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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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거기 보면 마들렌이 나와. 주인공이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으면서 과거를 회상하거든. 근데 주인공이 마들렌을 어떻게 표현했냐 하면, 통통하게 생긴 관능적이고 풍성한 주름을 가진... 불어강사가 가르쳐준거야. 마들렌 말고 쇼숑이랑 브리오슈랑 프랑스 과자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그 책을 사긴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몇 장 읽다 말았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식이를 기다리던 삼순이가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으며 말도 통하지 않는 헨리에게 들려주던 이야기이다. 꼭 한번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선뜻 도전할 수 없었던 책인데, 삼순이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 역시도 너무 어려워서 딱 마들렌을 묘사한 부분까지만 읽고 말았다.
사실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서 외면했다고 한다. 원래의 텍스트 자체가 어려운데 번역본은 오죽 어려울까. 특히 한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다. 두 세 줄은 기본이고 한 페이지를 차지할 때도 있다.
장식품 마냥 내 책장을 차지하고 있던 이 책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 든 이유는 많은 작가들이 프루스트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도, 레몽 장도,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은 대놓고 좋아하냐고 묻고 있다. 개인적으로 영미문학보다는 프랑스문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프루스트의 벽을 꼭 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것을 계기로 그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어느 잠못드는 밤 '나'는 침대에서 어린시절 회상에 빠진다. 잠들기전 어머니의 키스를 기다리는 '나'는 설레임보다는 고통으로 가득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내 끝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완이 방문하는 날이면 어머니는 '나'에게 키스를 하러 올라오지 않았고, '나'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잠들지 않는다.
'나'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또 하나의 계기는 홍차와 함께 나온 마들렌이다. 홍차에 담근 마들렌을 한 입 베어물자 어린시절 콩브레에서 지냈던 일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그 무렵 '나'와 가족들은 콩브레 주변을 산책하는데, 산책하는 길이 두 '방향'으로 나있다. 그 중 하나는 메제글리즈 쪽으로 가는 것인데, 그 쪽으로 가려면 스완 씨의 소유지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스완네 집 쪽으로'라고 불렀다. 그리고 또 하나는 게르망트 쪽으로, 이 산책길은 길고 오래 걸려서 날씨가 좋은 날을 잡아 나서야했다. 보통은 '스완네 집 쪽으로' 산책을 나서는데, 어느날 게르망트 쪽으로 나선 산책에서 '나'는 자신이 문학적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

마들렌처럼 프루스트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특히 산책길을 묘사한 그의 글을 보고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프루스트의 표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왜 그토록 많은 작가들이 프루스트를 인용하고 언급하는지 알 것도 같다.
이제 시작이다. 한 권을 읽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지만, 그의 멋진 문장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빨리 시선을 재촉하고 싶다. 

   
 

과거의 환기는 억지로 그것을 구하려고 해도 헛수고요, 지성의 온갖 노력도 소용없다.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물질적인 대상 안에(이 물질적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우연에 달려 있다. (p.65)

우리는 단지 남들의 정열밖에 눈에 띄지 않으므로 우리 자신의 정열을 알게 되는 것은, 주로 남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난 다음이기 때문이다. (p.184)

게르망트 쪽으로 다니는 산책에서, 문학적 소질이 없는 것과, 유명한 작가가 되기를 단념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전보다 더 얼마나 가슴 쓰렸는지! (p.252)

 
   

 2008/08/0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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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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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행위와 연상되는 이미지 : 에로틱 vs 사치
   『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른 여섯 살 여인에게 책 읽어주는 열 다섯 살의 소년이 있다. 두 남녀는 책 읽어주는 사이로 시작돼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한다. "책 읽어주는 여자"라고 했을 때, 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하나! 예전에는 책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서양 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돈을 받고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있었다. 누군가가 책 읽어주는 것을 들으려면 일단 돈이 있어야 한다. 글을 모른다는 부득이한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든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사치'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책 읽어주는 행위"와 연상되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들 뿐이다. 단, 글을 모르는 할머니에게 군대간 아들의 편지를 대신 읽어주는 행위는 '정'이라 부르며 예외로 두어야겠지만 말이다.

