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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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읽어주는 행위와 연상되는 이미지 : 에로틱 vs 사치
   『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른 여섯 살 여인에게 책 읽어주는 열 다섯 살의 소년이 있다. 두 남녀는 책 읽어주는 사이로 시작돼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한다. "책 읽어주는 여자"라고 했을 때, 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하나! 예전에는 책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서양 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돈을 받고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있었다. 누군가가 책 읽어주는 것을 들으려면 일단 돈이 있어야 한다. 글을 모른다는 부득이한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든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사치'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책 읽어주는 행위"와 연상되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들 뿐이다. 단, 글을 모르는 할머니에게 군대간 아들의 편지를 대신 읽어주는 행위는 '정'이라 부르며 예외로 두어야겠지만 말이다.

책 읽어주는 행위의 효용성
   히라노 게이치로는 『책을 읽는 방법』에서 소리내어 읽지 말라고 했다. '잘 읽는' 것에 의식을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내용에 대한 주의력이 산만해진다는 것이다. 또 술술 막힘없이 읽어 나가야하므로 같은 곳을 반복해서 읽거나 생각할 시간을 갖거나 앞 페이지로 돌아갈 수 없다. 읽는 사람이 이러한데 읽는 것을 듣는 사람은 오죽하랴.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나부터도 그러하다. 얼마전 운 좋게도 작가가 직접 자신의 소설을 낭독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소리는 귓가를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책 읽어주는 행위 뿐이었는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책 읽어주는 일을 시작하게 된 마리-콩스탕스. 과연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하나 둘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소년, 사회주의를 외치는 소리에 질려 가족들이 모두 떠나버린 백작 부인, 바쁜 엄마 대신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소녀, 이혼 후 외롭게 살고 있는 부유한 사업가, 그리고 사드를 읽고픈 전직 판사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책 읽어주는 행위'가 아닌 그들에게 부족한 무언가를 그녀가 채워주기를 원했다. 그녀는 '또 다른 행위'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고자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행위'는 '책 읽어주는 여자'가 지녀야 할 직업 윤리에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직업 윤리는 그녀가 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해놓은 것이다.) 순조롭게 자신의 역할을 해오던 그녀는 결국 판사의 욕망은 채워주지 못한채 뛰쳐 나간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전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판사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되지 않았을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공공연하게 껌을 뱉고 휴지를 버리면서도 막상 경찰관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덧붙이는 말] 그 악명(!) 높은 사드의 『소돔 120일』을 살짝 맛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살짝 본 맛 때문에 본격적으로 먹어볼 생각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책이란 우리가 이 세상과 온몸으로 접촉은 하지 못할 때조차도 우리와 이 세상을 맺어주는 마지막 끈. (p238)

독서라는 분야에서는 다른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미처 다 만족시키지 못한 욕구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p241)

 
   

2008/07/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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