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론 까치글방 42
이우구스트 베벨 / 까치 /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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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종속과 만연한 매춘에 기대고 있는 부르주아 가족은 그 경제적 토대인 사유재산을 없애면 자연히 붕괴할 거야! (아우구스트 베벨) [1]

 

 

다수자는 소수자에게 자기들의 법률을 강요하거나 박해를 가한다. 그러나 여자는 미국의 흑인이나 유태인들처럼 소수자가 아니다. 지구 위에는 남자와 같은 수의 여자가 있다. 최초에 이 두 무리는 서로 독립해 있었다. 예전에는 쌍방이 서로 모르고 지냈거나 또는 어느 편이나 상대편의 자주성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 결과 약자는 강자에게 굴복하게 되었다. 유태 민족의 분산, 미국의 노예 제도의 등장, 식민지 정복 등은 획기적인 역사적 예들이다. 이 경우에 피압박자들은 최소한 지난날의 추억을 간직한다. 그들은 과거와 전통, 때로는 종교와 문화를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베벨(August Bebel: 여성론자, <부인론>의 저자, 1840~1913)이 묘사한 여자와 프롤레타리아와의 비교는 아주 훌륭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수적으로 열세하지도 않고 또 그들의 개별적인 집단이 최근까지 형성된 일이 없었다. 비록 과거에 사건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여자와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를 계급의 범주 내에서 설명을 하고, 특정한 개인을 이러한 계급 속으로 끌어들여 이유를 밝힌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인 발전이다. 프롤레타리아라는 것이 언제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는 언제나 있었다. 여자는 그 생리 구조에 의하여 여자이다. 역사를 한껏 소급해 보아도 여자는 늘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 [2]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전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었던 푸리에와 오언, 베벨 같은 이들은 단지 선의의 미덕에 의해 계급 특권과 착취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이상세계를 상정하면서 현존하는 사회적 불평등에 관하여 설교하는 것 이상을 하지 못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3]

 

 

보부아르(Beauvoir)《제2의 성》(을유문화사, 1993) 1권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의 앞 장을 읽다가 말았다. 독서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문장을 따라가던 내 눈이 두 권의 책 초반부에 나온 ‘생소한 이름’ 앞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 그 이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보부아르와 파이어스톤의 책을 잠시 덮고 베벨의 《여성론》(까치, 1990)을 펼쳤다. 2보 전진 독서를 위한 1보 후퇴 독서다.

 

 

 

 

 

 

 

 

베벨은 여성해방론을 주장한 독일의 사회주의자다. 그는 마르크스(Marx)의 사회주의를 지지하여 사회민주당을 창설,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가 1879년에 발표한 <여성과 사회주의(Die Frau und der Sozialismus)>사회민주당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여성론》과 《여성과 사회》(보성출판사, 1988)는 이 책의 번역본이다. 일본에서는 이 책이 ‘부인론’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여성론》의 초판은 180여 쪽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기존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자료를 계속 추가하면서 중판이 여러 번 출간되었고 1910년에 400쪽이 넘는 개정 50판이 출간되었다. 《여성론》 완역본은 저자 생전에 마지막으로 나온 개정 50판을 번역한 것이다. 1987년에 책의 1~3부를 번역한 책이 나온 적이 있다. 1990년에 4부를 온전히 번역한 완역본이 출간되었다. 까치 판 《여성론》을 헌책방에 만나게 되면 이 책이 완역본인지 아닌지 잘 살펴봐야 한다. 《여성론》 완역본 앞표지에는 ‘완역본’이라는 글자가 있다.

 

베벨은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 시민계급)의 여성운동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다. 그는 남녀 평등사회가 실현된다고 해도 여성들은 남성만 유리한 ‘결혼과 매춘’에 예속된다고 주장한다.

 

 

  시민계급의 여성운동이 주장하듯 남녀의 완전한 평등권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여성의 예속상태―거의 모든 여성들에게 현재의 결혼제도는 바로 이러하다―나 매춘 그리고 남성에 대한 경제적 예속 등과 같은 악덕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명백한 일이다. 좀 더 혜택 받은 계층에 속하는 몇몇 여성들이 교직과 의료직, 학문과 관리 생활 등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하여 여성의 지위 전반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의 관계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서론, 9쪽)

 

 

  노동여성들을 가장 괴롭히고 있는 임금제와 또 현존의 재산 및 산업질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성적 노예제를 없애기 위해 국가 및 사회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바꿔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시민계급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이와 같은 근본적 변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특권적 지위에 있으므로 계속 확산되어나가는 노동여성운동을 위험하고도 부당한 투쟁이라 생각하면서 저지하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첨예화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적 대립이 여성운동 내부에서도 날카롭게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다. (서론, 9~10쪽)

 

 

책의 1부는 각종 인류학적 연구 성과를 동원하여 원시사회부터 ‘모권(母權)’을 가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베벨은 루이스 헨리 모건(Lewis Henry Morgan)《인류사회》(문화문고, 2005)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두레, 2012)을 인용하여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할 수 있는 정당성을 내세운다. 분업과 경제가 발달하면서 모권 중심의 원시사회는 자연스럽게 부권(父權)과 일부일처제가 가능한 부권 중심의 농경사회로 전환되었다.