책 읽어주는 행위의 효용성
   히라노 게이치로는 『책을 읽는 방법』에서 소리내어 읽지 말라고 했다. '잘 읽는' 것에 의식을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내용에 대한 주의력이 산만해진다는 것이다. 또 술술 막힘없이 읽어 나가야하므로 같은 곳을 반복해서 읽거나 생각할 시간을 갖거나 앞 페이지로 돌아갈 수 없다. 읽는 사람이 이러한데 읽는 것을 듣는 사람은 오죽하랴.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나부터도 그러하다. 얼마전 운 좋게도 작가가 직접 자신의 소설을 낭독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소리는 귓가를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책 읽어주는 행위 뿐이었는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책 읽어주는 일을 시작하게 된 마리-콩스탕스. 과연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하나 둘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소년, 사회주의를 외치는 소리에 질려 가족들이 모두 떠나버린 백작 부인, 바쁜 엄마 대신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소녀, 이혼 후 외롭게 살고 있는 부유한 사업가, 그리고 사드를 읽고픈 전직 판사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책 읽어주는 행위'가 아닌 그들에게 부족한 무언가를 그녀가 채워주기를 원했다. 그녀는 '또 다른 행위'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고자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행위'는 '책 읽어주는 여자'가 지녀야 할 직업 윤리에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직업 윤리는 그녀가 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해놓은 것이다.) 순조롭게 자신의 역할을 해오던 그녀는 결국 판사의 욕망은 채워주지 못한채 뛰쳐 나간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전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판사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되지 않았을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공공연하게 껌을 뱉고 휴지를 버리면서도 막상 경찰관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덧붙이는 말] 그 악명(!) 높은 사드의 『소돔 120일』을 살짝 맛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살짝 본 맛 때문에 본격적으로 먹어볼 생각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책이란 우리가 이 세상과 온몸으로 접촉은 하지 못할 때조차도 우리와 이 세상을 맺어주는 마지막 끈. (p238)

독서라는 분야에서는 다른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미처 다 만족시키지 못한 욕구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p241)

 
   

2008/07/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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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2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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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맞춤법에 예민한 편이다. 책을 읽을 때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번역한 문장이 우리말 어법에 어긋날 때는 번역자의 지적 수준 혹은 직업 윤리까지 의심하곤 한다.
아마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토록 맞춤법에 예민한 것은 나 자신이 맞춤법에 자신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말이다. 부끄럽지만 그것은 절대 아니다. 국어시간에는 졸기만 했고 영단어나 영문법 책은 책장 가득 채우고 있어도 우리말 관련 책들은 한 권도 없다.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도 맞춤법이 거슬린다. 왜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우리말을 쉽게 배우고 특별한 교육이 없이도 무엇이 어색하고 잘못된 표현인지 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책은 가족과 식구, 엉덩이와 궁뎅이, 안과 속, 끝과 마지막, 광경과 장면, 목숨과 생명, 씨와 씨앗, 다시와 또처럼 자주 사용하지만 정확한 차이를 모르고 혼용하고 있는 낱말들의 뜻과 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문제를 던져 스스로 그 해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까지는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용했던 낱말들인데, 이렇게 그 차이를 생각해보면 놀랍게도 우리는 그 차이를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조금만 신경 쓰면 우리는 충분히 우리말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구사할 수 있다. 국어 실력으로 밥 먹고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전혀 지루하지 않으니까, 쉽고 재밌게 쓰여져 있으니까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2008/07/2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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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블로거 문학 대상] 문학에 관한 10문 10답 트랙백 이벤트

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 문학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다 좋아요. 예쁜 그림이 있는 동화도 좋고,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역사 소설, 스멀스멀 공포가 피어 오르는 추리소설, 누군가의 여행을 엿볼 수 있는 여행 에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판타지 등 무엇이든 좋아요!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 여름하면 추리나 판타지죠. 피서지에서라면 재밌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최고죠. 예전에 읽은 책인데, 정말 재밌었어요.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항상 바뀌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로맹가리, 알랭 드 보통 등 외국 작가를 좋아했었는데, 최근에는 우리 작가들이 눈에 띄더라구요. 특히 심윤경 작가를 좋아해요. 네 편의 소설들이 전혀 다른 느낌이거든요.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도로시와 그 친구들을 좋아해요. 저도 모험을 떠나고 싶은데, 그 모험에 이들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요.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데 요즘에는 『달콤한 나의 도시』에 나오는 은수가 저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업이 같거든요. 아직 은수보다는 어리지만, 저도 은수 나이가 되면 멋진 세 남자가 나타날거라고 믿고 싶어요.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이 책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 슬픔을 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생 앞에 내가 함께 할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당신은 슬퍼할 필요가 없다구요.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 다치바나 다카시에게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을 선물하고 싶어요. 다치바나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그의 속독법을 소개했었는데,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리딩을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가끔씩 힘겨울 때마다 이라부의 비타민 주사를 처방 받고 싶을 정도로 재밌었어요.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 "책과 매춘부는 침대로 끌어들일 수 있다. 책과 매춘부는 시간을 헷갈리게 만든다. 밤을 낮처럼, 낮을 밤처럼 지배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중)
책과 매춘부를 비교한 부분이예요. 어떻게 이토록 상이한 두 사물을 비교할 생각을 했는지 작가의 기발한 사유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어요.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어린왕자』. 이 책을 시작으로 제 '독서 인생'이 시작됐죠. 언젠가는 제 '인생의 책'도 만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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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산문집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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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가는 나만의 '그곳'은 없다!

