는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후 조용히 수도를 시작한 원효대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원효대사가 전국 순회법회를 돌며 그의 장기인 머리에 바가지 쓰고 팽이 돌리기를 하며 절을 지을 자금을 모금한다. 여기서 원효대사의 팽이 돌리기는 비보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서라벌 사람들』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려 했던 법흥왕과 순교로 기여한 이차돈,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원효대사, 선덕여왕과 그녀를 사모했던 지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되었던 김춘추와 그의 처남 김유신의 이야기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이 익숙한 이야기에 심윤경의 상상력이 보태어져 생각지도 못했던 재미를 선사한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그 시대를 바라보는 정확한 눈이 존재한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그녀는 제대로 말할 수도, 쓸 수도 없었던 군부 체제 하의 상황을 '난독증'으로 풀어냈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당시 시대 상황을 아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아픈 성장 소설이었다면, 『서라벌 사람들』은 엽기 발랄한 소설이다.

2008/07/0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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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8-07-0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 투~ ㅋㅋ
 
내 우산 속으로 들어와 뜨인돌 그림책 7
엠 크리스티나 버틀러 지음, 이상희 옮김, 티나 맥노튼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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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는 엄마가 무얼 하나 사주면 하루종일 그것만 만지작거렸던 것 같아요.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어릴적만큼 설레임을 안겨주는 물건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릴적에는 새로 산 우산을 써보려고 비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고, 예쁜 필통이라도 하나 장만하면 빨리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왠만한 물건은 쉽게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어느 광고에서처럼 갖고 싶으면 사면 되고 잊어버리면 또 사면 되니까 그 설레임이 덜한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새로운 책을 만나는 설레임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답니다.

꼬마 고슴도치는 바로 그런 친구예요. 어느날 아침, "톡톡 토도톡 톡톡"하고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잠을 깼어요. 왜냐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우산과 노란 비옷과 장화를 새로 샀는데, 드디어 쓸 수 있게 되었거든요. 꼬마 고슴도치는 노란 비옷을 입고, 노란 장화를 신고,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갔어요.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그때 비에 젖은 두더지가 나타났어요. 집에 물이 차서 엉망이라고 하네요. 고슴도치는 두더지에게 우산을 씌워 주며 함게 새 집을 만들 자리를 찾아보자고 했어요. 그때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서 우산이 뒤집혔고 작은 두더지가 그만 날려 가고 말았어요. 놀란 꼬마 고슴도치가 두더지를 겨우 잡았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찬 바람이 불어서 고슴도치와 두더지 모두 날려가고 말았어요. 그리고 강물로 떨어졌어요. 둘은 우산을 보트 삼아 겨우 버티고 있는데, 맞은편 둑에서 여우가 손을 흔들고 있네요. 강물이 풀밭으로 넘쳐서 생쥐 가족들이 꼼짝도 못하고 있다네요. 고슴도치와 두더지는 나뭇가지 두 개로 우산 보트를 저으며 생쥐 가족을 구하러 갔어요. 생쥐 가족을 무사히 구한 고슴도치와 두더지, 여우는 오소리네 집으로 가서 몸을 말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오소리네 집 지붕에 빗물이 새서 말썽이네요. 그때 꼬마 고슴도치는 아주 멋진 생각이 떠올랐지요. 빗물이 새는 천장에 우산을 거꾸로 거는 것이었어요. 그러자 빗물이 우산 안으로 흘러 들어갔어요.

꼬마 고슴도치가 그렇게 기다리던 비였는데, 그 비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숲 속 친구들이 피해를 입었어요. 다행히 꼬마 고슴도치는 착한 친구여서 숲 속 친구들의 어려움을 모른 척 하지 않았어요. 아끼던 새 우산으로 친구들을 구해냈죠. 덕분에 꼬마 고슴도치에게는 비 오는 날 도란도란 둘러앉아 함께 모험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어요.

그나저나 꼬마 고슴도치의 우산, 너무 예뻐요. 하얀 땡땡이가 그려진 빨간 우산은 홀로그램으로 되어 있어서 반짝반짝 빛나거든요. 이 우산이 왜 이렇게 빛나는 줄 아세요? 왜냐하면 이 우산은 비 오는 날 친구들을 구한 정말 대단한 우산이거든요.



2008/07/0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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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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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얼마나 읽으세요?"
이런 질문에는 얼마든지 당당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는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이 책 읽었어요? 내용은 어떤가요?"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물었기 때문이 아니다. 분명 읽었음에도 머리 속은 하얗다.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커녕 간단한 줄거리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다행히 어떤 이들은 내가 너무 많은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거라며 착하게 웃으며 넘어가 준다.
너무 책에게 끌려가는 내가 싫었고 지쳐버렸다. 과연 나는 제대로 된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일까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정말 읽고 싶을 때만, 읽고 싶은 책들만 천천히 읽고 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읽을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과연 내가 이런 식으로 읽다가는 그 책들을 모두 읽어낼 수 있을까? 책장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읽지 않는 책들을 보며 또다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마지막 책장에 가까워질수록 최고조에 달한다.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왜 이리 불안할까?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은 몇 곱절이나 많은데.

히라노 게이치로의 독서법을 소개한 책이 나왔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손이 가질 않았다. 그의 작품은 한권도 읽지 않았으면서 그의 독서법만 엿본다는 것이 좀 웃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시도하고 있는 천천히 읽기에 대해 그도 할말이 있단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속독법의 허점을 파헤치며 한 권이라도 괜찮으니 제대로 읽으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은 책을 빨리 읽지 못한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다고 한다. 직업적인 이유로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하는 그들이 왜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그 책을 쓴 작가의 입장이 되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곱씹어 읽기 때문이란다. 제대로 이해되지 않으며 다시 앞페이지로 넘겨서 읽어보고, 기억나지 않으면 다시 꺼내서 읽어 본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해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일까? 물론 둘 다 아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원래 인간의 뇌가 그런 것이다.
시험 보기 전날, 밤새 공부한 친구보다 공부하다가 깜박 잠이 든 친구가 성적이 더 잘 나오는 경우가 있다. 우리 뇌는 어느 정도의 잠을 자야 머리 속에 축적된 것을 저장한다고 한다. 또 한번에 축적할 수 있는 양이 생각보다 적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집어 넣는다고 해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그러니까 밤새 책을 읽는 것보다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는 것이 기억하는데 유리하다는 말이다.

예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법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엄청난 다독가로, 경우에 따라서는 속독도 하고 통독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 차원에서 방대한 양의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량은 실로 놀라웠지만, 솔직히 따라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의 독서법은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굳이 따라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반면 히라노 게이치로의 독서법은 나같은 사람이라도 비법을 전수받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유용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비법을 전수해 주고 있다. 뜬구름 잡듯이가 아니라 구체적인 예문까지 들어가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마치 국어 선생님처럼.

그는 나에게 천천히 읽기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고, 그 비법까지 알려주었다. 이제 내가 실천하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만화책을 읽을 때는 이 독서법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5권을 읽을 때 겨우 1권 밖에 읽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읽는다. 나는 천천히 읽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빨리 읽는 것은 책 좀 읽는다는 자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만화책은 그토록 음미하며 읽으면서 익숙한 책은 빨리 읽으니 말이다.
머지않아 문장의 참맛을 느낄 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건 여담인데, 책에 실린 그의 소개를 보고 나와 생일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내가 태어난 날 소사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그가 실천편의 예문으로 삼은 『장송』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나랑 생일도 같은데.

2008/07/0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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