 

 

고대의 씨족조직이 와해됨과 아울러 여성의 영향력과 지위도 급격히 하락하였다. 결국 모권은 소멸되고 부권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사유재산 소유자로서 남자는 이제 그가 ‘적출’로 인정하여 자신의 재산을 상속케 할 자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1부, 36쪽)

 

 

2부는 사유재산제의 자본주의 사회가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 무산계급 또는 노동계급)와 여성을 억압하는 각종 사례를 논한다. 베벨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마찬가지로 결혼이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사회제도’라고 규탄한다. 그는 부르주아지 여성 운동가들이 외면한 프롤레타리아 여성 노동자(기혼 여성)들의 비참한 상황을 열거하여 여성과 프롤레타리아를 ‘자본주의 사회 속에 고통받는 존재’로 인식한다. 또 매춘 행위를 금지하면서도 ‘공창’을 용인하는 국가의 이중적인 자세가 여성을 불리하게 만드는 사회제도라고 지적한다.

 

3부에서 베벨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간 갈등과 양극화 현상을 언급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를 주시한다. 베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 여성을 해방할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는 이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4부에 사회주의가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앞으로 나가야 할 청사진을 제시했다.

 

밀의 《여성의 종속》(책세상, 2006)이 남성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경전이라면 베벨의 《여성론》은 남성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경전이다. 부르주아 여성들이 선호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사회 개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베벨은 《여성론》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의 실현’을 위한 여성의 적극적인 노동 운동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책도 시대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베벨은 중세 여성을 성적으로 억압한 나쁜 문화의 사례로 영주의 초야권(初夜權, 영주가 결혼하는 농노의 신부와 첫날밤을 보낼 권리)을 언급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초야권을 유럽 중세 시대에 성행한 적이 없는 문화로 보는 견해가 지지받고 있다. 베벨은 동성애를 ‘자연에 반하는 성욕 만족’, 동성애자를 ‘방탕아’로 표현했다. 그 당시에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형태로 보는 사회적 편견이 있었다. 베벨은 남녀 모두 균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전면 무상 교육을 주장했다. 그리고 고된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해서 완벽한 조리 도구와 각종 가전제품이 마련된 ‘공산주의적 취사장’을 제안하기도 했다. 성능 좋은 조리 기구와 부인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가전제품이 생겨도 여성의 가사노동은 남성보다 많은 실정이다. 그런데 베벨은 남성도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파이어스톤의 지적대로 베벨의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언론 자유가 전혀 없다는 저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야말로 부르주아 사회를 가장 완벽한 사회로 규정해놓고 적대감으로 사회주의를 비방하고 깎아내리는 억지임에 틀림없다. 부르주아 사회를 마치 진정한 언론자유의 보루인 양 말하는 것 자체가 벌써 명백한 거짓이다. (4부 484쪽)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지길 바라는 열망이 너무나도 컸던 베벨은 간간이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는 사회주의 내부의 문제점을 바라보지 못했고, 그는 사회주의 사회가 언론 자유를 보장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마르크스, 바벨과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꿈꿨던 국가는 그들의 이상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스탈린(Stalin)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스탈린 체제는 가족 제도 유지를 강화하는 국가 정책을 전면으로 내세웠고, 베벨이 지지한 ‘여성의 자유연애’를 금지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쉴 틈 없이 공장 노동과 가사노동을 모두 맡아야하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이렇듯 사회주의도 ‘가장 완벽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피차일반이다.

 

 

 

 

 

[1] 수전 앨리스 워킨스 《페미니즘》 (김영사, 2007) 90쪽

[2] 《제2의 성 1》 (을유문화사, 1993, 구판) 16~17쪽

[3] 《성의 변증법》 (꾸리에, 2016) 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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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3 11:34   좋아요 1 | URL
<여성론>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성의 지위는 그 민족의 문화를 측정하는 데 가장 적절한 척도이다.” (127쪽)

여성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