비록 비는다  내리지 않지만 반갑지 않은 태풍 소식에 꼼잡도 할 수 없던 주말 오후,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형광등의 열기조차 짜증이 났던 나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다른 사람의 여행이나 엿보자 싶었다.
잠깐, 그는 혼자일 때 가는 '그곳'이 있는가본데 나만의 비밀스러운 '그곳'은 어디더라? 주위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여행을 자주하는 탓에 나름 방랑기가 있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막상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언제나 나는 혼자인데, 왜 없을까? 사실 혼자서 길을 떠나곤 하지만 그 여행의 목적지에는 항상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사람이 그리워서였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온전히 혼자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만의 '그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그곳'을 엿보고 한번 따라해볼까?

그리움과 아쉬움이 가득한 '그곳'
내가 한 곳도 가지지 못한 '그곳'을 무려 10곳이나 가지고 있는 저자는 분명 부자다. 게다가 아주 고마운 사람이다. 이렇게 공개해 버리면 그만의 '그곳'이 될 수 없을텐데 그는 기꺼이 공유하고자 한다. 또 고마운 것은 '그곳'이 모두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나라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해외 여행지는 멋지기는 하지만 '동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젠가는 가보게 되겠지, 이 나라 밖을 나서면 꼭 저 곳을 가봐야지, 하며 속으로 다짐은 하지만 아득하기만 하다. 뜬구름처럼. 설혹 가게 되더라도 그 많은 곳을 어떻게 다 가보리. 어딘가는 분명 '동경'으로 남을 것이다.
반면에 이 땅의 '그곳'들은 다르다. 이미 다녀온 곳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갈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래서 그리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그곳'을 갔던 시절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립고, 미처 내가 보지 못했던 풍경이 아쉽다. 어느날 문득 그 그리움과 아쉬움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줄지도 모른다.

그의 여행에 지칠 줄 모른다!
저자가 오랫동안 다녀온 곳을 한번에 따라가려면 지칠 법도 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을 따라오는 독자들이 지칠까봐 저자는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시원하게 찍힌 사진을 감상할 수도 있고, 머리 식힐 겸 소설을 읽을 수도 있다. '그곳'과 함께한 누군가의 시를 읽을 수도 있고, 그 사연을 들을 수도 있다.
그 쉼 속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법성게' 풀이였다. 오래전 그 뜻도 모른채 무작정 외웠던 '법성게였다. 외운 것이 아까워서라도 언젠가는 그 뜻풀이를 해보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종교서적도 아닌 여행에세이를 통해 해결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세상에는 땅 부자가 많다. 몇 만 평의 땅을 가진 사람도 있고 몇 십만 평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소유한 건 그들의 일상영역이 아니다. 오직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부동산일 뿐이다. 반면 개인 소유의 땅은 한 평도 없지만 히말라야를 일상영역으로 만든 사람도 있고 세계를 일상영역으로 만든 사람도 있다. (에필로그, p254)  
   


나의 일상영역은 어디까지일까?
나름 여행 좀 한다는 나의 일상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위로는 서울? 아래로는 땅끝마을, 서쪽으로는 태안반도, 동쪽으로는 호미곶 정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니 완벽한 일상영역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온전한 나만의 '그곳'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은데, 그렇게 하려면 정말 부지런해져야겠다.
시간은 일몰을 향해 달려가지만 어두컴컴했던 방 안은 맑게 갠 날씨 덕분에 오히려 환해졌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내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소설가가 아닌 여행기를 쓰는 산문가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2008/07/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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